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68화 (268/649)

268화. 치명적인 체험 (1)

장목화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조사하면서 뭐라도 좀 알아냈어?”

“우린 아주 오랫동안 길을 헤맸어. 어떤 기기도 도움이 안 되더라고. 분명 그 고등 무심자의 능력일 거야.

처음엔 그가 왜 그 틈을 타 우릴 공격하지 않는지 의아했는데, 이제 보니 우리한테 영향을 미치고 타르난으로 온 모양이네.

우린 그 후에야 방향을 찾고, 우리 차가 절벽 근처에 이르러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만약 우리가 그때 맹목적으로 움직였다면, 가장 신중한 방법을 찾아 주위를 탐색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백용명은 조리 있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입속에 자체적인 확성기가 있기라도 한 듯, 별 힘을 쓰지 않은 것 같은데도 그의 목소리는 구조팀 네 사람의 귀에 또렷하게 닿았다.

‘역시 산은 도시보다 더 위험해. 그 고등 무심자가 능력을 발휘하기 더 적합한 공간이니까.’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그 지능 로봇과 그들의 보조 로봇도 절벽 아래로 떨어진 건가?”

그녀는 경로 의존성이 있는 생물은, 성공적인 방안을 거듭 사용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백용명은 약간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표정을 거두며 대꾸했다.

“맞아. 우린 몇 가지 흔적을 발견했는데, 그게 로봇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란 걸 확인했어. 아마 제트 장치를 이용해 자구책으로 쓰려고 했을 거야. 하지만 방향 판별에 방해를 받고, 바로 산 아래로 추락하면서 폭발한 것 같아.”

“신의 숨결에 푹 빠지기를.”

성건우는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리며 경련에 가까워 보이는 춤을 췄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백용명의 팀은 시선을 주고받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성건우가 작열하는 문의 신도이자 용광로 교파의 교도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광란의 춤에서 예를 갖출 때 추는 춤은 용광로 교파의 춤과 달리 뜨거운 물에 덴 듯한 느낌이 없었다.

간단한 대화를 마친 이후 백용명이 물었다.

“여기로 들어가도 되나?”

장목화는 웃으며 옆에 있는 팻말을 가리켰다.

“이걸 봐.”

백용명의 팀이 장목화의 손을 따라 팻말로 시선을 옮겼다.

팻말에 달린 전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하늘이 완전히 어둑해지진 않아서 어렵게나마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통행 불가. 동북문으로 가세요? 그럼 우리한텐 왜 굳이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본 거야?”

임단아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뭐, 직업적인 본능이랄까.’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정체부터 파악해야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음, 그 고등 무심자는 거울에 비치는 걸 두려워해.”

“거울에 비치는 것?”

임단아는 무의식적으로 전방의 전신 거울을 바라보더니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와 백용명, 레이, 장세붕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백용명은 팀을 대표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백용명의 팀은 곧장 차에 올라, 여러 개의 갈림길 중 타르난의 동북쪽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멀어지는 짙은 남색 차를 바라보며, 장목화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저들의 답은 왜곡된 게 없었어. 저 사람들 진위를 판별하는 게 이렇게나 간단한 거였나?”

고민하던 백새벽이 말했다.

“그 고등 무심자가 돌파구를 바꾼 건지도 모르죠.”

이미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성건우가 중얼거렸다.

“승부욕이 꽤 강한 녀석이네.”

“승부욕? 녀석은 건우 네가 아니잖아.”

장목화가 피식 웃으며 대꾸하곤, 주명희를 비롯한 이들에게 전화를 돌리려 했다. 조심하라고 당부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순간 장목화는 아주 중요한 문제 하나를 떠올렸다.

‘그 고등 무심자는 왜 그렇게 타르난에 들어오려고 애를 쓰는 걸까? 최근에 했던 유적 사냥꾼 팀 사냥으로 며칠 정도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잖아.’

장목화는 웃음을 거둔 채 막 떠올린 물음표를 꺼냈다.

