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47화 (247/649)

247화. 개인행동

여관의 프론트엔 30대 여자가 앉아 있었다.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스타일의 멜톤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애쉬랜드인이었고, 얼굴도 꽤 예쁜 편이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둘둘 말아 늘어뜨린 다음, 손님들을 웃으며 반겼다.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도시 안의 아무도 없는 집을 골라 그곳에서 묵으려고 하셨다면 아마도⋯⋯ 귀신을 만나셨을 거예요.”

그녀는 일부러 뜸을 들이며 짐짓 음산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말에 성건우가 잔뜩 흥분했다.

“어디요? 귀신 나오는 집이 어딘데요?”

“⋯⋯.”

여관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내걸렸다.

장목화는 몰래 웃으며 설명을 도왔다.

“얘가 귀신 애호가라 줄곧 귀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노력 중이거든요.”

여관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는 네 사람을 몇 번 살피다 숨을 내쉬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세상은 워낙 넓잖아요. 불가능이란 없죠.”

장목화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 역시 본인이 식견이 넓은 편이라 자부하면서도, 수시로 우물 속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성건우란 사람은 그녀의 상식으론 전혀 생각도 할 수 없는 짓들을 하기 일쑤였다.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여자가 다시 입을 떼기 전, 장목화가 먼저 물었다.

“당신이 아이노 부인인가요?”

레드스톤 마켓에서 만난 여러 밀수업자의 말에 따르면, 세린 드림 여관 사장의 이름은 아이노라고 했다.

이는 본명이 아닌, 타르난에 온 이후 그녀가 스스로 붙인 가명으로, 우딕과 비슷하게 애쉬랜드인 이름으로도, 레드리버인 이름으로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여자가 타르난에 오기 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쁘장한 여자가 손가락에 돌돌 만 머리카락을 풀며 웃었다.

“맞아요, 보아하니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온 것 같네요.”

“레드스톤 마켓에서 오는 길입니다.”

장목화가 솔직하게 답했다.

아이노는 약간 놀란 눈치였다.

“하, 꽁꽁 숨어 있기를 좋아하는 그 사람들과 친해져서 타르난에 관한 정보까지 알아낸 건가요?”

“그들과 함께 어인과 산 요괴의 침입에 맞서 싸웠거든요.”

장목화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레드스톤 마켓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술술 털어놓지도 않았다.

아이노는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내력을 파고들 생각은 없다는 듯 화제를 전환했다.

“방은 몇 개나 필요하세요?”

“몇 개면 될까요?”

장목화가 되물었다.

아이노는 장목화를 위아래로 몇 번 살피다, 웃으며 말했다.

“역시 영리하시네. 우리 세린 드림 여관은 일반적인 여관과는 달라요. 유적 사냥꾼 팀과 각 세력의 상인단을 위해 전문적으로 개조된 곳이니까요. 한 팀이라면 여러 방에 흩어지긴 싫겠죠. 혹시 뜻밖의 상황이 생기면 소통도, 합류도 어려울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침대 네 개를 몰아넣은 한 방에서 묵기엔 야영과 다를 바 없으니 불편할 거예요.”

‘기껏해야 나보다 열몇 살 많을 텐데, 한참 나이 많은 사람처럼 말하네.’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건 별로 상관없어요. 그냥 붙어 있는 방 두 개면 될 것 같네요.”

아이노가 눈을 살짝 굴리며 말했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더 나쁜 선택지를 고를 이유가 있나요? 방 두 종류를 추천해드릴게요. 하나는 인접한 벙커 침대 방 두 개예요. 중간에 그 방 두 개를 직접 연결하는 문이 하나 있어서 왕래하기 편하죠.

다른 건 구세계에 있던, 방 세 개짜리 집과 비슷한 스위트 룸이에요. 네 명이 묵기 딱 좋고, 사생활 보호도 되죠.”

“가격은요?”

장목화가 물었다.

