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18화 (318/649)

318화. 재탐사

성건우와 용여홍은 안전부 소형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495층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C 구역 23호밖에 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다들 손가락질하며 서로의 귀에 대고 뭔가를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그중엔 용여홍의 엄마 고홍자도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쪽으로 다가간 용여홍이 사람들 틈새로 굳게 닫힌 문을 살피며 물었다.

고홍자는 옆으로 다가온 성건우를 보고 먼저 웃으며 인사했다.

“어, 건우! 우리 건우는 갈수록 잘생겨지네?”

“어머니에 비하면 한참 멀었죠.”

성건우는 또 어디가 이상해진 건지 흠잡을 데 없는 답을 했다.

다행히도 고홍자는 더 이상 그에게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껏 낮아져 있었다.

“좀 전에 질서감독실 사람이 와서, 이 방에 있던 낡은 가구들을 전부 가져갔어. 분명 이곳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거야. 깨끗하게 청소해야 할 일이 있었던 거지.”

“그렇구나⋯⋯.”

용여홍은 질서감독부에서 여전히 아무런 문제도 파악하지 못한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방을 완전히 비워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가 무의식적으로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성건우는 용여홍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는 왜 끄덕이는 거야? 저게 무슨 뜻이지?’

이후 한참 뒤에야 용여홍이 뭔가를 깨닫고 인파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용여홍이 잠시 뒤로 이동해 성건우에게 물었다.

“소등 후?”

‘소등 후에 다시 한번 확인하자고?’

질서감독부 사람에게는 아직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성건우는 재차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B 구역 196호로 돌아갔다.

* * *

정각 뉴스가 방송될 때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침대에 기대 누운 성건우는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미약한 빛이 반짝이는 기원의 바다에서 성건우는 여유롭게, 하지만 끈질기게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던 그는 어스름한 하늘과 기원의 바다의 경계 지점에서 느릿하게 피어오르는 옅은 황녹색 안개를 발견했다.

순간 얼굴이 상기된 성건우는 양팔을 열심히 휘젓고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그쪽을 향해 헤엄쳐갔다.

거리가 좁혀지자, 성건우는 옅은 황녹색 안개 속에서 거대한 도시를 보게 되었다.

숲처럼 빽빽한 고층 빌딩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장관이었다.

성건우는 계속 그쪽으로 헤엄쳤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곳에 닿을 순 없었다. 둘 사이엔 보이지도 않고 관통할 수도 없는 무형의 장벽이 있는 듯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났을 무렵, 옅은 황녹색 안개는 점차 흩어져 사라졌고 구세계의 것으로 보이던 도시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제야 멈춘 성건우는 물 위에 둥둥 떠서 해안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기루인가? 새로운 섬인가?”

이내 잠시 침묵하던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황녹색⋯⋯.”

* * *

C 구역, 23호.

소등 후 두 친구는 23호 앞에서 다시 만났다.

두꺼운 국방색 솜 코트를 입고 나온 성건우는 손전등으로 흰색 숫자가 붙어있는 적갈색 나무 문을 비췄다.

한편 용여홍은 막상 이곳에 서니 약간 겁이 난 모양인지 이렇게 물었다.

“정말 시도해보게?”

성건우가 자유로운 손으로 전자 카드를 꺼내며 덤덤하게 답했다.

“너는 나를 잘 지켜 보고 있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외쳐.”

“소리치라고?”

‘혹시 자기를 깨우라는 건가?’

성건우는 손전등을 쥔 손으로 문고리를 움켜쥐며 진지하게 답했다.

“구조 요청을 하라고.”

용여홍은 아무 말 없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호흡을 잘 가다듬어, 언제라도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 위해서였다.

솜씨 좋게 자물쇠를 연 성건우가 느릿하게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마치 이 문이 마치 500킬로그램쯤 되는 것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밀었다.

마침내 23호의 방문이 적당한 틈을 보였다.

손전등 불빛 아래, 그 안의 광경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이번엔 괜찮은데.”

성건우가 중얼거리며 문을 완전히 열었다.

그 말을 듣고 용여홍은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다가, 다시금 상기시켰다.

“들어갈 때도 조심해야 해.”

