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82화 (282/649)

282화. 심사 (2)

장목화도, 성건우도 율법 로봇이 주위에 대한 감시를 어느 정도로 진행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경험에 근거한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거실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으면서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창문 아래에 이르렀다.

창을 살짝 열어 들여다보니,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익숙한 구조의 거실이었다. 그리고 그다지 꼿꼿하지 못한 자세로 일인용 소파에 앉은 은흑색의 게네바가 보였다. 그가 입고 있는 검푸른색 제복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의 옆쪽으론 크기가 다른 두 은백색 로봇이 서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있는 두 로봇은 게네바의 아내 수산나와 딸 루이더스였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낮에 마주쳤던, 검은색 군복 차림의 지능 로봇 다섯 대가 방 안 곳곳에 흩어져 게네바 일가를 은근히 포위한 것을 확인했다.

“C-1823,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나?”

검은색 제복 차림의 로봇이 물었다.

“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린 인간의 일종이 아니라는 건가? 우리와 인간은 겉모습과 존재 형식에만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야. 승려 교단의 영생인처럼 말이지. 그럼 그들도 인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건가?”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게네바의 목소리에는 혼란이 어려 있었다.

검은 제복 차림의 로봇은 더욱더 목소리를 무겁게 깔았다.

“C-1823, 아직도 모르겠나? 그게 바로 네 잘못이다. 우리 지능인이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건 인간을 더 잘 모시고, 인간과 더 친근해지고, 그들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겨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건 우리의 창조자가 우리의 핵심 모듈에 새겨놓은 규칙이다. 소스 브레인도 그 규칙을 위배하진 못해.

이제 확신이 드는군. 네 인간화 정도는 이미 필요 한도를 초과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정도야.”

로봇은 이내 말을 멈췄다. 보아하니 머신 헤븐 본부에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일이 분 정도 멈춰 있던 로봇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층 더 엄숙해진 모습이었다.

“율법청에서는 일차적으로 C-1823 로봇의 인간화 정도가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판단, 일시적으로 시민 자격을 박탈하고 본부로 호송해, 더 자세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안 돼⋯⋯.”

게네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일어날 힘마저 잃은 듯 여전히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안 돼! 너무 성급한 결정이야! 당신들도 평소에 인간을 흉내 내잖아?”

흰 드레스를 입은 그의 아내 수산나도 동요했다.

“아빠! 아빠!”

작은 로봇 루이더스까지 울부짖었다.

루이더스는 곧장 게네바에게로 달려가려고도 했지만, 엄마 수산나에게 붙잡힌 바람에 그러지는 못했다.

율법 로봇팀을 이끄는 수장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말했다.

“우리의 인간화 정도는 합리적인 범위에 속해 있다. 하지만 C-1823은 이미 그 기준치를 넘어도 한참 넘었어. 너희들도⋯⋯.”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묵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C-2257, C-4115, 너희들의 인간화 정도도 의심스럽군. 그러니 심사를 진행한다.”

그 순간 게네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야! 저들은 아니야! 지금 당장 날 본부로 데려가게!”

율법 로봇 팀장은 게네바는 깔끔히 무시하고, 멍하니 선 수산나와 루이더스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의 사회적 관계도 정상 한도를 초과했다.”

말을 마친 그는 재차 침묵했다. 상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게네바는 종말의 심판을 마주한 듯한 이 상황에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몇 분 더 지났을 무렵, 율법 로봇의 눈에서 번득이던 파란색 빛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C-2257, C-4115, 너희도 함께 본부로 간다. 이제 너희들의 사회적 관계를 일시적으로 끊도록 하겠다.”

“아, 안 돼!”

게네바가 소리치며 팔을 들었다.

창밖에서 이 광경을 몰래 훔쳐보고 있던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장목화가 그를 잡아끈 통에 결국 길이 막혔다.

그 사이 겁에 질린 수산나가 끊임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수는⋯⋯.”

수산나는 루이더스가 지금의 상황을 보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았다.

“소스 브레인의 명령을 위배하겠다는 건가?”

율법 로봇팀 수장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게네바와 수산나는 동시에 침묵했다. 부부의 딸 루이더스만 작은 소리로 흐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율법 로봇팀 수장이 다시 눈에 파란빛을 번득이며 말을 이었다.

“C-1823, 넌 너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고 있는 거 아니냐? 당장 너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보여주지.”

또 다른 율법 로봇이 아주 복잡해 보이는 칩 하나를 꺼내 들더니 은백색 지능 로봇 수산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수산나는 순순히 그 메인 인터페이스를 열었다.

이내 그 안에 꽂힌 칩에서 파란색 빛이 반사되어 나왔다.

그로부터 10초도 지나지 않아 칩이 뽑혀 나오더니, 뒤이어 작은 로봇 루이더스의 메인 인터페이스에도 삽입되었다.

다시 꽂은 칩을 거둔 율법 로봇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 게네바는 아내와 아이를 조용히 불렀다.

“수산나, 루이더스⋯⋯.”

그의 말투엔 기대감이 역력했다.

수산나가 파란 눈빛을 두어 번 번득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입 밖으로 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전보다 훨씬 더 합성음에 가까워져 있었다.

“C-1823, 협조해라.”

