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59화 (259/649)

259화. 이변

다들 무려 열 대나 되는 로봇 경비대원들이 그 고등 무심자를 처리하러 갔다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곧 아무리 로봇 경비대라고 해도 그 무시무시한 적 앞에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이 소란을 일으킨 게 귀신인 편이 나았다. 누구도 귀신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었고, 로봇 경비대가 귀신에게 영향을 받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다들 그들이 귀신에 끄떡하지 않으리란 관습적인 믿음이 있었다.

“이 시체도 환각인가?”

채이훈은 고개를 들고 천장을 보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위층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설 생각이었다.

“확인해 볼게.”

장목화가 답을 하자마자, 성건우가 그녀 대신 시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뒤이어 라텍스 장갑을 꺼내 끼곤 양손을 시체에 얹더니 두 팔을 지지대 삼아 물구나무를 섰다.

‘……물구나무?’

채이훈이 순간 멍해졌다. 긴장하고 있던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대체 무슨 방법이지? 머리에 피가 쏠리면 지능이라도 오르나?’

그때, 백새벽은 시체 표면이 약간 눌리기만 할 뿐, 성건우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았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틀어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진짜예요.”

그녀는 어느새 양손에 아이스모스와 연합202를 꺼내 쥐고 있었다.

“그래.”

백새벽에게 답한 장목화는 다시 일어선 성건우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채이훈을 바라보았다.

“혹시 여기 유탄 발사기가 있나? 외부에 신호탄을 쏴서 로봇 경비대가 반응하는지 보고 싶은데.”

어쨌든 로봇 경비대가 인간보다 환각에 대한 저항력이 훨씬 강하단 건 분명 사실이었다. 또한 장목화는 신룡교 남가관의 사람들에게도 이곳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

관주 주명희가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아도, 이러한 방면에 있어선 용광로 교파의 이철이나 영광의 저울의 마이크보다 훨씬 전문가일 터였다.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백번 천번 나았다.

장목화의 질문에 채이훈이 흠칫 놀랐다.

“왜 꼭 신호탄을 쏴야 하지? 로봇 경비대에 바로 전화하면 되잖아. 아, 방해받을까 봐?”

“⋯⋯.”

장목화는 그제야 자신이 위드 시티와 레드스톤 마켓, 해자 마을 등 애쉬랜드 내 다른 지역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타르난은 무선 기지국이 가설돼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하는 거의 모든 곳에 유선 전화가 설치돼 있었다. 사실 타르난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반고 바이오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다.

곧 빠르게 정신을 차린 장목화가 물었다.

“남가관의 주 관주에게도 연락할 수 있어?”

채이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전화번호부가 있거든.”

“그럼 부탁 좀 할게.”

장목화는 예의 바르게 답한 뒤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장목화는 성건우가 자신과 같은 뜻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곳은 타르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거리라 전기 신호로는 그 고등 무심자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인간의 의식 감지력으로도 그 고등 무심자를 짚어내기는 힘들 터였다.

장목화는 아예 직접 물어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지금 거리에 사람이 있어?”

“몇 명 정도는 있네요.”

성건우도 솔직하게 답했다.

“그래.”

장목화 역시 그 답에 동의한다는 얼굴이었다.

이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던 채이훈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살짝 흔들고 걸음을 뗐다.

“난 전화를 할게.”

휙-

채이훈의 말이 떨어진 순간, 서늘한 바람이 나무판 두 짝으로 이뤄진 문 위로 불어닥치며 술집 안을 휩쓸었다.

그리고 술집 안의 샹들리에와 벽등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전압 문제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용여홍은 심장이 졸아드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

용여홍의 눈이 곧 밑으로 쏟아질 정도로 커다래졌다.

일전에 그에게 두들겨 맞은 세 사람을 포함해 술집 손님들 모두가 몸이 구부러지고, 눈동자가 이상하리만치 혼탁해지고, 흰자가 잔뜩 충혈돼 있었다.