이에 성건우가 반쯤 몸을 돌려 이상한 눈으로 그를 한번 훑어보았다.

“원래 네가 먼저 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친구의 거친 농담에, 순간 용여홍은 숨이 턱 막혀왔다.

다시 성건우는 손전등으로 23호 방 안을 이리저리 훑었다.

방은 용여홍이 원래 살던 집처럼 별로 크진 않았다. 텅 빈 집 안에 보이는 건 얼룩덜룩한 흰색 벽과 정해진 타일이 깔린 바닥뿐이었다.

손전등 빛으로 구석구석을 훑은 성건우는 그제야 조금 걸음을 디뎠다.

관절에 녹이 슨 로봇처럼 느릿하게 움직인 그는 거의 꼼지락거리듯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용여홍 역시 조금 전 농담은 잊고, 재차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장장 10여 초를 들인 끝에, 성건우는 23호로 완전히 들어갔다.

그때, 그가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손전등 불빛을 턱밑에 갖다 댔다.

“여홍아⋯⋯.”

“왜, 왜?”

용여홍이 눈동자만 굴려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내가 아직도 성건우로 보이니⋯⋯?”

“⋯⋯.”

용여홍은 당장이라도 욕을 내뱉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냥 길게 한숨을 토한 그는 완곡하게 말을 돌렸다.

“아직 스피커를 못 받아서 다행이네. 안 그랬으면 넌 이 상황에 무서운 노래나 틀었을 거 아냐.”

성건우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 자는 사람들한테 방해되잖아.”

“…….”

성건우가 목표로 삼는 사람은 늘 용여홍 자신뿐임을, 용여홍도 잊고 있었다.

유유히 시선을 거둔 성건우가 손전등으로 23호 방을 샅샅이 살폈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고, 용여홍도 용기를 내 문 쪽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괜⋯⋯.”

순간 용여홍이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성건우가 용여홍을 빤히 쳐다보았다.

‘난 바보가 아니거든. 내 운에 정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런 상황에는 최대한 조심하는 게 낫지.’

용여홍이 속으로만 대꾸하며 손전등으로 방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23호 방에 있던 낡은 가구들은 이미 다 빠진 상태라, 성건우와 용여홍의 수색도 빠르게 끝이 났다.

“아무것도 없네.”

용여홍이 위쪽 통풍구를 비췄던 손전등을 거뒀다.

그러자 성건우가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곳에 대해 전체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용여홍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느낀 바를 성실하게 답했다.

“전체적인 평가? 좀 낡았고, 바깥보다 약간 싸늘하고⋯⋯.”

갑자기 말을 뚝 끊어버린 그가 성건우를 몇 초간 쳐다보았다.

용여홍의 눈빛엔 어느새 두려움이 조금 고여있었다.

“여, 여기 디마르코의 방 분위기랑 비슷한 것 같지 않아? 그 방보다 훨씬 덜하기는 한데…….”

용여홍은 아직도 디마르코의 의식 생명이 조성했던 그 음산하고 어둑한 분위기의 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내 성건우가 손으로 손전등의 옆면을 가볍게 쳤다.

“축하해, 정답이야.”

용여홍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떠보듯 말했다.

“이상한 현상은 이미 사라진 것 같아. 그 흔적만 남아있고.”

성건우는 아무 대꾸도 없이, 손전등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디 가?”

용여홍이 급히 뒤를 쫓았다. 이런 곳엔 잠시도 혼자 있을 수 없었다.

성건우는 전방을 응시하며 덤덤하게 답했다.

“돌아가 자야지.”

용여홍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생각해도, 자신들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앞서 나가던 성건우가 가볍게 말했다.

“문 닫는 거 잊지 마.”

* * *

다음 날은 반고 바이오의 주말 휴일이었다. 성건우는 전자 카드를 가지고 물자 공급 시장으로 가 천, 통조림, 쌀 포대 등을 샀다. 구매한 걸 다 옮기려면 물자 공급 시장에서 밀차 하나를 빌려야 할 정도였다.

“야, 건우야. 한 번 나갔다 오더니 꽤 벌었나 보다?”

“부자 됐어?”

“외근 수당이 그렇게 짭짤하냐?”

이동하는 도중 마주친 성건우의 이웃들이 그에게 너도나도 말을 건넸다.

