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연구원
“그러니까 네 말은⋯⋯. 그 고등 무심자가 일반적인 고등 무심자가 아니라 수종이와 비슷한 급일 거라는 거야?”
장목화가 약간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구조팀 세 사람은 수종의 능력을 실제로 목격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그를 보호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했던 고등 무심자의 모습을 통해 그 능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만약 일반적인 고등 무심자를 뭇별 홀이나 기원의 바다에 진입한 각성자에 비유한다면, 수종은 적어도 심령의 복도에 들어간 각성자였다. 심지어는 염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럴 수도 있죠. 전 그냥 수종이랑 산에 있는 그 고등 무심자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할 뿐이에요. 그 무심자도 수종이 말에 순순히 따를까요? 근데, 만약 제가 수종이인 척한다면 비슷한 효과가 날까요?”
성건우가 돌연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을 치며 눈을 밝게 빛냈다.
“넌 너무 크잖아.”
장목화가 숨도 쉬지 않고 핵심을 지적하자, 성건우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러네요, 구부정하게 걸어도 수종이보다는 크니까요.”
그렇게 성건우의 쓸데없는 소리에 빠르게 감정을 추스른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임무의 구체적인 설명을 살폈다.
설명을 끝까지 다 읽고, 용여홍이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임무에 붙은 신용 점수가 겨우 500점밖에 안 되네요?”
임무의 등급도 B에 불과했다. 위드 시티에서 있었던 유호중 총살 사건 조사 임무보다 겨우 한 단계 높을 뿐이었다.
유호중이 아무리 성주 저택과 관련돼 있고, 고위층의 중시를 받는 인물이었다 한들 그 일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평범하디 평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사건은 무려 로봇 경비대원 열 대가 연루됐다. 자그마치 위드 시티 도시 방위군과 비슷한 병력이었다. 그것도 위드 시티 방위군이 미리 진지를 갖추고 모든 중무기를 제자리에 배치해뒀을 때의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그 부분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장목화는 잠깐의 고민 끝에 그 이유를 파악해냈다.
“상황을 조사하는 임무지, 그 고등 무심자와 직접 대적해야 하는 임무는 아니니까.”
이 임무는 괴물을 정리해야 하는 임무가 아닌, 정찰 임무에 가까웠다. 위험하긴 해도 무시무시한 목표를 마주하는 임무보단 훨씬 가벼운 편이었다.
백새벽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으면 아무 위험도 없을 거야.”
만약 고등 무심자가 로봇 경비대원들과 전투를 치른 흔적을 남겨두고 벌써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면, 로봇 경비 대원들이 다 파괴됐어도 그들 몸에 달린 블랙박스로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보수도 꽤 두둑하네.”
장목화가 덧붙였다.
임무 의뢰인은 타르난의 시장 게네바였다. 그는 중요 정보를 알아낸 유적 사냥꾼들에게 비 지능형 전투 로봇 열 대를 나눠주겠다고 했다. 로봇이 필요 없다면 동등한 가치를 갖는 다른 물건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있었다.
“맡을까요?”
성건우가 의욕을 보였다.
장목화는 그를 힐긋 노려보며 대꾸했다.
“그래도 좀 위험한 일인데. 우리가 진짜 유적 사냥꾼이라서 절대적으로 임무를 완수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성건우가 자문자답하듯 설명했다.
“자동차로 변신할 수 있는 로봇을 보수로 받고 싶어서요.”
“아⋯⋯.”
장목화가 망설였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팀원에게 이런 큰 위험을 부담하게 할 순 없었다. 그 고등 무심자가 정말 수종과 비슷한 급이라면, 다시 이두형을 만났을 때와 같은 행운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이때 백새벽이 냉정하게 덧붙였다.
“소스 브레인에게 줄 대가로 삼을 수도 있고요.”
