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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257화 (257/649)

257화. 술집

무대를 가로질러 바 테이블 쪽으로 향하던 장목화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다가 용여홍에게 불쑥 물었다.

“저 사람들, 널 알아? 왜 네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고 말겠다는 표정들을 하고 있지?”

장목화의 말을 듣고 용여홍이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 카드 게임 중인 한 테이블에 그를 노려보고 있는 세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용여홍은 별로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아, 말씀 안 드렸나요? 저한테 바가지를 씌우려 했던 현지인 몇 명을 때려눕혔었거든요.”

첫 번째 개인행동 중에 있었던 일이었다.

“쟤들은 그 결과에 그다지 승복하지 않는 것 같은데.”

성건우는 마치 빨리 한 번 더 붙어봐, 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야 이상한 일도 아니지. 어쨌든 나한테 달려들지는 못하고 있잖아.”

용여홍이 또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대신 널 노려보고 있잖아!”

성건우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두 친구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용여홍에게 얻어 맞았던 세 사람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술집의 이웃들과 카드 게임을 같이 하는 일행들도 그 수가 적지 않았다. 과연 함께 원수를 갚아줄 수 있을까?

하지만 성건우의 키와 생김새, 그 옆의 장목화까지 확인하자 없던 자신감도 싹 달아나고 말았다. 세 사람도 결국 복수는 포기해버렸다. 저들은 척 봐도 건드릴 수 있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제 바 테이블에 도착한 구조팀은 무료한 듯 멍하니 있는 바텐더를 보았다. 술도 없고, 술을 마시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 그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이 술집 사장은 어디에 있지?”

장목화가 바 테이블을 두드리며 물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본 바텐더의 얼굴에 순간 생기가 돌았다.

“내가 사장이야. 생각해봐, 누가 굳이 할 일도 없는 바텐더를 고용하겠어?”

30대로 보이는 남자는 짙은 파란색 솜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또한 3대 7 가르마를 탄 그의 얼굴엔 밖에서 꽤 고생한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름이?”

성건우가 장목화 대신 예의 바르게 물었다.

술집 사장은 바로 웃으며 답했다.

“채이훈이야. 훈이라고 부르면 돼. 뭘 줄까?”

“먹을만한 음식이 있나? 보통의 음식 말이야.”

장목화는 자신의 요구를 숨기지 않았다.

채이훈이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농사를 도울 사람 두 명을 고용해서 한 사람에겐 닭을 기르게 하고, 한 사람에겐 돼지를 기르게 했어. 그래서 가족을 겨우 먹여 살리고 있는데 남는 식재료가 있을 리 없지.

근데 너희들, 유적 사냥꾼이지? 우리 술집에선 정기적으로 격투 시합이 열려. 챔피언이 되면 곧장 상도 타고, 저녁 식사도 푸짐하게 한 끼 먹을 수 있어. 일반적인 식사 말이야.”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마쳤다.

장목화가 나서기 전, 성건우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성가신 일이야. 나한테 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무슨 방법?”

채이훈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성건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납치해서 당신 가족한테 밀가루 한 포대, 쌀 한 포대, 돼지 한 마리, 닭 네 마리, 배추 한 바구니를 가지고 오게 하는 거지.”

채이훈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그 방법엔 좀 문제가 있을 텐데. 첫째, 너희가 과연 로봇 경비대를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너희가 과연 날 잡을 수 있을까? 왕년엔 나도 중급 사냥꾼이었어. 여기 아가씨랑 만나 결혼한 뒤 그간 모은 자산으로 술집을 열고 애쉬랜드에서 각종 즐길 거리를 모아놓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미 베테랑 사냥꾼이 돼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너희, 등급이 어떻게 되는데?”

그는 이 틈을 타 허풍을 떨기 시작했다.

“정식.”

장목화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는 듯 즉답했다.

그 말을 듣고, 채이훈이 돌연 화제를 전환했다.

