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신룡교
“신룡교 교회당으로 가자.”
용여홍의 가슴에 갑자기 긴장감이 밀려들었다.
“이대로 가도 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성건우가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물었다.
“게네바 시장한테 연락해서 로봇 경비대원들이랑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게 훨씬 더 안전할 것 같아.”
“안 될 건 없지. 역시 사람은 머리가 굵어지면 엇나가려고 하는구나.”
성건우의 답에 흠칫 놀란 장목화가 약간 화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대사는 어디서 들었냐? 그것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온 거야?”
“아뇨.”
성건우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장목화도 그가 이런 부분은 거짓말하진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어디서 배운 건데?”
용여홍은 뭔가 불길함을 느꼈지만, 그게 어디서 기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성건우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작은 빨강이가 엄마한테 두들겨 맞는 걸 옆에서 구경하다가요.”
“제기랄⋯⋯.”
용여홍이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어울린 친구를 동료로 만났을 때부터 예견됐던 불상사였다. 어쩐지, 몹시도 귀에 익더라니.
장목화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간단히 설명했다.
“로봇 경비대원과 함께 가면 괜히 분위기도 긴장되고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어. 우리가 지금 신룡교 교회당에 가는 건 그냥 장아홉이 신룡교 교도냐고 물으려는 거잖아.
신룡교의, 음, 거기도 주교가 있겠지? 그 주교에게 산 서남쪽 구역에서 나타났다는 고등 무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 환각을 깨뜨릴 방법이 있겠느냐고 물으려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민감한 질문이 아니니 굳이 일을 키울 필요는 없어.”
“그렇네요.”
설득당한 용여홍이 대꾸했다.
게다가 지금은 훤한 대낮이었고, 곳곳에 말을 할 줄 아는 감시 카메라도 설치돼 있으니 괜히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 * *
신룡교의 성소가 자리한 곳은 리버프론트 애비뉴 최북단이었다.
교회당이 아닌, 고대 애쉬랜드풍 관각인 건물은 흰 벽과 검은 기와로 이뤄져 있고, 위쪽엔 ‘남가관(南柯觀)’이라고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
활짝 열린 갈색 나무 대문 뒤론 뜨락이 자리해 있었다. 뜨락 맞은편엔 수많은 구름무늬로 장식된 편각이 한 채 세워져 있었는데, 상부엔 나무 대들보들이 도열하고 하부엔 검은 등받이 의자들이 배치돼 있었다.
편각 안 가장 깊은 곳에는 감실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감실 안에 모셔져 있는 건 깨진 거울 조각을 상감해 만든 용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신도 몇몇이 검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윽고 구조팀 네 사람이 감실 앞에 채 이르기도 전, 한 여자 성직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기껏해야 27, 8살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구세계풍의 고전적인 흰색 가운을 걸치고 허리는 삼끈으로 졸라맨 상태였다.
그리고 검고 빛나는 머리칼이 어깨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외모가 예쁜 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녀에겐 뭔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이 풍겼다.
성직자는 네 사람을 한번 훑어보다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오셨군요.”
“예?”
용여홍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 구조팀이 신룡교의 성직자와 만날 약속을 잡은 적은 없었다.
‘설마⋯⋯.’
용여홍은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의혹을 안고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설마 얘가 신룡교 성찬을 맛보려고 개인행동 중에 약속이라도 했나?’
성직자는 멍해진 네 사람을 보고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였다.
“긴장할 것 없습니다. 늦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 교파의 환세대초(幻世大醮)에는 중요하고 엄숙한 일들이 많으니까요. 꿈 보호자님 여럿도 종종 늦으신답니다. 심지어는 아예 참석을 잊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좋습니다. 그럼 입교 의식을 거행하실까요⋯⋯.”
“잠시만요. 이곳 성찬은 뭡니까?”
성건우가 상대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성직자가 의아한 눈으로 되물었다.
“알려드리지 않았나요? 저희 성찬은 매우 간단해요. 교파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작은 비스킷과 꿀물이죠.”
“꿀물⋯⋯.”
성건우가 망설였다.
그 사이 장목화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나섰다.
“사람을 잘못 알아보신 거 아닙니까?”
성직자는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부끄러운 얼굴을 했다.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럼 이건 여러분이 아니란 건가요? 딱 넷인데요?”
어색하게 웃던 성직자가 흰 가운의 비밀 주머니에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사진을 받아든 장목화는 기가 차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사진 속 네 사람은 전부 애쉬랜드인인 데다 남자 둘, 여자 둘이라는 것 외에 구조팀과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 없었다.
특히 제일 키가 큰 남자는 고릴라와 매우 비슷하게 생겨서,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와 성건우를 헷갈릴 순 없었다.
그런데도 성건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교 의식에 대해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황당한 걸로 따지자면 여기선 그가 제일이었다.
성직자는 사진과 구조팀을 몇 번씩이나 번갈아 보다가 그제야 자신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았음을 깨달았다.
민망하다는 듯 웃던 그녀가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서요.”
말을 마친 그녀는 허공 속 존재를 향해 경의를 표하듯 굽혔던 몸과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신령을 즐겁게 하기를.”
‘이게 대체 뭐 하는 교파야? 행사에 수시로 늦는 고위층과 신도들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전도사⋯⋯.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냐?’
곁에 있던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하지만 팀장은 이러한 상황을 비웃는 대신 모종의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용여홍은 뭔가 번뜩 깨달음을 얻었다.
‘혹시 이게 각성자가 지불한 대가인가?’
