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마지막 문제 (1)
두 동료의 말에 큰 위안을 얻은 용여홍은 천천히 자리에 앉아 야명주의 능력과 특징을 물었다.
장목화가 설명을 마치자 그는 약간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성건우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우리처럼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용여홍은 겁보 같았던 방금을 후회하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럼 내가 한 번 시도해볼게.”
성건우가 곧장 황녹색 야명주를 건네주었다.
역시 그 답을 확인하고 싶었던 장목화가 얼른 게네바에게 말했다.
“만일에, 만일까지 대비해줘.”
“그럼, 문제없지.”
게네바도 파란빛이 뿜어져 나오는 눈을 용여홍에게 고정했다.
이내 용여홍의 손에 야명주가 넘어왔다. 손에 쥐어진 구슬은 생각했던 것처럼 차갑지 않고 오히려 체온과 비슷하게 뜨듯했다.
그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보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방법을 바꿔가며 도전해도 겁쟁이 효과는 발휘할 수 없었다.
“안 되나 보네⋯⋯.”
용여홍이 실망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로 그때였다. 여관 구역 내에서 갑자기 휙, 하고 바람이 불었다.
몸을 떨며 야명주를 내팽개친 용여홍은 소파 뒤쪽, 하필 또 여자 동료들 백새벽과 장목화 뒤로 숨어버렸다.
몇 초 후, 용여홍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고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방금은 갑자기 너무 겁이 났어. 바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고.”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비 각성자는 이런 신기한 물건을 사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야명주에 약간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야.”
“안타깝네⋯⋯.”
장목화는 숨김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와 비슷한 물건을 이용해 각성자 능력을 체험해봤으면 했던 꿈이 무너진 게 못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이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백새벽이 말했다.
“이 야명주의 효과랑 어인 신사가 보인 모습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어인 신사의 능력은 주로 호흡과 심장 박동에 영향을 미쳤었다.
“응, 영역이 달라.”
어느새 진지해진 성건우가 간결하게 말했다.
곧이어 장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염호가 월계관을 이용해 어인 신사의 심령 세계를 열고 강림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면, 그 물건은 본인의 기운과 상응하는 사물의 응결로 이뤄진 결과물일 거야. 하지만 이 야명주는 염호가 심령의 복도를 탐색하는 와중에 얻은 수확일 가능성이 커. 원래 어느 강자의 것이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녀가 게네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희 머신 헤븐에서도 각성자 능력을 분류해?”
게네바가 고개를 저었다.
“너희도 알겠지만, 우리 머신 헤븐은 외부와 거의 접촉하지 않는다. 대개 타르난이라는 창구를 통해서만 이뤄지지. 가끔 레드스톤 마켓이나 위드 시티, 임해 연맹 등으로 팀을 파견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따졌을 때 우리가 만난 각성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심층적인 분류를 진행할 수도 없었고.”
“그렇지.”
장목화가 이해한다는 듯 대꾸했다. 그녀는 각성자 방면에선 머신 헤븐이 반고 바이오보다 아는 게 적을 거라 생각했다.
곧이어 성건우가 야명주를 라텍스 장갑에 넣어 게네바에게 건네자, 장목화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자,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끝났어. 마지막 문제만 하나 남았네.”
그녀는 이 참수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레드스톤 마켓의 크고 작은 세력과 연합할 생각도, 도제훈을 비롯한 이들과 합작할 생각도 없었다.
이러한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지하 방주를 급작스럽게 기습해야만 했다. 알게 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보가 새어 나갈 위험은 커지기 마련이었다.
왕이 비밀을 지키지 못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하면 목숨을 잃듯 작전에서의 비밀을 지키지 못하면 성공을 잃는 법이었다.
지하 방주의 역사는 레드스톤 마켓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그들의 사업이 이 거점을 탄생시킨 만큼,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은 지하 방주와 어쩔 수 없이 갈등이나 연합 등 각양각색의 관계를 맺었을 터였다.
지금 당장 효과적인 판별 방법을 마련할 순 없는 이때, 장목화는 부러 비밀을 유출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참수 작전에서 필요한 건 대규모 병력이 아니었다. 이 작전엔 오히려 소규모 정예팀이 더 알맞았다.
반고 바이오에게 알리는 것은 더더욱, 당연히 안 될 일이었다. 분명 중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올 것이었다.
본래 외지에 나와 있다면 경우에 따라선 상부에 꼬박꼬박 보고하지 못할 때도 있는 법 아니던가.
“무슨 문제요?”
용여홍이 매우 협조적으로 나왔다.
장목화는 귀를 만지작거리던 오른손을 그대로 턱 쪽으로 옮기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적에 대해서는 넉넉하게 예상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전에 이런 이야기도 했었지? 만약 디마르코가 염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른, 심령의 복도 급 강자면 어떡하냐고.”
아직도 겁쟁이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용여홍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몸서리를 쳤다.
“그럼 작전을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성건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
“어느 날, 여홍이 네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어. 그 사람이랑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고⋯⋯.”
“또 뭔 소리를 하려고?”
