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84화 (284/649)

284화. 밤길 (1)

타르난의 다른 지능 로봇에게는 통하지 않을 허세겠지만, 오늘 막 도착한 율법 로봇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율법 로봇은 게네바의 인간화 정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타르난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을 터였다.

물론 장목화도 이를 100퍼센트 확신은 못 하니 성건우에게 상황을 봐가면서 다음 작전을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만약 마주한 율법 로봇이 두 사람이 동료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곧장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야 했다.

어쨌든 이 계획의 목적은 선량한 제삼자 성건우가 목표를 망설이게 하는 방패가 되어, 장목화에게 로봇을 처리할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과연 저 바닥의 율법 로봇이 정신을 차린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비열한 인간’이라 욕을 하려나?

한편,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전투도 상당히 격해진 상태였다. 게네바와 율법 로봇은 각종 레슬링 기술을 쓰며, 각자 다른 무기로 상대의 약점을 노리려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쿵-

탕!

거친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들이 입고 있는 제복은 벌써 다 찢겨나갔고, 골격 표면엔 홈이 팼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로봇은 성능이 높은 무기의 사용은 피했다. 이러한 거리에서, 또 이만한 적을 마주한 상황에 그런 무기를 쓴다면 그 여파에 자신까지 휩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물론 좋은 기회가 온다면 놓치진 않을 생각이라, 두 로봇 모두 상대가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하도록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초가 지났을 무렵, 장기적으로 외부에서 여러 전투를 치렀던 게네바가 마침내 우위를 차지하고 적의 전원 공급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도와주던 용여홍의 공도 꽤 컸다.

그대로 쓰러진 율법 로봇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한창 분위기를 살피던 수산나는 바깥쪽으로 유탄 한 발을 발사하며 로봇 경비대에 이 상황을 알리고, 2층으로 물러났다.

쾅!

게네바는 요란한 굉음이 울려도 수산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그녀를 저지하지는 않았다.

“가자!”

장목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팀장의 외침에 용여홍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게네바에게 말했다.

“따라와.”

용여홍은 그대로 홱, 돌아서 깨진 유리창으로 몸을 날렸다.

게네바는 바닥에 쓰러진 율법 로봇들을 바라보다 그 뒤를 따랐다.

동시에 장목화와 성건우는 왔던 길을 따라 푸른 잔디밭을 미친 듯이 달려, 멀지 않은 곳에 세워둔 지프로 향했다.

지프는 문을 활짝 연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목화,와 성건우도 벌써 지프 근처에 이르러, 땅을 박차고 각각 조수석과 뒷좌석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백새벽이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아 지프의 속도를 높였다.

금세 넓은 도로에 이른 차는 살짝 우회해 용여홍, 게네바와도 합류했다.

용여홍과 게네바는 이미 다기능 감시카메라를 헷갈리게 해둔 뒤, 성건우가 열어준 문을 통해 지프에 올랐다.

지프는 여전히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은 상태였다.

쾅!

차 문이 시원하게 닫혔다.

* * *

백새벽은 예정된 계획에 따라, 지프를 강 서쪽으로 몰았다.

강 서쪽은 로봇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또 이 길은 구조팀이 타르난에 진입했을 당시에 따랐던 길이기도 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진행 방향은 정반대였다.

애애애애앵-

수십 초 정도 달렸을 무렵, 경보음이 온 타르난 시내를 뒤흔들었다.

뒤이어 길가의 다기능 감시 카메라가 말했다.

- 당장 차를 멈추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뒷일을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백새벽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브레이크는커녕 엑셀을 밟은 발에 더 힘을 주었다.

인공 엔진 소리와 함께 지프는 당장 하늘이라도 날아오를 기세였다.

“당장 차를 멈추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뒷일을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다기능 감시카메라는 연달아 두 번의 경고를 더 날렸다.

그러나 구조팀은 완전히 무시한 채 그치지 않고 질주했다.

다음 순간, 일부 감시 카메라는 총구를 쑥 내밀며 사격을 시작했다.

탕탕탕!

총구에서 튀어나온 총알들이 차 유리창을 때리거나, 고무 타이어를 때리고, 두꺼운 장갑에 박혔지만 개조된 지프에 유효한 타격은 하나도 없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과 사방으로 튀는 불꽃 속에,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은 지프는 강 서쪽으로부터, 타르난으로부터 저 멀리로 튀어 나갔다.

“신난다!”

성건우가 외쳤다.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앉은 게네바는 황당한 듯 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신난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모습이었다.

“곧 따라잡힐 거다.”

게네바가 가리키는 건 율법 로봇과 타르난의 로봇 경비대, 그에 상응하는 보조형 전투 로봇들이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한테 다 방법이 있어. 근데 그러기 위해선 네 지도가 필요해. 우리보단 네가 타르난 주변 지형을 더 잘 알 거 아니야.”

게네바를 위로한 장목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게네바가 답했다.

이후의 길은 그다지 평탄하진 않았지만 백새벽은 여전히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장목화는 연신 칭찬을 했다.

“우리 새벽이, 구세계 오프로드 경기에 나갔으면 챔피언 먹었겠는데?”

“아니에요.”

백새벽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오오.”

장목화도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그때, 용여홍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팀장님, 구세계에 오프로드 경기가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아세요?”

그러자 성건우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자는 사이에 몰래 이어폰 끼고 구세계 드라마만 보셨어.”

용여홍도 그제야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

“어? 뭐라고?”

장목화는 진짜 안 들리는지, 척인지 손으로 귀를 만지작거렸다.

게네바가 좌우를 둘러보다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긴장도 안 되냐?”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 있어?”