솔직히 그녀는 아이노의 말을 듣자마자 이미 마음이 동했다. 아이노의 말처럼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 굳이 그걸 피하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주위를 슬쩍 살펴보니, 성건우와 용여홍도 더 좋은 방에 묵고 싶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있었다.

지금 구조팀의 형편도 꽤 괜찮았다. 얼마 전 만난 민스에게 받은 대량의 휴대용 컴퓨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새벽은 팀원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곳에서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사실 어느 방에 묵든 상관이 없었다. 물론 그녀 역시 좋은 곳에서 묵을 수 있다면 더 만족스러워할 터였다.

곧이어 아이노의 뺨에 옅은 보조개가 피어났다.

“그야 무슨 물건을 가졌는지에 따라 다르겠죠. 타르난에서 가장 가치 없는 건 전자 제품, 기계, 통조림, 압축 비스킷, 에너지 바 같은 거랍니다.”

“저희가 가진 건 전자 제품뿐인데요. 특히 휴대용 컴퓨터가 많죠.”

타르난의 상황을 알고 있던 터라, 장목화는 딱히 놀란 기색도 없었다.

“어떤 모델인가요?”

아이노가 물었다.

네 사람은 침묵했다. 그들은 머신 헤븐산 휴대용 컴퓨터가 어떻게 분류되는지, 그들이 가진 것이 어떤 모델인지 알지 못했다.

이내 돌아선 성건우가 곧장 여관 밖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품에 검은색 휴대용 컴퓨터 두 대를 안고 돌아왔다.

“G-35? 최신형이네요. 타르난에 방금 막 도착했는데 어떻게 이걸 손에 넣었죠? 이런 물건은 임해 연맹에서도 봄은 돼야 볼 수 있는데.”

아이노는 체크인용 구형 컴퓨터를 보며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타르난에 오는 길에 한 상인단을 구해줬거든요. 막 타르난에서 나와 임해 연맹으로 돌아가던 길이라고 하더라고요.”

장목화가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노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하, 민스를 만났나 보네요. 겨울에는 함부로 길을 나서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래도 끝끝내 말을 안 듣더라고요. 하하, 원래 윗사람 말을 듣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법이라니까요!”

아이노는 민스가 이끄는 상인단에 별일이 없었으리라 짐작하곤, 좀 고소하다는 듯 말했다.

‘나이 든 척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 아니면 실제로는 진짜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가?’

장목화는 갖가지 생각을 떠올렸지만, 딱히 증명할 수 있는 건 없어서 아무 확신도 갖진 못했다.

“그럼 스위트 룸으로 하세요. 7일 묵는데 이 컴퓨터 두 대 받을게요.”

아이노는 대화를 통해 구조팀에게 상당히 친근감을 느낀 듯했다.

그러나 장목화는 약간 눈썹을 찌푸렸다.

‘7일에 두 대? 퍼스트 시티나 위드 시티 같은 곳에서는 한 대만 줘도 한 달 이상은 묵을 수 있을 텐데.’

장목화는 이 휴대용 컴퓨터가 대형 세력 내부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머신 헤븐산 제품은 더욱 그랬다.

이는 해당 제품의 생산 기술이 매우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컴퓨터 한 대는 여러 방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큰 역할을 했다.

그 십방 상사 사람들이 최신형 휴대용 컴퓨터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도 그들과 타르난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는 그 컴퓨터가 원래는 없었던, 뜻밖의 재물이었다는 생각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 * *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가 프린트된 검은색 카드키를 받은 구조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애쉬랜드의 여러 여관에는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낮은 층일수록 방값이 비싸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낮은 층에 묵으면 뜻밖의 사고가 생겼을 때 창밖으로 뛰어내려서라도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광범위한 수요에 의해 일어난 변화였다.

구조팀이 묵게 될 221호는 복도 가장 안쪽에 자리해 있었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소파와 티 테이블, 탁자, 의자, 장식장이 놓인 거실이었다.

그곳에 난 문 네 개는 각각 침실 세 개와 욕실로 연결돼 있었다.

호화롭다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반고 바이오에서 나와서 지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좋은 방에 묵은 적이 없던 구조팀은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정말 심장이 떨릴 정도로 흡족한 방이었다.

