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혼란에 빠진 로봇
‘없다고? 머신 헤븐 본부에 인간이 없어?’
용여홍은 하마터면 눈이 다 튀어나올 뻔했다. 직접 분명하게 들은 말인데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오로지 소스 브레인과 지능 로봇으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더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로봇뿐인 도시에 인간화 정도란 기준을 갖다 대며, 로봇들이 인간을 더 잘 모시고, 절대 인간을 해치지 않으면서 더욱 인간다워지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결국엔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로봇 대부분은 공장을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과 접촉할 일이 없었다. 어떻게 보자면 인간은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단어, 코드, 사진, 혹은 상징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한참 생각한 끝에,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쩐지 소스 브레인이 우리를 본부로 오지 못하도록 한데는 이유가 있었네. 이유가 있으니 오직 전화 통화만 허락한 거야.”
그녀는 사실 이전부터 머신 헤븐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었다.
그때, 게네바가 이야기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중요한 실험 설비와 지능 로봇 사회 건립 시도 등등. 구체적인 건 기밀 사항이라 이야기할 수 없지만.”
‘넌 아직도 스스로를 머신 헤븐의 일원이라고 여기는구나.’
그래도 장목화는 게네바에게 이미 도망자가 되었으니 더 이상 비밀 유지 조항 같은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혹시 또 지능 로봇이 비밀을 유출할 시 바로 활성화되는 자기 파괴 프로그램이 깔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네바 역시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가진 않았다. 용여홍도, 백새벽도 머신 헤븐의 현실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났을 때쯤, 자연스레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너희들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거냐? 머리도 뛰어나고, 군용 외골격 장치까지 가지고 있잖아?”
심지어 이 팀의 일원인 장목화는 일대일 근거리 전투에서 지능 로봇 한 대를 쓰러뜨리기까지 한 바 있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 동료들과 시선을 주고받던 장목화가 솔직하게 말했다.
“우린 반고 바이오에서 왔어. 어때, 우리 회사에 들어올 생각 있어?”
아직 회사에 보고를 올리지 않은 만큼 반고 바이오에서 지능 로봇의 가입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장목화는 그래도 예의 바르게 제안했다.
“반고 바이오라⋯⋯.”
게네바는 몇 초간 회사 이름을 반복하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지금으로서는 창조자의 후손을 찾고 싶을 뿐이다. 그가 우리 지능인에게 무언가 남긴 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알겠어.”
“이해해.”
성건우도, 장목화도 게네바에게 답을 강요하진 않았다.
솔직히 장목화는 회사에 게네바의 일을 보고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게네바의 미래에 대한 계획에도 관여하지 못하고 단순 도움만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면 구조팀은 매우 강력한 외부 구성원을 하나 더 얻는 셈이었다. 그럼 수많은 일이 놀랍도록 간단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게네바 같은 지능 로봇은 반고 바이오에 가입해도 얻는 이득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게네바는 무심병에 걸릴 리도 없고, 전염병의 영향을 받을 리도 없었으며, 감염이나 기아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또한 변이된 생물이나 각종 야생 동물의 습격도 받지 않았다.
필요한 건 오직 에너지와 부품, 윤활유, 모듈의 교체, 무기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등등의 것뿐이었다.
특히 게네바가 반고 바이오에 가입한다면 그가 지낼 거주층도, 속할 부서도 일반 직원들과 전혀 다를 것이었다.
그러다 은흑색 로봇이 도시락통을 들고 식당 창구 앞으로 가, ‘이모, 퓨쳐인텔리산 U-32 고성능 배터리 하나랑 커피 향 입힌 윤활유 한 잔이요.’라고 말하는 것까지 상상해버린 장목화는 순간 웃음을 겨우 참았다.
‘지능 로봇이 사투리까지 할 줄 알면 더 완벽해지겠지?’
계속 뻗어가는 생각에 얼른 정신을 차린 장목화가 잠시 머뭇대다 말했다.
“우린 이번에 회사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퍼스트 시티로 갈 거야. 어딘가에서 우리가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릴래? 아니면 혼자 움직일래?”
성건우도 진심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원래 사람과 그릇은 많을수록 좋다고 했어.”
게네바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기다리지. 그래, 에너지를 충전할 곳이 필요해.”
진정한 강철 남자에게 방전은 곧 마비를 뜻했다.
‘사람’이란 말에 마음이 움직인 건지, 아니면 홀로 행동하는 건 좀 위험하다고 판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게네바는 구조팀을 기다리는 걸 택했다.
그 말에 장목화가 미리 생각해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럼 위드 시티에서 기다리면 되겠다. 근데 위장을 좀 해야 할 거야. 뭐, 빨간 필터를 더해 외형을 바꾸고, 조금 더 평범한 로봇처럼 보이게 한다든가. 너도 알겠지만 위드 시티랑 너희 머신 헤븐은 합작 관계잖아. 만약 지능 로봇이 출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소스 브레인에게 알릴 게 분명해.”
게네바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웃으며 덧붙였다.
“우리도 밖을 나설 때는 종종 위장하거든? 봐봐⋯⋯.”
운전 중인 까닭에 인간과 반드시 일치된 반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게네바는 머리 뒤쪽에 달린 보조 의안을 개방해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성건우는 어느새 입이 뾰족한 원숭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렇군.”
게네바가 그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다시 가면을 벗은 성건우가 우려를 표했다.
“근데 위드 시티에 도착하면, 거리를 걸을 때 다른 사람이 접근할 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해. 혼자 움직이는 로봇은 아주 유혹적인 존재니까. 그대로 잡아서 집에 데려가고 싶어 하는 유적 사냥꾼이 얼마나 많은데.”
그 순간 장목화의 얼굴이 약간 굳었다.
