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가설
“지난 몇 달 동안 몸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 같나?”
이어진 질문에, 성건우가 기억을 더듬었다.
“체중이 한 5킬로그램 늘었는데 거의 근육 무게 같고. 피부가 좀 탔어. 힘도 많이 세졌고. 식사량은 3분의 1 정도 많아졌어. 똥도 그만큼 많이⋯⋯.”
유성연의 이마 위 핏줄이 다시 꿈틀거렸지만, 그는 성건우의 말을 끊진 않았다. 계속 거짓말 탐지기 반응과 데이터를 관찰하며 상세한 기록에 열중했다.
“난 이미 내 현재 상태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어. 냉정할 때는 사고력이 높아지고, 충동적일 때는 용기가 늘어나지. 한마디로, 난 더 강해졌어.”
성건우가 진지하게 자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충동적일 때 겁먹고 용기 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럼 그건 충동적인 상태가 아닌 거지. 그리고 냉정할 때 분석력이 예리해지지 않는 사람은 또 어딨다는 거야?’
유성연은 성건우의 말 대부분이 허튼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허튼소리는 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다.
몇 초간 침묵하던 유성연이 물었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이상한 능력이 생기지는 않았나?”
“그거야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네가 변이인이나 지능인까지도 인간으로 본다면,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은 그 범주 안에 들어.”
“…….”
유성연은 정말로 머리가 지끈거려서 잠시 이마를 짚었다.
“……평범한 인간을 말하는 거다.”
“생겼어! 격투하면 나는 너 두 명 정도는, 아니야, 심지어 네가 아주아주 많아져도 다 대적할 수 있어.”
“…….”
성건우의 답은 매우 단호했고, 유성연은 더 이상 마음에 활활 타오르는 그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대놓고 화를 낼 순 없기에, 그저 앞에 놓인 컵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초능력을 말하는 거라고! 일반 사람한테는 없는 초능력!”
“없어.”
성건우는 거짓말 탐지기를 바라보며 아주 산뜻하게 답했다.
거짓말 탐지기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유성연은 이를 보고 다른 질문을 했다.
그렇게 대략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유성연이 내내 들고 있던 펜과 종이를 내려놓았다.
“문답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신체검사다.”
“내 상태 아주 안정적이지 않아?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임 선생을 만나서 재검사를 받아야 하나?”
성건우가 각종 센서를 떼며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유성연은 바로 만약 앞으로도 이러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더 이상 정기적인 상담은 받지 않아도 된다고, 1년에 한 번이면 충분할 거라고 답하려 했다.
하지만 문득 자료에 적힌 특정 기록이 떠올라서, 유성연은 잠시 성건우를 떠보듯 물었다.
“땅 위에서의 임무를 자원한 이유는 뭐지?”
“실종된 아버지를 찾고 싶어서.”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정상이네.’
유성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질문을 이었다.
“그리고?”
순간 매우 진지한 표정을 드러낸 성건우가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전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
유성연은 그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그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정기적인 상담은 계속 받는 걸 추천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알았어⋯⋯.”
성건우는 매우 실망한 얼굴이었다.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유성연과 악수를 하며 작별을 고한 뒤 흰색 가운을 걸친 한 연구자의 안내에 따라 굉장히 넓은 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구세계의 최신형 CT기가 있었다.
부근의 다른 방에도 MRI를 포함한 일련의 검사기기가 놓여 있었다. 대부분은 성건우가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었다.
성건우는 순서에 따라 신체의 각 부위를 검사받았다.
* * *
지하 빌딩, 3층.
이곳은 검사를 받는 성건우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는 방 안이었다.
“들어와.”
한 남자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금테 안경에 학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민수안이었다.
곧이어 문을 열고, 유성연이 한 더미 자료를 안고 들어왔다.
그는 아주 공손한 태도로 보고를 올렸다.
“민 부소장님, 방금 진행한 질문, 관찰 결과입니다. 32번 지원자의 과거에 관한 기록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C-14 프로젝트에서 성건우는 32번 지원자로 불리고 있었다.
“그래, 여기 둬.”
그리고 민수안은 화면에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검사 데이터와 상응하는 사진을 살피며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32번 지원자에게 지난 반년 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가져다줘.”
“알겠습니다. 민 부소장님.”
유성연은 근처 컴퓨터를 켜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유성연이 성건우가 구조팀에 소속된 이래 진행한 각종 임무와 얻은 보상에 관한 자료를 다운로드했다.
민수안은 정리된 자료를 건네받아, 진지하게 열람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낮게 웃던 민수안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나치게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각성 능력 중에 운을 조종하는 유형은 없는 거야. 운 자체의 존재 여부에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일을 겪고도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수확을 얻었다는 건 그가 속한 팀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거지. 예상했던 모델을 뛰어넘을 정도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민수안은 해당 자료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팀에 각성자가 있는 것으로 의심됨. 32번 지원자일 가능성이 큼.」
뒤이어 성건우의 검사 결과와 후속 상황을 마저 살피던 그는 각종 검사가 끝난 뒤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펜을 들었다.
「32번 지원자의 논리에 간헐적인 혼란이 발생하며 사고는 비약적임. 만약 이것이 그가 지불한 대가이며 각성 능력과 관련돼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면, 그는 장생 영역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함.」
* * *
모든 검사를 마친 뒤, 성건우는 잠시 휴게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연구자 유성연이 들어왔다.
“민 부소장님께서 면담을 원하신다.”
그리고 약간 뜸을 들이다, 유성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면담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번 검사는 거의 끝날 거야.”
“이렇게 빨리?”
