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마지막 문제 (2)
용여홍은 팀장의 추측이 크게 틀리진 않는 것 같아서 두려워졌다.
“그럼 디마르코는 엄청 위험한 사람인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우린⋯⋯.”
구조팀이 그에게 맞서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였다.
장목화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 오히려 자신이 생겼어.”
“왜요?”
용여홍이 의아해했다.
장목화는 웃음을 머금은 채 북쪽을 돌아보았다.
“경계 교파, 혹은 에이돌른이 디마르코를 비호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뜻이잖아.”
그럼 아주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순간 용여홍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불안했던 마음도 적잖이 사그라들었다.
“이제 뭘 하면 되죠?”
백새벽이 물었다.
장목화는 다시 웃음기를 거둬들였다.
“내가 방금 말했던 마지막 문제로 돌아가야지. 만약 디마르코가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강자라면, 굉장히 넓은 범위로 인간 의식을 감지할 수 있을 거야.
그럼 우린 통풍관을 통해 진입할 수도, 통풍구 근처에 접근할 수도 없어. 하하, 다들 잠든 밤을 노릴 수도 없겠지? 건우도 잘 때 자발적으로 감지력이 발휘되잖아. 심령의 복도 급 강자라면 그 능력은 더 강력할 거야.”
그 말을 듣고,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전 제 의식을 숨길 수 있어요.”
이는 모든 각성자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상대의 감각기관에 의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상대에게 능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는다면 남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곧이어 게네바가 약간 묵직한 목소리로 따라붙었다.
“나한테 인간의 의식 같은 건 없을 거다.”
그가 각성자에게 감지될 리는 없다는 뜻이었다.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너희 둘만으로는 통풍관을 통해 소리소문없이 진입할 방법이 없어. 지하 방주에 내통자가 두 명이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장목화가 걱정하는 부분을 분석한 게네바가 곧장 말했다.
“난 약간의 개조를 통해 감시를 방해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어.”
그의 말을 들으면 개조는 옷을 갈아입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간단한 일인 것 같았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또 개조에 드는 부품 같은 걸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말이야, 지하 방주로 접근하는 거, 원래는 아주 골칫거리였지만 지금은 좋은 방법이 있어.”
말을 잇는 장목화의 얼굴에 점차 웃음이 피어났다.
“뭔데요?”
의욕을 보이는 용여홍을 보고, 장목화가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웃었다.
“디마르코한테 우리 존재를 숨길 수 없다면, 차라리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접근하는 거야.”
“예?”
용여홍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백새벽과 게네바 역시 말을 잃었다.
당당하게 찾아가서 어떻게 참수 작전을 실행하겠다는 건가?
장목화는 곧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넌 알겠어?”
성건우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만전술이네요.”
장목화는 그와 입씨름하는 대신 계속 웃으며 설명했다.
“음. 내 말은, 우리한테 경계 교회당 통풍관을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핑곗거리가 있다는 거야.”
통풍관?
그 말을 듣자마자 용여홍의 머릿속에 이름 하나가 번쩍 떠올랐다.
‘비엘!’
장목화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예를 들면 우린 송 경고자님한테 비엘을 찾는 임무를 맡을 수도 있어. 비엘이 통풍관 안을 돌아다니길 좋아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우리가 교회당 통풍 시스템 안에서 비엘을 찾는 것도 아주 합리적인 일이지.
교회당 통풍관과 지하 방주의 통풍관은 대부분 연결돼 있어서 우린 비엘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하 방주에 접근하는 수밖에 없고, 디마르코에게 감지당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다 보면 디마르코도 우리 존재에 익숙해질 테고, 미리 앞서 우리의 목적, 그러니까 표면적인 목적을 파악하게 되겠지.
이런 상황에 무뎌져서 디마르코가 경계심을 늦추고 더 이상 과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도 계획을 진행하는 거야. 인적이 드문 야심한 시간을 노려 예정된 통풍구를 통해 방주에 몰래 잠입하는 거지.”
백새벽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것도 방법이네요.”
장목화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만약 뜻밖의 상황이 생겨서 작전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쥔 경계 교파의 깃발로 디마르코를 위협하면서 모두가 빠져나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거야.”
이 대목에서 전보다 더 환한 웃음을 드러낸 그녀는 지하 방주의 사람들을 앞에 앉혀 놓은 양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린 교파의 의뢰를 받고 비엘의 실종이 방주와 관련돼있을까 싶은 마음에 단서를 찾으려고 잠입한 것뿐이야! 이게 못마땅하면 교파와 말해서 우리한테 벌을 주라고 해! 설마 주제넘게 교파 대신 직접 우리를 벌하려고?”
용여홍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 왠지 장목화의 등 뒤에서 검은 날개 한 쌍이 커다랗게 흔들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장목화가 마지막으로 고안한 방법을 정리했다.
“간단히 말해 경계 교파의 깃발을 호랑이 삼아 위세를 떨자는 거야!”
짝짝짝!
아니나 다를까 성건우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용여홍은 앞으로도 절대 팀장의 심기를 거슬러선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팀장님은 참 자비롭고 관대한 분이셔. 건우 쟤 목숨줄이 여태 무사히 붙어있다는 게 완벽한 증거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근데 만약에 비엘이 벌써 돌아왔다면요?”
장목화는 이에 대해서도 이미 생각해두었던 듯 유창하게 답했다.
“일단 경계 교파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 만약 그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디마르코를 비호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일정한 도움을 줄 용의가 있다면, 비엘에게 며칠 더 사라져 있으라고 할 거야.
만약 그들의 태도가 우리 예상과 다르다면 참수 작전을 계속 이어 나갈 필요는 없는 거지. 경계 교파에 대항하는 건 우리 팀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회사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니까.”
