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93화 (293/649)

293화. 의심스러운 태도

또 갑작스러운 노래 맞히기 시간이 열렸지만, 장목화도 이젠 자신의 역할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곧 차분하게 정답을 풀이했다.

“내통자를 찾으려고.”

용여홍도 바보가 아니었다.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그는 금세 긴장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정말로 지하 방주와 맞서시려고요?”

‘팀장님, 우린 겨우 네 명이었다가 이제 한 명 더 늘었어요. 겨우 다섯 명이서 어떻게 무장한 행동 대대도 못 할 일을 한다는 거죠? 너무 대책 없는 거 아닌가요? 팀장님, 전 줄곧 팀장님이 굉장히 신중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용여홍은 속으로만 못다 한 말을 고래고래 내질렀다.

장목화 역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다가 연한 웃음을 지었다.

“건우랑 게네바가 실행 가능한 방안을 하나 마련했어. 그래서 나도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어. 걱정하지 마. 한 단계씩 꼭 신중하게 진행할게.

중간에 한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바로 중단할 거야. 음, 사흘 안에 성공하지 못해도 마찬가지고. 우린 아직 머신 헤븐의 추격을 받고 있잖아. 레드스톤 마켓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를 수는 없어.”

뒷부분은 성건우와 게네바를 향한 말이었다.

또 잠시 뜸을 들이던 장목화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백새벽을 쳐다보았다.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너희 생각은 어때? 너희가 반대한다면 나도 다시 고려해볼게. 우리 팀 모두의 의견이 중요한 거잖아.”

장목화는 솔직히 백새벽과 용여홍이 이 작전에 반대해주기를, 그래서 이를 빌미로 성건우의 생각을 꺾을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겉으론 절대 이러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희망과 환희로 가득했던 그 청년들의 눈빛이 스친 순간,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백새벽은 아무 의견도 제시하고 싶지 않은 건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한동안 공백이 길어지던 그때, 백새벽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금 그녀는 전방의 길만 주시할 뿐, 덤덤한 얼굴이었다.

“합리적인 중단 조건을 세운다면 시도는 해봐도 될 것 같네요.”

‘언제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베테랑 황야유랑자답지 않은 답이네. 팀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선가?’

장목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순간 느껴지는 압력에 용여홍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전 팀장님의 판단을 믿어요.”

장목화는 어깨가 무겁게 짓눌리는 것을 느꼈다.

짝짝짝!

“찬성 4표, 기권 1표, 통과!”

갑자기 성건우가 손뼉을 치고 나왔다.

장목화도 맥이 풀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언제 찬성했어?”

성건우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으로 그러셨잖아요.”

이내 장목화는 왼쪽 눈썹을 추켜 올리면서도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 * *

아이언 마운틴, 지하 방주 출입구가 숨겨진 골짜기 동굴 근처.

구조팀은 오후 내내 이곳을 지키고 있었는데도, 출입구 밖으로 나오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용여홍은 잠시 고개를 들고 점점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과 눈을 맞췄다. 코끝으론 차가운 산바람이 묵직한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곧 날이 어두워지겠는데요. 이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것도 다행이었다.

그때, 성건우가 용여홍을 빤히 돌아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그 말을 하는구나.”

“……무슨 뜻이냐?”

딱히 말할 순 없는데, 용여홍은 순간 모욕을 당한 듯한 느낌에 발끈했다.

“저기.”

성건우가 턱짓으로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

용여홍은 그대로 얼이 빠진 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군복을 입은 두 사람이 불룩하게 부푼 포대 하나를 들고 입구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연이어 장목화가 용여홍을 위로하듯 말했다.

“아니야, 저 사람들 네가 말하기 전에 나왔어.”

“그렇죠⋯⋯.”

용여홍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두 사람의 속도면 지하 방주 출구에서 동굴 입구에 이르는 데까진 최소 2, 3분이 걸렸을 터였다. 성건우는 다른 사람들보다 이를 먼저 알아차릴 수 있으니, 용여홍이 말도 하기 전에 일찍이 이를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성건우는 장목화의 말을 부인하는 대신,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을 했다.