성건우가 가장 먼저 답한 뒤, 몸을 살짝 젖히고 양팔을 들어 올려 허공의 깨진 거울을 향해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

게네바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저 운전 중인 전하얀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믿어도 되는 걸까? 역시, 수장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믿음직하게 운전 실력도 월등하고.’

졸지에 문제 많은 팀원으로 전락한 장목화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긴장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수 있도록 일정 정도의 긴장감만 유지해도 충분해.”

“그렇지.”

게네바는 분석을 거친 끝에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곧이어 성건우는 뒤를 한번 바라보다,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지능인들한텐 긴장감 같은 거 없지?”

“우리의 핵심 모듈은 비슷한 감정을 모사하긴 하지. 하지만 그 주요 목적은 다 체험에 그칠 뿐이야.”

게네바가 솔직하게 답했다.

* * *

덜컹덜컹 내달리던 지프는 다리를 빠르게 통과했다.

이제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치랄 산 구역이었다.

용여홍은 뒤쪽의 얇은 다리를 바라보다 장목화에게 말했다.

“팀장님, 저 다리 그냥 날려버리면 안 될까요?”

그가 생각하기넹, 다리를 날려버리면 로봇 경비대의 추격 속도를 대폭 늦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목화가 빠르게 답했다.

“소용없어. 저긴 제트 장치가 있을 거야. 강 위를 그대로 날아올 수도 있어서 애초에 다리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아. 게다가 저 다리는 별로 높지도 않고 겨울이라 물이 깊지도 않아서 강을 직접 건너올 수도 있어.”

물론 후자를 택하면 어느 정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터였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용 바주카포로 포탄 두세 발을 쏴서 파괴할 수 있는 다리도 아니었다. 상응하는 폭약을 설치한 후, 마지막으로 로켓포를 쏴야만 완전한 폭발이 가능했는데 그러는 데엔 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간단하게 말해, 다리를 폭발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장목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게네바가 불쑥 입을 열었다.

“속도 높여!”

종합 경보 시스템과 비슷한 장치와 로봇 경비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게네바는 구조팀보다 앞서 몇 가지 단서를 파악했다.

그와 동시에 장목화 역시도 추격병들의 접근을 감지했다.

백새벽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엑셀을 끝까지 밟았다. 울퉁불퉁한 전방의 노면 상태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우웅-

인공 엔진 소리와 함께 지프가 앞쪽으로 맹렬히 튀어 나갔다.

순간, 차는 하마터면 돌부리에 튕겨 허공으로 날아오를 뻔했다.

거의 동시에 불빛이 번쩍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강 건너편에서 솟아오른 포탄들이 하나씩 이쪽 구역을 뒤덮었다.

콰광! 콰광!

포탄 대부분이 지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과 다리로 떨어졌다.

거대한 폭발음이 연쇄적으로 울려 퍼지며, 다리는 결국 타격을 버티지 못하고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곳곳이 부서진 다리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용여홍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추격 중인 지능 로봇들은 바이러스에 걸려 위치 정보 파악에 문제가 생긴 걸까?

로봇들 공격에 기껏해야 귀만 아팠지, 지프엔 타격 하나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포탄들은 다리까지 폭파했다. 이는 처음부터 용여홍이 원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일이었다.

이내 몸을 돌린 성건우가 뒷유리로 강 맞은편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알파랑 동료들이 왔네.”

그 말을 듣고, 게네바가 목을 180도로 돌렸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들과 기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로봇 경비대원들은 무너진 다리로 급히 달려와 뭔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제트 엔진을 이용해 강을 넘어갈지, 강물을 그대로 건널지 아직 결정 내리지 못한 듯했다. 그런 방식을 쓰면 허공에서 공격당할 위험이 컸다.

게네바는 묵묵히 이 광경을 지켜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 지능 로봇들, 진짜 인간 같네.’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현재 지프는 치랄 산 구역에 진입해 있었다. 이곳 지형은 더욱 복잡했다.

그제야 뒤에서 시선을 거둔 게네바가 제안을 하나 했다.

“저쪽에 바주카포를 한 발 날려도 될 것 같군.”

그가 가리킨 곳은 매우 취약해 보이는 길이었다. 지프는 갈림길을 통해 그곳을 우회할 예정이었다.

단박에 게네바의 생각을 알아차린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게네바는 자신들이 그쪽으로 갔으리라 오도하게끔 유도하고, 로봇들이 시간을 지체하게 하려는 생각인 듯했다.

장목화는 용여홍에게 사신 바주카포를 건넸다. 방향 조정의 문제가 있기에, 팀원 중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바로 군용 외골격 장치를 입은 용여홍이었다.

용여홍은 어렵지 않게 바주카포를 받아 든 후, 정조준 시스템을 이용해 전방에 포탄 한 발을 날렸다.

콰과광!

번득이는 불빛과 함께 계획한 길이 완벽히 무너져 내렸다.

길이었던 곳은 바위와 자갈이 되어 하염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짝짝짝!

성건우가 용여홍을 위해 손뼉을 쳤다.

게네바는 이제 GPS 모듈을 껐다.

“지금은 밤인데다가 산악은 지형이 복잡하니 드론 수색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 없다. 여기서 동북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타르난 기지국 통신망 범위를 벗어난다. 그럼 추격대도 소통을 위해 무전과 전보 등을 쓸 수밖에 없지. 소스 브레인과 지휘자의 연결도 전처럼 긴밀하진 못할 테고.”

게네바는 로봇 경비대가 치랄 산 구역에서 받게 되는 제한을 구조팀 네 사람이 알아듣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했다.

덕분에 용여홍의 자신감도 더욱 높아졌다.

지프는 지형 전문가 게네바의 지휘 아래,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나고, 또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그렇게 때론 적을 의도적으로 오인시키고, 때론 그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며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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