‘비엘에게 며칠 더 사라져 있으라고 할 거라고?’
용여홍은 순간 두통이 밀려왔다.
* * *
다음 날 오전, 붉은색과 금색으로 장식된 경계 교회당 안.
구조팀은 송하균의 방 안에서 그를 만났다.
“송 경고자님, 비엘은 돌아왔나요?”
장목화가 곧장 물었다.
송하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사람을 시켜 그 녀석을 찾게 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요.”
용여홍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장목화가 자원했다.
“저희한테 맡겨 보시겠어요? 전에도 저희가 비엘을 찾았었잖아요.”
엄밀히 말하자면 비엘이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건 구조팀이 비엘을 찾는 임무를 맡고 탐색을 시작한 후의 일이었다.
송하균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떤 보수가 필요하십니까?”
“에이돌른의 비호 약간이요.”
장목화는 의도적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예?”
송하균이 이해를 잘 못 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나 장목화는 그 물음에 답하는 대신 화제를 전환했다.
“비엘은 교회당 곳곳의 통풍관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 교회당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통풍관 하나씩 다 탐색할 권한을 주셨으면 합니다.”
송하균은 장목화의 말속에 은근히 담긴 뜻을 파악하려는 듯 몇 초간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이 의뢰와 여러분이 원하는 보수는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가서 안토넬라 주교님과 상의하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우아한 중 가면을 쓴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그로부터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검은 망토를 걸치고 간단한 가면을 쓴 안토넬라가 송하균을 따라 이 방으로 들어왔다.
구조팀을 본 안토넬라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에이돌른의 비호는 그분을 진심으로 믿고, 그분을 위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저는 그분을 대신해 허락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건우가 가슴 앞에 두 손을 깍지껴 잡고,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경계하는 마음은 영구히 존재하리라!”
“⋯⋯.”
안토넬라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몇 초 후, 그가 겨우 화제를 전환했다.
“교회 통풍관을 탐색할 권한은 드릴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비엘을 찾아오기를, 그 안의 어떤 것도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는 최후의 보수는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언급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뭔가 생각에 잠겨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아곳의 통풍관 구조는 상당히 복잡하고, 지하 방주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만약 저희가 길을 잃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가게 되면 어쩌죠?”
10초 정도 침묵하던 안토넬라가 웃음기가 살짝 어린 말투로 답했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 답에 장목화도 따라 웃었다.
“예, 다음에는 그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 *
경계 교회당, 지하 1층.
노예 상인 호지승은 4, 50명의 젊은 남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봤다시피, 훈련을 위해 준비된 이 공간도 너희가 전에 지냈던 곳보다는 훨씬 좋다. 침대도 있고, 이불도 있고, 요도 있고, 베개도 있는 데다가 때맞춰 세 끼 식사도 딱딱 나오지. 이게 천국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이건 너희들을 위해 내려진 축복이다. 그러니 절대 디마르코 선생을 실망시키지 마라. 훈련을 끝까지 잘 받아서 방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라. 안 그럼 선택도 받지 못하고, 결국은 광산 같은 곳에 갈 수밖에 없는 거다.”
남루한 행색의 젊은이들은 희망으로 두 눈을 반짝이면서도, 방주의 하인으로 선택받지 못할까 걱정하기도 했다.
곧이어 지하 방주의 사람이 젊은이들을 데리고 각기 다른 방으로 배정을 시작했을 때였다.
호지승과 부하들은 로봇을 가지고 있는, 온 레드스톤을 휩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팀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한 것을 발견했다.
‘저 사람들이 여긴 왜 온 거지?’
호지승은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두어 걸음 물러나 길을 비켰다. 그가 데려온 노예들 역시 각기 다른 방문 앞에 옹송그린 채 불안함과 혼란이 어린 눈으로 그 방문자들을 바라보았다.
걸음을 멈춘 성건우는 나름 깨끗하지만 창백한 노예들의 얼굴을 훑어봤다.
지하 방주의 관리자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은 방주에서 하인을 훈련하는 시간인데요.”
지하 1층의 소유권은 방주에게 있었다. 이곳은 그들이 하인을 훈련 시키거나 시험하지 않을 때만 교파의 미사 장소로 내어주는 장소였다.
입이 뾰족한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통풍관 수리하러요.”
관리자도, 호지승을 비롯한 이들 모두가 흠칫 놀랐다.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사이 장목화가 앞으로 두 발짝 정도 나섰다.
“교회당의 한 친구가 사라졌습니다. 통풍관 안을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녀석이죠. 그 애를 찾으러 온 겁니다.”
동시에 그녀가 안토넬라가 써준 증명서를 꺼내 보였다.
관리자는 그걸 받아 들고 몇 차례 살피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저희를 방해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사실 이 소란은 그녀와 성건우가 의도한 것이었다. 지하 방주 사람에게 구조팀의 공식적인 임무를 알리면서, 이 사실이 최대한 빨리 디마르코의 귀에 들어가길 노리고 있었다.
잠시 후 구조팀은 구조도에 따라 통풍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이들은 지하 방주로 진입할 수 있는 통풍구에도 여러 차례 이르렀지만, 비엘의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겉보기엔 지극히 정상적이고 정석적인, 유적 사냥꾼 팀의 모습이었다.
통풍관 속에서의 생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으로선 진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구조팀은 2, 3시간마다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스트레칭하고, 휴식을 취했다.
이로 인해 밤 11시가 돼서야 마지막 두세 개 구역을 남겨 놓았다.
그중 한 통풍구는 구조팀의 내통자 여천수와 보드가 담당하는 곳이었다.
지금 경계 교회당은 이미 닫혔고 성직자들도 전부 방으로 돌아갔으며, 교회당 무장 경비 중에서도 순찰과 당직을 맡은 이들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