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염호의 관
분노의 호수 가운데 자리한 섬.
지난번에 비하면 구조팀의 항해는 훨씬 순조로웠다. 어인들은 이미 이 섬에 대한 감시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장목화가 백새벽과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용여홍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너희가 모터보트를 지켜줘. 이건 우리 생명을 지켜줄 물건이야. 누가 이걸 뺏거나 파괴하면 꼼짝없이 이 섬에 갇히게 돼, 알지?”
“예, 팀장님!”
용여홍의 소리가 워낙 커서 그렇지, 백새벽도 알겠다고 성실히 답했다.
주의사항을 일러준 뒤, 장목화는 성건우와 게네바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 가자.”
전신 무장을 한 장목화가 자전거에 올랐고, 성건우도 바로 뒤따랐다.
게네바는 앞에 놓인 자전거를 보며, 합성음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이 교통수단을 한번 이용해보고 싶었지.”
구조팀이 도제훈에게 자전거 세 대를 빌린 건 게네바의 뜻이 컸다.
장목화는 원래 자신과 성건우만 자전거를 타도 게네바는 가볍게 뛰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능 로봇이 지칠 리도 없고, 그만한 속도로 뛰더라도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끼릭- 끼릭-
게네바가 안장에 걸터앉자, 가여운 자전거가 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언제든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장목화는 그렇게 게네바 아래에 깔린 듯한 자전거를 힐끔 보며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가자.”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뿐이었다.
‘저 자전거, 그래도 꽤 버티네.’
* * *
이어지는 여정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자전거 세 대는 호숫가 길을 따라 흰색 벽에 검은색 기와로 이루어진 구세계 마을에 도착했다.
“주의사항 기억하고 있지?”
자전거를 멈춰 세운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네, 15분, 30분, 사흘이요.”
성건우는 간략하게 답했다. 이는 신전 안에선 15분을 넘겨선 안 되고, 신전 부근에서는 30분을 넘겨선 안 되며, 이 섬 안에서 사흘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래, 거기서 10퍼센트씩 줄여서 생각하도록 해.”
뒤이어 장목화는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만약 우리가 무슨 이상한 점을 보이면, 곧장 우리를 기절시킨 뒤에 섬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줘.”
“응.”
게네바가 진지하게 말했다.
곧 골목길을 지나쳐 목적지에 도착한 셋은 양쪽에 흰 종이에 싸인 등이 걸려 있는 검은색 신전을 마주했다.
“염라전.”
자전거를 세워둔 게네바가 현판에 새겨진 신전의 이름을 읽었다.
장목화는 자신이 이곳에 다시 오게 되리라곤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아서, 신전을 몇 번이나 살피다가 손을 뻗었다.
라텍스 장갑을 낀 손이 검은 대문을 살짝 밀자, 문은 곧장 입은 벌렸다.
이 순간, 장목화의 마음엔 형언하기 어려운 적막감과 공포감이 떠올랐다. 지난번 그때와 똑같은 감정이었다.
곧이어 셋은 물동이가 놓인 뜨락을 지나쳐, 흰색 장막을 걷고 제사상 뒤로 돌아가 새카만 관 옆에 섰다.
뚜껑이 한쪽으로 미끄러져 있는 관속에, 흰색 삼베옷을 입고서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른, 잠든 신령이 누워있었다.
“정말 예의 없네.”
성건우가 짧게 중얼거렸다. 지난번 이곳을 떠날 때 그는 염호를 위해 관뚜껑을 닫아주었다. 그런데도 지금 또 관뚜껑이 열려 있는 건, 분명 지그문트의 흔적일 터였다.
장목화는 그의 말엔 신경 쓰지 않고, 피골이 상접한 시체의 오른 손목을 살폈다. 역시,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팔찌는 사라져 있었다.
살짝 한숨을 토해내던 장목화가 고개를 돌려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이 자의 몸을 한 번 수색해줘.”
이는 그녀도, 성건우도 할 수 없지만 게네바는 가능했다. 이론상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을 일이었다.
이내 아무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간 게네바는 오랜 세월 비쩍 마른 시체를 향해 금속광이 번득이는 은흑색 손바닥을 뻗었다.
