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이단
이철은 신령의 숨에 푹 적셔지는 느낌을 설명한 뒤,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두 분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의 뒤편, 신령을 대표하는 제단 위엔 붉은 대문이 달린 철흑색 용광로가 그려져 있었다. 그들 교파의 성휘이자 달지기 작열하는 문의 상징이었다.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민스가 준 편지를 건네라고 눈짓으로 말한 뒤, 직접 자신들을 소개했다.
“저희는 외부에서 온 유적 사냥꾼입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십방 상사의 민스가 산 여우 강도단에 붙잡힌 것을 발견하고 도와줬었죠. 이건 민스가 이철 씨께 전하는 편지입니다.”
이철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어디서 누군가 뜨거운 물을 끼얹기라도 한 듯 몸을 비틀며 짧은 춤을 추었다.
“신의 숨결에 푹 빠지기를.”
춤을 마친 그는 축복하더니 탭댄스 비슷한 춤을 조금 더 추면서 장목화와 성건우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대들을 위한 춤을 바치리.”
성건우는 그의 동작을 흉내 내며 호응했다.
“신의 숨결에 푹 빠지기를.”
그런 그의 반응에 흠칫 놀란 이철이 물었다.
“당신도 교파의 사람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의 허락을 받지는 못했죠.”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예?”
당연히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이철이 멍하니 되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미 성건우의 돌발 행동에 면역이 된 장목화가 또 나서야 했다.
“일단 편지부터 보시죠.”
“좋습니다.”
편지를 펼친 이철이 익숙한 필체로 쓰인 편지를 찬찬히 살폈다.
이내 편지를 다 읽은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도 달지기를 숭배하며 저희 교파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거군요.”
“예, 예, 예.”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이철은 감정을 추스르며 진지하게 물었다.
“정식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저희 용광로 교파에 가입하길 원합니까? 우리 교파의 규칙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더는 이전처럼 아무런 구속도 없는 삶을 살 순 없다는 겁니다.”
잠시 침묵하던 성건우가 반문했다.
“그런 규칙들이 전 인류를 구하는 데 영향을 끼칠까요?”
“예?”
이철은 이번에도 성건우의 생각을 따라잡지 못했다. 장목화 역시 이번엔 설명을 돕지 못했다.
살짝 머뭇거리던 공헌자 이철이 말했다.
“그러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교파의 성서에 신도의 세계 구원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규칙은 없었다. 또한 성서에는 그런 부분은 달지기, 특히 작열하는 문에게 남겨져 있었다.
성건우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구세계 파괴 원인을 조사하는 건요?”
이철의 이마에서 더 많은 땀이 솟아났다.
“이론상으로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신도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니까요. 설령 당신이 강도라고 한들, 무고한 생명을 남살하지 않기만 한다면 작열하는 문을 믿을 수 있습니다.”
답을 하는 사이 이철의 머릿속엔 오직 한 생각만 떠올랐다.
‘이 사람, 대체 뭐지?’
교파에 가입하여 성직자가 된 이래 이렇게 기이한 질문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그를 가장 곤란하게 했던 질문이라고는 기껏해야 교파에 가입하면 식량을 받을 수 있는지, 배우자를 짝지어주는지, 죽은 후 반드시 화장해야 교리에 맞는 게 아닌지, 춤을 잘 춰야만 달지기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이런 정도에서 그쳤다.
성건우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문제없습니다. 가입하겠습니다.”
이철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이번엔 장목화가 물었다.
“듣기론 같은 달지기를 믿어도 전도 구역의 차이, 서로 간의 연계 부족, 상응하는 지역의 주류 문화, 신탁과 성서에 대한 다양한 해석 등으로 교파가 여러 개로 나뉜다던데요. 작열하는 문을 숭배하는 집단도 그런가요?”
이철은 느릿하게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습니다. 원래는 하나였지만 후에는 둘로 갈라지게 됐죠.”
“왜죠?”
장목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는 개인적인 흥미에서 비롯된 질문이기도 했지만, 성건우에게 이 교파에 가입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도 했다.
