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41화 (241/649)

241화. 밥 친구

격렬한 협상 끝에 보수는 전체 중 40퍼센트의 물자로 결정되었다.

결론이 난 뒤에야 민스는 안도하며 동료들과 시체 쪽으로 향했다.

이내 막 허리를 굽히던 그가 돌연 탄성을 내질렀다.

“이걸 이대로 내버려 두고 간 거야? 보물도 못 알아보는군!”

그쪽으로 얼른 뛰어간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뭔데?”

민스는 파란색 작은 포대를 집어 들었다. 한 손에 잡힐 정도의 크기였다.

“내 향신료 주머니야. 이 안에 들어있는 건 전부 좋은 물건들이지! 우리 임해 연맹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많은 향신료를 구하려야 구할 수가 없네. 그 강도 녀석들은 이 주머니에 황금이나 칩, 고성능 배터리 같은 게 들어있는 줄 알고 챙겨갔었나 보군.”

성건우가 눈을 밝게 빛내며 물었다.

“먹을 때 쓰는 거야?”

“맞아. 일부는 국물 밑 재료로 쓰고, 일부는 찍어 먹을 양념장을 만드는 데 쓰지. 각자의 기호에 따라 다른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네.”

민스는 그 향신료들을 약간 성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상황이 별것 아니었음을 확인한 장목화가 용여홍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외골격 장치는 이만 벗어도 좋아. 보통 정도만 경계해도 충분할 거야.”

배터리를 아끼기 위함이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해가 뜨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예비용 배터리는 지프를 모는데 써야 했다.

용여홍이 성건우의 도움을 받으며 외골격 장치를 벗는 동안, 장목화는 백새벽의 곁으로 다가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는 강도들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산 여우 강도단이냐?”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남은 강도들이 앞다퉈가며 답했다.

“두목 이름은 뭐지?”

한 손으로 사신 바주카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면서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 장목화의 모습에, 강도들과 십방 상사 직원들 모두 혀를 내둘렀다.

“파나니아입니다.”

노란 머리 강도 하나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자가 너희들을 구하러 돌아올까?”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강도들은 몇 초간의 침묵 끝에 각자의 답을 내놓았다.

“분명 구하러 올 겁니다.”

“아마도요.”

“어쩌면요.”

그들은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는 포로들의 끔찍한 말로를 봐온 바 있었다. 그런 포로들은 식량을 아끼기 위해 그대로 살해되거나, 예비용 식량으로 끌려다니거나, 인신매매 업자에게 팔려 가곤 했다.

장목화는 그들의 답에 가타부타하지 않고 화제를 전환했다.

“약탈한 물건은 어디에서 거래하지?”

“타르난에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타르난에 갑니다. 그곳의 로봇은 공정하고 믿음직스럽고, 또 질서도 지킬 줄 아니까요.”

노란 머리 강도는 이번에도 다른 동료들보다 앞서서 답했다.

장목화가 강도들에게 정보를 캐내는 동안, 마침내 외골격 장치에서 벗어난 용여홍은 지프 뒷좌석에 둔 뒤, 자리를 교대했다.

이제 둘 중 하나는 돌격 소총을 맨 채 경계를 담당했고, 다른 한 명은 개울 옆에서 물을 떠다가 태양열 충전기로 그걸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자 용여홍은 당장이라도 물을 들이키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끓인 물이 식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식은 물을 팀원들의 물주머니에 각각 공평하게 나눠 담았다. 모든 작업을 마친 후에야 용여홍은 자신의 물주머니를 들어 그 안에 든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물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단숨에 물 절반을 비운 용여홍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가를 훔쳐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때 민스를 비롯한 사람들은 이미 시체를 다 묻고 강도들의 외투를 두툼하게 껴입고 있었다.

한창 강도들이 남기고 간 숯 등으로 불을 피우고 식사를 준비하던 그들은 용여홍의 시선을 느꼈다.