“뭘 좀 먹을래, 아니면 놀래?”

성건우는 납치가 불발된 게 안타까운지, 싸움이 불발된 게 안타까운지, 어쨌든 참 아깝다는 얼굴로 전술 배낭에서 휴대용 컴퓨터 한 대를 꺼냈다.

“당신이 보고 결정해줘.”

장목화가 얼른 덧붙였다.

“흔하지 않은 맛이면 좋겠어. 남는 건 가져갈 테니까. 당구도 칠 거야.”

채이훈은 휴대용 컴퓨터를 집어 들며 웃었다.

“연줄이 좀 있나 보네. 문제없어. 이 술집엔 모든 게 부족하지만, 통조림 종류만큼은 다양하거든.”

거래가 마무리되자 용여홍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가축은 어디서 키우는 거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채이훈이 웃었다.

“무인 구역 건물 안에서. 거의 모든 주민이 그런 건물을 점유하고 있어. 타르난에서는 가장 흔한 게 그런 건물들이니까.”

무인 구역이란 누구도 살지 않은 구역을 일컫는 말이었다.

용여홍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반고 바이오 내부에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고 별도의 대가까지 치러야 했다. 그러나 이곳은 반고 바이오와는 꽤 달랐다.

잠시 후 구조팀이 당구대 쪽으로 향하던 그때, 돌연 벌떡 일어난 채이훈이 술집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한 무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무려 그 수는 열넷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은 금발에 쇠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었다.

구조팀에겐 익숙한 무리였다. 산 여우 강도단이었다.

채이훈은 곧장 앞으로 나아가 웃으며 그들을 맞았다.

“어, 아직 안 갔어?”

타르난 주민인 그는 산 여우 강도단의 약탈을 걱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큰 무리는 규칙을 어기지 않고도 술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으므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사람이라면 규모가 큰 무리는 언제나 두려운 법이었다.

곧이어 산 여우 강도단 우두머리 파나니아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우리 형제들의 욕구부터 풀어줘야지.”

그의 시선은 술집의 층계참으로 향했다. 그 부근에 놓인 오래된 소파엔 다양한 인종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런 술집에서는 그런 장사도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문제 될 건 없지. 누구든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손님이니까.”

채이훈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파나니아가 부하들을 이끌고 여자를 고르려던 그때였다. 부하 중 한 명이 그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두목, 저쪽에⋯⋯.”

부하의 말투는 이상하리만치 어색하게 들렸다.

그 말을 따라 시선을 돌린 파나니아는 아름다운 여자와 키가 큰 젊은 남자, 거기에 자신의 강도단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강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에 잘 띄지 않았던 한 여자를 발견했다.

네 사람 모두 웃음기 어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에 살짝 경련이 인 파나니아는 고개를 틀어 채이훈에게 말했다.

“갑자기 배가 좀 불편해서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어. 다음에 얘기하자고.”

말을 마친 그는 곧장 몸을 틀어 부하들과 함께 술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바로 그때, 파나니아의 곁눈에 아직도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는 구조팀 네 사람이 들어왔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쉰 파나니아가 오른손을 흔들었다.

“안녕.”

“안녕.”

성건우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호응했다.

그들의 인사에 술집 사장 채이훈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이내 산 여우 강도단이 술집 입구에 거의 다다른 그 순간, 바깥에서 돌연 거친 바람이 불었다.

휘이이잉-

세찬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마음이 불안해졌다.

‘산에서도 이렇게 강한 바람이 불 수 있는 건가?’

의혹을 품은 장목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쾅! 쾅! 쾅!

거센 바람을 뚫고, 갑자기 또 문 쪽에서 거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광풍 속, 갑자기 울린 노크 소리에 산비둘기 술집이 한순간 고요해졌다. 카드 게임, 마작, 혹은 흥정하거나, 춤을 추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일순간 모든 행동을 멈춰버렸다.

