소설리스트

장야여화-327화 (327/649)

327화. 새벽종

여기까지 오는 동안 구조팀도 밀려드는 피로에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선지 위드 시티 생활 구역의 불이 꺼지기도 전에 다들 알아서 침대로 직행했다.

느릿하게 흐르는 적막 속에, 돌연 1층 침대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퍼스트 시티로의 여정이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네.”

장목화의 말에, 2층 침대에 누운 성건우가 호응했다.

“전 퍼스트 시티에서 우리에게 밥 사줘야 하는 사람들을 헤아리고 있었어요. 백용명과 임단아 팀, 우딕, 한명호⋯⋯.”

장목화는 그냥 눈을 감고 잠든 척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7시, 햇살이 기지개를 켜며 다시금 도시를 깨웠다.

구조팀 역시 일찍이 하루를 시작해 사우스 스트리트를 걷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가능한 가게 중에 문을 안 연 데가 왜 이렇게 많지?”

용여홍이 좌우를 둘러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 위드 시티에 왔을 때는 겨울이긴 해도 여러 가게에서 아침 식사를 팔았었다. 그런 가게들은 장사가 잘되는 편인 수준을 넘어 아예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유적 사냥꾼 대부분이 이 도시에 짧게 머무를 뿐이라 직접 밥해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밖에서 사 먹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1카스만 내면 퍽퍽하고 거칠어도 옥수수빵 한 덩어리에 따뜻한 물도 곁들여 먹을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침 식사였다.

하지만 오늘은 서너 곳만 열려 있고, 나머지는 다 문이 닫혀있었다. 장사 중인 가게에도 손님이 많지 않았다.

거리가 한산하고 지나다니는 행인이 적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용여홍은 지금 뭔가를 기다리듯 중앙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는 남루한 행색의 수많은 유적 사냥꾼들을 보고 있었다.

백새벽도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보통 이런 시기에는 아침 장사가 더 잘 되는 편인데.”

봄엔 주변에 머물던 유적 사냥꾼들이 위드 시티로 몰려들기 때문이었다.

중앙 광장 쪽을 내다보던 성건우는 온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말했다.

“저쪽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요.”

“그래, 가보자.”

장목화도 아침을 먹는데 급급해하진 않았다.

차 두 대쯤 나란히 달릴 수 있을 법한 폭에, 푸른색 혹은 회백색 벽돌이 깔린 길을 따라 4, 5층짜리 건물들 사이를 지나면 중앙 광장이 나왔다.

그런데 아직 광장 근처에 이르기도 전, 갑자기 어딕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댕-

길게 공명하는 종소리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다 씻어내릴 듯 신묘했다.

댕-

댕=

그 후 새벽종 소리가 2번 더 울리는 동안, 사우스 스트리트의 유적 사냥꾼들과 현지 주민들이 분분히 중앙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대부분이 재질도, 모양도 각기 다른 도시락통과 큰 사발을 들고 있었다.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더욱 의아한 얼굴이 됐지만, 성건우는 마치 이곳 주민처럼 걸음을 재촉해 그 흐름에 가담했다.

곧 구조팀은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코끝에 닿는 퀴퀴한 냄새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수많은 인파가 모인 곳에선 필연적으로 풍기기 마련인 복잡한 냄새라지만, 본래 유적 사냥꾼 대부분이 2, 3주에 한 번 씻을까 말까 한 처지였다.

위드 시티나 레드스톤 마켓처럼 수자원이 풍부한 일부 거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거점은 오염된 수자원으로만 겨우겨우 살고 있었다.

그래서 보통 세력 안에선 수자원 보호 위원회나 그와 비슷한 기구가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그 냄새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용여홍이 조금씩 코를 벌름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쌀로 끓인 죽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온 광장에 전자합성음으로 이루어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주님들, 줄을 서주시길 바랍니다.”

순간 밝은 눈빛을 드러낸 성건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떤 선사님이지?”

그러나 그에게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앙 광장에 모인 대부분이 이러한 상황에 상당히 익숙한 듯, 얼마 지나지도 않아 길고 가지런한 줄을 이루어 섰다.

그리고 구조팀은 광장을 몇 바퀴나 에워싼 줄 너머로 조금 전 들려온 목소리의 근원을 확인했다.

시청 건물과 도서관 건물 경계에 회백색 급수탑 하나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 급수탑 아래 설치된 목재 골조에 거대한 검은 종이 걸려 있었고, 목재 골조 위엔 노란 승복을 입고 붉은 가사를 걸친 한 로봇이 서서 인파를 향해 설법하고 있었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주님들, 빈승의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만물은 허무하지만, 의식은 진실입니다.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입니다⋯⋯.”

이 기계 승려가 설법 중인 목제 골조 옆엔 쇠로 된 웍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바로 그 웍에서 묽지 않은 쌀죽이 끓는 중이었다. 더불어 웍 부근에 배치된 한 탁자에도 희고 노란 빵과 중간 크기의 사발이 쌓여있었다.

광장에 모여든 인파는 줄을 서서 설법을 들으며, 기계 승려의 하인들이 나눠주는 죽 한 주걱과 빵 두 개를 기다렸다.

장목화도 이제야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양원이 승려 교단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네.”

허양원은 쉬이 통제 불능에 이르지 않을 기계 승려가 위드 시티에서 설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었다.

그때, 용여홍이 근처를 지나던 한 행인에게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는 건가요?”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이요. 듣기론 매해 석가탄신일도 두 번 있대요.”

행인이 매우 급히 답했다. 늦으면 죽과 빵을 받지 못할 테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줄을 서고 싶은 모양이었다.

“진짜 좀 사치스럽네.”

용여홍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장목화가 웃었다.