이철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달지기의 말씀에 대한 이해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죠. 저희가 생각하는 중점은 작열과 화염입니다. 이는 용광로라는 개념으로 조합된 뒤, 춤과 훠궈로 확장됐죠. 저희 용광로 교파 안에서 8월은 신성한 달이고, 8월의 열기는 신령의 또 다른 기운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다른 교파는 춤이 화염보다 더 중요하며 그것이 달지기를 더 기쁘게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저희가 정도에서 벗어났다고 질책하기까지 하죠.”
그러자 호기심이 인 성건우가 물었다.
“어떻게 벗어났다고 질책하던가요?”
“그들은 불로 음식물을 직접 가공하는 것이야말로 신실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과 음식물 사이에 다른 그릇을 두는 행위는 아랫길이며, 그것을 성찬으로 볼 순 없다는 겁니다. 거짓된 믿음이라는 거지요!”
이철의 감정은 점차 격앙되었다. 이단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훠궈의 정도를 계속해서 걸어 나가고 말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장목화의 표정이 살짝 이상해졌다.
“그래서, 그들의 성찬은 뭔데요?”
“바비큐입니다.”
이철이 감정을 애써 다잡으며 답했다.
장목화는 그 답을 예측했음에도 얼굴 근육이 경련하는 걸 어쩌지 못했다. 그녀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의견 대립이었다.
반고 바이오 안전부 직원들은 외근을 나갔다가 가끔 구세계의 컴퓨터를 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그런 컴퓨터에 들어있던 데이터 중엔 복구가 가능한 것도 있고 불가능한 것도 있었다.
장목화는 일찍이 그렇게 복구된 자료를 살피다 황당무계한 기록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알감자에 소금을 찍어 먹느냐, 설탕을 찍어 먹느냐, 아무것도 안 찍어 먹느냐를 주제로 한 분쟁 기록이었다.
이전까진 그저 구세계의 인터넷상에 돌았던 농담일 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분쟁을 직접 마주하니, 충격은 배가 되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또 금세 흥미를 보였다.
“그럼 용광로 교파에서도 바비큐를 먹을 수 있나요?”
“가능은 하지만,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요. 야외에서는 바비큐보다 더 편리한 요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 때문에 모험을 하는 교도들에게까지 이러한 태도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이철은 완곡하게 교파의 태도를 밝혔다.
이 대목에서 살짝 고개를 튼 장목화는 약간 망설이는 듯한 성건우를 보았다. 속으로 웃음을 삼킨 그녀는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 교파 이름은 뭡니까? 그 신도들은 훠궈를 먹을 수 있나요?”
“그들은 광란의 춤이라 불립니다. 교리에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은 이상 훠궈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돼 있죠.”
이철은 더 이상 이단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성건우에게 물었다.
“타르난에서 금방 떠날 계획은 아니지요?”
“적어도 일주일은 머물 예정입니다.”
장목화가 성건우 대신 답했다.
이철도 바로 말을 받았다.
“사흘 뒤 오후 2시에 세례 의식이 있습니다. 그 의식에 참여하면 정식 교도가 될 수 있어요. 하하, 잊지 마십시오. 오후 2시는 교파의 성시(聖時)랍니다. 매일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이 시간에는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세요. 일반 미사 의식에는 정해진 시간이 없지만, 대 미사와 세례 의식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만 진행됩니다.”
“세례 의식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성건우가 의욕을 보였다.
이철은 곧 미사실 문을 가리키며 답했다.
“일반 미사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세례자는 준비한 옷을 입을 수 없어요. 반드시 발가벗은 채 교회당의 붉은 목욕 수건을 둘러야 합니다. 미사실에서 오래 버틸수록 달지기의 은혜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이야기를 듣던 장목화가 끼어들었다.
“대 미사는 뭐가 다른데요?”
“대 미사는 달에 한 번만 진행됩니다. 일반 미사와 다르게 열탕에서의 목욕과 신령을 찬미하는 군무가 추가되지요.”
