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81화 (281/649)

281화. 심사 (1)

백새벽은 지프 운전석에 앉자마자, 막 들어오는 차량을 보았다.

약간 복잡한 구조의 검은색 7인승 차가 이쪽으로 방향을 틀며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소리 없이 열린 차에선 로봇 다섯 대가 내렸다.

도시의 지능 로봇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 로봇들이 입은 제복은 순수한 검은색이라는 것이었다.

시청으로 들어가는 로봇들을 보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머신 헤븐에서 보낸 지원군인가?”

고등 무심자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을 당시, 게네바는 머신 헤븐 본부에 지원을 요청한 바 있었다.

“헬기로 올 줄 알았는데.”

성건우는 로봇 지원군이 딱히 전문적이진 않은 것 같다는 듯 중얼거렸다.

타르난엔 전문적인 비행기 계류장도 있었다. 전에 그걸 직접 보고 구조팀은 머신 헤븐이 비행기도 여러 대 보유하고 있을 거라 짐작했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 수도 있지.”

용여홍이 마지막으로 대꾸했다.

사실 이는 구조팀에게 그다지 신경 쓸 만한 주제가 아니었다.

빠르게 대화를 마친 네 사람은 다시 강 동쪽으로 돌아갔다.

* * *

타다닥-

소스 브레인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반고 바이오에 보고한 뒤, 한숨 돌린 장목화가 의자 등받이에 기대 웃었다.

“이제는 식량을 좀 사서 돌아갈 준비를 하면 되겠네.”

타르난에는 반고 바이오의 무역 대표가 없었다. 때문에 회사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을 수 없어서, 네 사람이 스스로 직접 움직여야 했다.

물론 회사로 돌아가면 상응하는 비용은 다 지원받게 될 것이었다.

“좀 걱정⋯⋯.”

용여홍은 말을 채 끝내기도 전,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의 시선이 동시에 자신에게로 쏠린 것을 목격했다.

이에 그는 앗, 소리를 내며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장목화도 그가 뭘 걱정하는지 짐작하고 웃으며 위로를 건넸다.

“우리를 곧장 퍼스트 시티로 보내진 않을 거야. 우리도 숨은 좀 쉬어야지. 너무 오랫동안 바깥에 나와 있었잖아. 돌아가 좀 쉬지 않으면 심리 상태에든, 정신 상태에든 문제가 생길 거야. 회사에서 이만 돌아와도 된다고 말했다면 그건 내부 상황이 기본적으로 해결됐다는 뜻이지. 그쪽에서도 우리 퍼스트 시티로 보내려고 댈만한 핑계가 없을걸.”

“그럼 다행이에요.”

용여홍은 이 네 명 중 가장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이내 장목화는 성건우가 또 용여홍을 놀리려 시동 걸기 전에 얼른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우린 소스 브레인이 한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돼. 그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겠지만, 모든 진실을 다 말해준 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는 어쩌면 우리가 다른 연구원을 조사하길 원하는 건지도 몰라. 그러니까 일단은 회사로 돌아가자. 가서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지 신청해보고, 충분한 준비를 하는 거야. 우리에겐 어쨌든 배후 세력이 있으니까.”

“네, 네.”

용여홍은 어쨌든 회사로 곧장 돌아간다는 것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니까요.”

성건우는 어느새 또 경계 교파의 명예 교도가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백새벽은 내내 아무런 말도 하고 세 사람을 지켜만 보았다.

대화 주제는 갑자기 또 회사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뭘 먹을지로 튀었다. 당연히 이 대화의 물꼬를 튼 건 성건우였다.

이제는 백새벽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끼어들어 의견을 제시했다.

타르난 주민들은 곧 감사의 뜻을 담은 잔치를 열 것이었고, 용광로 교파의 세례 의식도 예정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구조팀도 돌아가는 동안 먹을 식량을 그렇게 급하게 구하진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구조팀은 유유자적하게 구세계 책을 구입하고, 낯가죽이 두꺼운 성건우가 아이노에게 부탁해 복사해온 구세계 즐길 거리를 조금 감상했다.

