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73화 (273/649)

273화. 세 번째 방문

‘강소월의 심령 세계와 연결된 문⋯⋯.’

장목화의 말을 듣고, 용여홍은 내내 비과학적인 추측만 난무했던 지금까지 이야기 중에선 가장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가설들에 비하면, 북방의 모처로 이송된 식물인간과 애쉬랜드 남쪽에 출몰한 고등 무심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연관됐을 가능성은 꽤 신빙성이 있었다.

물론 그 고등 무심자가 비밀스러운 연구원 출신이라는 가설도, 일찍이 의식을 찾은 강소월이 애쉬랜드를 유랑하다가 만난 사람과 결합해 아이를 낳았다는 가설도, 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으니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백새벽이 덧붙였다.

“송하균은 심령의 복도에서 열리는 문은 달지기의 꿈과 연결된 것이거나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했던 강력한 각성자의 것이라고 했잖아. 일반적인 각성자 심령 세계에 대응하는 문은 밖에서 열 수가 없다고.

그럼 강소월은 이미 깨어났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각성자가 돼서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의 탐색을 마쳤다는 거야?

그 연구원에서는 인류의 각성을 연구하는 걸까? 그들이 식물인간 지원자를 찾는 건 그런 병에 걸린 사람 상태가 실험하기 적합하기 때문인 걸까?”

일련의 질문에 용여홍의 머리는 터질 듯 지끈거렸다. 자신 같은 일반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비밀과 연루된 문제였다. 계속 이런 토론이 이어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 같기도 했다.

반면, 장목화는 백새벽의 추측에 동조하며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래야 인간의 사고에서 비롯되는 방해를 받지 않는 건지도 모르지. 그 병력의 내용, 다들 기억나? 방민서가 자꾸 주변에 아들 인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잖아. 아들은 일찍이 식물인간이 돼서 실험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북쪽으로 이송된 상태였는데 말이야.

만약에, 만약에, 이 어머니가 정신병에 걸린 게 아니라면, 그녀의 증언이 헛소리가 아닌 진실이라면 상황이 꽤 재밌게 돌아가는 건데……. 방민서의 아들은 진작 깨어났는지도 몰라. 다만 심령의 복도에 갇혀서, 어머니에게 관심을 표할 방법이 현실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방식밖에 없었던 거지.”

이는 조금 전 강소월과 고등 무심자 관계에 대한 추측과 잘 맞아떨어졌다. 용여홍은 장목화, 백새벽의 추측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물었다.

“그럼 그 고등 무심자는 왜 타르난에 집착하는 건데요?”

장목화는 한동안 고심하는가 싶더니 돌연 큰소리로 외쳤다.

“용!”

용여홍의 의혹 어린 표정에, 그녀가 한숨을 토하며 웃었다.

“장아홉이 환각 속에서 용을 봤다고 했잖아! 그 고등 무심자가 심령의 복도에 진입한 뒤에 병에 걸린 거라면, 전에는 어느 세력에 속해 있었을까?”

가능성이야 많았지만, 환각 속에 용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감안하자면 맞아떨어지는 답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신룡교의 고위층이었던 거예요.”

성건우가 답했다.

꿈 보호자, 혹은 그와 비슷한 강자였을 것이었다.

순간 깨달음을 얻은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어쩐지, 주 관주는 그 고등 무심자가 아주 위험한 존재라고 계속 강조하면서, 그들 교파에서 꿈 보호자를 보내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했잖아요. 하, 하지만⋯⋯. 그자가 타르난에 집착하는 게 이곳에 신룡교의 관각이 있기 때문이라면, 그 이유는 뭘까요?”

말을 잇던 그가 새로운 의혹을 하나 또 제시했다.

장목화는 입을 다물고 그 이유를 고민해 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용여홍은 오른손으로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웃음을 짓는 성건우를 발견했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어요.”

“뭔데?”

장목화가 물었다.

