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밤
이번 판을 끝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 사이, 술집 사장 채이훈은 다른 일들을 마치고 첫 번째 음식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첫 요리는 통조림 안에 든 햄이었다. 기계에 8분간 튀긴 햄은 겉면이 자체적으로 배어 나온 기름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냄새도 한층 짙어졌다. 심지어 통조림 식사에 물렸던 구조팀 네 사람마저 코를 킁킁거리며 군침을 삼키게 될 정도였다.
이윽고 네 사람은 젓가락으로 잘 구워진 햄을 한 조각씩 집어 먹었다. 평소에 먹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기름에 튀긴 듯한 향 덕분에 더는 물리지도 않았다.
“맛있네.”
금세 한 조각을 먹어 치운 장목화가 흡족하게 말했다.
그러자 벌써 두 번째 조각을 먹고 있던 성건우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이제, 조리법, 개발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먹으랴, 맞장구치랴, 성건우의 입술은 쉴 새도 없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네 사람은 이렇게 술집 사장이 가져오는 음식을 먹으며 당구를 즐겼다.
* * *
저녁까지 다 먹어도 바깥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그래도 장목화는 팀원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성건우에게 춤을 출 틈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론 휴대용 컴퓨터로 교환하고 남은 통조림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비둘기를 나와서도 성건우는 걸음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엔 못내 아쉽다는 빛이 가득했다.
“바람도 많이 부는데⋯⋯.”
“어? 뭐라고?”
성건우의 중얼거림에, 장목화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되물었다.
이번엔 용여홍과 백새벽도 성건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바람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었다. 거의 웬만한 사람도 날려버릴 수 있을 만한 강풍이라, 목소리도 바람에 다 묻히고 있었다.
지금 네 사람은 하나같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살짝 움츠린 자세로 세린 드림 여관을 향해 걷고 있었다.
어둑해진 밤엔 좌판도 없어서, 가로등 불빛만이 빈 적막을 달래고 있었다. 용여홍은 이 미칠듯한 고요함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한참을 걷던 그때였다. 언제나처럼 주위를 관찰하던 장목화의 눈빛이 돌연 빠르게 굳었다.
비스듬히 떨어진 전방에 반짝이는 조그만 전구들로 이뤄진 간판이 보였다.
[산비둘기 술집]
“이건⋯⋯.”
장목화의 발이 우뚝 멈췄다.
“운명의 계시였다.”
바람이 좀 잦아든 이 틈을 타 성건우가 카리스마 있는 방백을 남겼다.
“운명은 개뿔!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장목화는 언제나 이뤄지는 행사처럼 성건우를 째려본 뒤,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보조 칩이 장착된 의수를 이식받은 이래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었다. 중요한 건, 여태까지 뭔가 이상한 게 감지된 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용여홍은 잔뜩 긴장한 채 경계심을 드높였다.
곧이어 진지한 표정을 드러낸 성건우가 장목화에게 말했다.
“이런 상황을 전문 용어로 귀신에게 홀렸다고 하죠.”
용여홍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어, 백새벽도 진지한 얼굴로 추측했다.
“처음부터 여길 떠나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했던 건지도 몰라요.”
장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긴장할 것 없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잖아. 일단 다른 변화가 있는지부터 살피고, 문제가 외부에서 기인한 건지, 아니면 우리가 문제인 건지 한번 확인해 보자.”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산비둘기 앞으로 다가간 성건우가 나무판 두 짝으로 이뤄진 그 문을 세게 두드렸다.
쾅! 쾅! 쾅!
장목화는 성건우의 담대함에 놀라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하나 떠올렸다.
‘아까 전 우리가 술집 안에서 들었던 그 노크 소리, 설마 지금 건우가 낸 소리는 아니겠지?’
정말 황당무계한 가능성이었다. 장목화는 빠르게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냈다.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실제로 말을 했다간 용여홍을 더 긴장하게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곧 문이 열리고, 사장 채이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목화는 비로소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아까 전 술집에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문을 열었던 건 산 여우 강도단 구성원이었다.