순간 휘청이던 게네바가 다리에 힘을 잃고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무게에 강화 처리된 특제 소파는 다 무너질 뻔했지만 굳건히 버텨냈다.

그러나 게네바의 세계는 이미 산산이 붕괴해 버렸다.

율법 로봇팀 수장은 게네바를 몇 초 바라보다 주위 로봇들에게 말했다.

“C-1578, C-2020, 너희는 남아서 이곳을 감시해라. 우린 다른 지능 로봇을 찾아 추가 조사를 진행하겠다. 내일 아침 함께 본부로 돌아가지.”

지시를 마친 로봇은 나머지 두 지능 로봇과 함께 게네바의 집을 떠났다.

곧이어 C-1578이 수산나에게 말했다.

“고성능 배터리를 두 개 가져와라.”

“알겠어.”

수산나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작은 로봇 루이더스도 명령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흰색 드레스를 입은 두 로봇은 이동하는 동안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모녀는 서로를 이제 갓 만난 낯선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수산나가 바로 쟁반 하나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쟁반 위에 놓인 흰색 자기 그릇 두 개 안에는 고성능 배터리가 각각 하나씩 담겨 있었다.

수산나는 마치 음식을 내어주듯 C-1578과 C-2020의 앞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두 로봇도 이런 대접이 익숙한 듯 고성능 배터리를 집어 얼른 자기 입에 넣었다.

이내 금속광을 번득이는 입안의 절연판이 알아서 제거되더니, 고성능 배터리 슬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C-1578과 C-2020은 원래 그곳에 꽂혀 있던 배터리를 뽑고 새로운 고성능 배터리로 교체한 뒤, 동시에 수산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천만의 말씀.”

수산나는 다 쓴 배터리를 올린 쟁반을 들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게네바는 계속해서 일인용 소파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목화의 눈에 비친 게네바는 완전히 다운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곧장 성건우를 끌고 한참 뒤로 물러나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당사자의 마음이야. 어쩌면 본부로 돌아가 이삼 년 정도 갇혀 있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닐 수도 있어.”

“알겠어요.”

성건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본인 허벅지를 지지대 삼아 뭔가를 슥슥, 써 내려갔다.

‘대체 뭘 알았다는 거지?’

장목화는 약간 불안해졌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돌아봤지만, 그들에게 몰래 접근 중인 로봇은 하나도 없었다. 율법 로봇들도 게네바 일가 주변은 살피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그런 기능이 없다고 볼 순 없었다. 그들은 어쩌면 주변 감시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 방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도처에 널린 다기능 감시 카메라를 지나치게 믿는 건지도 모르지. 그것들이 있는데 누가 소리소문없이 집 가까이 와서 자기랑 상관도 없는 일에 힘을 쏟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 아니면 자기 실력을 과신해서 갑작스러운 습격 같은 건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속으로 생각하던 장목화는 갈수록 전자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녀가 보기에 지능 로봇은 아무래도 융통성이 없는 것 같았다. 미리 정해진 임무와 상응하는 안배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그들은 쉬이 선을 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세상에 장목화처럼 미약한 전기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장목화는 그 능력에 의지해 다기능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또렷하게 파악해 빈틈없이 숨어들 수 있었다.

장목화는 평소에 했던 관찰까지 종합해, 아무 경고 신호도 울리지 않고 게네바의 집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어렵지 않게 파악해냈다.

이는 로봇들이 사생활에 과하게 신경 쓰지 않아, 주거 구역에 다기능 감시 카메라를 잔뜩 설치하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장목화는 일시적인 정전 사고를 위장해 감시 카메라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노려야 했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 성건우가 글을 다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봐봐.”

장목화가 바로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도 성건우의 똑똑한 지능은 믿지만, 쥐가 난 그의 머리 상태는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 * *

독채 안.

게네바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파란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감시를 맡은 두 율법 로봇은 별말 없이 각자 자리에 앉아있었다.

두 로봇은 게네바와 근처 수산나에게만 집중하고 있어, 문이나 창문 쪽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도 두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게네바가 마침내 움직임을 보였다. 느릿하게 고개를 든 그는 두 율법 로봇에게 시선을 두다가, 이내 식탁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수산나는 아무 호응도 하지 않았다. 거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게네바는 그녀를 1분 정도 바라보다가, 멍하니 고개를 돌려 방 안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곳의 모든 걸 기억에 새기려는 모양이었다.

시선을 옮기던 그때, 그는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창문 쪽에 두 얼굴이 떠올라 있는 걸 발견했다. 여자와 남자의 얼굴이었다.

‘99% 일치율⋯⋯. 장우병, 서시월⋯⋯.’

게네바는 단박에 그들을 알아보았다.

다음 순간, 성건우가 웃으며 흰 종이 하나를 유리창에 붙였다.

종이엔 애쉬랜드 문자, 레드리버 문자로 병기된 글이 적혀 있었다.

「도움이 필요해?」

게네바의 눈에서 파란빛이 번득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목을 무려 180도로 꺾어 수산나를 돌아보았다.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목을 돌린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계속해서 시선을 이동시키며 전에 했던 행동을 이어 나갔다.

집 안의 두 율법 로봇은 당연히 어떠한 문제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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