용여홍은 친구의 말을 끊고 나서면서도, 성건우가 또 무슨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어서 일단은 계속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성건우는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 없다는 말 대신,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 앞에 위험이 닥친 거야.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쏜 총에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네가 아무리 네 힘으론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도 그냥 그대로 포기하고 내빼버릴까, 아니면 망설임 없이 목숨 걸고 달려들려 할까?”
용여홍은 쩍 벌린 입을 한동안 다물지도 못했다. 성건우의 예시가 지금 상황과는 비슷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에 날카로운 화살 한 대를 맞은 듯한 느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진정시키려는 듯 잠시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게 어떻게 같아? 우리한텐 야명주도 있고, 각성자 능력 대부분은 무시할 수 있는 게네바도 있어. 최악의 상황이 와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그리고, 기억하지? 디마르코의 아버지가 중병에 걸렸을 때 지하 방주에서 일어난 한 차례 반란으로 가문의 구성원이 심각하게 죽거나 다쳤다고 했잖아. 디마르코는 그 일을 계기로 지하 방주의 새로운 주인이 됐고.
난 이 사건 배후에 디마르코가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지만, 어쨌건 이 사건은 당시 디마르코의 실력이 그다지 강하지는 않았다는 걸 증명해. 그러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런 식으로 발전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생각해 봐, 디마르코가 강하다면 가족들이 반란 때문에 죽거나 다치지 않게 막을 수 있었을 거야. 또 앞길에 방해가 되는 가문 구성원은 손쉽게 해치웠겠지. 굳이 반란을 이용할 필요는 전혀 없었을 거라고.
이건 얼마 되지도 않은 이야기야. 디마르코가 아무리 빠르게 승급했다 한들 염호에는 못 미칠 게 분명해. 난 기껏해야 타르난의 그 고등 무심자보다 약간 더 강할 거라고⋯⋯.”
단숨에 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던 장목화가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연달아 두 차례 변했다.
“왜 그러세요?”
자신이 아직 겁쟁이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용여홍은 조금 더 두려워졌다.
장목화는 그에게 답하는 대신, 약간 복잡한 눈으로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디마르코가 에이돌른을 어떻게 평가했었는지 기억해?”
성건우는 인공지능 컴퓨터처럼 당시 디마르코가 했던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줄줄 읊었다.
“모든 달지기가 다 에이돌른처럼 자신의 교회당을 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용여홍 역시 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려냈다.
“맞아, 맞아. 디마르코는 에이돌른이 경계심을 관장하는 만큼, 그 달지기 본인 역시 높은 경계심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었지.”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성건우에게 재차 물었다.
“그럼 우리가 에이돌른의 주시를 받았을 때 일도 기억해?”
성건우가 그 질문에 답하기도 전, 용여홍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에이돌른의 주시를 받았었다고요?”
백새벽 역시 의아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들을 놀라게 할까, 일부러 함구했던 장목화는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인지, 환각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거든. 하지만 지금 디마르코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니 거짓은 아니었던 것 같아.”
다른 이유로 둘러대지 않은 건, 불안해하는 백새벽이 팀에서 배제되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용여홍은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히익, 우리가 다, 달지기의 주시를 받았었다니⋯⋯! 달지기의 존재가 사실이라니⋯⋯.”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보던 백새벽은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성건우는 그제야 방금 전 장목화가 했던 질문에 답했다.
“우리가 에이돌른의 주시를 받기 전, 레나토 주교는 무심병에 걸렸죠. 비엘은 그게 테레사 부인과 부정을 저질러서 받은 신벌이라고 생각했고요.”
“마지막 말은 할 필요 없었는데⋯⋯.”
무기력하게 저지하던 장목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진지한 얼굴을 했다.
“만약 정말로 에이돌른의 신벌이었다면 난 레나토 주교가 쇼크사로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 음, 디마르코를 심령의 복도 급 강자, 위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로 가정해본다면 에이돌른에 대한 그의 평가와 우리가 느꼈던 에이돌른의 주시는 전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돼.”
성건우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에이돌른이 수시로 레드스톤 마켓 경계 교회당을 주시한 건 애초에 경계심을 관장하는 달지기일 뿐만 아니라, 교회당 지하에 심령의 복도 급 강자가 진압돼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당시 경계 교회당이 다른 곳을 택하지 않고 지하 방주의 상층부 몇 층을 빌려서 교회당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일 수 있고요.
아니야, 아니지. 경계 교회당이 건립됐을 때 디마르코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요.”
진지하게 풀이하던 성건우가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목화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었다.
“설마 디마르코의 조부, 아니면 증조부도 심령의 복도 급 강자였나? 심령의 복도 급 강자의 후손은 각성자가 될 가능성이, 심령의 복도에 진입할 가능성이 더 큰 건가?
흠, 역대 지하 방주의 주인은 전부 아주 많은 아이를 낳고 그중 가장 뛰어난 아이를 후계자로 삼았다고 했어. 최대한 많은 아이로 후보군을 넓히면서 후대의 각성을 꾀했던 건가? 그중에 각성한 아이가 방주의 후계자가 되나?
디마르코는 막내아들을 잃고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지. 그건 혹시 그 막내아들이 태생적인 각성자였기 때문일까?”
이 가설은 지하 방주 내부의 특성 현상을 뒷받침하기는 했지만, 그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