그녀는 잠시 그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한 자신을 책망했다.
‘진짜로 귀신에 홀렸나 보네. 아니, 내가 이런 소리를 하다니. 귀신에 홀렸다고⋯⋯? 거리상의 환각인가?’
장목화는 계속해서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렴풋하게 추측을 이어갔다.
“너희, 왜 아직도 안 가고 있어? 뭘 놓고 간 거야?”
채이훈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재차 거세진 바람에 그의 말을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장목화가 술집 안을 가리켰다.
채이훈이 뭐라 호응하기도 전, 벌써 몸을 살짝 튼 성건우는 채이훈의 옆을 스쳐 지나 술집으로 들어갔다.
‘공간도 많은데 왜 굳이⋯⋯.’
용여홍은 그런 친구의 모습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치솟는 듯했던 긴장은 어느새 적잖이 풀어져 있었다.
이어, 용여홍은 정상적으로 채이훈을 지나 산비둘기 술집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장목화는 백새벽까지 안전하게 술집으로 들어간 후에야 제일 끝으로 입장했다. 그녀는 모든 팀원이 술집으로 들어오고, 홀로 흔들거리다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나무 문을 바라보다가 채이훈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떠난 지 얼마나 됐지?”
장목화는 자신이 대략 짐작하고 있는 시간과 채이훈이 알고 있는 시간을 비교해 볼 생각이었다.
“3, 4분 정도 됐지, 아마?”
채이훈이 바 테이블 근처 벽시계를 돌아보며 답했다.
“그럼 됐네.”
장목화가 짐작한 시간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시간상의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은 듯했다.
그런데 막 그녀의 말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돌연 검은 그림자가 문 위쪽으로 휙, 날아들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성건우, 용여홍도 동시에 뒤를 돌았다.
검은 무언가는 살점이 뭉그러진 시체였다.
채 감지도 못한 그의 눈엔 극도의 공포가 어려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이미 엉망이 돼 있었다. 또 한쪽 팔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는 데다 목에는 뭔가에 물어뜯긴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굶주린 식인 야수를 만나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 * *
남가관.
주명희는 오늘도 삼끈으로 허리를 졸라맨 흰 가운을 입고, 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현재 감실 안 용의 상징을 마주한 채 교파에서 정리한 구세계의 경전을 읽는 중이었다. 경전은 전부 환각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녀 주변에 자리한 꿈 인도자 여럿과 꿈 미혹자들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경전을 읽거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단, 소리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한 꿈 인도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명희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녀에게 경전 해독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다.
주명희는 침착하고도 덤덤하게 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그러던 그때, 감실 안에 용의 상징을 이루고 있던 깨진 거울들 조각 표면에서 미약한 빛이 흐릿하게 번득였다.
흠칫 놀란 주명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동시에 그녀 주변에 있던, 조금 전 가르침을 청한 꿈 인도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인영이 점차 사라져갔다. 결국 남은 건 실재하는 다섯 명뿐이었다.
* * *
세린 드림 여관.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여관 주인 아이노는 프론트 데스크에 웅크려 앉아, 전자 설비 세 대를 동시에 사용 중이었다.
원래 놓인 정면 컴퓨터에선 구세계의 드라마가 재생되고 있었고, 손에 든 손바닥만 한 기기엔 문장들이 가득했다.
또 그녀의 오른편에 있는 구조팀에게 받은 최신형 휴대용 컴퓨터에선 도안 여러 개와 문자, 그리고 수치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창 그것들에 푹 빠져있다가 문득 고개를 든 아이노가 허리를 세워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휙-
치직, 치직…….
음산한 바람이 불어닥치자 여관 내 전깃불이 소리를 내며 기이하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창밖에 검은 그림자들이 보일 듯 말 듯 어리기 시작했다.
