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91화 (291/649)

291화. 방안 (1)

지하 시장을 나온 구조팀은 차를 타고 호숫가로 향한 끝에 앙헤바스가 주로 머무는 별장에 이르렀다.

백새벽은 근처 지하 주차장 밖에 도착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동시에 입구로 시선을 돌린 장목화는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안에 아무도 없네⋯⋯.”

“그러네요.”

“맞아.”

성건우와 게네바가 동시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장목화는 이내 게네바를 돌아보았다.

“혹시 지뢰 탐지기 있어?”

“응, 있다. 검사하길 바라는 건가?”

게네바가 밖을 가리켰다.

“그럼.”

장목화가 웃었다.

게네바가 하차하고, 그를 눈으로 좇던 성건우가 돌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지뢰 찾기 게임이 다운로드 되어 있다는 줄 알았는데.”

성건우는 그에 관해 상당한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잠시 생각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그럼 콘텐츠 모듈에 결합 돼 있었겠지. 아니, 게네바 같은 지능인이 지뢰 찾기를 뭐 하러 해? 우리보다 계산 능력도 훨씬 좋은데.”

한담을 나누는 사이 게네바는 지하 주차장 입구에 지뢰도, 폭약도 설치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은 매우 안전했다.

장목화는 그제야 백새벽에게 지프를 지하 주차장으로 몰라고 지시했다.

이후, 상세한 검사를 진행한 끝에 구조팀은 비교적 최근까지 있었던 사람들의 생활 흔적을 발견했다.

“언제 떠난 거지? 오늘 아침? 아니면 어젯밤?”

장목화는 앙헤바스와 수하들이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이곳에 있었으리라 의심하고 있었다.

고민하던 백새벽이 말을 받았다.

“우리가 레드스톤 마켓에 다시 돌아왔다는 정보를 듣고 밤을 타서 떠난 건지도 몰라요.”

장목화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무 반응이 과한 거 아냐? 우리가 무슨 짓을 할 것도 아니었잖아?”

물론 장목화도 백새벽의 추측에 무게를 실었다. 솔직히 앙헤바스의 반응은 좀 과하긴 해도 에이돌른의 신도라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앙헤바스는 구조팀과 직접 붙어본 상대가 아니던가.

* * *

여관 구역.

구조팀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때였다.

조금 전 레드스톤 마켓 마을 경비대원에게 앙헤바스가 어젯밤 심복 일부를 데리고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연합 공업과의 거래를 위해서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장목화는 앙헤바스가 정말로 자신들이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 달아난 것임을 확신했다.

“우리가 그렇게 무서운가?”

당시 차 안에서 장목화가 조용히 물었지만, 그녀의 물음에 답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제 방에서 회사에 전보를 보내고 앞으로의 일정을 알린 장목화는 다시 밖으로 나와 문밖에 서 있는 성건우를 발견했다.

성건우는 여관 구역 한쪽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장목화가 약간의 경계심을 안고 물었다.

이내 성건우가 눈길을 그대로 고정한 채 혼잣말을 하듯 답했다.

“추리 광대를 이용해 저 하인들 틈바구니에 섞여들어, 같이 지하 방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 있었어요.”

장목화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럴 가능성은 없어. 저 하인들은 한동안 경계 교회당 지하 1층에서 훈련을 받을 거야. 그리고 합격한 사람만 지하 방주로 들어가겠지. 네가 위장해봤자 감시를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디마르코와 집사들이 너를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성건우가 막 무슨 답을 하려는데, 게네바가 가까이 다가왔다.

“너희, 지하 방주에 잠입하려는 거냐?”

“얘만. 난 아냐.”

장목화가 다시 깔끔하게 선을 그었다.

게네바는 곧 레드스톤 마켓에서 산 선글라스를 한 손으로 벗으며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지하 방주의 시스템 개조를 담당한 건 우리 머신 헤븐이었다.”

‘맞아!’

