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20화 (320/649)

320화. 그 도시

495층, B구역, 196호.

정각 뉴스를 다 듣고, 성건우는 베개에 기대 양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의 의식은 빠른 속도로 미약한 빛이 번득이는 기원의 바다로 향했다.

성건우가 아무 방향으로 헤엄치며 한참을 나아가던 그때,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서 다시금 옅은 황녹색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안개 속엔 웅장한 구세계 도시가 보일 듯 말 듯 자리해 있었다.

성건우는 곧장 방향을 조정해 목표를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황녹색 안개는 그와 거리만 조금 좁혀졌을 뿐, 위치가 계속 변했다. 수영을 해서는 영원히 그곳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성건우는 잠시 멈춰서 미리 세워둔 계획에 따라 아홉 명으로 분열되었다.

곧이어 아홉 명의 성건우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옅은 황녹색 안개를 포위해 한 곳으로 몰 작정인 듯했다.

끝없이 펼쳐진 기원의 바다 안에서 성건우들은 눈앞에 나타났다가도 금세 사라지는 목표를 수시로 목격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서로의 한계치에 다다를 정도로 멀어진 성건우들은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녹색 안개는 여전히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홉 명의 성건우는 동시에 숨을 들이마시면서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성건우는 미약한 빛이 번득이는 기원의 바다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또 1, 2분쯤 지나, 성건우가 돌연 검은색 긴 천 조각 하나를 소환하더니 그것으로 본인의 눈을 가렸다.

그뿐만 아니라 솜 두 덩어리까지 소환해 양쪽 귀도 틀어막았다.

이제 성건우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상태에서 다시 냅다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전방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기력이 거의 바닥날 때까지 헤엄치던 성건우는 비로소 멈춰서 귀를 틀어막은 솜을 빼고 눈을 가린 천을 풀었다.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옅은 황녹색 안개였다.

그것도 이미 손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지척에 안개가 있었다.

웃으며 왼손으로 오른 주먹을 감싼 성건우가 안개를 향해 예를 갖췄다.

“지인은 무아하다. 신세계는 눈앞에 있느니라.”

의식을 마친 후, 성건우는 황녹색 안개 속 신기루와 같은 구세계 도시를 쳐다보았다. 그곳엔 100미터에 달하는 높은 건물들이 웅장한 건물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햇볕에 물든 그곳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건우는 곧장 안개를 관통해 그 안으로 들어서는 대신, 바깥을 빙 두르듯 빠르게 헤엄치며 다른 각도에서 그 도시를 감상했다.

그러던 그때, 아치형의 터널 입구가, 햇빛을 반사하는 수많은 유리판으로 이루어진 외벽이, 양옆의 간판이 엉망으로 망가진 거리가 보였다.

그곳에 멈춘 성건우의 시선이 옅은 황녹색 안개를 관통해 전방 거리로 떨어졌다. 곧이어 그의 시야로 글자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바비큐] [훠궈] [족욕] [슈퍼마켓] ……

이 점포들은 파괴되거나 먼지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을 몇 차례 살피던 성건우가 돌연 웃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수종아! 수종아!”

그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안개 속 도시는 바로 늪 1호 폐허였다.

차으뜸에게 끌려가 가위 말과 수종을 만났던 그 비밀스러운 도시는 성건우의 기억만큼 그렇게 황폐하지는 않았다.

이 허상 같은 도시에 성건우의 목소리가 퍼졌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성건우는 앞으로 몇 미터 더 헤엄치며, 옅은 황녹색 안개를 관통했다.

그 사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문제는 없었고, 신기루 같던 전방의 도시는 이제 신령의 섬만큼이나 또렷해졌다.

곧이어 성건우는 거리에서 자물쇠에 묶이지 않은 자전거를 한 대 찾았다.

그는 그대로 자전거에 올라, 도시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하늘엔 석양이 지고, 성건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이 딸린 고층 빌딩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이나 무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온 도시는 죽음보다 더 적막했다.

자전거에서 내린 성건우는 정원 앞에 걸린 검은 대리석 현판을 보았다.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

금색 글자가 적힌 현판은 늪 1호 폐허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이내 성건우는 마치 누군가와 달리기 시합을 하듯 빠른 속도로 달려 정원을 가로지른 뒤, 도시 정보망 통제 센터 건물로 들어갔다.

안전한 통로로 익숙하게 내려가던 성건우는 곧 무사히 기계실에 다다랐다.

그 후 성건우는 손전등을 켜고 어두운 복도를 미친 듯이 내달린 후에 당시 수종이를 만났던 그 방을 찾아냈다.

성건우가 즉각 문을 열어젖히고 손전등으로 방 안을 비췄다.

“수종아! 수종아!”

여전히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성건우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주위에 자리한 모든 게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투명해졌다.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도시는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며, 그 주변을 뒤덮은 옅은 황녹색 안개도 지난번처럼 자취를 감췄다.

성건우는 다시 기원의 바다로 돌아와 있었다.

이윽고 극도로 피로해진 그는 어쩔 수 없이 심령 세계를 떠났다.

* * *

다음 날, 647층, 14호.

성건우가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장목화 뿐이었다.

장목화도 바로 고개를 들고 웃으며 그를 반겼다.

