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24화 (324/649)

324화. 형제의 우애

“맛있는 냄새⋯⋯.”

성건우는 이 대화엔 전혀 관심도 없는 듯, 공기 중에 묻어나는 각종 음식 냄새만 들이마셨다. 그는 계속 빈자리가 있는 식당을 찾느라 분주히 시선을 움직였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장목화는 뭘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앙 광장 근처 구석과 골목길에 적잖은 인파가 몰린 것을 발견했다. 특이한 건, 근처에 순찰대가 지나갈 때마다 무리가 아무 일도 없는 척 딴청을 피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형 암시장이에요.”

장목화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돌아본 백새벽이 말했다.

그러다 백새벽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용여홍을 보고 설명을 이었다.

“웨스트 스트리트 지하 시장은 주로 물건 도매랑 각종 금지 물품을 거래하고, 환전을 담당하고 있어.

근데 유적 사냥꾼이 폐허 도시에서 찾은 물건은 분류가 어려운 게 대부분이라 주요 구매자랑 거래하기가 어려워. 그렇다고 정규 시장에 들어가기엔 비용이 많이 들고. 모두가 그 비용을 부담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거든.

그래서 그중 일부는 골목길에 좌판을 펼쳐놓고, 저렇게 알아서 소형 암시장을 만들어. 저기선 별별 기상천외한 구세계 물건들이 거래돼.”

그제야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용여홍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럼 저런 시장에는 가치가 상당한 물건이 숨어있을 수도 있겠네? 어느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기운이 고형화된 물건이라든가.”

그 말에 성건우가 웃었다.

“구세계 콘텐츠를 너무 많이 본 거 같은데.”

‘하긴, 그런 물건은 일반인한텐 저주랑 재난에 가깝잖아. 오래 접촉했다간 분명 무슨 문제가 생겼을 테니,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겠지.’

용여홍도 자신이 너무 과하게 생각한 거 같아 조금 부끄러워졌다.

이내 백새벽이 차분하게 답변했다.

“극히 드물어. 시간이 있거든 가서 한 번 봐봐. 소형 암시장에도 꽤 좋은 물건이 있어. 가격도 실제 가치보다 낮은 편이고.”

계속 그렇게 앞으로 가다가, 용여홍이 돌연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팀장님. 저쪽에 어떤 사람이 우릴 관찰하고 있는데요? 제가 돌아보면 딴 곳을 보는 척하고 있어요. 저기도 한 명 더 있는 것 같고⋯⋯.”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훌륭하네. 이제 하산해도 되겠다. 분명 노스 스트리트에서 보낸 감시자일 거야. 신경 쓰지 마.”

사실 장목화도, 성건우, 백새벽도 용여홍보다 훨씬 일찍이 저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외모가 뛰어난 미남미녀를 몰래 훔쳐보는 눈빛과 이 네 사람의 동정을 감시하는 시선은 아예 달랐다.

다시 또 천천히 걸어가는데, 성건우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기다!”

그가 주린 배를 부여잡고 가리킨 곳에 자리가 남은 한 식당이 있었다.

[풍미식당]

마침 딱 테이블 두 개가 비어있었다.

장목화 역시 가타부타 말도 없이 팀원들과 곧장 그곳으로 직행했다.

* * *

식당 안.

구조팀은 곧 4인용 테이블 하나를 차지했다.

식당에서 파는 메뉴의 수는 아주 적었다. 한편에 웍 일고여덟 개가 일렬로 놓여, 무슨 메뉴가 있는지 파악하기도 쉬웠다. 웍에 담긴 음식은 제각기 다 달랐고, 아래엔 목탄, 석탄 등이 담긴 간이 화덕이 있어 온도도 적절히 유지되고 있었다.

성건우는 찬찬히 음식들을 훑어보았다.

토마토 달걀 볶음, 감자 오겹살 조림, 작게 조각난 소고기 조림, 제철 채소볶음 몇 종류⋯⋯.

장목화도 그와 동시에 이 가게가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아차렸다.

덮밥!

“난 감자 오겹살 조림.”