게네바가 염호 쪽으로 손을 뻗을 때, 장목화는 최고 수준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왼팔 안의 보조칩을 동원했다. 염호의 미약한 전기 신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무슨 변화라도 보일라치면 바로 게네바를 멈춰주기 위해서였다.
게네바 옆에 선 성건우도 언제라도 그를 밀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게네바의 손가락이 염호의 바짝 마른 피부에 닿았다.
그 찰나의 순간, 장목화가 감지하고 있던 생물의 전기 신호가 미약한 변화를 보였다. 무언가 허공에서 자라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막 게네바에게 손을 거두라고 하려던 그때였다. 변화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게 거짓말같이 원래의 적막을 되찾았다.
‘목표가 인간이 아니라 지능 로봇이라서 변이가 진행될 수 없었던 건가? 라텍스 장갑도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장목화는 벌어진 입을 다물고, 계속해서 관찰했다.
이때, 성건우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영웅이 미인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역시 염호의 남은 의식이 보인 순간적인 불안정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미인? 내 메인 모듈에 설정된 성별은 남성인데?”
게네바는 신령의 몸을 검사하며, 성건우의 말을 정정했다.
성건우는 또 바로 정색한 채 대꾸했다.
“미인이라는 단어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아. 순수한 사람이든, 변이인이든, 지능인이든 모두 미인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그가 말한 변이인은 아류인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심지어는 자동차에도 쓸 수 있…….”
무의식적으로 호응하던 장목화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진지한 순간에 내가 저 허튼소리에 장단을 치고 있다니!’
게네바는 성건우의 말이 마음에 든 듯, 다시 작업에 전념했다.
솔직히 말해, 장목화의 입장에선 염호의 저 비쩍 마른 몸과 툭 불거진 뼈, 해골과 다를 바 없는 머리는 진짜 시체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꼭 악몽 속에 등장할 것만 같았다.
만약 그녀가 이 끔찍한 신의 몸을 탐색해야 한다면, 수십 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터였다.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도 역겨움을 떨칠 수 없겠지.’
하지만 게네바는 그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 관 안에 놓인 존재를 그저 0과 1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사물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자세한 조사 끝에 게네바가 결론을 내렸다.
“목표에게 남아 있는 건 누렇게 바랜 속옷과 하얀 삼베옷뿐이다. 그 외에 다른 건 없어. 단서가 될 만한 것도 존재하지 않고.”
장목화는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그 사이 성건우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치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 옷과 속옷이 신기한 물건인지도 몰라요. 전에 염호가 착용하고 있던 월계관이나 팔찌처럼요.”
장목화는 입꼬리를 뒤틀며 진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엔 아닐 것 같아. 이것들 위치가 전부 명확하잖아. 만약 신령의 복도 안에서 얻은 것이거나 염호 자신이 직접 응집한 물건이었다면, 성 지그문트는 이것들까지 전부 다 가져갔을 거야.”
성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 그 이유를 알죠. 저 역시 이것들을 가져갈 생각은 없거든요.”
“이유가 뭔데?”
장목화는 왠지 그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성건우는 역시 언제나처럼 진지하게 답했다.
“무례하잖아요. 변태 같고.”
“…….”
장목화는 미련도 없이 게네바에게 시선을 옮겼다.
“몸 아래쪽도 한 번 더 살펴줘. 혹시 뭔가를 깔고 누워있지는 않은지.”
게네바는 다시 은흑색 금속 손으로 염호의 몸과 관 바닥 사이를 훑었다. 한 차례 탐색을 마치고, 그가 다시 금속으로 만들어진 머리를 가로저었다.
“없어.”
“없다라⋯⋯.”
장목화는 예상했던 답을 들었음에도,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했다.
그때, 성건우가 말했다.
“그 신도들은 별로 신실하지 않았나 봐요. 자신들이 믿던 신에게 깔개 하나 안 깔아주고. 이렇게 딱딱한 관 바닥에 누워있으려면 엄청 힘들 텐데.”
“이게 이곳 풍습, 아니면 종교적인 습관인지도 모르지.”
게네바도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해보며 대꾸했다.