‘빨리라고? 다들 어서 이곳을 나가고 싶어 안달이던데.’
유성연은 놀란 성건우를 보고 미세하게 눈썹을 움직였다. 도저히 성건우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이내 성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난 점심까지 주는 줄 알았지. 연구소 식당 밥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거든. 맛이 어떤가 궁금한데.”
“⋯⋯.”
유성연도 이제 대꾸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일단 화장실 좀 다녀올게.”
화장실은 휴게실 안에 딸려 있었다.
이는 아주 정상적인 요구인 데다가 오랜 시간을 잡아먹을 일도 아니었기에 유성연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문 앞에서 기다릴게.”
곧 화장실에서 나온 성건우가 유성연의 옆으로 다가갔다.
유성연은 즉각 성건우를 데리고 이동했다. 단단히 밀폐된 방들을 지나, 한 사무실 앞에 이르렀다.
사무실의 형광등은 매우 밝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부드러운 빛이었다.
이곳엔 금테 안경을 쓰고, 새카만 머리가 좀 헝클어진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역시 이 연구소 직원들과 같은 하얀 가운을 걸친 모습이었다.
곧이어 중년 남자가 테이블 맞은편 등받이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지. 난 C-14 프로젝트의 책임자 민수안이다.”
“안녕하세요.”
성건우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민수안은 테이블 가장자리에 팔꿈치를 올리고 양손을 깍지껴 쥐었다.
“간단히 설명하지. C-14 프로젝트는 주로 각성자와 관련돼 있다. 자네도 지상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니, 각성자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성건우는 그저 미소 지으며 상대를 응시할 뿐,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를 보고 민수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각성이 사실 인체에 생기는 일종의 특수한 변이라고, 그건 어느 부위에 일정 정도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과학적인 수단으로도 검사할 수 있을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성건우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상대와 눈을 맞췄다. 움츠러들거나 위축된 기색 같은 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민수안 역시 변함없는 자세를 유지한 채 웃으며 말했다.
“심리적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 회사도 변이와 각성에 대해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지. 다른 세력이나 지역에서 그러하듯, 이를 자연에 위배되는 일이나 종말의 찌꺼기로 여기고 그걸 전부 제거해야만 신세계의 도래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아.
회사에선 언제나 각성자를 더 좋게 대접해 주고, 더 낫고 더 중요한 직무에 배정해줬다. 대신, 그들은 우리가 정기적으로 진행할 검사에 협조는 해야 하지. 하지만 이 검사는 각성자가 어떤 모욕도 느끼지 않게, 피해를 받는 일도 없게 전부 세심하게 고안됐다.”
그가 설명을 마치자 성건우가 미간을 구기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해가 잘 안되네요. 대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금테 안경 너머, 민수안의 진한 갈색 눈동자가 성건우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는 거의 10초 가까이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민수안이 약간의 웃음기를 드러냈다.
“오늘의 추적 검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다음 검사는 앞으로 반년 후에 있을 거야.”
성건우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만 가봐도 되나요?”
민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성건우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계세요.”
떠나는 그를 지켜보다가, 민수안은 문서 말미에 다시 뭔가를 적었다.
「비밀 관찰 명단에 전입시킬 것을 건의함.」
코멘트 작성을 마친 뒤, 그는 자신의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했다. 상부에 보고를 위해서였다. 또 앞으로의 작업엔 다른 부서의 협조가 필요했다.
로그인하니, 민수안의 메일함에 새 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실권자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클릭한 순간, 딱 한 문장만 적힌 간단한 메일이 떴다.
「C-14 프로젝트 32번 지원자에 대한 추적 관찰, 전면 중지할 것.」
“이게 대체⋯⋯.”
민수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 옆에 놓인 문서를 바라보았다.
* * *
성건우는 지하 빌딩 3층 연구 구역을 나오자마자 귀로 손을 뻗었다.
양쪽 귀에선 단단히 압착 된 솜 한 덩어리가 나왔다.
그 솜덩어리 두 개는 즉각 성건우의 옷 주머니로 들어갔다.
“안타깝네. 독순술을 모르니까 무슨 얘기를 한 건지 알 수가 없잖아.”
성건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 *
647층, 14호.
성건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에게 갔다.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한창 자료를 읽으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어땠어? 무슨 검사였어? 뭘 물어보던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장목화는 바로 허리와 배의 힘만 이용해 일어나 꼿꼿한 자세로 앉았다.
성건우는 구조팀 사무실 문을 닫으며, 있었던 일 그대로 전달했다.
그와 유성연이 나눴던 대화 내용을 듣고 장목화가 실소를 터뜨렸다.
“야! 너 그러다 얻어맞아!”
“그 사람은 저 못 때려요.”
성건우의 말은 논리적이지는 않았지만 당당했다.
장목화는 바로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네 거랑 다른 사람 차이는 어떻게 알아, 비교 대상이라도 있어?”
장목화도 벌써 여러 차례 외근을 나간 안전부 직원이었다. 물론, 이런 방면의 경험은 없었어도 이미 낯가죽이 상당히 두꺼워진 상태였다. 이렇듯 악질 고참 같은 농담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경험이 쌓인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성건우, 용여홍 앞에서나 가능한 얘기지, 실전파 백새벽 앞이라면 얘기는 달라졌다.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또 종종 그녀의 말에 허를 찔릴 때도 있었기에 얼른 화제를 돌리는 게 상책이었다.
그때, 갑자기 장목화의 표정이 굳었다. 성건우를 놀리려고 비교 대상이란 말을 뱉었지만,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확히 예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