장목화가 본능적으로 반문했다.

“관련된 자료는 다 폐기된 거 아니었어? 비 지능형 공사 로봇만 들여보내진 거 아니었어?”

성건우도 잔뜩 흥분해 물었다.

“혹시 너희 중 누군가 몰래 자료를 복사했거나 치명적인 허점을 남겼나?”

게네바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우리한텐 직업윤리가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엔, 데이터 네트워크만 존재한다면 침입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방법이 있는 거야?”

성건우가 물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나 혼자만으론 불가능하다. 내부 협조자가 필요하다. 협조자가 대략적인 시스템 구조를 알려주면 난 대응하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메모리스틱에 저장할 거다. 그럼 협조자는 그걸 가지고 들어가 데이터 네트워크의 노드에 삽입하는 거지.”

게네바의 말투는 변함이 없었다.

장목화는 그 말을 이해는 했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런 방식의 전쟁은 경험한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일찍이 보조 칩을 통해 사냥꾼 배지를 해킹하기도 했고, 기계 승려 정법의 내부 시스템에 침입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데이터 네트워크에 의지한 침입으로 한 세력의 대문을 여는 일은 구세계의 책으로나 접한 것이었다.

애쉬랜드 위 지역 대부분엔 컴퓨터도 없었고, 시스템도, 인터넷도 없었다. 이러한 일을 가능케 할 바탕 자체가 없는 셈이었다.

경험이 없으니, 책으로 접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성건우와 장목화가 계속 자신을 응시하기만 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게네바가 다시금 덧붙였다.

“바이러스를 만드는 건 지능인에게 아주 간단한 일이다. 참고할만한 서식이 차고 넘치지.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도움을 제공할 내부인을 찾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공학이 필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성건우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나한테 맡겨.”

미소 지으며 약속하는 성건우를 보고, 게네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한 그 각성자 능력을 사용하려고?”

“맞아.”

성건우가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다시 또 후회했다. 애초에 이 화제를 꺼내선 안 됐다. 하지만 피하기만 해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니, 그녀는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렸다.

“그 방안, 확실히 실행 가능성이 있긴 해. 지하 방주의 외부 방어 체계만 돌파해 안으로 잠입할 수 있다면, 문제는 훨씬 간단해질 거야.

우린 지하 방주의 조직 구조가 아주 간단하다는 걸 확실히 알잖아. 핵심 위치를 차지한 주인 디마르코는 집사 여럿과 여러 명의 경비대장을 통해 경비원들과 하인들을 따로 대우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어. 디마르코의 통치는 상당히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

우린 선진화된 무기를 가진 대량의 적들과 셀 수도 없는 각성자에 대적해야 하지만, 사실 이러한 조직 구조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어. 우리가 그 약점을 움켜쥐기만 하면 최소한의 대가와 최단 시간으로 그 보루를 와해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장목화는 이렇게 자신 역시도 참여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로 나왔다. 앞으로의 발전에 대해 논의하면서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성건우는 장목화의 태도가 바뀐 것에 대해선 어떠한 의혹도 품지 않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

“그 치명적인 약점이란? 바로 디마르코죠.”

이 말을 듣고 게네바는 자동으로 구세계 특정 사례들을 찾아보다가 장목화의 생각을 파악했다.

“참수 작전?”

그는 직접 소리 내어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를 확인 받기도 했다.

이러한 토론으로 인해, 게네바는 정말로 진짜 인간이 되어 동료들과 함께 지혜의 불꽃을 튀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 아무 기척도 없이 지하 방주 진입에 성공한다면 우린 곧장 디마르코의 거처를 습격해,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디마르코 곁에 있는 방어 역량을 격파하고 디마르코를 통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때가 되면 재차 우리 목적을 밝히며, 지하 방주의 권력 교체나 재물의 귀속에 관해선 관심 없다고 말할 거야. 그곳 경비대와 하인들이 함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방주를 만들고, 그것에 상응하는 사업 루트를 넘겨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하는 거지.