무심자! 손님들이 전부 무심자로 변해 있었다.

용여홍은 황급히 권총을 움켜쥔 채 양손을 쳐들었다.

그 사이 장목화는 술집 사장 채이훈에게 경고했다.

“조심해.”

그 말을 듣고 느릿하게 돌아선 채이훈의 툭 튀어나온 눈도 혼탁했다.

용여홍은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그 순간, 성건우가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을 다 꺼버려서 사방을 못 보게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뭐?”

용여홍은 곁눈으로 어느새 스위치 옆으로 간 성건우를 확인했다.

* * *

남가관.

주명희는 두 다리와 허리, 그리고 복부의 힘으로 방석에서 일어났다.

입고 있던 흰색 가운을 툭툭 턴 그녀가 곁에 있던 꿈 인도자에게 말했다.

“펠프스, 난 나가봐야겠다. 내 팔괘 거울 좀 가져다줘.”

혼혈인 듯, 검은 머리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꿈 인도자가 곧장 답했다.

“예, 관주님. 그리고 저는 전이엘입니다.”

그의 말투에서는 억울함이 묻어났다.

주명희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그렸다.

“⋯⋯전이엘, 그래, 전이엘. 팔괘 거울하고, 부수(*符水: 부적을 태워 만든 재와 섞은 물)랑 자루, 아! 그리고 손전등도 부탁해.”

그 기이한 조합에 전이엘을 비롯한 이들은 의아해하면서도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관주는 한눈에 봐도 꽤 급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명희는 단 몇 분 만에 장비를 갖췄다.

흰색 가운 허리에 맨 삼끈엔 구세계의 팔괘 도안을 달았다. 중앙에 평범한 거울이 끼워진 팔괘였다. 그리고 왼손엔 검은 손전등, 오른손엔 투명한 플라스틱 물병을 들었다. 그 안엔 재가 떠 있는 물이 담겨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등엔 헐렁헐렁한 자루도 맨 상태였다.

참 기이하고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차림이었다. 남가관 사람들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전이엘이 물었다.

“관주님, 귀신이라도 쫓으시려는 겁니까?”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야.”

주명희가 정색하고 답했다.

그 말에 흠칫 놀란 전이엘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복숭아나무 목검도 챙기지 않으셨잖습니까!”

“그건 필요 없다.”

주명희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전이엘은 각성자도 아니라 그녀의 말을 더더욱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멍한 얼굴을 하고 있자, 주명희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든 것이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겠어?”

말을 마친 그녀는 손전등을 켜 그 빛기둥으로 뜨락을 비췄다. 이내 그녀는 남가관 밖을 향해 걸어갔다.

관각 밖에 이른 주명희는 오른 검지로 아주 작은 틈만 남겨둔 채, 뚜껑 없는 플라스틱병 주둥이를 막았다.

이내 그녀가 걸음을 옮기며 병을 휘두르자 안에 든 부수가 전방과 좌우로 조금씩 흩뿌려졌다.

그동안 주명희는 손전등 불빛을 왼쪽에서 오른쪽,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훑었다. 어둠의 장막 속, 숨은 적을 찾으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거리 양쪽 가로등은 개의치도 않고, 계속 움직였다. 동시에 끊임없이 허리를 비틀며, 삼끈에 달린 팔괘 거울이 각기 다른 곳을 비추도록 했다.

만약 구세계에 대해 적잖게 알고 있는 장목화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딱 한 마디로 이 광경을 정의했을 것 같았다.

무당의 굿, 지금 주명희는 굿을 하는 구세계 무당과 다름이 없었다.

* * *

산비둘기 술집 안의 모든 이들이 혼탁한 눈빛에 야수처럼 흉악한 무심자로 변했다. 이것이 환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용여홍도 장아홉과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을지도 몰랐다.