순간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장목화의 눈이 돌연 밝아졌다.
“염호는 스스로 잠들 것을 예상하고 자발적으로 이 관에 누웠을까, 아니면 잠든 후 신도들에게 발견돼 이 관 안에 눕혀진 걸까?”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당시 상황은 재현할 수 없어. 가설법에 따라 분석하는 것을 추천한다.”
게네바가 솔직하게 답했다.
이어, 성건우는 웃으며 말했다.
“스스로 누운 건 아닐 거에요. 만약 저라면 긴 잠에 빠지게 될 걸 알았을 때 푹신한 깔개부터 준비했을걸요. 안 그럼 내내 불편하잖아요.”
장목화는 딱 잘라 말하는 대신 여지를 남겼다.
“그래, 이론상으론 그렇지. 염호는 분명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어. 이건 그 이후로 수십 년이 흐른 뒤 어인의 신사가 여기로 와서 월계관을 가지고 간 이유이기도 할 거야.
음, 어쩌면 당시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고 긴박해서 염호에게 다른 준비를 할 여유가 없었는지도 몰라.
일단 신도들이 염호를 이 관에 넣었을 가능성부터 분석해보자. 그들은 염라전의 종교적 습관, 혹은 염호가 평소 했던 말들을 엮어 갖춘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했을 거야.
여기에는 이것저것 생각할 부분이 많지만, 우선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자. 그보다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존재하니까. 바로 그들이 어디서 염호를 이 관에 안치했느냐는 거야.”
게네바는 곧장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추론했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 염호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장소, 둘째, 그의 방. 잠들어 있는데 저도 모르게 곤경에 빠지게 됐을 수 있으니까.”
“맞아, 염호는 침상에 누워 심령의 복도로 들어가 탐색하고 신세계 대문을 찾다가, 뭔가 수확을 얻으면서 문제에 봉착하게 됐을 가능성이 커.”
장목화는 각성자 성건우가 평소 보인 모습과 염호가 손톱으로 남긴 말에 근거해 추측했다. 염호는 관 안에 약간의 혈흔이 어린 손톱자국으로 ‘새로운 세계’라는 글자를 남겨두었었다.
성건우가 또 문제를 기이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 전, 장목화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염호의 방은 어딨을까? 평소에 깔개도 없이 누워있기 불편한 이 관을 침대로 썼을 리는 없잖아. 아무리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삶을 싫어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필요는 없어. 딱히 취향이 이렇다거나 이러한 대가를 치른 게 아니라면 말이야.”
성건우도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이며 동조했다. 고행자도 아닌 각성자가 본인 몸을 일부러 고통스럽게 할 필요는 없었다.
게네바는 과거의 비슷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결론을 내놓았다.
“종교적인 각도에서 보면 염호는 현존하는 신령이니 거처는 이 신전일 수밖에 없어. 아니면 그가 거주했던 곳의 일부가 신전으로 변한 거겠지.”
장목화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근데 지난번에 찾아봤을 때 여기 사람이 살만한 곳은 없었⋯⋯.”
순간 그녀가 홱, 돌아서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와 동시에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살피지 못한 곳이 한 군데 있긴 하죠.”
그가 가리킨 곳은 염호의 관이었다.
조금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 관 아래의 석판으로 깔린 바닥이었다.
약간의 분석 끝에 두 사람의 말뜻을 이해한 게네바는 곧장 상응하는 검사 모듈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몇 초 후, 그가 관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래쪽에 큰 구멍이 있다. 일차적인 분석 결과론 작은 방이야.”
우아한 중 가면에 가려진 장목화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여태까지는 그저 대담한 가설에 불과했지만, 드디어 증거가 생겼다.
“이 관 좀 옮겨줄래? 조심해. 내가 언제든 멈추라고 외칠 수도 있어.”
장목화가 게네바를 위해 전처럼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보조칩을 사용하는 사이, 성건우도 바로 자세를 갖추고 미인을 구할 영웅을 기다렸다.
게네바는 두 손을 관의 가장자리에 얹고 힘을 조절하면서 천천히 밀었다.
그동안 염호의 생물 전기 신호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