순간 아이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뒤이어 그녀는 마치 타조처럼 몸을 웅크리며 고개를 숙였다.
“가짜야, 분명 가짜일 거야⋯⋯.”
아이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마우스를 움직여 최신형 휴대용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게임 설정을 바꿨다.
음산한 바람이 여관 홀을 관통하자 위쪽 전깃불은 더 어두워졌다. 당장이라도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가짜야. 귀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아이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전자 설비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주변 상황은 완전히 잊을 수 있다고 세뇌하는 모양이었다.
어두워졌다 밝아지길 반복하는 빛 속에, 여관 홀 벽에도 검은 그림자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며 이동하고 있지만, 실체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어디선가 허공 속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아이노는 몸을 한층 더 웅크리며, 드라마, 소설, 게임에 더 매달렸다.
그러던 그때, 그녀는 순간 목덜미에 닿은 서늘한 기운에 온몸의 솜털이 쭈뼛 솟았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르며 여관 밖으로 달아날 뻔했지만, 아이노는 끝끝내 그 충동을 억눌렀다. 일반인이라면 차마 못 했을 선택이었다.
분명 누군가 뒤쪽을 배회하며 그녀의 목덜미에 끊임없이 서늘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노는 여전히 자리에 웅크린 채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고, 소설을 읽는데 모든 정신을 쏟고 있었다.
“환각이야. 전부 환각이야⋯⋯.”
아이노는 스스로에게 계속 용기를 불어넣으며,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잊으려 안간힘을 다했다.
* * *
산비둘기 술집.
살점이 다 뭉그러진 시체의 출현은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술집 손님 대부분은 유적 사냥꾼 신분이 있었다. 하지만 머신 헤븐의 보호를 받는 타르난은 치안이 워낙 좋은 데다 주위 구역 폐허 도시도 오랜 탐색 끝에 잠재된 위험도 거의 제거된 상태였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살인과 이렇게 끔찍한 시체를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이들과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었다.
순간 발생한 소란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마작, 카드 게임을 하던 이들, 흥정하던 사람들, 춤을 추려고 기다리던 이들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웅크리거나, 한데 모여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수군거렸다. 그중 용기를 내 문 쪽으로 다가와 시신을 살피는 이들도 더러 있기는 했다.
하나같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중급 사냥꾼이었다는 채이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잠깐 놀랐던 그는 곧 감정을 추스르며 눈앞의 시체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몇 초 후 그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 여우 강도단 사람이야.”
채이훈은 죽은 사람의 소속을 알아보았다.
장목화도 그의 판단을 인정했다.
“산 여우 강도단은 여길 떠나자마자 습격당한 건가? 하긴, 그러고 보니 갑자기 광풍이 불고 노크 소리가 들린 후에 바로 떠났었잖아.”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던 모양이었다.
그때, 시체를 살피던 채이훈이 다시 구조팀 네 사람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왜 돌아온 건데? 뭐, 위험의 징조를 느끼기라도 했어?”
그는 이 네 사람이 뭔가 기척을 느끼고 곧장 술집으로 돌아왔기에 산 여우 강도단이 겪은 비극을 피했으리라 생각했다.
“걷다 보니 여기로 돌아와 있었어. 아무래도 귀신에 홀린 것 같아.”
성건우는 빠르게 답하며, 여관 사장 아이노의 음산한 말투를 흉내 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흠칫했다. 어떤 이는 못 참겠다는 듯 문 쪽으로 향하기도 했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 로봇 경비대를 찾으려는 것 같았다.
장목화는 그런 상대를 힐긋 바라보며 경고했다.
“경솔하게 나갔다간 저 사람과 같은 결말을 맞게 될 수도 있어. 난 산 서남쪽 구역의 그 고등 무심자가 타르난에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거친 바람도, 방금 들린 노크 소리도, 우리가 길을 잃게 만든 것도 전부 환각일 거야.”
그녀의 추측이 다시 술집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순간 주변은 아무도 없는 듯이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