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63화 (263/649)

263화. 세세한 정보들

곧이어 장목화가 용여홍에게 말했다.

“여홍이 너도 이젠 몸에 늘 지니고 다닐 거울 하나 준비해야겠다.”

현재 네 사람 중 거울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용여홍밖에 없었다.

뛰어난 저격수 장목화, 백새벽은 늘 화장 거울을 소지했고, 성건우는 능력 발휘에 도움이 되는 거울을 여러 개씩 가지고 다녔다.

“날이 밝는 대로 구해야겠어요!”

용여홍은 생사에 관련한 문제에 있어선 부끄러움 따위 느끼지 않았다. 타르난의 좌판 중에 화장 거울을 파는 곳도 있었다. 그것들 역시 구세계 폐허에서 찾아낸 물건일 터였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건우가 음산한 말투로 말했다.

“어쩌면 어떤 죽은 사람이 쓰던 건지도 몰라. 그 사람의 혼이 아직 그 안에 깃들어 있을지도⋯⋯.”

“작은 빨강이 놀리지 말고 일이나 해.”

장목화가 서둘러 성건우의 장난질을 막았다.

‘내가 그런 걸 겁낼 줄 알고?’

용여홍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최대한 새 거울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이, 장목화는 자기반성을 시작했다.

“한 가지 실수했어. 타르난의 치안이 좋고, 규모가 작고, 로봇 경비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그 고등 무심자가 이곳을 습격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해버린 거야. 그래서 충분히 경계하지도 못했지.”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거점을 습격해 식량을 취하려 하는 무심자는 애쉬랜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성건우가 말을 받았다.

“저도 실수했어요. 거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렸을 때 당장 따라가 그와 술래잡기를 했어야 했는데.”

“보통은 애들이 장난친 거라고 생각하니까. 경계심을 높여야 하는 건 맞지만 이것저것 심하게 의심할 필요는 없어. 인간의 정신력엔 한계가 있잖아.”

백새벽이 말했다.

‘그럼 난 인간이 아니라는 거냐?’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그녀는 성건우 역시 그런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성건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과도 얼마든지 숨바꼭질을 할 수 있지.”

두 사람의 생각은 시작부터가 아예 달랐다.

자기반성 끝에 경험과 교훈을 얻은 장목화는 이내 화제를 전환했다.

“그 무심자의 능력 범위는 굉장히 넓고 효과도 엄청 강해. 내 생각엔 그는 이미 기원의 바다 종점에 이르러 자아를 찾긴 했지만, 지능이 부족해서 이기진 못한 상태거나 무심병을 앓기 전 이미 심령의 복도에 진입했을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야. 지능이 낮은 강자는 일반적인 강자보다 훨씬 약하니까.”

장목화는 고등 무심자는 기원의 바다의 최후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리라 굳게 믿었다. 의식이 또렷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면,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할 순 없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고등 무심자는 각성이 아니라 뇌 등의 기관에 발생한 변이로 인해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기원의 바다를 넘었느냐, 못 넘었느냐의 문제는 제거되었다.

그러나 용여홍은 알아서 말을 멈췄다. 적어도 그들이 현재 마주한 고등 무심자는 각성자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들에겐 일정한 약점, 혹은 치른 대가가 있었다.

장목화는 용여홍의 말을 직접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도 표본과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그래. 일단 그 고등 무심자가 각성자고, 그 대가로 거울 공포증을 앓게 된 것이라 가정해보자. 그럼 그가 가진 능력 세 가지는 뭘까?”

“환각 구현이요!”

용여홍이 가장 먼저 나섰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수식어를 덧붙였다.

“여태까지의 상황으로 봤을 때는 단점이 없는 환각 능력이지.”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하는 능력도 있어요. 제가 느끼기엔 저희의 조건 반사를 겨냥한 것 같았죠.”

성건우가 명탐정 같은 태도로 말했다. 이번에도 파이프만 없을 뿐이었다.