“그건 그렇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장목화가 한동안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성건우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는데, 장목화가 한숨 같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임무를 맡을지 말지, 이렇게 경솔하게 결정해선 안 될 것 같아. 일단 이 임무를 소스 브레인과 만나는 대가로 삼을 수 있을지 확인하고 그 후에 타르난에서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다 수집해서 얼마나 위험할지 보자.”
말을 마치고 돌아선 그녀가 사냥꾼 길드의 대문으로 향했다.
그 순간, 용여홍이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네바가 아직 저희 요구를 거절한 게 아니잖아요. 소스 브레인과 만나고 싶다는 그 요구요.”
“그렇지⋯⋯. 그럼 좀 더 기다려보자.”
장목화는 아직 그 길이 막히지 않았으니 급히 방향을 틀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산 서남쪽 구역 일은 짧은 시간에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 * *
다음 날 오전, 구조팀이 막 아침 훈련을 끝냈을 무렵, 검푸른 군복을 입고 등에 개인용 바주카포를 맨 로봇 경비 대원 하나가 세린 드림을 찾아왔다.
방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장목화는 팀원들과 함께 내려왔다.
“무슨 일이지?”
눈에 파란빛을 발산하는 로봇 경비 대원은 카리스마는 가득해도 결코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 그 목소리로 답했다.
“게네바 시장께서 소스 브레인은 어떤 사람과도 만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
“알겠어.”
장목화도 이 로봇 경비 대원은 그저 말을 전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별다른 말은 보태지 않았다.
로봇 경비 대원이 여관을 빠져나가자, 프런트 데스크에 앉아 있던 사장 아이노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소스 브레인을 만나고 싶으세요?”
살짝 놀란 장목화가 바로 되물었다.
“왜요? 방법이 있나요?”
한편 성건우는 이미 아이노의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오늘도 캐시미어 드레스로 갈아입고 여전히 화려한 차림을 뽐내고 있던 아이노가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며 웃었다.
“저도 소스 브레인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머신 헤븐은 구세계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품고 있어요. 줄곧 그 관련인을 찾고 있죠.”
아이노는 능수능란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맥시미언 같은 사람이요?”
장목화가 순간 떠오른 인물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내 아이노는 막 떠오른 태양처럼 활짝 웃었다.
“이 아가씨는 참 똑똑하시네. 일찍이 손윗사람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자가 무슨 제3 연구원의 수석 과학자였다고 하더군요.”
“제3 연구원?”
장목화는 자연스레 차으뜸과 그의 배후에 있는 제8 연구원을 떠올렸다.
아이노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구체적인 건 모르고 그 비슷한 연구원이 아홉 곳이란 것만 알아요. 그 연구원은 구세계 파괴 전 가장 큰 애쉬랜드인 국가와 가장 강력한 레드리버인 국가가 연합해 설립한 연구 기구래요. 미래로의 지향이 골자라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여관 사장도 분명 과거에 어떤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거야. 그러니 이런 많은 것들을 알고 있겠지.’
“고맙습니다.”
장목화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지만, 아이노는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
“말로만 고맙다고 하면 뭐해요? 하룻밤을 같이 보낼 잘생긴 남자 두 명 정도는 붙여줘야지.”
“켁, 콜록⋯⋯.”
용여홍이 제 침에 사레가 들려 기침을 연발했다.
그에 반해 성건우는 잔뜩 신이 난 듯 상기된 얼굴이었다.
“좋아요, 좋아요! 밤새 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고, 카드 게임도 하죠!”
아이노는 다시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됐어요. 농담이에요. 전 이미 다 늙어서 젊은 사람들은 감당이 안 돼요.”
‘왜 이렇게 귀에 익지? 아, 그래. 고부겸 회장도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구조팀은 아이노에게 작별을 고하고 지프에 올랐다.
팀장 장목화는 운전대를 잡은 백새벽에게 강 서쪽으로 운전을 주문했다. 시청으로 가 타르난 시장 게네바를 만날 생각이었다.
