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16화 (316/649)

316화. 꿈 같은

성건우과 용여홍은 활동 센터 옆에 딸린 질서감독실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이 층의 토박이인 만큼 오늘의 당직을 맡은 질서지도자 두 명과도 다 아는 사이였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 화장실에 갔다가 벌거벗고 뛰어다니는 사람을 발견했어.”

있었던 상황을 그대로 전한 그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풍기문란이야!”

“벌거벗고 뛰어다녔다고? 어느 방으로 들어갔는지 봤어?”

질서지도자 한 명이 뭔가를 떠올린 듯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용여홍이 막 답을 하려는데, 성건우가 먼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럼 내가 상부에 연락해서 감시 카메라 영상 한번 찾아볼게. 너희는 일단 돌아가. 걱정하지 마. 별문제 아니니까.”

질서지도자가 말했다.

“알겠어.”

성건우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곧장 돌아서더니 그대로 이곳을 나갔다.

성건우를 따라 나온 용여홍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왜 23호라고 이야기 안 했어?”

성건우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냉정했다.

“저 둘을 죽이려고?”

용여홍도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하긴⋯⋯. 쟤들한테 보고받은 상부에서 직접 조사하는 게 낫지.”

그 길로 성건우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용여홍은 간단히 씻은 뒤 동생과 함께 쓰는 벙커 침대 위층에 누웠다. 그리고는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며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밤을 맞은 C 구역은 시종일관 고요하기만 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용여홍은 힘겹게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오전, 성건우와 용여홍은 안정된 상태로 647층 14호에 도착했다.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장목화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보고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상부에서 갑자기 메일을 보냈어. 우리 팀더러 정신 상태 평가를 받으래.”

외근을 나갔다가 돌아온 팀이나 대대에겐 복귀 이후 따라야 하는 절차가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누구도 이를 재촉하지 않았다. 보통은 팀의 지도자가 알아서 예약을 잡고 일정을 조정하는 편이었다.

그 때문에 장목화는 심사가 끝난 뒤 팀원들과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이야기해도 되는 것과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걸 정확히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이런 메일을 받았다.

꼭 장목화 팀의 정신 문제가 심각하고, 그걸 상부에서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용여홍이 성건우에 앞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저희가 어젯밤에 겪었던 일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가 천연 교파 관련 일과 어젯밤 있었던 일을 대략 간추려 전달했다.

“그게 우리 정신 상태 평가랑 무슨 상관인데?”

백새벽은 그 두 사건을 하나로 연결 짓지 못했다.

그때, 장목화가 운을 뗐다.

“음, 어쩌면 상부에서 감시 카메라를 확인했지만, 벌거벗고 뛰어다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건지도 몰라. 그럼 남들이 보기에 건우는 아무것도 없는 벽에다 대고 얘기한 사람처럼 보였겠지.”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팀장님, 무서운 말씀 하지 마세요.”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뭐가 무서워? 너도 환각을 경험해봤잖아? 하……. 왜 회사로 돌아왔는데도 사건이 끊이질 않냐⋯⋯.”

잠시 폭탄 같은 말을 던지고서도, 장목화는 아무렇지 않게 한숨만 쉬었다.

당연히 모두에게 자연스레 떠오른 기억에 성건우의 시선은 용여홍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백새벽은 자연스레 목이 움직이려는 걸 꾹 참았다.

용여홍은 황급히 변명에 나섰다.

“전에 있던 생명 제례 교단 사건은 제가 일으킨 게 아니었는데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건우는 뭔가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장목화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성건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진지하게 답했다.

“제 이름을 뭐로 바꾸는 게 좋을지요.”

성건우의 답변을 듣고, 장목화와 용여홍은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는 백새벽까지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성건우는 남들에게 그러하듯 자신에게도 가차 없었다.

“가명으로 쓰는 장우병도 괜찮은 것 같던데.

난 일단 전화로 물어볼게. 감시 카메라에서 뭘 봤는지.”

장목화가 농담으로 받아친 뒤 화제를 전환했다.

그녀는 바로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통화가 연결되자 그녀는 어젯밤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전한 뒤 미리 생각해뒀던 질문을 했다.

뒤이어 그녀는 진지하게 전화를 마친 후, 팀원들을 쳐다보았다.

“역시 우리 예상이 맞았어. 감시 카메라 영상 속에 옷 벗고 뛰어다니는 사람은 없었대. 건우가 23호 방 앞에서 누군가랑 대화하는 것 같은 모습은 확인됐지만, 그 방의 거주자는 없다고 하네. 질서감독부 사람이 오늘 그 방에 들어가 봤는데 사람이 활동한 흔적 같은 것도 없다고 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성건우는 몸을 젖히고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 있을까요?”

참 시기적절한 말이었다.

농담에도 상관없이 고민에 잠겨 있던 장목화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환각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건우 네 정신적 문제 영역은 다르잖아. 이론상 환각이나 환청 등에 시달리진 않아. 거기다 그땐 작은 빨강이도 네 옆에 있었고. 작은 빨강이는 정신적 문제가 없는 사람이잖아.”

팀장의 평가에 용여홍은 깊은 위로를 받았다.

“맞아요, 맞아요. 근데 천연 교파의 이념으로 볼 때 깨진 거울을 신봉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이내 백새벽이 입을 열었다.

“자료에도 나와 있었다시피, 각성자가 믿는 달지기와 각성한 능력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성은 없어.”

