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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242화 (242/649)

242화. 재미있는 사람의 마음

침묵하는 동료들을 보고, 요르겐센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우릴 도망칠 수 없게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는 건지도 몰라.”

동료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요르겐센이 다시 덧붙였다.

“생각해봐, 저들은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단 한 명만으로 우리 강도단을 해치웠어. 나머지 셋은 심지어 별 공격도 하지 않았다고. ‘사자는 늑대를 동료로 삼지 않는다.’란 속담 못 들어봤어? 외골격 장치를 착용했던 그자는 분명 그들 중 가장 약한 자였을 거야. 나머지 셋에게는 우리를 감시하거나 때맞춰 우리의 도주에 대응할 나름의 강점이 있을 게 분명해.”

요르겐센의 말에 얼굴에 흉터가 난 강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그냥 따라가자. 괜히 도망치려 했다가 뱀 이빨처럼 바주카포를 맞고 싶지는 않으니까.”

뱀 이빨은 당시 구조팀을 가장 앞서 쫓았던 첫 번째 차의 기사였다.

“그래, 우리를 구하러 올 사람이 없다고 해도 머신 헤븐의 손에 넘어가면 기껏해야 1, 2년 정도 갇혔다가 풀려날 거야.”

또 다른 강도도 동조했다. 머신 헤븐의 감옥이라면 먹을 것은 풍족하지 않겠지만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닐 터였다.

동료들이 더 이상의 이의를 표하지 않자 요르겐센은 차를 몰고 개조된 지프의 뒤를 따랐다.

사실 그는 이 멍청한 동료들이 끝끝내 도망쳐버리자는 결정을 내렸더라도 그에 응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나머지 셋은 모두 두 손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아무런 위협도 할 수가 없었다.

* * *

“진짜 따라오네⋯⋯.”

지프 뒷좌석에서 뒤로 고개를 돌린 용여홍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포로들이 알아서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용여홍은 팀장이 의도적으로 포로들이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준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대로 포로들을 데리고 있어봤자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구조팀은 일반적인 상황에선 포로를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르난까지 데려가려 한다면, 성가시게도 그들을 감시하고 살필 사람까지 따로 둬야 했다. 딸린 사람이 많아지면 뜻밖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포로들은 구조팀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와중에, 스스로 알아서 자신들을 감시하며 얌전히 따라오고 있었다.

“훠궈의 맛을 잊을 수 없었나 봐.”

성건우가 백번 이해된다는 듯 말했다.

“쟤네가 너냐?”

용여홍이 대꾸하자마자, 성건우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쳤다.

“망했다. 잊고 있었어.”

“뭘?”

순간 긴장한 용여홍이 물었다.

“민스에게 향신료를 빌렸어야 하는데.”

성건우가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

용여홍은 친구에게 휘말려서는 안 됐다고 재차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성건우의 슬픔에 약간 공감하기도 했다.

그런 향신료가 없다는 건, 당분간은 맛있는 훠궈를 먹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애써도 단순하고 평범한 훠궈밖에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때, 장목화가 룸미러로 뒷좌석을 살피며 웃었다.

“여홍이 네가 방금 전 멋진 모습으로 저들의 사기를 다 꺾어놔서 그래. 사람 마음이란 참 미묘하지.”

운전 중인 백새벽도 덧붙였다.

“감당할 수 있는 결과보다 모르는 게 훨씬 무섭게 느껴지니까요.”

* * *

그대로 저녁 무렵까지 달리던 구조팀은 이 주위 지형에 익숙한 포로들의 도움 아래 깨끗한 수원이 있는 곳에 야영지를 만들었다.

“저들의 밧줄을 풀고, 함께 가서 나뭇가지와 장작을 구해와.”

장목화가 요르겐센에게 지시했다.