그 사이, 불을 끄자는 성건우의 제안을 듣고, 장목화는 그가 또 병이 도졌다고 생각하는 대신 그 방법이 과연 통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불을 끄면 모두가 서로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겠지. 그럼 상대를 괴물이나 무심자로 여기지 못하게 될 테고, 미친 듯이 공격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될 거야.’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불을 끄는 건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 같았다.

환각은 주로 감각 기관에 영향을 미쳤고, 시각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감각 중 하나였다.

‘근데 문제는 그 고등 무심자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른다는 건데……. 빛이 없는 상황에서도 허상의 괴물을 보게 할 수 있다면? 청각이나 후각 등으로 시각 중추를 왜곡시키거나 목표의 머릿속에 직접 상응하는 광경을 떠오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등을 껐을 때 오히려 더 많은 혼란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거야. 환각으로 인한 영향은 아무것도 해결하지도 못하고. 만약에 그 고등 무심자가 빛이 없는 틈을 타 아무도 몰래 이 술집에 들어온다면?’

장목화의 머릿속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이 충돌하며 불꽃을 튀겼다.

그래도 그녀는 경험과 직감에 근거해 빠른 속도로 판단을 내렸다.

“그럴 필요 없어!”

동시에 장목화는 재빨리 위치를 바꾸며 명령을 하나씩 하달했다.

“2번 방안! 문 닫아! 창문 닫아! 나크다닌!”

2번 방안이란 구조팀이 자주 사용하는 대책 중 두 번째로, 각자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기고 국면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공격하는 대신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게 요점이었다.

이러한 지시를 하나하나 풀어 말하는 것보다 ‘2번 방안’이라 말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엔 단 1초 만에 생사가 갈릴 수 있었다. 그러니 특정 번호로 대신하면 적들에게 다음 행동을 숨길 수도 있고, 실수로 동료를 다치게 할 불상사도 제거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동작을 마친 장목화가 문가에 붙은 후, 다음 명령이 이어졌다.

지금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은 각자 낮은 담,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 굉장히 두꺼운 벽돌 모퉁이에 숨어 있었다.

탕!

고요한 적막 속, 총성이 울려 퍼졌다.

구조팀 네 사람도 한 무심자가 권총을 뽑아 문 쪽으로 총을 쏜 것을 확인했다. 무심자는 사냥 본능에 따라 총을 쏜 것이었다.

다행히 타르난은 사적인 싸움이 금지된 데다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어, 현지 주민들은 무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에 습관이 돼 있었다. 지금 상황이 통제 불가할 정도로 치닫지 않은 건 모두 그 덕분이었다.

물론 불안함을 느끼는 소수의 주민과 외부에서 온 유적 사냥꾼, 상인단 단원들은 경우가 달랐다. 그들은 소총이나 기관단총처럼 숨기기 불편한 무기까지는 없었지만, 몸에 권총 한두 자루 정도는 챙겨 다니는 편이었다.

그들은 곁에 있는 이들이 모두 무심자로 변한 것을 보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뽑아 들려 했다.

하지만 그 무심자들 역시 동시에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총을 꺼내려는 상대의 행동을 저지했다.

탕! 탕!

결국 소수의 몇몇이 허리춤의 총을 뽑는 데 성공했다. 그중 더러는 문가 괴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더러는 가장 가까운 곳의 무심자를 겨냥했다.

몇 발의 총성 이후, 두세 명의 무심자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쓰러진 몸에선 피가 울컥울컥 솟구쳤다.

총을 뽑아 든 이들은 사방을 경계하며 미리 살펴둔 출구로 향했다. 그들의 시선에 담긴 무심자들의 수가 너무도 많았다. 심지어 일부는 총까지 들고 있었기 때문에 처리는 로봇 경비대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장목화의 명령을 들은 성건우와 용여홍, 백새벽이 분분히 허리를 굽히고 창가로 다가가 열려 있던 창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쾅!

이후 그들은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고, 전술 배낭을 풀어 안에서 꺼낸 약 하나를 그대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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