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44화 (244/649)

244화. 게네바

뒤따라오던 차가 속도를 늦춘 것을 보고, 요르겐센이 다시 무전을 보냈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건 타르난의 수리 로봇입니다. 육중하고 투박하고 민첩하지 못해서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지요.

“하지만 차로 변신할 수 있잖아!”

장목화의 무전을 타고, 성건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내 장목화는 시선을 거둔 뒤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일단 이 도시 시장인 게네바에게로 안내해줘.”

- 알겠습니다. 강의 서쪽인 이곳은 머신 헤븐 로봇들의 활동 구역입니다. 다리 건너의 동쪽이 인간들을 위한 곳이고요. 게네바 시장의 집은 강 서쪽의 다리 근처에 있습니다.

요르겐센은 상세히 설명하며, 다른 강도에게 목적지로 운전해달라 말했다.

온종일 산 구역을 지나왔기에 당연히 요르겐센 홀로 운전을 도맡을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장목화의 동의를 얻어, 자신이 대적할 수 있을 만한 녀석의 손을 풀어준 뒤 그와 교대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 * *

도시는 크지 않았다. 구조팀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상당히 새것으로 보이는 다리 옆에 이르렀다.

다리 우측으로 강에 접한 구역엔 독채들이 세워져 있었다. 나무 안쪽에 숨겨진 그 건물 중 일부 현관엔 겨울에도 푸른 잔디가 깔려 있기도 했다.

동료에게 차를 잘 세워놓으라고 한 뒤 요르겐센이 문을 열고 내렸다.

“저 흰색 집입니다.”

구조팀 네 사람은 길가 가로등 불빛 아래 가까스로 그 지능 로봇들의 거주 구역을, 또 다리 끝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무리를 보았다.

이미 구면이라 익숙하다 해야 할까, 무리는 바로 산 여우 강도단이었다.

산 여우 강도단의 우두머리 파나니아는 쇠뿔이 달린 투구를 들고 곁에 있는 부하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게네바 시장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 이번에 입은 손실이 워낙 커서, 가지고 있는 물건을 최대한 빨리 팔지 않는 이상 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 교활한 상인 녀석들은 우리 꼴을 보고 분명 가격을 후려치려 할 거야. 그보다는 공정한 로봇들이 훨씬 낫지. 값을 더 쳐주지는 않지만, 적게 쳐주지도 않으니까.”

말하는 사이, 강 옆의 도로로 방향을 튼 그들은 막 로봇 시장 게네바의 집으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가로등 불빛 아래 익숙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이 버려두고 떠났던 동료들, 자신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그 강력한 팀원들이었다.

파나니아를 비롯한 산 여우 강도단은 성건우를 맞닥뜨린 적도 없고, 외골격 장치에 딸린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용여홍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지만, 어깨에 바주카포를 멘 미인에 대해선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불과 피에 휩싸인 듯 막강하면서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여자!

웅-

강도단의 머릿속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강도단은 무기를 꺼내 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곧장 방어 자세부터 취하기 급급했다.

장목화는 강도단보다 앞서 그들을 발견하고, 빠르게 그쪽을 한 번 훑어본 뒤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열네 명⋯⋯.”

뒤이어 그녀는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네가 앞을 맡아. 우리가 뒤를 맡을게.”

간단했다. 자신과 백새벽, 용여홍은 뒤에 있는 다섯을 처리할 테니, 전방에 자리한 아홉 명을 처리하라는 뜻이었다.

한순간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에 요르겐센을 비롯한 포로들은 바들바들 떨었다. 전방에 자리한 주인의 명령을 따라 원래 두목에게 저항해야 할지, 기회를 노려 배신하고 이 속박에서 벗어나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싸움이 끝나기만 기다려야 할지,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중립을 택한다면 누가 쏜 건지도 모르는 총알을 맞고 죽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한 가로등 옆에 달려 있던 검은색 감시 카메라에서 전자합성음이 흘러나왔다.