“그 고등 무심자는 왜 그렇게 타르난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까?”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답했다.

“사냥하려고⋯⋯.”

하지만 그는 말을 채 끝맺기도 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산에도 사냥감은 많았다. 방금 막 산에서 내려온 백용명 팀이 그 예였다. 그런데도 고등 무심자는 그들을 습격하는 대신 바쁘게 굳이 타르난까지 와서 사람을 죽였다.

더 약하고, 경계심 낮은 사냥터를 노렸다 한들, 어젯밤 이미 배불리 먹이를 해치우고 놀라서 도망친 무심자가 이렇게 빨리 돌아오려 할 이유가 없었다.

무심병의 또 다른 이름은 격세 유전병이었다. 인간이 퇴화해 이성과 지능을 잃고 야수와 같은 생물로 변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야수라 해도 어딘가에서 한 번 크게 놀랐다면, 굉장히 무시무시한 뭔가를 발견했다면 당분간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려 할 터였다.

극도로 굶주렸거나 다른 먹잇감이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굳이 모험할 이유가 없었다. 짐승도 그러한데 무심병에 걸린 환자라고 다른 양상일 리가.

“그건 좀 말이 안 되는데⋯⋯.”

백새벽이 용여홍의 말을 대신 끝맺었다.

이때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의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타르난에 있는 사람이 더 부드럽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죠.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 모험을 택한 거 아닐까요?”

‘그건 지극히 너무나도 네 기준이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고개를 돌려 타르난을 한번 바라보았다.

“혹시 여기 있는 뭔가가 그를 끌어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말하자마자, 자신의 말과 성건우가 방금 제시한 가능성이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장목화가 얼른 덧붙였다.

“먹이 외의 무언가 말이야.”

“고등 무심자가 추구하는 게 뭘까?”

용여홍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성건우가 진지한 얼굴로 답변했다.

“짝. 타르난에는 고등 무심자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그가 여전히 잊지 못한 노부인이 있는 거야. 무심병을 앓고 모든 걸 잊은 지금도 그녀를 찾아 보호해야 한다는 건 기억하고 있는 거지.”

성건우의 이야기에 감동한 용여홍은 가슴까지 다 찡해졌다. 그가 기억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었다. 이는 곧 성건우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발전했다는 뜻이었다.

“되게 그럴듯한데.”

성건우의 말을 따라 상상하던 장목화 역시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했다. 그 고등 무심자가 인간을 사냥감으로 삼고 살점이 뭉그러지도록 물어뜯는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그 감동은 더욱 배가됐을 것 같았다.

반면, 백새벽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장목화는 성건우가 더는 딴 길로 새지 못하게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지. 또 다른 뭔가가 그를 유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잠시 침묵하던 장목화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주 관주님?”

휴대폰 너머에선 주명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하, 이번에는 알아차렸어요! 서시월 씨죠? 전하얀 팀의!

주명희는 참으로 씩씩했지만, 장목화는 절로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그냥 핸드폰에 제 이름이 등록돼있는 거 아닌가요?”

헛기침을 한 주명희가 언제나처럼 같은 말로 대꾸했다.

-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어디 진지하게 임할 필요 있겠습니까?

그리고 덧붙여 황급히 물었다.

- 무슨 일이시죠?

“그러니까⋯⋯.”

장목화는 백용명 팀의 상황을 대략 간추려 전달했다.

“그들은 지금 관주님이 계시는 그곳으로 가고 있을 겁니다.”

- 네, 알겠습니다. 저도 그들의 진위를 자세히 판별해보겠습니다.

다시 장목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주 관주님, 그런데 그 고등 무심자는 왜 타르난을 포기하지 않는 걸까요? 치랄 산 구역에 존재하는 인간 거점이 여기뿐인 것도 아닌데요.”

잠시 침묵하던 주명희가 대꾸했다.

- 그자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네요.

‘주 관주님, 관주님은 왠지 건우랑 꽤 잘 통하실 것 같아요.’