장목화가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구조팀은 전에 남겨둔 오레이, 드라세, 카스가 있어 특별히 급하게 환전할 필요가 없었다.

“저도요.”

성건우가 손을 들어 입가를 훔치며 답했다.

“저는 소고기 조림이요.”

“전 토마토 달걀 볶음으로 할래요.”

용여홍과 백새벽도 각각 메뉴를 정했다.

주문을 넣은 후, 네 사람은 인내심 있게 식사를 기다렸다.

조용한 와중에 주변에 식사하는 유적 사냥꾼들은 수시로 네 사람을 힐끔거리기 바빴다. 네 사람이 워낙 용모가 뛰어나다 보니 눈길이 가는 것도 있겠지만, 개중엔 의혹 가득한 눈빛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네 사람은 생김새도 그렇고, 체격도 굉장히 좋았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위드 시티에서도 흔치 않아서 시선이 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 식당 사장 역시 구조팀을 몇 번이나 힐끔거렸다.

이내 사장은 그릇에 밥을 한 주걱씩 담고 주문대로 요리를 하나씩 밥 위에 올린 다음,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네 사람의 덮밥을 완성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였다.

성건우는 제일 먼저 감자 오겹살 덮밥을 받아 들고, 고기가 몇 점이나 들었는지 진지하게 헤아려보았다.

곧이어 그의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세 점이네.”

장목화가 덮밥을 비비며 웃었다.

“야, 이렇게 작은 가게에서 고기를 많이 주면 얼마나 많이 주겠어? 그리고 고기를 많이 넣으면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잖아. 그럼 유적 사냥꾼 중에 누가 이 가게로 오려 하겠어?”

“네네.”

성건우는 대충 답하고서 얼른 음식에 집중했다.

바로 그때였다. 식당 문 앞에 웬 차가 한 대 섰다.

짙은 색 방탄유리와 두꺼운 장갑을 장착한 승용차였다.

문이 열리고, 아주 기쁜 척 환하게 웃고 있는 조이덕이 그 차에서 내렸다.

“우병! 너희들 돌아온 거야?”

그의 목소리가 풍미 식당에 울려 퍼지자, 안에 있던 유적 사냥꾼들의 시선이 또 그쪽으로 쏠렸다.

조이덕을 목격한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언뜻 보기에도 신분과 지체가 높은 사람이었다.

뒤쪽에 세워진 차도 유적 사냥꾼 대부분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개조돼 있었으며, 그 사방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조이덕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몸에 꼭 맞는 검은색 긴 바지도, 금색 단추로 장식된 검은색 상의도 어찌나 깨끗한지 막 새로 산 것 같았다.

거기다 약간 퉁퉁한 몸에, 불그스름한 혈색이 도는 얼굴빛까지, 그는 태반이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애쉬랜드의 평범한 사람과는 확실히 달랐다.

문가에 앉아 있던 몇몇 유적 사냥꾼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게 밖에 세워진 승용차 앞 유리 아래 통행증을 살폈다.

노스 스트리트로 진입할 수 있는 통행증이었다.

‘그럼 저 사람은 아마 귀족이겠네.’

위드 시티를 잘 아는 유적 사냥꾼들은 분분히 고개를 숙였다.

한편, 조이덕의 인사에 벌떡 일어난 성건우가 아주 기쁜 얼굴로 외쳤다.

“아까는 우릴 못 알아본 줄 알았는데! 이 형제를 못 알아본 줄 알았어!”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한 유적 사냥꾼들이 동시에 귀를 쫑긋 세웠다.

‘형제? 역시 저 사람들, 만만한 팀이 아니었어!’

그리고 몇 초간 살짝 표정이 굳었던 조이덕은 애써 놀란 얼굴을 했다.

“우리가 오후에 마주쳤었나? 그, 우리 집으로 가자! 위드 시티에 왔는데 이런 음식을 대접할 순 없지!”

조이덕은 성건우에게 답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 순간, 성건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조이덕의 심장도 저 아래로 덜컹 내려앉고 말았다.