이철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입교에 대한 대화를 마친 장목화는 구조팀이 타르난에 온 목적을 밝혔다.
“저희는 소스 브레인을 만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혹시 머신 헤븐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의 허락을 받아낼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타르난에 꽤 오랜 시간 있었습니다⋯⋯. 도시 사람들도 여기 오래 머물렀고, 각 세력을 대표하는 상인단도 여럿 오갔지만, 그중 소스 브레인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대부분은 소스 브레인의 존재도 모르죠.”
이철은 홀연 교회당 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그런 그에게 더 이상의 요구를 하는 대신, 몇 마디 한담을 나눈 뒤 작별을 고했다.
용광로 교파의 준회원인 성건우는 돌아서기 전 작열하는 문을 대표하는 성휘를 마주한 채 짧은 춤을 추었다.
이철은 그 모습을 보고 퍽 만족스러워했다.
* * *
타르난의 사냥꾼 길드 역시 가장 북적거리는 리버프론트 애비뉴의 중간 지대에 자리해 있었다.
안의 구조는 위드 시티의 사냥꾼 길드와 매우 흡사했다. 여러 개의 테이블과 상응하는 전자기기가 사냥꾼들의 임무 의뢰와 접수를 도왔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 규모가 위드 시티에 비해 작다는 것이었다. 직원은 셋뿐인데 그마저도 작업을 보조하는 여러 기계 덕에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다. 심지어 그들은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기까지 했다.
그중 얼굴이 동그란 직원 앞으로 다가간 용여홍과 백새벽은 아래가 뚫린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섰다. 용여홍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제야 고개를 번쩍 든 직원의 눈에 혼란의 빛이 어려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그녀는 한 박자 늦게 애쉬랜드어로 물었다. 직원이 쓴 말은 방언이 아닌, 레드스톤 마켓에서 쓰는 애쉬랜드어와 비슷한 말이었다.
백새벽과 이미 이야기를 마친 용여홍은 곧바로 답을 이었다.
“고부겸 회장님을 만나고 싶은데요.”
“아, 제가 한 번 여쭤볼게요.”
직원은 약간 당황한 듯 검은색 전화기를 들더니 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고 몇 마디 하던 그녀가 용여홍과 백새벽을 쳐다보았다.
“고 회장님께서 올라오라십니다. 2층 201호에요.”
‘이게 된다고? 이렇게 간단하게?’
용여홍이 흠칫 놀랐다.
위드 시티에선 사냥꾼 길드의 고위층을 만나기 위해 정확한 이유가 필요했었다. 이곳은 길드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별다른 규칙도 없는 건가?
용여홍도 이제 각기 다른 상황에 담긴 정보를 탐색하는 데 갈수록 익숙해지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고민으로 답을 얻어내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백새벽과 눈빛을 주고받은 그는 그녀와 함께 계단으로 향했다.
* * *
고부겸은 비쩍 마르고 왜소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이미 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에 숱은 적어도, 짙은 갈색 눈동자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검은색 트위드 상의에, 은색 금속 보온컵을 들고 있던 그가 사무 책상 맞은편을 가리키며 앉을 것을 권했다.
“두 사람 다 앉게.”
용여홍과 백새벽은 예의 바르게 응대한 뒤, 의자를 빼고 앉았다.
“무슨 일인가?”
고부겸이 쓰는 애쉬랜드어는 어딘가 좀 사투리처럼 들렸다. 이곳 사투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를 통해 용여홍과 백새벽은 이 사냥꾼 길드 현지 회장이 타르난 토박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주해온 1세대, 혹은 2세대이리라 짐작했다.
“고 회장님, 여쭙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용여홍의 예의 바른 태도에, 고부겸이 연하게 웃었다.
“그럼 일단 임무를 의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내가 그 보수를 보고 임무를 맡을지 말지를 결정하지. 소식이나 정보의 가치는 상당하다네.”
“⋯⋯.”
용여홍은 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과연 경험 많은 사냥꾼이자 현지 회장은 사냥꾼다운 삶을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