그녀는 상대가 자신에게 완벽하게 복종하기로 결심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는 분명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내린 결정일 터였다. 이러한 양치기가 있으니 다른 포로들 역시 말을 더 잘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요르겐센이 나머지 세 강도에게 각자 해야 할 일을 지시하던 순간, 뭔가를 떠올린 장목화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넌 가지 마. 따로 물을 게 있으니까.”

“예.”

요르겐센은 이 강력한 전사에게 경어를 붙여 답하고 싶었지만, 어떤 칭호를 써야 할지 몰라 대답만 했다.

‘두목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장목화는 다른 포로들이 장작을 구하기 위해 주위의 숲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여유롭게 물었다.

“타르난에서 혹시 메인 브레인이라는 거 들어 봤어?”

요르겐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그곳 로봇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들이라 좀처럼 유용한 정보를 캐낼 수가 없습니다.”

이 구역에서 주로 쓰는 언어는 애쉬랜드어였기 때문에, 요르겐센은 레드리버 인임에도 불구하고 애쉬랜드어를 곧잘 했다.

“그곳 시장은 누구지?”

그곳의 로봇에 대해 관심이 꽤 많은 성건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요르겐센은 타르난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게네바라는 지능 로봇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무슨 안전청에 소속된 타르난 분대 대장이라고 일컫죠. 조금 기이한 데가 있는 로봇입니다.”

“기이하다니?”

장목화가 이러한 질문들을 하는 건, 레드스톤 마켓에서 얻은 자료와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요르겐센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렇게 기이하다고 할 순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타르난에는 그와 비슷한 지능 로봇이 꽤 많거든요. 그들은 자발적으로 성별을 구분해 가정을 이룹니다. 어떤 로봇은 내부 루트를 통해 각종 모듈을 교환한 뒤, 스스로 작은 로봇을 조립하면서 그걸 자기 자식으로 삼기도 하고요. 그런데 로봇에 성별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겁니까?”

* * *

점심을 워낙 거하게 먹은 탓에 구조팀은 저녁 사냥과 요리에 힘을 쏟는 대신, 통조림과 에너지 바, 압축 비스킷 등으로 식사를 대충 때웠다. 게다가 겨울 산에서 야생동물을 찾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길 아는 사람이 많아?”

모닥불가에 앉은 장목화가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요르겐센을 보며 물었다.

요르겐센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당직을 서고 있는 동료들을 힐긋 바라본 뒤 비위를 맞추기 위해 헤실헤실 웃으며 답했다.

“이곳은 치랄 산 서남쪽 끝에 자리한 마지막 수원지입니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여기 야영지를 마련한 다른 상인단과 유적 사냥꾼 팀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을 겁니다.

저희는 이 근처에 종종 매복하곤 했습니다. 규모가 크고 화력도 강력해 보이는 무리가 나타나면 못 본 척하고, 네다섯 명 정도로 이루어진 팀을 발견하면 곧장 달려들어 총을 갈겼죠. 이렇게 고정적으로 수확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면, 저희 두목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거느리진 못했을 거예요.”

이때 얼굴에 흉터가 난 강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 일들이 잦아지다 보니, 소규모 상인단과 유적 사냥꾼 팀은 후에 자기들끼리 모여 큰 규모를 이룬 뒤 이곳으로 와 물을 길어가기도 했습니다. 휴, 저희를 소탕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고용된 유적 사냥꾼 팀도 있었죠. 언젠가 한 번은 다시는 이곳에 매복할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된통 당한 덕분에, 산속에 개간된 밭에 의지해 겨우 목숨을 부지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려 하는 동료의 모습에 요르겐센은 약간 짜증이 난 듯 그를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이 하는 헛소리는 듣지 마세요. 치랄 산 구역은 임해 연맹에서 타르난에 이어지는 주요 무역 노선에 놓여 있습니다. 그 길에서 약탈한 물건은 타르난에서 얼마든 쉽게 식량으로 바꿀 수 있고요. 산에 있는 그 썩은 밭은 주로 집안 여편네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농부를 겸직하는 강도든, 강도를 겸직하는 농부든 장목화는 전혀 이상하다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는 레드리버인임이 분명한 요르겐센이 ‘헛소리’나 ‘여편네’와 같은 표현을 잘도 쓴다는 사실이 흥미로울 뿐이었다.