- 타르난에서는 사적인 싸움이 금지돼 있습니다. 즉시 무기를 거둬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파나니아를 비롯한 강도들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타르난이라 다행이야.’

그들이 막 이러한 생각을 떠올린 때였다. 그 가로등 앞으로 달려간 성건우가 고개를 바짝 쳐든 채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더 이야기해봐, 더!”

말을 할 줄 아는 감시 카메라는 갑자기 침묵에 빠졌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요구였다. 당연히 이런 대처법은 데이터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말을 할 줄 아는 감시 카메라가 자신을 무시하자, 성건우는 실망한 듯 장목화의 곁으로 돌아갔다.

장목화는 멍한 표정을 드러낸 강도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어디 가나 봐?”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빌런 같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산 여우 강도단의 우두머리 파나니아가 애써 웃음을 짜냈다.

“게네바를 만나려고. 타르난의 시장이자 로봇 경비대 대장.”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으려, 파나니아는 일부러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장목화는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 참 공교롭네. 우리도 마침 게네바 시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오는 길에 강도 몇 명을 잡았거든. 게네바 시장에게 맡겨 처리하려고.”

이 대목에서 그녀는 요르겐센을 비롯한 이들을 가리키며 맞은편의 강도단을 처음 본 것처럼 말했다.

파나니아는 누군가에게 뺨을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음속 통증을 참으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타르난에 확실히 감옥이 있긴 하지.”

파나니아 역시 구조팀도 초면이고, 요르겐센 등도 마치 처음부터 부하로 둔 적이 없었던 것 같은 태도였다.

저들을 수하로 인정한다면 맞은편 유적 사냥꾼 팀은 곧장 공격에 나선 뒤 증거를 들어 강도를 잡았다고 하거나, 머신 헤븐의 스마트 모니터링에 바로 신고해 현지의 경찰 로봇들을 움직이게 할지도 몰랐다.

여태 그런 상황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파나니아는 머신 헤븐의 지능 로봇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어떤 모험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요르겐센을 비롯한 포로들의 표정은 약간 난감해졌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상황에서 그들이 입을 열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장목화는 말없이 파나니아와 수하들을 쓱 훑더니 겸허하게 웃었다.

“둘 다 게네바 시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면, 너희가 먼저 가.”

‘가식적이야.’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성건우가 갑자기 고개를 홱 틀었다.

“너, 팀장님 욕했지!”

“아, 아냐!”

용여홍이 말을 더듬거리며 반박했다.

‘뭐야, 얘. 능력이 변했나? 독심술까지 할 줄 알게 된 건가?’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 용여홍을 보고,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들켰네, 들켰어!”

‘난 정말 멍청이야, 정말로⋯⋯.’

뜨끔한 용여홍이 애써 부인했다.

“아니라니까!”

그 두 사람의 대화에 강도들은 약간 의아해했다. 하지만 파나니아는 의아한 와중에도 장목화의 질문에 곧잘 대답했다.

“아니, 우린 급하지 않아. 따로 할 일도 있거든.”

“야만스럽게 생겼는데, 그렇게 예의가 바를 줄은 전혀 몰랐네.”

장목화는 그런 상대를 칭찬한 뒤 돌아서서 게네바의 독채로 향했다.

기름진 금발을 길게 기른, 거친 인상의 사람이 손에 쇠뿔이 달린 투구까지 쥐고 있었다. 파나니아는 확실히 그 말대로 야만스럽게 생긴 사내였다.

팀장은 얼마든지 불손하고 예의 없게 굴 수 있지만, 성건우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산여우 강도단을 향해 손을 휘휘 흔들며 인사했다.

“나중에 또 봐!”