상대에게 별 도움을 못 받으리라 확신한 장목화는 몇 마디만 더 이야기하곤 예의 바르게 전화를 끊었다.

* * *

타르난 동북쪽 갈림길.

방석에 앉아있는 주명희가 치랄 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처럼 흰 가운을 걸친 그녀는 허리에 늘 매는 삼끈과 더불어 팔괘 거울을 달고 있었다. 오늘은 이마에도 화장 거울을 단 상태였다.

또 주명희의 양쪽으로 비 지능 전투 로봇이 한 대씩 서 있었다.

구조팀이 물 샐 틈도 없이 각종 장애물을 설치해둔 것에 반해, 주명희가 있는 이곳에 배치된 건 거의 없었다. 그녀의 뒤편에 깨진 거울 조각으로 용의 상징이 상감된 팻말만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건 깨진 거울의 성휘이기도 했다.

“이상하네. 그자는 왜 굳이 타르난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까⋯⋯.”

핸드폰을 내려놓은 주명희가 의아하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타르난 서북쪽, 모비르 강변.

장목화는 느릿하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이 틈에 뭐라도 좀 먹자, 순서대로.”

“네, 저는 작은 일 좀 보고 올게요.”

용여홍이 제일 먼저 답한 뒤, 미리 준비한 플라스틱병 하나를 챙겨 몇 걸음 옮겼다. 그는 곧 지프차 보닛으로 몸을 가리고 개인적 용무를 해결했다.

이는 팀원들끼리 상의 끝에 마련한 방안이었다. 홀로 지나치게 멀리 떨어졌다가 환각의 영향으로 방향과 거리를 오판해 지뢰를 밟거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안위를 위해 잠시 뒤쪽으로 밀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당직을 서야 하는 구역에 악취를 풍길 순 없으니, 각 좌판과 로봇 경비대 창고에서 미리 플라스틱병들을 모아왔었다.

쏴아아-

아랫배가 한결 가벼워진 용여홍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풀렸다.

그러던 그때, 다 풀린 그의 시야로 아주 이상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의 얼굴이 보였다.

용여홍은 순간 몹시 당황했다.

‘잠깐, 내가 차 보닛 쪽으로 이동하지 않았던가?’

퍼뜩 정신을 차린 용여홍은 황급히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지 앞섶은 이미 축축하게 젖은 데다, 들고 있던 플라스틱병은 뚜껑도 열려 있지 않았다.

조금 전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전부 환각이었다. 꿈에서 간절히 찾던 화장실에 도착해 자기 스스로를 완전히 놔버렸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용여홍은 이러한 상황에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모욕적이네.”

장목화가 대신 이번 환각을 평가했다. 이는 용여홍에게 건네는 간접적인 위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 성건우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신분 검증 좀 하자. 마지막으로 바지에 오줌을 싼 게 몇 살이지?”

“꺼져!”

더욱 미친 듯이 밀려드는 민망함에 용여홍이 벌컥 화를 냈다.

“정확한 반응이네.”

성건우는 언제나처럼 친구의 욕설에 조금도 타격받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성건우의 시야로 충격적인 장면이 들이닥쳤다.

용여홍은 물론 장목화, 백새벽까지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다들 괴물을, 혹은 무심자를 마주한 듯한 얼굴이었다.

이내 두 손을 살짝 움직이던 성건우는 마치 그저 연극을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원래 자세를 유지했다.

탕! 탕! 탕!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이 쥔 총의 총구에서 모두 불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성건우는 담력 시합이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성건우는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웅크려졌고, 몇 초 후엔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생명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눈앞은 캄캄해지고 점차 의식이 흐려졌다.

주위에선 서서히 시끄럽게 논쟁하는 소리가 들리며 음량이 점점 커졌다.

“가짜야!”

“분명해! 가짜라고!”

“놀라게 하지 마!”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나 봐. 더 많은 단서를 모으고 충분한 증거를 얻고 난 뒤에 결론 내렸어야 했어.”

“싸우긴 왜 싸워? 이성적으로 토론을 해야지.”

“부탁한다고 말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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