장목화도 동의했다. 해당 능력을 경험했던 건 그녀와 성건우밖에 없었다.

“맞아. 우리의 조건 반사, 혹은 본능적인 반응을 오도해 외부 자극에 정확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었지.”

당시 장목화는 분명 몸을 통제하고 있어도, 해선 안 될 선택을 했었다.

용여홍이 못 참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시무시하네요. 그 능력에는 어떻게 대적해야 하죠?”

“거울이 잔뜩 붙은 옷을 입어서 그자가 너를 감히 쳐다볼 수도 없게 하는 거야! 너는 가장 반짝이는⋯⋯.”

성건우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하지만 장목화의 매서운 눈빛이 다가오기 전, 그는 알아서 멈추고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자신의 조건 반사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지. 예를 들어 적을 만나면 총을 쏘는 대신 춤을 추는 거야. 그런 습관이 들면 조건 반사를 노리는 능력에 영향을 받더라도 끄떡없을걸? 음수와 음수를 곱하면 양수가 되는 것처럼.”

용여홍은 제안이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가 금세 문제점을 포착했다.

‘그런 고등 무심자가 아니라 적이나 야수를 만났을 때는? 그 앞에서도 춤을 추고 있어야 하는 거야?’

용여홍이 알아차린 걸 장목화라고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었다.

이내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만날 습격자는 꼭 그 고등 무심자여야겠네. 그래야만 그 방법을 쓸 수 있잖아. 만약 우리가 겨울이라 쫄쫄 굶다가 튀어나온 야생 늑대를 마주치면? 늑대 앞에서 집단 군무라도 춰야 하나? 그럼 늑대도 우리 춤에 깜짝 놀라서 우릴 잡아먹을 생각도 못 하겠네?”

각자의 순간 본능을 바꾸는 건 토론 범주에 포함돼 있지도 않았다. 이는 강화된 추리 광대 능력으로만 실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전혀 물러서지도 않고 유창하게 대꾸했다.

“분업하면 되죠. 두 사람만 고등 무심자에 맞설 준비를 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원상태를 유지하면 도중에 맞닥뜨릴 뜻밖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어요. 간단히 말해, 겨우내 굶은 늑대를 맞닥뜨렸을 때 둘이 그 앞에서 춤을 추는 동안 나머지 둘은 총을 쏘는 거죠.”

가만히 상상해보던 장목화는 이 방법이 퍽 기이하긴 해도 효과는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팀원을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전형적인 성건우식 처리 방법이었다.

그러다 뭔가를 깨달은 장목화가 침을 탁 뱉었다.

“아이, 정말!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야, 음수와 음수를 곱하면 양수가 된다고 어떻게 보장해?”

“그건 수학 상식인데요.”

성건우가 당당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들이마셨던 숨을 느릿하게 내뱉었다.

“춤을 추려는 본능이 그 고등 무심자를 향해 총을 뽑아 들려는 본능으로 바뀔 거라 확신할 수 있어? 노래 부르려는 본능으로 바뀌면 어쩌려고?”

성건우가 입으로 소리를 냈다.

“탕!”

“⋯⋯.”

장목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총소리를 흉내 내 상대에게 겁을 줘 알아서 도망치게 하겠다는 뜻이란 건 알고 있었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장목화가 진지하게 말했다.

“타당성은 있는데,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은 방법이야. 응급조치로밖에 쓸 수 없어. 나한테 그거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자기 반응 속도를 늦추는 거야. 세 번 숙고한 다음 행동하란 말도 있잖아.”

이번엔 백새벽이 답했다.

“자기 본능을 통제하고 똑똑히 생각해 보면서, 조금 느리더라도 정확한 행동을 취하라는 건가요?”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아. 물론 이 방법에도 문제는 있어. 시기를 놓쳐서 때맞춰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야. 정리하자면 관례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대처할 사람을 남겨서 건우 방법에 협조하는 거지. 사실 이것보단 환각 능력에 대처하기가 더 어려워. 전혀 아는 바 없는 세 번째 능력도 조심해야 하고.”