‘또 보는 일은 영원히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파나니아는 이 상황이 못내 한탄스럽긴 했다. 하지만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면, 그 치욕을 씻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단순히 군용 외골격 장치 한 대뿐이었다면 강도단을 제대로 무장시키고 적당한 기회를 노려 복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부분은 저 팀원 중 당시 전력을 다해 공격했던 건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머지 셋은 여유롭게 박자만 적당히 맞추거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아마도 포로를 감시하거나 음악을 틀고 있었던 듯했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했던 그 사람 앞에서 맥도 추지 못했던 강도단이 복수에 나선다는 건, 그냥 사는 게 지루해 죽고 싶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 여우라는 칭호가 붙은 건 이 강도단이 그만큼 교활하고 신중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잘못 부른 이름은 있을지 몰라도, 남이 붙인 이름 중 잘못된 건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그때 파나니아를 비롯한 강도들은 키가 크고 잘생긴 그 젊은 남자가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들의 심장이 재차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파나니아가 떠보듯 오른손을 들어 살짝 흔들었다.

“또 보자고.”

성건우는 그제야 만족한 듯 돌아서더니 자신의 일행을 빠르게 쫓았다.

황당함과 답답한 마음에 휩싸인 강도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즐거워 보이네.”

장목화의 평가에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의 저는 예의에 엄격한 편이라서요.”

입꼬리를 살짝 뒤틀던 장목화는 상대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저 녀석들, 성 선생님에게 감사해야겠는걸.”

곁에 있던 백새벽은 말없이 그들을 힐긋 살핀 뒤 이런 얼토당토않은 대화에 끼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정신마저 이상해질 것 같았다.

곧 게네바의 독채에 도착한 구조팀과 포로들은 겨울에도 여전히 푸른 잔디밭을 가로질러 그 문 앞에 이르렀다. 경비는 없었다.

“자, 네 예의를 보여 줄 시간이야.”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관중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듯 성건우가 즉각 앞으로 나가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이내 열린 문 사이로 한 로봇이 나타났다.

키가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이 로봇의 금속 골격은 실버 블랙 색이었다. 검푸른 군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그의 눈동자 안에선 파란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하지만 옷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장목화는 그것에 어떤 기능성 부품이 부착돼 있는지, 어떤 무기 모듈이 장착돼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너희들은 누구지?”

로봇이 부드러운 남자의 중음으로 물었다. 기복이 있지만, 목소리는 인간의 것과 매우 흡사했다. 다만 합성음인 그 음성에서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우린 타르난에 새로 온 유적 사냥꾼 팀이야. 게네바 시장을 만나러 왔어.”

성건우는 장목화가 평소 쓰는 말투를 흉내 내며 생글생글 웃었다.

검푸른색 군복을 입은 거구의 로봇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내가 게네바다. 들어와. 커피, 아니면 차? 전부 임해 연맥 북부 산 구역에서 생산된 거야.”

로봇은 입구에서부터 마실 것을 권했다.

“커피로 하지.”

장목화는 구조팀원 중 자신을 제외하면 누구도 커피를 맛본 적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약간 음흉한 마음으로 그 음료를 골랐다.

반고 바이오 내 직원들은 연말과 연초에 찻잎을 약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레드스톤 마켓 내의 찻잎은 퓨쳐인텔리 등의 세력으로 수출되거나 밀수되는 상품이긴 했지만 그렇게 보기 드문 물건은 아니었다.

검푸른 군복 차림의 지능 로봇 게네바는 이내 손님들을 위해 길을 비켜주며 집 안쪽을 향해 외쳤다.

“수산나, 커피 여덟 잔 좀 준비해줘.”

“네 잔이면 돼. 이 녀석들에게는 필요 없으니까.”

성건우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

게네바는 파란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요르겐센을 비롯한 포로들을 슥, 훑어보더니 바로 말을 고쳤다.

“네 잔!”

용여홍과 백새벽은 게네바의 얼굴과 목, 손까지 전부 가린다면 꼭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머신 헤븐의 구성원이자 타르난의 시장, 또 로봇 경비대의 대장이기까지 한 게네바는 그만큼 누가 봐도 인간 같았다.

‘이게 머신 헤븐의 최신형 지능 로봇인 건가?’

장목화와 용여홍, 백새벽은 동시에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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