곧이어 성건우가 정색하고 입을 뗐다.

“안 돼, 이미 먹기 시작했어. 음식을 낭비할 순 없잖아.”

“그래, 그래.”

조이덕은 감히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친구가 왔네요. 의자를 더 갖다주셔야겠어요.”

성건우가 옆쪽을 가리키며 가게 사장에게 외쳤다.

사실 원래는 손님이 직접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귀족으로 보이는 조이덕의 등장에, 사장은 화덕 뒤쪽에서 나와 여분의 의자를 직접 놓아주었다.

조이덕은 기름때에 찌든 가게 내부를 살피며 웃음을 짜냈다.

“여기 너무 위험하지 않아?”

“내가 있잖아!”

성건우는 나만 믿으라는 듯 대꾸했다.

현재 곁에 앉아 있는 용여홍과 그 맞은편의 장목화, 백새벽은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 조이덕은 흰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그래, 형제를 믿어야지.”

일단 성건우의 말에 호응부터 한 그가 옆쪽 경호원에게 지시했다.

“문 앞을 지켜.”

그러자 성건우가 황급히 덧붙였다.

“차는 좀 먼 곳에 대는 게 좋겠어. 남의 가게 앞을 막으면 안 되잖아. 장사에 방해될 거야.”

“그래, 그래.”

열정적으로 동조한 조이덕은 기사에게 차를 멀리 주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그는 구조팀 옆으로 다가와 기름에 절어 번들거리는 의자를 바라보고 섰다. 마치 몇 초간 동상처럼 굳어있던 그는 의자 끝에 살짝 걸터앉았다.

성건우는 기특하다는 듯 조이덕의 어깨를 두드리며 친절하게 물었다.

“저녁은 먹었어?”

“아직.”

조이덕이 조건반사적으로 답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깊이 후회했다. 성건우는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사장을 향해 냅다 외치고 있었다.

“감자 오겹살 조림 덮밥 하나 더요! 내가 살게!”

‘아이고, 친절하기도 하셔라⋯⋯. 네 돈도 아니고 우리 팀 활동비인데 말이지⋯⋯.’

장목화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성건우를 딱히 저지하진 않았다.

잠시 후, 오겹살 몇 조각이 올려진 덮밥이 나왔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조이덕의 얼굴에 조금 경련이 일었다. 저 허연 비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는 듯했다.

그의 아버지 조기정이야 이런 비계를 아주 좋아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길러진 습관인 듯했지만, 조이덕은 전혀 달랐다. 솔직히 호기심이 왕성한 어린 시절엔 시도해 본 적도 있었으나 그 이후로는 손도 대본 적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더럽고 어수선한 식당에서 어떻게 식사를 하란 말인가!

그저 멍하게 멈춰서 꼼짝도 하지 않는 조이덕을 보고, 성건우가 반짝이는 눈으로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음식을 낭비하면 안 돼.”

“⋯⋯.”

어쩔 수 없이 수저를 든 조이덕은 비계가 없는 부분만 골라 한 숟갈 떠먹었다. 하지만 온몸이 이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목구멍이 아예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시위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조이덕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그를 지켜보며 장목화도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성건우가 정말 형제를 향한 우애가 있어 상대를 챙겨주려고 하는 건지, 그냥 장난으로 괴롭히고 있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끝내 힘겹게 한술은 떴으나 조이덕은 저도 모르게 몇 번 헛구역질했다.

“너 임신했어?”

성건우가 다시 맑은 눈으로 묻고 있었다.

“…….”

조이덕은 순간 고장 난 듯 멈춰버렸다.

‘대체 이런 상황엔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떤 대꾸를 해야 하는 거지?’

그때, 장목화가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흠흠, 그냥 농담하는 거야.”

“아, 좀 급하게 먹어서 그런 것 같아.”

조이덕이 황급히 변명했다.

그에 장목화도 친절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럼 천천히 먹어.”

조이덕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또 억지로 밥 한술 떠먹은 그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화두를 돌렸다.

“아버지께서 너희들을 만나고 싶어 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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