끝으로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환경 정보를 왜곡해 환각을 만드는 능력은 본인을 해치고 통증 등의 자극을 가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범위를 화력으로 덮어, 적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곳에서 처치해야 하기도 하지.”

성건우가 장목화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덧붙였다.

이는 정말 장목화가 실제로 생각하고 있던 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성건우도 장목화의 눈총을 받는 일이 없었다.

“주 관주에게 또 가르침을 청해야겠네. 혹시 그 고등 무심자가 포효를 내질러 자기 위치를 드러내면서 환각을 거두기 전에 좀 이상한 반응이 나타나거나 하진 않았어?”

결론을 내린 장목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바로 성건우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있었어요. 원래 재생되던 노래를 끝까지 듣고 나서 다음 곡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어요.”

용여홍도 동조했다.

“맞아요. 당시 시야에 들어온 무심자들이 전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전부 다 환각이라는 걸, 그러므로 그들을 공격해선 안 된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었어요. 근데도 그들의 행동과 환경 때문에 충동을 참을 수 없었죠.

그런 생각을 억눌러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도 머리에서 열이 난 순간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심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겨댔었어요.”

백새벽도 입을 열었다.

“저도요. 마음속에 숨겨 놓았던 생각을 실제로 행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전 환각이 다 지나갈 때까지 꼭꼭 숨어 있고만 싶었어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비슷하네. 마음속에 억눌러 놓았던 충동을 그대로 발산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어. 그 고등 무심자가 설마 아무 이유도 없이 포효를 내지르고,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가 만든 환각을 거뒀을까?”

“그럼⋯⋯.”

용여홍은 이제야 당시의 진상을 조금씩 깨달았다.

곧 성건우가 진지한 목소리로 감탄했다.

“타르난 곳곳에 걸출한 인재가 숨어 있는 거예요!”

장목화가 피식 웃으며 성건우에게 핀잔을 줬다.

“내 대사 뺏지 마. 이건 우리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내일부터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어. 최대한 빨리 잠재된 문제를 해결해야 해.”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덧붙였다.

“오늘 밤엔 침실 세 개 문을 다 열어놓고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자.”

네 사람은 불침번 순서를 정한 뒤, 차례대로 씻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 * *

미약한 빛이 흐르는 기원의 바다 안.

산과 물이 흐르고 풀로 뒤덮인 섬 위, 성건우는 선베드에 누워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있었다. 거기에 선선하게 부는 맑은 바람까지 더해지자, 정말 라디오 프로그램 속에서나 묘사되던 휴가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는 환경은 지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건우는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와 동시에 분화되기 시작한 그는 한 명, 한 명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옷차림을 한 성건우들은 별반 차이도 없어 보였다.

그중 세 명의 성건우는 스툴을 가져와 선베드 옆에 앉아, 원래의 성건우와 카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성건우는 소형 스피커와 확성기를 만지작거리며 흐르는 반주 속에 주고받듯 노래를 불렀고, 남은 세 명의 성건우는 그 노래에 맞춰 리드미컬한 춤을 추었다. 덕분에 섬이 한결 시끌벅적해졌다.

그런데 아무리 시끌벅적한 상황도 결국은 끝이 나는 법이지만, 여태까지도 괴물이나 재난, 뜻밖의 상황 같은 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아홉 명의 성건우는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그렇게 혼자가 된 성건우는 먼 곳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엄쳐 갔을 무렵, 눈앞에 또 하나의 섬이 들어왔다.

산과 물이 있고 풀로 뒤덮인 이 섬에도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었고 가벼운 바람도 살랑 불어왔다. 전의 그 섬과 똑같은 섬이었다.

이 섬의 가장자리에 선 성건우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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