성건우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소월의 심령 세계에 대응하는 문은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강자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다른 가능성도 있잖아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달지기의 꿈일 가능성.”

충격적인 답에 용여홍의 머리가 저릿해질 무렵,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에요.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강소월의 문이 일반 각성자, 심지어는 일반인의 문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용여홍이 곧장 반박했다.

“하지만 송 경고자가 그랬잖아. 보통 그런 문은 바깥에서 열 수가 없다고. 염호와 같은 급에 이르지 않은 이상에는⋯⋯.”

성건우가 웃음을 머금고 설명했다.

“그래, ‘보통’은 그렇다고 했지. 그 고등 무심자는 병에 걸리기 전 강소월을 상징하는 문을 열었어. 그도 그때까지는 그게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강자가 남긴 문이라 생각하면서, 자신이 쓸 수 있는 신기한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려 했을 거야.

근데 그 심령의 세계를 탐색하면 탐색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일반 각성자, 혹은 일반인의 심령 세계에 진입했으니까. 그러다 아주 무시무시한 일이 생긴 거야. 예를 들면⋯⋯.”

성건우가 의도적으로 뜸을 들이며 용여홍을 불안하게 만들던 그때, 장목화가 묵직한 목소리로 선수를 쳤다.

“무심병에 걸린 거지.”

용여홍은 흠칫 놀랐다. 물론 팀장은 무슨 사건만 있으면 무심병의 발병 원인을 연관 짓고 분석하려 했다. 거의 습관이 된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예전처럼 그렇게 터무니없게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는 틀림없는 고등 무심자이기 때문이었다.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장목화는 그런 그를 노려보는 대신 혼잣말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이 기이하고 치명적인 경험을 신룡교에 알려,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게 그 고등 무심자의 집념이라는 거야? 그자가 타르난에 부득불 들어오려 하는 목적은 남가관이고, 사람을 사냥해 먹은 건 무심자의 본능에 따른 행동일 뿐이라는 거지?”

일순 221호 방 안이 고요해졌다.

한참이 지난 후, 백새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모든 걸 하나로 연결하는 가설이긴 하네요. 믿긴 힘들어도⋯⋯.”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주 관주를 한 번 더 만나야겠어. 이번에는 그 사람이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를 바라자고. 정 안 되겠으면⋯⋯.”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미소를 지으며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성건우는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추리 광대 능력이 아니라도 솔직히 털어놓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주 관주님, 당신은 지금 무려 건우한테 무시당한 겁니다.’

용여홍은 주명희를 동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주 관주가 좀 어리숙하다는 것엔 동의했다. 지능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속이기는 쉬울 것 같았다.

“깨진 거울의 주시가 걱정되지는 않나 봐?”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성건우는 묵묵히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간략화된 갓난아이, 이목구비가 없는 사람의 얼굴, 문 뒤의 그늘에 숨은 여자 등의 상징이 그려진 종이였다.

* * *

남가관.

방석이 깔린 대전 안에선 여러 명의 꿈 인도자와 꿈 미혹자가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중이었다. 구조팀은 이 남가관을 벌써 세 번째로 방문하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흰색 가운을 입고 허리에 삼끈을 맨 주명희가 감실 앞에 서서 구조팀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우리 신룡교에 가입하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조사하러 오신 겁니까? 서시월 팀 여러분?”

상당히 신중해 보이는 지금의 그녀는 뜻밖에도 구조팀을 바로 알아봤다. 또한 그녀는 통화한 적이 있는 서시월의 이름도 선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주 관주님, 이번에는 절 알아보셨네요.”

장목화가 아닌 성건우가 먼저 대답했다.

그러자 주명희는 그를 몇 차례 훑어보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여자가 아니잖아요.”

장목화는 즉각 손을 들어 성건우를 저지하며 나섰다.

“예, 제가 서시월입니다. 이번엔 주 관주님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관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말씀하세요.”