그녀의 지적을 듣고,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그렇게 이야기할 순 없지. 그보단 절대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표현하는 쪽이 옳아. 자료에도 나와 있었지만, 달지기 신도 중에 탄생한 각성자의 능력은 해당 영역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었어.”

어느 쪽의 설명도 용여홍의 판단은 성립될 수 없었다.

아예 자리에서 일어난 장목화는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며 고민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첫 번째는 너희가 본 게 환각일 가능성. 옷을 벗고 뛰어다니는 사람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지. 두 번째는 감시 카메라가 방해를 받아 환각을 저장했을 가능성이야.”

타르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다들 깨진 거울 영역의 능력이 전자 제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더없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각성자가 어느 정도의 급에 이르러야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둘 다일 수도 있고요. 그럼 팔괘 거울과 귀신을 담을 자루, 등과 부수도 준비해야겠어요!”

성건우는 말을 이으며 점점 흥분했다.

그의 말을 쉽게 번역하자면, 화장 거울과 린넨 자루, 손전등과 재를 넣은 물 한 명을 준비해야겠다는 뜻이었다.

성건우에겐 당시 주명희의 모습과 구세계 콘텐츠로 접했던 한 줄의 대사가 퍽 인상 깊게 남은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살짝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상부에 우리 추측을 보고하면 돼. 이렇게 큰 회사에 강력한 각성자 하나 없겠어?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는 그들에게 맡겨 처리하는 게 더 낫고 안전해. 우리보다는 그들이 더 확실하게 처리하겠지.”

성건우의 얼굴에 곧바로 실망감이 어렸다.

곧이어 장목화는 책상에 앉아 업무에 돌입했다. 본래는 이번 임무 보고서를 작성하려 했었지만, 방향을 틀어 타르난에서 있었던 일 일부와 성건우, 용여홍에게 있었던 일을 결합해 어젯밤 사건에 대한 간단한 추측을 글로 썼다.

재촉받은 정신 상태 평가는 회사 심사가 다 끝난 뒤로 미룰 생각이었다.

* * *

저녁 무렵, 용여홍은 안전부 소형 식당으로 향하는 대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훠궈 만드는 법을 보여주려 소매를 걷어붙였다.

뼈를 우려서 낸 육수는 이미 끓여둔 상태라 그 이후의 일들은 비교적 수월했다.

가족들은 빠르게 식탁에 둘러앉아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식사를 즐겼다.

용대용은 부드러운 돼지고기 한 점을 소금과 고추, 다진 마늘, 파를 섞은 참기름에 찍어 맛을 보았다.

495층 물자 공급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양념장이었다.

용대용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괜찮은데⋯⋯. 이걸 먹으니까 생각이 나네. 너희 할아버지도 이거랑 비슷한 음식을 말씀하신 적이 있어. 다만 그때는 그런 음식을 직접 만들 수가 없었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엔 누구도 그 음식 조리법을 알 수가 없었지. 하,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는 것 같은데⋯⋯.”

“입에 있는 것 좀 다 삼킨 다음에 말하라니까!”

고홍자가 버릇 나쁜 아이를 교육하듯 일침했다.

다행히 용지고와 용애홍은 끓는 국물 속 고기를 건져내는 데 여념이 없어서 아빠에게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용여홍 역시 흐뭇하게 미소만 짓고 있다가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질서감독부에서 온 사람들이 20호에서 30호까지 검사했다면서요?”

고홍자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전에. 아직 출근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 봤었지.”

“그 방들을 분배하려고 그러는 걸까요?”

용여홍이 의도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고홍자는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분배할 생각이었다면 질서감독부 사람들이 왔겠니? 내 생각에는 누군가 빈방을 이용해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했던 것 같아.”

반고 바이오에서는 드문 일도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분명 도박을 금지했고, 카드 게임에서 지면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이 카드 게임이라는 놀이가 존재하는 한, 공헌점수로 내기하고 싶단 생각이 당연히 들기 마련이었다.

회사도 연말연시 같은 명절에 집 안에서 진행되는 게임에 대해선 관여치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대놓고 할 수 없는 진짜 도박은 아직 분배되지 않은 방이나 특정 사람의 집 안에서 몰래 행해지곤 했다.

“그렇구나⋯⋯.”

용여홍은 더 이상의 질문을 하는 대신 훠궈에 집중했다.

* * *

복도 등이 꺼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손전등을 들고나온 용여홍이 C 구역 23호 앞에 이르렀다.

예상대로 이곳엔 성건우가 와 있었다.

용여홍은 본인의 예측이 맞았다는 게 못내 기쁜 모양이었다.

“안에 들어가서 조사하려고?”

이는 용여홍의 목적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방은 그의 집과 워낙 가까워서 그는 이대론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물론 회사의 수준 높은 인력이 이 사건을 맡았겠지만, 또 어쩌면 비밀리에 이미 모든 상황을 해결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직접 확인을 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질서감독부에선 벌써 아무 문제도 없이 조사를 진행했으며, 주변 주민들에게 호기심에라도 이 방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경고를 남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용여홍은 이 안에 잠재된 위험은 없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혹여 또 입방정이 될까, 이 말을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성건우는 용여홍을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보더니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너는 진짜 정신 상태 평가를 받아야겠는데?”

“뭐?”

용여홍은 되묻고 나서야 친구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예전의 용여홍이라면 회사의 강자들만 믿으며 분명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지냈을 터였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그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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