곧이어 감정을 추스른 장목화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쪽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남가관의 관주, 주명희라고 합니다. 주 우사(羽士)라고 부르시면 돼요.”
자기소개를 한 그녀는 조금 전 본인이 너무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요? 다들 좀 편하게, 마음 놓고 사세요.”
장목화가 미처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성건우가 먼저 물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꿈 보호자라는 분들은 왜 늦는 건가요?”
관주 주명희는 마침내 민망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 그저 기쁜 듯 얼른 답을 이었다.
“몇몇 분은 길을 잃는 바람에 늦으십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로 오셨죠?”
마침내 대화가 본론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한층 성직자다운, 안정되고 침착한 모습을 되찾았다.
할 말을 정리한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주 관주님, 산 서남쪽 구역에 고등 무심자 출현 소식은 들으셨나요?”
“네, 들었습니다. 왜요? 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나요?”
주명희는 너무도 태연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래서 장목화는 한발 더 나아간 질문을 던졌다.
“그럼 생존자 장진을 알고 계신가요? 장아홉이라는 별칭을 가진 사람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주명희가 답했다.
“모릅니다. 전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사람의 이름이라면 똑똑히 기억하거든요. 아마 저희 교파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가 교파에 가입했을 때 가면을 쓴 게 아니라면요.”
“거의 가능성 없는 얘기죠.”
성건우가 탐정 같은 말투로 대꾸했다.
‘고지용이라는 이름을 써서 닭 날개 튀김을 먹었던 게 누구더라?’
장목화는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긴 해도 분명 존재하고는 있었다.
다시 주명희에게 시선을 돌린 장목화가 말했다.
“저희는 장아홉을 심문하던 와중 그가 고등 무심자를 맞닥뜨린 후, 동료를 괴물로 보고, 용도 한 마리 봤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용이라⋯⋯.”
주명희의 표정이 점차 엄숙해졌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주명희는 네 사람을 보다 잠시 고민 끝에 말했다.
“만약 단순히 고등 무심자에게 환각 구현 능력이 있거나, 정신을 놓은 장진이 용을 본 거라면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 둘이 결합된 거라면 상당히 공교롭네요.”
“다른 설명도 있습니다. 이건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에요.”
입에 파이프만 물지 않았을 뿐, 지금 성건우의 태도는 탐정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주명희는 그것이 성건우의 평소 모습이리라 생각한 듯 별로 개의치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죠. 장진이 저희의 설교를 들었을 수도 있고, 그 고등 무심자가 무심병을 앓기 전 구세계의 용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저는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해서, 꿈 보호자님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이 교파를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좀 공교로운 상황이라 물어본 겁니다.”
남가관 관주 주명희는 가운 소매를 휘두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닙니다. 여러분들 설명을 들으니 저도 의심스러워지는걸요.”
장목화도 이제 화제를 전환했다.
“네, 주 관주님. 사실 저희가 이곳에 찾아온 건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저희가 산에 들어가 그 고등 무심자와 관련한 사건을 조사하려 한다면, 환각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주명희는 네 사람을 하나하나 훑어보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환각은 매우 큰 영역이라 저도 아주 얕은 수준의 지식 일부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간단하게 설명해드릴 수는 있어요.”
타르난 내 신룡교의 최고 성직자이자 남가관 관주인 주명희가 환각에 대해 모른다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그들 교리의 전부였다.
“불편하지 않습니다.”
성건우가 곧장 답했다.
‘이런 상황에 불편하지 않다고 말하면 저쪽에선 편하진 않다는 건가, 고민하게 되잖아. 말씀해주세요, 라고 답하는 게 더 예의 바른 표현이지.’
장목화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겉으론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이내 주명희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이 세상 자체는 환각입니다. 달지기로부터 기인하는 꿈이죠. 우리 신룡교의 주지는 달지기 깨진 거울을 즐겁게 함으로써 이 고통스러운 환각에서 벗어나 진실한, 그리고 아름다운 신세계를 마주하는 겁니다.”
‘이야, 역시 관주는 관주네. 이 틈을 타 전도하려 하다니.’
하지만 장목화는 역시 아무런 내색도 없이 진지하게 경청하는 척했다.
이 대목에서 주명희는 재차 몸을 살짝 굽힌 후, 양손을 들어 올리며 허공의 특정 존재를 향한 존경을 표했다.
“신룡은 높으시다.”
예를 갖춘 후, 다시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 일상은 환각과 접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제가 무엇이 환각인지, 환각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한다면 그건 틀림없는 거짓이죠. 하지만 여러분도 보셨다시피 전 아직까지도 이 꿈속을 배회하며 고생하고 있답니다.”
주명희가 한숨을 한번 푹 내쉬었다.
“환각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어디까지나 환각일 뿐이기 때문에, 갖가지 방면에서 사실과 똑같은 것처럼 보여도 거짓된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 거짓된 부분이 많든 적든, 한번 포착되면 그 환각은 그대로 간파당하고 말죠. 물론 달지기 수준의 존재가 만들어낸 환각은 진위를 구분하기 힘들어요. 인간이 스스로 간파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그 거짓된 부분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장목화가 물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신룡교의 이론과 영원한 세월 교파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보면, 주명희와 갈루란 도장은 기질이나 일 처리 태도에도 약간 비슷한 면이 있었다. 다만 한 명은 신령에, 다른 한 명은 도에 대한 자신의 체험과 깨달음에 의지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주명희는 ‘모든 건 다 꿈이니 그렇게 진지하게 굴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반해, 갈루란의 태도는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하기’, ‘도법자연’ 등에 더 편중돼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