‘강도에게도 아내가 있는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여홍이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성건우가 이 틈을 타 물었다.

“수확은 어땠어?”

“예?”

요르겐센이 멍하게 되물었다. 상대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이건 농부끼리 문 앞에 쪼그려 앉아 한담을 나눌 때나 하는 질문 아닌가? 상대가 옷소매에 양손을 넣고 있었다면 더 그럴듯하게 보였을 듯했다.

장목화 역시 웃음이 나왔다. 성건우는 어디에서 이렇게 농부 같은 말을 배운 것일까? 그녀는 그냥 웃으며 성건우의 말을 무시했다.

“오늘 밤은 너희끼리 둘씩 한 조를 이뤄서 교대로 당직을 서도록 해. 우리도 그럴 테니까.”

그녀는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포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더러 오랫동안 습관처럼 이어온 야간 당직을 서게 했다.

바로 그때였다. 성건우와 백새벽이 동시에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당히 밀폐된 산골짜기인 이곳엔 바위틈새로 흘러내린 깨끗한 물이 연못을 하나 형성하고 있었고, 그 주위론 차 한 대가 겨우 다닐만한 길이 나 있었다. 물론 걸어서 이동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주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철판을 덧댄 듯한 짙은 남색 산악 자동차 한 대가 이쪽으로 들어왔다. 섀시도 높고, 타이어도 크고, 참 커다란 차였다.

“멋진데!”

성건우가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 멋지고 잘생긴 미남 같은 차였다.

그가 장목화보다 먼저 그 차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반응한 건, 감지 범위가 확장돼서가 아니라 그 차의 엔진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산악 자동차 역시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연못 반대편에 세워진 차와 방금 막 설치된 텐트를 발견했다.

곧이어 차의 속도가 급격히 줄었다. 안의 사람은 무기를 챙기며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는 듯했다.

산악 자동차는 느릿하게 사람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현재 구조팀과 산악 자동차 사이엔 작지 않은 연못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내 그 차에서 세 남자와 한 여자가 자연스럽고 침착하게 내렸다.

그들 중 한 명이 물을 긷고 한 명이 장작을 구하러 간 동안, 나머지 둘은 산악 자동차 옆에서 경계심 어린 눈으로 구조팀과 포로들을 주시했다.

그들은 겉모습으로도 확연히 구분되었다. 요르겐센을 비롯한 네 강도는 못생긴 데다 품위도 없어 보였고, 행동 하나하나도 왠지 미심쩍게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살피던 구조팀은 산악 자동차를 타고 이곳에 온 네 사람 중 한 사람에게서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차 보닛 옆에 선 그의 키는 장목화보다는 크고, 성건우보다는 살짝 작았다. 합성 재료로 고쳐진 듯한 오른쪽 머리 절반엔 은백색 금속광이 났다.

또한 왼쪽 이마엔 불규칙한 파편 조각이 하나 끼워져 있었는데, 왜인지 그 파편을 뽑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만 평평하게 다듬어둔 상태였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등에 검 한 자루를 비스듬하게 멘 그의 손에는 유선형으로 디자인된 권총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매우 짧은 편이었고, 마찬가지로 개조된 듯한 오른쪽 눈의 홍채에선 기이한 자홍색 빛이 번득였다. 그리고 왼쪽 눈 아래엔 눈에 잘 띄지 않는 눈물점도 하나 나 있었다.

“기계 개조인인가?”

용여홍이 성건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건우도 진지하게 답했다.

“응, 근데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건 개조인이라는 것뿐이야. 아직 기계는 보이지 않으니까.”

모든 금속을 다 기계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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