성건우는 겸손을 떠는 대신 솔직하게 답했다.

“네, 전 이제 D5에요. 여홍이도요.”

아예 확성기 하나쯤 쥐여주고 싶을 만큼, 그는 너무도 당당했다.

“D5?”

“안전부에서 일하는 다른 직원도 그렇게 빠르게 승급하지는 않던데?”

“너, 안전부 어느 팀에서 일하는 거냐?”

이웃 주민들은 하나같이 충격과 부러움에 휩싸였다. 이런 거짓말은 들키기도 쉬웠으며, 평소 성실하고 정직한 성건우가 이런 걸 거짓말할 리도 없었다.

그래서 다들 그에게 좋은 사람 하나 소개해줘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 * *

그 이후, 성건우는 한 문 앞에 이르렀다.

여긴 심도환의 집이었다.

문을 열어두고 있어서, 그 안이 훤하게 다 보였다.

간이 교과서로 숫자를 배우는 듯한 심도환의 아이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때, 인기척이 들리자 아이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인사를 한다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다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공부에 집중했다.

아이는 지난번 봤을 때보다 그렇게 많이 자란 건 아니었지만, 전보다 훨씬 과묵해져 있었다.

심도환의 아내 전희정 역시 휴일을 맞아 집 청소를 하다가 문 쪽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더러운 걸레를 쥔 전희정이 조금 쭈뼛거리다 입을 열었다.

“건우야, 어쩐 일로⋯⋯.”

성건우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 D5로 승급했어요.”

“뭐?”

전희정은 깜짝 놀란 동시에 참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전희정의 직원 등급은 D3에 불과했다.

그렇게 뜬금없는 말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전희정은 머지않아 성건우가 그 말을 한 의도를 깨달았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D5급 직원의 평균 월급이 대략 어느 정도나 되는지 짐작이 갔다. D5가 됐으니 이만큼은 선물로 줘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전희정은 약간 씁쓸한 마음으로 답했다.

“전에도 그렇게 많은 물건을 갖다줘 놓고서. 이럴 필요 없어⋯⋯.”

순간 전희정이 말끝을 흐렸다. 혈연도 아닌데 왜 이러냐고 말하려 했었지만, 또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지난번 성건우가 그녀에게 남긴 말이었다.

‘우리 엄마가 돼주세요.’

성건우는 잠시 심도환의 아이를 바라보다, 다시 전희정을 돌아보았다.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마세요. 몸이 다 축나잖아요.”

무슨 말인가 하려 했던 전희정은 성건우의 가족 사정을 떠올리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밀차에 실린 물건을 차례로 집에 옮겨주는 성건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짐을 다 옮긴 성건우가 손을 흔들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전희정이 숨을 한번 들이마시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널 영원히 기억할 거야.”

성건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차를 끌고서 이곳을 떠났다.

밀차를 돌려준 뒤 엘리베이터에 오른 성건우는 490층 버튼을 눌렀다.

제11 고아원이 있는 곳이었다.

* * *

점심 무렵, 용여홍이 남은 식재료로 무근자들의 특식인 잡탕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그의 어머니가 황급히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너, 너 D5로 승급했니?”

고홍자의 눈빛에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용여홍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나중에 휴대용 컴퓨터를 받으면 가족들에게 승급 사실을 알릴 계획이었다.

“정말이야?”

고홍자가 재차 물었다.

“네, 한 이틀 정도 더 있다가 말씀드릴 생각이었어요.”

용여홍은 일단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자신이 알리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이를 어떻게 아는 건지 몰라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순간, 용여홍의 뇌리를 스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혹시 건우 만나셨어요?”

고홍자는 희색을 띤 채, 약간 원망하듯 말했다.

“그래! 건우가 거리서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말하고 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모르겠니? 아이고, 어떻게 벌써 D5가 됐어? 이제 여자들이 줄을⋯⋯.”

갑자기 고홍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녀는 그렇게 용여홍을 바라보며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너희들, 엄청 위험한 임무를 맡은 거니?”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짜냈다.

“아니에요, 그리고 전 조금만 있다가 직무도 바꿀 거예요.”

“아유, 다행이다. 그렇다면 다행이지⋯⋯.”

고홍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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