“어? 여홍이랑 같이 안 왔네?”

성건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진지하게 말했다.

“구세계 콘텐츠는 정말 위험하네요.”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왜? 여홍이가 밤새도록 거기 푹 빠졌대?”

그녀 역시 용여홍의 자제력이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닌 건 알았지만, 그래도 그가 단 하루 만에 그렇게 될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성건우는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요, 여홍이 부모님, 동생들, 여홍이 이웃사촌들까지요.”

그 말을 듣고,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웃었다.

그 사이 성건우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왜?”

장목화의 질문에, 성건우가 기다렸다는 듯 설명했다.

“오늘 아침에 여홍이네 집에 들렀다가 여홍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거든요. ‘왜 이렇게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거야? 이번 달 배급량이 거의 다 바닥났잖아!’라고 하시던데요.

어머니께서도 진짜 놀라셨는지 ‘아들, 대체 왜 저런 걸 가져온 거야? 저렇게 백해무익한걸!’라면서, 여홍이더러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여홍이는 또 부모님을 안심시키려는지 ‘저는 이제 D5예요. 저한테 배급되는 에너지는 두 분 배급량을 합친 것과 거의 맞먹어요. 이번 달 말까지는 문제없이 버틸 수 있다고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성건우의 실감 나는 상황 묘사에 장목화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야, 그래서 너는 걔 안 기다리고 그냥 온 거야?”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화가 안 끊길 거 같더라고요. 팀장님께 드릴 말씀도 있고요.”

그 즉시 장목화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뭔데? 황녹색 안개랑 관련된 일이야?”

이때 사무실로 들어온 백새벽이 깜짝 놀라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벌써 해결한 거야?”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찾아내긴 했는데, 해결은 못 했어요.”

“구체적으로 말해봐.”

장목화도 금세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을 했다.

성건우 역시 진지하게 자신이 황녹색 안개를 어떻게 찾았는지, 그 안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뭘 발견했는지까지 있는 그대로 전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장목화의 눈이 점점 커졌다.

“수종이를 만난 그 도시가 확실해?”

“네, 거기랑 똑같은 구조의 도시가 또 있는 게 아니라면 확실해요.”

성건우의 답은 상당히 단호했다.

이내 장목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좀 소름 끼치는데, 너무 복잡하고 미스테리해⋯⋯.”

하지만 말과 달리 그녀의 말투에선 약간 신난 기색이 느껴졌다.

“왜요?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막 사무실에 들어온 용여홍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백새벽도 곧 방에 들어섰다.

장목화는 조금 전 성건우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용여홍은 거의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럴 리가!”

‘겁쟁이의 잔여 영향에 늪 1호 폐허가 있었다고?’

뒤이어 용여홍이 성건우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네 일부 기억이랑 황녹색 안개가 결합한 거 아닐까?”

“그럼 왜 굳이 그 기억과 결합한 걸까?”

성건우가 반문했다.

‘우연이겠지⋯⋯.’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성건우의 말이 이어졌다.

“나한텐 숙명통이 있어. 그게 내 기억이 아닌 건 확신할 수 있어.”

‘좀 일찍 말하지 그랬냐.’

용여홍이 또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조용히 생각하던 장목화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황녹색 안개는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각성자 거야. 그가 남긴 기운인 거지. 그리고 염호는 심령의 복도 특정한 방에서 그걸 얻었을 확률이 커. 송 경고자는 각각의 방은 각각의 심령 세계에 대응한댔지. 심령의 복도 급에 이른 각성자만이 그 문을 정상적으로 열 수 있다고.

그 방에선 원주인의 꿈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가 극복한 두려움의 섬이 나타날 수도 있어. 음, 이러한 논리로 추론해 보면 그의 특정 기억에 얽힌 장소도 나타날 수 있을 거야. 어쩌면 그 폐허 도시 광경은 황녹색 안개에 담겨 있던 어떤 기억이나 꿈에서 기인한 거 아닐까?”

백새벽의 눈이 가늘어졌다.

“겁쟁이의 원주인은 전에 늪 1호 폐허에 가봤던 걸까요?”

“그곳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을 수도 있지.”

장목화가 제시한 또 다른 가능성에, 용여홍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내 턱을 만지작거리던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만약 그럴 경우, 이 꿈속에서 그를 찾아낸다면 남아있는 영향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겠네요.”

용여홍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래, 꿈의 주인은 그런 상황에서 가장 특별할 테니까. 근데 그자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그 꿈속 도시 어디에 있을까?”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건우와 장목화가 동시에 외쳤다.

“그 실험실!”

차으뜸이 파괴했던 그 미스테리한 실험실!

장목화와 성건우는 같은 생각을 한 듯 잠시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장목화의 표정이 굳었다. 성건우가 자신을 향해 오른손을 뻗고 있었다. 장목화는 뺨을 살짝 부풀렸다가, 그냥 오른손을 뻗어 성건우의 손바닥을 쳐주었다.

빠르게 손을 거둔 그녀가 또 다른 문제를 언급했다.

“눈을 가리면 황녹색 안개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성건우가 매우 진지하게 설명했다.

“전 장생 영역 각성자잖아요. 그러니까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할 만한 방법을 시도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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