시청은 10층짜리 건물이었다. 깨끗하게 닦인 유리 벽이 햇볕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구조팀은 청소 로봇을 마주했다. 대걸레처럼 생긴 그것엔 쓰레기들을 둘둘 감아 빨아들일 수 있는 기계 촉수들이 달려 있었다. 덕분에 로봇은 바닥은 물론 천장까지 꼼꼼히 청소했다.
청소 로봇뿐만 아니라 무기 모듈 여러 개가 부착된 전투 로봇과 경음악을 재생 중인 휴지통 모양의 로봇, 고양이나 개 등의 애완 로봇 등등까지 이곳엔 온갖 로봇이 가득했다.
그중 옷을 입은 지능 로봇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개체 수로 따지자면 지능 로봇이 가장 적은 편이었다.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구조팀은 꼭대기 층 한 사무실로 안내받았다. 그곳에 로봇 시장 게네바가 있었다. 여전히 검푸른 군복을 입은 게네바는 창 앞에서 동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조팀 네 사람이 방으로 들어오자, 게네바는 그제야 돌아서서 그 부드러운 중저음으로 말했다.
“또 무슨 일이지? 소스 브레인을 만나고 싶다는 거라면 여지는 없어.”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만약 우리가 산 서남쪽 구역에서 벌어진 고등 무심자 관련 사건을 조사하고, 연락이 끊긴 경비 대원들을 찾아 돌아온다면?”
한동안 말이 없던 게네바가 대꾸했다.
“그럼 재차 청을 해볼 수는 있겠지. 하지만 보장은 못 해. 그래도 소스 브레인이 만나주지 않는다면 다른 보수를 선택하라고.”
예상했던 답변에 장목화는 곧장 입을 열었다.
“사실 산 서남쪽 구역 상황을 해결하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야. 대략적인 범위를 파악한 뒤, 그곳을 향해 유도탄을 발사하고 대포를 쏴대면 되잖아.”
이는 인간 군대가 고등 무심자를 처리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미사일과 포탄이 무지막지하게 소모되기는 해도, 머신 헤븐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터였다.
멈춰있던 게네바가 몇 발짝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첫째, 그건 효율이 떨어져. 둘째, 거긴 지형이 매우 복잡한 산 구역이라 포탄을 피하거나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아주 많아. 셋째⋯⋯.”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경비 대원들은 내 동반자야. 그들의 상황을 정확히 확인하기 전까지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어.”
지능 로봇에게 동반자란 말을 듣는 건 아무래도 좀 어색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게네바의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여태껏 보고 들은 것들을 통해, 머신 헤븐 내 지능 로봇의 지위는 다른 로봇보다 높고 그 수는 극히 적다는 결론을 손쉽게 내렸었다.
이런 상황에 게네바의 핵심 프로그램 속 로봇 경비대 대원의 지위와 생사의 가중치가 높게 설정돼있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해해.”
그러나 정작 이 말을 한 건 장목화가 아닌 성건우였다. 그는 꼭 의형제를 잃는 슬픔에 대해 깊은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다.
장목화는 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대신 화제를 전환했다.
“임무 위험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최종적으로 해당 임무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선 당신한테 더 많은 정보를 얻고 허가를 받아야 해.”
게네바는 등받이 의자 옆으로 돌아와 잠시 고민하더니 합성음으로 말했다.
“좋아, 뭘 알고 싶지?”
이때 용여홍은 방금 전 팀장의 말을 곱씹다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게네바에게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상응하는 허가를 받은 뒤에도 위험도가 너무 높다는 이유로 이 임무를 받지 않으면, 거의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었다.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몇 마디 말을 통해 상당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물론 이는 분명 합당한 일이었다. 유적 사냥꾼 대부분은 정보가 부족한 임무는 좀처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길드는 의뢰자가 임무를 의뢰할 때 심문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