“그렇다면 네 말은 몇 분 전 일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거야? 이제는 막 과거까지 바꿀 수 있는 거야?”

“…….”

이 순간, 용여홍은 성건우의 말을 수시로 무시하던 장목화의 심경을 깊이, 아주 절절하게 이해했다.

곧이어 지하 방주 경비대원 둘이 시체를 묻을 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백새벽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포대에 든 시체, 한 구가 아니야.”

한 구였다면, 두 장정이 저렇게까지 힘들어할 리가 없었다.

장목화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짐작했던 터라 한 몇 초간 말이 없어졌다.

이내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가봐.”

성건우는 얼굴에 쓴 원숭이 가면을 꾹 누른 채, 높은 곳에서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곤 두 경비대원 앞에 정확하게 착지했다.

툭…….

놀란 경비대원은 조건반사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포대를 놓아버렸다. 포대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그들은 바로 총기를 꺼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순간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그들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긴장할 것 없어. 난 친구를 사귀려고 온 거니까.”

성건우가 손에 든 아이스모스를 빙빙 돌리며 웃었다.

막 달아나려 했던 두 경비대원은 그대로 얼음이 됐다.

상대의 손에서 회전하던 총은 별안간 움직임을 멈췄고, 시커먼 총구는 두 경비대원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두 경비대원은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상대는 한 명이고 가진 총도 한 자루니, 덤벼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계산이 섰다.

그러던 때, 위에서 갑자기 또 다른 이들이 훌쩍 뛰어내리고, 가진 무기들로 두 경비대원을 겨눴다.

가면을 쓴 얼굴들과 선글라스를 낀 금속 머리를 훑어보던 두 경비대원은 약속이나 한 듯 양손을 머리 뒤에 대고 천천히 꿇어앉았다.

사나이라면…… 숙여야 할 땐 최대한 비굴하게 숙일 줄 알아야 했다.

“이 안에 든 건 뭐지?”

장목화가 땅에 떨어진 포대를 바라보며 레드리버어로 물었다.

두 경비대원은 애쉬랜드인과 레드리버인이었지만 둘 다 혼혈의 특징이 있었다. 그중 눈썹이 짙고 눈이 큰, 네모난 얼굴의 경비대원이 먼저 답했다.

“죽은 사람 둘.”

“디마르코가 한 짓인가?”

장목화는 질문하는 동시에 용여홍, 백새벽에게 포대를 열라고 지시했다.

이번에는 레드리버인인 경비대원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곱슬머리인 남자는 통통한 뺨에 주근깨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맞아, 전부 디마르코 선생이 아니, 디마르코가 한 짓이야. 우리랑은 아무런 관계도 없어!”

곧이어 성건우가 앞으로 두 발짝 나섰다.

“디마르코는 왜 이 사람들을 죽인 거지?”

네모난 얼굴의 경비대원이 잠시 머뭇대다 입을 열었다.

“한 명은 여자 하인인데 애, 애인이 있었어.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인. 남자도 하인이었고. 근데 디마르코가 그 여자가 마음에 든다면서 방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거야. 여자는 당연히 완강하게 거부하다가…….

화가 난 디마르코가 그 자리에서 바, 바로 목을 졸랐어. 그러다가 여자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걸 알고, 혹시나 또 복수 당할 수 있다고 남자마저 끌고 와서 총으로 쏴 죽였어⋯⋯.”

방주에서 일하는 경비대원이 설명하는 동안, 용여홍과 백새벽은 시체가 든 포대를 열었다.

이제 모두의 앞에 시신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여자도, 남자도 참 앳돼 보였다. 많이 잡아봐도 20살이 채 안 됐을 것 같았다. 그 어린 여인의 얼굴은 거의 보랏빛에 가깝도록 퍼렇게 질려 있었다. 튀어나온 눈은 채 감지도 못했으며, 목 졸린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 옆에 두개골에 구멍이 난 남자의 표정도 딱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가슴에도 붉은 핏자국이 범벅이었다.