“내가 거실에서 잘래!”

성건우가 먼저 나섰다.

장목화는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그를 저지하기로 했다.

“팀장인 내가 거실에서 잘 거야. 난 너희들을 봐야 할 의무가 있어. 특히 너, 네가 한밤중에 여홍이를 깜짝 놀라게 하도록 둘 수는 없지.”

갑자기 성건우가 눈을 반짝였다. 왜 진즉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용여홍이 바르르 몸서리를 치는 것을 확인한 장목화는 정말로 거실에서 자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팀장의 권위에 따라 방을 배정받은 구조팀은 손과 얼굴을 씻고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개인 정비를 마친 장목화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웃었다.

“오늘 밤에는 한 가지 훈련을 할 거야.”

“예?”

몰려드는 피로에 일찍 잘 생각을 했던 용여홍이 꽥 소리쳤다.

장목화가 빙그레 웃었다.

“이번 훈련 이름은 ‘개인행동’. 여태까진 협조와 팀워크를 강조했지만, 세상일이란 예측이 어렵잖아. 혼자 낙오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그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문제 해결이 어렵겠지.

오늘 밤, 우리는 각자 흩어져 타르난의 정보를 수집한다. 지금은 8시 30분이니까 10시까지 방에 돌아오는 것으로 하자고.”

그녀가 손목시계를 보며 말을 끝마쳤다.

“알겠습니다!”

흥분한 성건우가 곧장 답했다.

‘쟤를 정말 혼자 돌아다니게 둬도 되는 건가? 괜찮을까?’

용여홍이 가장 먼저 염려한 건 본인의 안위가 아닌, 고삐가 풀린 성건우였다. 그것도 정확히는 성건우가 아니라 타르난 사람들이 걱정스러웠다.

용여홍이 입을 열기도 전, 장목화가 그를 지목했다.

“작은 빨강이, 너부터 나가.”

“예.”

* * *

세린 드림 여관을 나온 용여홍은 거칠게 부는 차가운 바람과 어두운 밤하늘, 그리고 고요히 잠든 거리를 마주했다.

‘나 혼자다…….’

새삼스레 끼쳐오는 현실이었다.

이곳은 낯선 도시고, 주위에도 전부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렸지만, 그의 마음에 안정을 주는 동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순간 용여홍은 억누를 수 없는 불안함에 휩싸였다.

“습, 후⋯⋯.”

심호흡 몇 번으로, 용여홍도 비로소 걱정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재웠다.

이제 그는 일단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 계획하기로 했다. 또렷한 목표를 잡아야 불안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법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한 인영이 그를 지나쳐 가장 시끌벅적한 거리로 돌진했다.

고개를 든 용여홍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그 실체를 알아챘다.

성건우의 뒷모습이었다.

“⋯⋯.”

용여홍은 잠시 잊었던 타르난의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치솟았다.

몇 초 뒤, 다시 정신을 차린 용여홍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정보를 수집하라고 했지. 그럼 어떤 정보를 수집해야 할까? 우리 목적은 메인 브레인, 아니, 소스 브레인과 만나 구세계 파괴의 단서를 찾는 거야. 만약 그가 우리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우린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겠지.

그래, 거리를 걸으면서 나이 많은 현지 주민을 찾아 머신 헤븐에서 어떤 걸 가장 필요로 하는지 물어보자.’

방향을 잡은 용여홍은 확실히 불안이 점차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용기를 낸 그는 성건우가 사라진 그 갈림길로 향했다.

* * *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2~300미터 더 걸었을 무렵, 점점 소리가 더 왁자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용여홍의 눈앞에 가장 북적이는 거리가 나타났다.

수없이 오가는 행인 중엔 레드리버인도, 애쉬랜드인도 있었고, 그 두 인종의 수많은 분파에 속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잠시 살피던 용여홍은 숨을 들이마시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문제없어.’

전방 거리로 발을 들이며, 그는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에 찬 아이스모스 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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