백새벽은 이에 대해 여전히 불안해했다. 장목화 역시 팀원들이 구세계의 즐길 거리에 빠져 타락할 것을 걱정해, 수량도 제한하고 내용도 엄격하게 선별했다. 장목화는 혹여 이런 자료들이 성건우에게 날개를 달아주기라도 할까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 * *

저녁 무렵, 네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가 리버프론트 애비뉴를 거닐면서 주위 구경을 하고, 음식을 사고, 물자도 골랐다.

그렇게 막 가장 번화한 거리에 접어든 그때였다. 장목화는 예리하게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순찰 중인 로봇들 수가 전보다 확연히 많아져 있었다.

지능 로봇도, 그들을 따르는 보조 로봇도 평소보다 적잖게 늘어났다.

“무슨 일이지?”

장목화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뒤이어 그녀가 아는 현지인을 찾아 상황을 물어보려는데, 벌써 목표를 찾은 성건우가 저벅저벅 걸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성건우는 검푸른 군복을 입은 한 로봇 경비 대원 앞으로 다가갔다.

“알파, 무슨 일이야?”

‘알파? 알파 스튜어트? 건우가 저 지능 로봇을 친구 삼은 거야? 아니, 다 똑같이 생겼는데 저 지능 로봇들 사이에서 알파를 딱 알아봤다고?’

그녀에게 특징을 기록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조 칩이 없었다면, 장목화도 다 비슷하게 생긴 지능 로봇을 결코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 상황에 그녀는 로봇을 바로 알아보는 성건우에게 흠칫 놀랐다.

곧이어 알파가 약간 묵직한 목소리로 성건우의 질문에 답했다.

“율법청에서 게네바 시장의 인간화 정도를 심사할 팀을 하나 파견했어.”

‘뭐?’

순간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의 눈에 혼란의 빛이 떠올랐다.

‘《지능 로봇 파견 근무 매뉴얼》’

장목화가 바로 떠올린 건 조금 전 성건우와 함께 본 그 책이었다. 애초에 머신 헤븐에 관해 잘 알지 못하니, 그 책에서 본 인간화 정도 관련 규정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장목화는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분명 이는 게네바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 거란 점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성건우가 물었다.

“아직 안 나왔어.”

알파는 느릿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의 목은 아무래도 묵직한 머리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알파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당분간 너희를 집에 초대할 수도 없어.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거든.”

“그래.”

성건우 역시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여홍의 곁으로 돌아갔다.

‘머신 헤븐에선 게네바가 여태까지 보였던 모습을 바탕으로, 그의 인간화 정도를 점차 의심하게 된 걸까? 아니면 그가 최근에 한 결정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장목화가 돌연 또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입을 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니, 돌아가서 물자를 정리하자. 오늘 밤에는 회사로 돌아가는 동안 먹을 식량을 준비하는 게 좋겠어.”

그러자 용여홍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그렇게 급하게 준비할 필요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장목화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정말 진심으로 웃는 것 같진 않았다.

용여홍도 그제야 알겠다는 듯 대꾸했다.

“게네바한테 일어난 일 때문에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지 모른다는 거야. 만약에, 그다지 안 좋은 쪽으로 변하면 어떻게 될까? 어쨌든 우린 요 며칠 식량을 모으리라 마음먹고 있었잖아. 그 계획을 조금 앞당긴다고 딱히 문제 될 것도 없고.”

백새벽 역시 팀장의 말에 동의했다.

“황야유랑자들은 바람에 스쳐 흔들거리는 풀잎조차도 경계해야 해요. 과한 경계심을 발휘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어느 상황에서든 방심해선 안 되죠.”

성건우는 계속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를 보던 장목화가 어림짐작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

성건우는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게네바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게네바의 아내랑 딸은 또 어떻게 될는지 걱정이네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밥 먹고 식량도 좀 준비한 다음, 바로 강 동쪽으로 가서 게네바의 아내를 만나보자. 수산나를 만나서 혹시 우리가 도울 일이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휴, 게네바도 우릴 그렇게 믿어줬는데 당연히 뭐라도 도와야지. 그 로봇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그대로 관계를 끊고 모른 척하는 건 도리가 아니잖아.”