그럼 디마르코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행태를 봐왔던 그 사람들은 전부 우리 쪽으로 넘어올걸? 물론 소수의 충신이나, 디마르코랑 단단히 묶인 극단 분자, 그 수많은 하인을 죽인 디마르코 본인을 제외하고는.

게다가 방주 안에선 지형적인 제약 때문에 중무기를 많이 사용할 수가 없어. 서로 간에 거리를 벌리기도 어렵고. 그러니까 건우의 양손 동작 불능 능력이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인 거지.”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실행 가능성이 아주 높은 방안이네요.”

장목화는 그를 홱 째려보다,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여기도 치명적인 허점이 하나 있어. 바로 디마르코한테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별 탈이 없다면, 우리 팀은 짧은 시간 안에 디마르코 거처 주위의 방어력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야. 기껏해야 군용 외골격 장치 두세 개, 각성자 한두 명 정도려나? 그리고 일반 경비대원은 일고여덟쯤 될 테니까, 우리 능력이면 충분해.

근데 정작 디마르코 그 사람은? 애초에 디마르코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감히 방 안에서 우리랑 독대한 걸까?”

장목화는 지난번 디마르코와의 만남에 기반해 추측하고 있었다.

당시 안전 구역에서 나온 디마르코는 외부인을 만나야 하는 상황에, 신형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두 명과 일반 경비대원 여섯 명을 거느리고 나왔다.

그렇다면 평소 지하 방주 깊은 곳에 머물 때의 방어력은 그보다 적으면 적었지, 더하진 않을 터였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라 피곤을 느끼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꼭 교대해야 했다. 무엇보다 안전 구역이 외부인을 만나는 곳보다 위험할 리도 없었다.

동시에 장목화는 지하 방주 내부에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이른 각성자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각성자의 힘은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서, 디마르코 주위의 경비대원으로는 대적이 불가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각성자가 있다면, 디마르코를 윗사람으로 모시느니 차라리 지하 방주의 새로운 주인이 되려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적어도 지금까지 봤을 때 경계 교파는 누가 지하 방주를 통치하든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저 방주의 주인이 에이돌른을 믿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성건우와 게네바가 아무 말이 없자, 장목화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만약 디마르코 본인도 강자라면? 변이된 아류인이거나 어느 정도의 급에 이른 각성자라면? 자, 아주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볼게. 디마르코의 실력은 염호와 쌍벽을 이룰 정도일 수도 있어. 그가 염호의 현재 상태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건, 앞으로의 길과 신세계의 대문을 찾고 싶어서인 거야.”

그렇다면 구조팀의 참수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디마르코와 직접 만나기도 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의 기이한 모습을 듣기도 했던 장목화는 그때부터 상대에 대한 각종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그 추측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성건우에게 최대한 경각심과 충격을 안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성건우는 장목화를 마주 보며 웃었다.

“여태까지 봤을 때 아류인의 변이로 생겨난 능력 중 심령의 복도에 이른 각성자에 비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 일단 그 디마르코가 심령의 복도 깊은 곳에 이른 강자라고 해도, 우리한텐 각성자의 천적이 있잖아요?”

성건우가 환하게 웃으며 게네바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입꼬리가 조금 더 둥근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디마르코의 능력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면, 게네바에겐 손도 대지 못할 거예요. 그래도 불안하다면, 호수의 섬에 한 번 더 다녀오시죠. 염호는 게네바의 심령 세계를 통해도 되돌아오진 못할 거예요. 게네바한텐 애초에 심령 세계라는 게 없으니까요. 즉, 우리는 그 가지 팔찌를 가져올 수도 있어요. 그게 아직 거기 있다면 말이죠.”

장목화는 환하게 웃는 성건우를 보며 딱 한 생각만 떠올랐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우는 위험할 정도로 약간 미친 성건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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