이때 성건우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참 예의가 바르네.”

그 말에 흠칫 놀란 용여홍은 곧 성건우가 그 말을 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산비둘기 술집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무판 두 개로 이뤄진 문은 슬쩍 밀기만 해도 열려서 굳이 노크할 이유가 없었다.

“좀 이상한데⋯⋯.”

장목화도 동조했다.

문 앞의 산 여우 강도단 우두머리 파나니아 역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술집 안에 자리한, 더욱 무시무시하고 거친 이들을 의식한 그는 부하 한 명에게 문을 밀라는 눈짓을 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바깥 거리, 가로등 불빛으로 밝혀진 구역에선 검은 그림자 하나가 어둠이 다스리는 구역으로 휙, 물러났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파나니아가 호탕하게 웃었다.

“어떤 녀석이 장난질이야?”

산 여우 강도단 우두머리는 웃으며 부하 열셋을 데리고 술집을 나갔다. 문을 이룬 나무판 두 짝은 안팎으로 몇 번 몸을 흔들다 서서히 멈췄다.

별일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자, 술집도 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카드 게임을 하던 이들은 앞에 놓인 칩을 밀어 넣고, 마작하던 이들은 손에 쥔 패를 만지작거렸다. 흥정하던 이들은 다시 상대와 합의를 재개했고, 춤을 추려 기다리던 이들은 술집 사장 채이훈에게 오늘 밤 날씨가 거치니 혹시 무대는 개방되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장목화 역시 시선을 거둔 뒤 옆에 놓인 당구대를 바라보았다.

당구공을 놓고 큐 하나를 골라잡은 성건우는 팁을 슥슥 문질러 닦고 허리를 숙였다. 한눈에 봐도 매우 전문적인 선수처럼 보였다.

“오, 좀 하네?”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 순간, 성건우가 시원하게 흰색 공을 쳤다.

탕-

흰 공이 한데 모인 빨간 공들을 퍼뜨렸다. 하지만 그 멋스러운 자세가 무색하게도 몇 개는 튀고, 날아가고, 구멍으로 직행하며 행보를 멋대로 정했다. 한마디로 말해, 엉망진창이었다.

장목화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당구대를 보다가,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안 쳐봤어?”

“다른 사람들이 치는 걸 보기만 했는데요.”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반고 바이오의 모든 층의 활동 센터에 당구대가 있는 건 아니었다. 대학이 자리한 350층에 당구대가 있긴 했지만, 워낙 인기가 많아서 어지간해서는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너는?”

장목화가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용여홍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다른 사람이 치는 걸 보기만 했어요.”

“하, 내가 가르쳐줘야겠네. 그래도 너희 정도의 눈썰미랑 완력, 운동신경이면 금세 배울 거야. 작은 흰둥이 너는, 칠 줄 알아?”

신이 나서 말하던 장목화가 마지막으로 백새벽에게 물었다.

백새벽은 위드 시티에 있었을 당시 술집과 무도장, 나이트클럽 등에 꽤 익숙한 모습을 보였었다. 아무래도 유랑 생활을 하는 동안 각종 기회를 노리기 위해 수시로 그런 곳을 돌아다녔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는 대개 당구대가 설치된 방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네.”

백새벽이 간결하게 답했다.

“그럼 우리끼리 한 번 치자. 저 아기들한테 시범 좀 보여주자고.”

장목화가 큐 하나를 뽑아 백새벽에게 건넸다.

곧이어 두 여자가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두 사람을 지켜보며, 당구의 기술이나 규칙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첫판의 승리자는 장목화였다. 그녀는 시원시원한 공격과 정확성, 힘 조절로 백새벽을 이겼다. 하지만 점수 차가 그리 큰 건 아니었다.

“야, 진짜 마왕이네?”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백새벽이 그 뛰어난 방어와 수비 능력으로 자신을 곤란하게 한 것에 대해 칭찬의 뜻으로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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