순간 장목화는 지능 로봇과 자신이 서로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묘한 느낌이었다. 분명 게네바를 로봇이라 인식하고 있는 데다 그렇게 칭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이미 게네바를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죠!”

성건우가 그 말에 깊이 동조했다.

용여홍과 백새벽 역시 이대로 그냥 떠나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네바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머신 헤븐 내부에서 결정할 몫이었지만,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가족을 돕고 보살피는 일은 그들 같은 외부인들도 충분히 관여할 만했다.

이윽고 장목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게네바가 인간을 너무 깊이 신뢰하고, 인간들의 편의를 너무 봐줘서 인간화 정도가 높다는 의심을 받게 된 건가?’

물론 알파는 게네바의 죄목이 인간화 정도와 관련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장목화도 그저 게네바가 평소 보인 모습으로 상황을 추측할 뿐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타르난을 구원한 유명인 구조팀은 정리한 일부 물자로 레드스톤 마켓, 심지어 위드 시티로 돌아갈 때까지 먹을 식량을 마련했다.

그들이 물건값으로 내놓은 건 십방 상사에서 준 휴대용 컴퓨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들은 타르난에서는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물건이라, 그들은 값을 치를 때 상당한 손해를 보았다. 이는 구원자도 피할 수 없는 시장의 논리였다.

잠시 후 장목화가 지프차 조수석에 앉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중에 명단을 작성해서 회사에 비용을 청구하면 되잖아.”

한껏 불만 어린 표정의 용여홍과 백새벽을 달래기 위해 한 말이었다. 두 사람은 좀체 낭비를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용여홍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나 회사는 물자 값을 상당히, 심하게 깎아내리는 편이었다.

다시 장목화가 말을 잇기 전, 용여홍이 또 기대감 어린 눈을 반짝였다.

“휴대용 컴퓨터 몇 대만이라도 우리한테 돌려줬으면 좋겠어요. 가족들한테도 보여주고 싶거든요.”

그러자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야 문제없지. 내가 회사 측에 한 번 이야기해볼게. 근데 컴퓨터에 든 구세계 즐길 거리를 보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심사에서 탈락할 것 같아. 건우가 복사한 음악이야 무리도 없이 통과하겠지만.”

잠시 후 백새벽이 운전하는 대로 지프는 다리를 지나, 강 서쪽에 진입했다.

이동하는 도중 네 사람은 또 전투형 비 지능 로봇이 지능 로봇의 인솔 아래 일정 거리마다 지키고 서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정말 삼엄한 경계였다. 구조팀의 차가 가로막히지 않았다는 게 다행일 따름이었다.

곧이어 지프 전방에 푸른 잔디밭이 보였다.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머쓱하리만치 푸른빛의 잔디밭이 가까워졌다. 이제 게네바의 집 앞이었다.

주위를 훑어보던 성건우는 게네바의 집 앞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곳에는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데다, 기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검은색 7인승 차가 있었다. 오늘 낮, 시청 건물 앞에서 본 그 차였다.

“집까지 조사하는 건가?”

용여홍도 당연히 그 거대한 차를 알아보았다.

장목화는 불이 밝혀진 독채를 바라보며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뒤로 돌아가자.”

백새벽은 이유도 묻지 않고 지프의 방향을 틀었다.

그동안 타르난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형을 파악한 덕에 그녀는 손쉽게 우회로를 탔다.

그렇게 은근슬쩍 한 갈림길로 접어들어 아무 기척도 없이 저택 뒤로 차를 몰았다. 게네바의 독채에서 1~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에 이르자마자 장목화가 지시를 내렸다.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너희는 차에서 기다리면서 엄호할 준비해. 나랑 건우는 저기로 접근해서 상황을 확인할게. 하, 그냥 아무런 일도 없이 커피나 마시고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알겠습니다. 외골격 장치를 입어야 할까요?”

용여홍이 팀장을 보며 물었다.

“응, 입어.”

장목화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 후 성건우와 함께 차에서 내린 장목화는 어두운 밤을 타고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따라 게네바의 독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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