용여홍은 차마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장목화 역시 시신을 살피다 조용히 눈길을 거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눈짓을 했다.

성건우는 바로 경비대원들을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입이 뾰족하고 털이 부숭부숭 난 원숭이 가면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지?”

“여, 여천수.”

네모진 얼굴의 경비대원이 레드리버어로 답했다.

약간 통통한 얼굴에 주근깨가 난 경비대원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보드.”

고개를 끄덕이는 성건우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조금 더 깊어졌다.

“우리는 경계 교회당에서 왔어. 이제 지하 방주의 경비대원과 하인들에겐 복이 내릴 거야. 그러니까⋯⋯.”

멍한 표정을 드러내던 여천수와 보드는 곧 깨달음을 얻은 듯 기쁨과 두려움이 혼재된 목소리로 동시에 외쳤다.

“교파에서 디마르코를 처리하려는 거야? 우리 더 이상 그 잔혹한 사람을 견디지 않아도 돼?”

지하 방주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경계 교파의 신도였다. 다만 그다지 신실한 편은 아닌 데다 규칙 때문에 가면을 쓰는 습관이 들진 않았다.

디마르코와 그의 선조들은 곁에 있는 이들이 가면을 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주위에 있는 이들이 가면을 쓴다면 누군가 아무도 모르게 방주로 숨어들어 당당하게 주인의 방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다.

한편, 게네바는 경비대원들의 반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어떤 모듈로도 성건우가 한 말로 저들 같은 결론을 낼 순 없었다.

그러다 잠시 분석한 끝에 게네바는 이것이 목표의 인지를 직접 바꾸는 각성자 능력의 일종이리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입이 뾰족한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가 웃으며 답했다.

“맞아, 우린 너희를 구하러 왔어. 설마 평생을 디마르코 그늘 속에 살고 싶은 건 아니지? 결국 그 잔인성과 폭력성에 다들 끝이 좋지 못하잖아.”

“경비대원들이 죽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무의식에 대꾸하던 여천수가 알아서 말을 멈췄다. 가장 광기 어렸던 디마르코의 모습과 다불어, 그가 가장 잔혹한 모습을 보인 그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경비대원들은 매일 전전긍긍하며 살았고, 사람들은 아주 작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잃곤 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너희들을 뒷받침 해줄게. 디마르코의 반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성건우는 그럴듯한 말로 추리 광대의 효과를 강화했다.

“교, 교파가 지지해준다면 우, 우리도 두려울 건 없지.”

보드가 몸을 살짝 떨며 말했다.

이후, 우아한 중 가면을 쓴 장목화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어.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아주 간단해. 그렇게 위험한 일도 아니야. 만약 우리가 실패한다면 급소를 피해 너희한테 총 몇 방 쏠게. 그러면 그 후의 조사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이긴다면 방주의 새로운 주인을 찾을 생각이야. 하하, 우리 중 누구도 여기 오래 머물면서 갖가지 번잡스러운 일을 처리할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그녀는 경계 교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에이돌른이 자신과 함께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야기를 듣던 여천수는 보드를 보며 이를 악물다가 한숨을 토해냈다.

“우리가 뭘 하면 되는데?”

“일단은 방주 내부의 대략적인 상황을 우리한테 좀 알려줘. 감시 체계랑 격리 체계 위주로.”

장목화가 세워둔 방안에 따라 질문했다.

그녀의 질문에, 보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감시를 담당하는 경비대원이 아니라 아는 게 많이 없어⋯⋯.”

그러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상세히 설명했다.

감시를 담당하는 경비대원은 각 경비대 안에서 발탁된 이들로, 교대근무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 밖으로 나와 시체를 처리하는 일도, 각 출입구와 통풍구를 지키는 작업도 배정받지 않았다.

또 디마르코의 방엔 소형 감시실이 있고, 그는 할 일이 없을 때마다 감시 화면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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