‘아이 씨, 쟤한테 구세계 드라마를 보여주는 게 아니었어!’
용여홍의 입꼬리도 경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곁눈에 들어온 백새벽 역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있었다.
‘뭐? 고개를 끄덕여? 또 뭐야, 얘는!’
그 사이 겨우 정신을 차린 장목화가 성건우의 말을 억지로 끊었다.
“인간 중에도 못된 인간들이 많잖아. 당연히 조심해야지. 맹목적으로 아무나 덥석덥석 믿어선 안 돼.”
성건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인간과 어울려 본 경험이 아주 많다.”
게네바는 자기도 그런 것 정도는 안다는 듯 대꾸했다.
‘그래?’
용여홍의 시선이 게네바와 장목화, 성건우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장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너희 머신 헤븐엔 반고 바이오가 어떻게 기록돼 있어?”
그녀는 판에 박혀 융통성도 없는 지능 로봇 세력이 자신들의 회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건 용여홍도 마찬가지였다.
용여홍은 답을 기다리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전에 물을 길 땐 주위 경계를 담당한 까닭에 조금도 목을 축이지 못해 약간 목이 말랐다.
곧이어 게네바가 파란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다 답했다.
“구세계가 남긴 비밀 기구이자 무심병의 근원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기록돼 있다.”
“……풉!”
용여홍은 마시던 물을 그대로 뿜었다. 그가 내뿜은 물은 팔걸이를 넘어 콘솔 박스에까지 다 튀어버렸다.
“켁, 켁, 미안, 미안해요. 사레들렸어요.”
겨우 숨을 돌린 그가 황급히 변명했다.
하지만 게네바는 이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무심병은 생물 측면의 퇴화에 속하고, 너희는 생물 기술에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세력이다. 게다가 아주 비밀스럽기도 하지. 너희들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아, 그래서 그런 거였어? 난 너희에게 무슨 증거라도 있는 줄 알았지.’
용여홍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또 다른 문제에 집중했다. 소스 브레인 역시 반고 바이오가 어느 연구원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우리 회사 내부에서도 종종 무심병이 발발하곤 해. 게다가 그 병에 걸린 사람 중에 치유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장목화가 간단히 설명한 뒤 한숨을 내뱉었다.
“치랄 산 구역에서 나가면 레드스톤 마켓으로 가자.”
사실 이렇게 빨리 레드스톤 마켓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아류인들과 주민들 사이의 유혈 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상황에 성건우의 목적을 달성하긴 기본적으로 불가했다.
적어도 세월이 그들의 갈등을 어느 정도 잠재우고, 경계 교회당에 새로운 주교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 구조팀은 에너지 위기를 당면한 상태였다. 태양열 충전기는 하나뿐인데, 지프와 군용 외골격 장치, 그리고 게네바까지 모두 고성능 배터리를 필요로 했다.
지프 배터리는 총 두 개, 군용 외골격 장치도 그랬고, 게네바에게 들어가는 배터리는 무려 열 개였다. 태양열 충전기만으론 그 모든 걸 충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목화는 일단 고성능 배터리를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하고,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곳에선 가지고 있는 모든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가능한 오랜 시간을 버틸 작정이었다.
레드스톤 마켓은 주요 밀수품 거래처였다. 서쪽으로 퓨처인텔리와 통하고 있는 그곳에서 고성능 배터리를 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또한 지금 구조팀이 자리한 이곳과 거리도 적당했다. 이건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 * *
레드스톤 마켓으로 향하는 길은 타르난으로 갈 때 따랐던 길과는 전혀 달랐다. 게네바가 로봇 경비대의 추격을 피하려 서북쪽으로부터 치랄 산을 빠져나와 크게 우회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은 적잖게 소요됐지만, 이렇게 우회함으로써 꽤 안전해질 수 있었다.
이동하는 도중 게네바의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구조팀 네 사람은 그와 교대로 운전을 했다.
그리고 밝은 햇볕이 내리쬐는 오전, 지프는 작은 개울 옆에 정차했다.
구조팀이 물을 긷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 각자 맡은 일에 열중해 있는 동안, 할 일이 없는 게네바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차 앞쪽에 서서 태양열 충전기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혼란스러워?”
이때 게네바의 귓가에 성건우의 목소리가 닿았다.
하지만 게네바는 침묵한 채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파란색 린넨 바지를 입은 성건우가 지프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렇게 굳건하지는 않은 것 같네.”
성건우는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다시 침묵하는가 싶던 게네바가 물끄러미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게 보이나?”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은 성건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찍었어.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날 못 믿겠다면 우리 동료들도 있고.”
성건우가 막 물을 긷고 점심을 다 먹고 돌아온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여전히 태양열 충전기만 보고 있던 게네바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사실 난 더 이상 지능인이 인간과 같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않아. 너희도 봤겠지. 율법청의 로봇들은 프로그램을 살짝 건드리고 데이터를 은폐해, 수산나와 루이더스에게서 나를 완전히 지웠어. 난 이제 그들에게 그저 낯설기만 한 존재가 된 거야. 그 순간, 우리 딸도, 아내도 인간이 아니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데이터 조합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더라고.”
성건우가 웃었다.
“인간도 그래. 봐봐⋯⋯.”
동시에 그의 시선이 막 가까워진 용여홍에게 향했다.
용여홍은 거의 반사적으로 살짝 뒷걸음질 치며 경계했다.
“뭐야?”
성건우는 다시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됐다, 됐어. 너무 모욕적이야.”
뒤이어 게네바에게로 시선을 돌린 그가 자세히 설명했다.
“난 각성자야. 그 비슷한 상황을 인간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지. 하, 강도를 한 명 만나면 좋은데. 그럼 오전엔 친구가 됐다가 오후엔 내 아들로 만들었다가, 다음 날엔 완전히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