“승려 교단에서는 죽을 먹을 필요도, 빵을 먹을 필요도 없잖아. 바꾼 식량은 이렇게 처리하는 편이 백번 낫지.”

그 시각, 구조팀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도서관 입구 쪽에 누군가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20대 젊은 남자로. 레드리버 혈통이 살짝 섞인 듯 비교적 또렷한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위드 시티의 성주, 허양원이었다.

지금 그는 평범한 주민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입고 있는 옷엔 기운 흔적은 없어서 주위의 다른 이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어 보였다.

허양원이 이런 차림을 한 건, 보다 친근한 모습으로 구조팀 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 벌써 광장에서 네 사람을 먼저 발견했다.

‘강한 실력과 특별한 능력을 갖춘 팀이야. 왜 다시 위드 시티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관계를 형성해서 천천히 물어보는 수밖에⋯⋯.’

곧 허양원은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주변 경호원들에게 눈짓했다.

동시에 전술 배낭에서 도시락통을 꺼내 줄 맨 뒤로 쪼르르 가서 서는 성건우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

허양원은 순간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인지 눈을 의심했다.

만약 직접 겪어 보지 않았다면, 저기 네 사람에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으리라고는 절대 믿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짜 음식을 먹겠다고 줄을 선단 말이야? 그럴 필요가 없을 텐데…….’

숨을 토해내던 허양원은 결국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구조팀 네 사람 근처에 가까워지자마자 허양원은 얼굴에 미소를 걸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허양원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먼저 그를 발견한 성건우가 아주 기쁜 얼굴로 흥분해 앞쪽을 가리켰다.

“여기예요, 여기!”

흠칫 놀란 허양원은 쏟아지는 시선 속에 엉거주춤 줄에 끼어들었다.

주위에 몰래 흩어진 그의 경호원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중엔 허양원이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고용한 각성자 두 명도 있었다.

이내 허양원은 힘겹게 마음을 다잡고, 원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언제 온 거야? 날 찾아오지도 않고.”

그러자 성건우 뒤에 선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 며칠 안 머무를 생각이었거든요.”

“그래⋯⋯.”

허양원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동안 한담을 나누며 줄을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이동하던 가운데 허양원이 짐짓 심드렁한 말투로 물었다.

“조기정은 어제 왜 너희를 찾아간 건데?”

장목화는 허양원의 질문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만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퍼스트 시티 교외에 있는 조 의원의 장원들 몇 곳에 문제가 있다고, 저희한테 그 문제 해결을 좀 부탁하고 싶다고요.”

장목화의 말이 끝나자, 성건우도 연달아 덧붙였다.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기이한 일 같기는 했습니다.”

허양원은 그가 말 그대로 정신 나간 미친놈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어째서인지 이런 일까지 속일 사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광기가 있긴 해도 보통 그는 매우 올바르고 강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허양원도 약간 안심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유적 사냥꾼이라는 직업으로 먹고사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 임무를 맡을 필요가 있는 건가?”

“겸사겸사 부수입이나 좀 올리자는 거죠.”

허양원이 변죽을 올리고 있음을 알기에, 장목화도 간단하게 대꾸했다.

근데 진짜로 사실이긴 했다. 처음엔 퍼스트 시티에서의 활동 여비를 벌고 그곳에 있는 조 씨 가문 관계망을 이용하자는 마음으로 조기정의 제안에 응했지만, 리만의 전보를 받은 이후로 정말 부수입이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겸사겸사? 퍼스트 시티에 가려고?”

허양원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물었다.

장목화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아뇨, 레드리버 북안 산기슭에 기이한 능력의, 사람을 매혹하는 흰 늑대가 나타났다던데요. 성주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는 주로 생물을 연구합니다. 그런 특이한 생물이 나타났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녀의 말에는 구조팀이 그 늑대를 쫓을 거라는 뜻이 내포돼 있었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구조팀이 전보를 보냈으니, 반고 바이오에서는 분명 그 늑대에게 관심을 보이고 인력을 파견해 늑대를 생포하려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구조팀은 어디까지나 그 늑대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백새벽의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여홍의 얼굴이 좀 멍해졌다. 자신이 허양원이라도 장목화가 이끄는 방향대로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용여홍은 약간 허양원을 동정하듯 훑어보며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진짜 어마어마한 속임수다. 어젯밤 흰 늑대 소식을 못 들었다면 우리 팀장님은 도대체 어떤 핑계를 대려고 했을까? 그래, 우리가 퍼스트 시티로 가려고 한다는 걸 허양원에게 알릴 순 없지. 이미 암암리에 회사와 합작하고 있다고 해도, 퍼스트 시티와는 여전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

그 시각, 장목화는 몰래 왼손으로 성건우의 옷 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허튼소리 말라는, 자신의 무대를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곧이어 허양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어 본 적 있어. 내 두 고문이랑 정념 선사가 아주 위험한 생물이라고 하더라고. 고급 사냥꾼이라도 자칫 잘못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하하, 근데 너희 팀 실력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

장목화가 다시 성건우를 살짝 잡아당겼다. 더는 이와 같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으니, 알아서 화제를 돌리라는 신호였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라면, 언제든 이 공기를 바꿀 수 있었다.

그러자 성건우는 전부터 궁금했던 걸 거침없이 말했다.

“근데 지금 설법 중인 저 선사는 누구죠? 기계 승려는 전부 똑같이 생긴 데다 옷도 비슷하게 입는 것 같던데요. 지능인처럼 각자 특징을 살릴 순 없는 걸까요? 예를 들어 금속 턱을 좀 더 날카롭게 다듬는다면, 근거리 전투할 때 좋은 무기로도 쓸 수 있을 텐데요.”

백새벽도 이에 동조한다는 듯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