주명희가 눈이 가늘어지도록 웃었다.

장목화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고등 무심자, 병을 앓기 전엔 혹시 신룡교 사람이 아니었나요?”

“크흠⋯⋯.”

약간 뿌듯해하고 있던 주명희는 격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야 안정을 찾은 그녀는 홀연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차리셨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저 역시 그 고등 무심자가 저희 교파의 꿈 보호자이리라 확신할 순 없습니다. 단, 꿈 보호자 한 명이 반년 전 길을 잃고 사라진 건 맞아요. 저희는 당시 한동안 그를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때도 상당히 의아했답니다. 그가 지불한 대가는 길눈이 아니었거든요⋯⋯. 앗⋯⋯.”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명희는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수습했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어디 진지하게 임할 필요 있을까요?”

구조팀 네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역시.’

그 사이 성건우가 약간 흥분한 듯 캐물었다.

“그자가 거울에 비치는 것을 싫어한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계셨군요?”

“대충은요. 하지만 그 고등 무심자가 그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모든 도구를 챙겨⋯⋯.”

재차 나온 말실수에 입을 다문 주명희는 몸을 살짝 뒤로 젖히고, 양팔을 높이 든 채 기도했다.

“신룡은 높으시다!”

이내 그녀는 네 사람이 다시 또 질문하지 않도록 먼저 질문했다.

“이런 사실을 알아내신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어쨌든 우리끼리 해결할 수는 없는 상대예요. 지금으로서는 방어에 집중한 채 상부에서 파견한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요.”

주명희의 고백을 듣고, 장목화는 여관을 나오기 전 팀원들과 상의했던 대로 대답했다.

“강소월을 조사하면서 발견한 단서와 전에 찾았던 병력이 서로 관련된 것 같아서요.”

그녀는 반고 바이오와 구조팀에 관련된 분석 외의 모든 이야기를 전했다.

“그 고등 무심자가 강소월에게 숨겨져 있던 문제 때문에 그러한 모습으로 변했을 거라는 말씀인가요? 그가 계속해서 타르난에 들어오려고 했던 게 남가관을 찾아 우리에게 그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고요?”

주명희는 심령의 복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따로 상세한 설명 없이도 알아서 결론을 내렸다. 구조팀의 티 나지 않는 유도가 성공한 것이다.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맞습니다.”

그러자 주명희가 약간 뿌듯해하며 물었다.

“여러분은 그 추측을 검증하고 싶은 건가요?”

장목화가 웃었다.

“저희가 아니라 신룡교가 그렇겠죠. 최대한 빨리 이 문제를 검증해 더 중요한 정보가 있을지 확인하고 싶지 않으세요?”

순간 깊은 고민에 빠진 주명희는 한참 뒤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꿈 보호자가 오면 자연스레 검증되지 않을까요?”

‘그래서는 저희가 그 답을 알 수 없게 되잖습니까.’

장목화는 결국 주명희를 속여 넘기는 데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가 정색한 채 말했다.

“그럼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는 관주님 교파의 꿈 보호자는 2, 3일은 더 있어야 도착하는데, 그사이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해 우리 방어를 방해할 수 있죠. 또 우린 그 고등 무심자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르고요.

어쩌면 그에게 남은 시간은 단 며칠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죽기 전, 남가관에 이 중요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타르난에 들어오려고 애를 쓰는 건지도 모르죠.”

주명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또렷한 입장 표명은 하지 않았다.

그 반응을 본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희는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죠. 방어 범위만 좁히면 되니까요. 저희 추측이 틀렸더라도 앞으로의 일에 영향이 미치진 않습니다.”

마침내 주명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러분이 원하는 게 뭔가요?”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성건우를 힐끔 살폈다. 팀장이 꼭 성건우의 추리 광대 능력을 흉내 낸 것 같았다. 이렇게 빨리 주명희 설득에 성공하다니.

성건우도 진지한 얼굴로 용여홍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거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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