민스는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수군대는가 싶더니 이쪽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같이 한 끼 하겠나? 강도들이 양 한 마리와 감자 조금, 그리고 다른 식재료들도 남기고 갔거든.”

강도들이 이 골짜기에 들어온 것도 사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성건우는 먼저 장목화에게 눈짓을 해 보인 뒤 곧장 그 제안에 응했다.

“좋아.”

“그래, 당신들의 성찬을 직접 맛볼 수 있겠네.”

장목화도 웃으며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쳐내려 했던 용여홍은 순간 자신은 성건우가 아니란 사실을 떠올렸다.

* * *

구조팀은 십방 상사 직원들이 능숙하게 고기를 자르고, 뼈를 발라내고, 국물을 끓이고, 다양한 향신료를 넣는 모습을 보았다.

곧 진한 향이 네 사람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강한 향기는 골짜기로 달려드는 차가운 바람에도 좀처럼 흩어지지 않았다.

동료들의 식재료 준비가 거의 끝났음을 확인한 민스는 구조팀 네 사람에게 보통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러곤 이들의 도시락통에 국물을 바탕으로 정성껏 고른 향신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 국물에 익혀낸 얇은 양고기 조각 하나를 집어 든 성건우가 고기에 양념을 곁들인 다음 입속에 넣었다.

“맛있다⋯⋯.”

그가 우물거리며 탄사를 내뱉었다.

용여홍은 그 말에 두근대는 심장을 안고, 얼른 양고기 한 점을 집어 강도들의 솥에 넣었다.

그때였다. 한 여자가 막 익혀낸 양고기를 용여홍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먹어봐.”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괘, 괜찮은데.”

용여홍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수시로 애쉬랜드를 돌아다니는 십방 상사 직원 중엔 사냥꾼 신분인 사람도 있었다. 그래선지 그들은 조금 전까진 강도들에게 험한 꼴을 당할 뻔했지만, 금세 빠르게 회복하고 더는 우울해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또한 세상에 강림한 천신처럼 용맹하게 강도들을 쫓아낸 사람이 사실은 젊은 남자였음을 확인한 여자들은 키도 작지 않고 얼굴도 깔끔한 편인 용여홍에게 강한 호감을 느꼈다. 그래서 여자들은 점심을 준비하면서부터 용여홍과 말이라도 한 번 섞어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열정적으로 굴수록 용여홍은 더 난감해졌다. 심지어는 왜 성건우에게는 안 가보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또한 성건우와 장목화는 지금 한창 민스에게 훠궈 만드는 법을 배우는 데 집중하고 있어선지 이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미 그릇에 들어온 고기를 어떻게 하나. 결국 거절할 수 없었던 용여홍은 고기에 양념장을 찍어 입에 넣었다.

고기의 부드러운 육질은 짭짤하면서도 각종 향이 느껴지는 양념장과 잘 어우러지면서 그야말로 맛을 폭발시켰다. 용여홍의 입놀림은 절로 빨라졌다.

* * *

훌륭하고도 즐거운 점심 식사였다. 장목화와 백새벽은 그중에서도 푹 익어 말캉거리는 감자를 가장 좋아했다.

그 사이 구조팀은 민스를 비롯해 사람들과 연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대형 세력이 상대적으로 형편이 넉넉한 편임을 알게 됐다.

물론 하층 주민의 삶은 소형 거점에 사는 황야유랑자보다 아주 살짝 나을 정도로 어려운 편이었지만, 중층 주민부터는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이윽고 십방 상사 사람들은 위험한 곤경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푸짐한 식사에, 대량의 물자를 되찾기까지 했다는 기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개울가 공터로 달려가 달지기를 찬미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굉장히 신실하네⋯⋯.”

막 그 모습을 보고 웃으려 했던 장목화는 어느새 그들 틈에 섞여 춤을 추고 있는 성건우를 발견했다.

춤이 절정에 달했을 때, 십방 상사 사람들은 양손을 높이 쳐들었다.

“찬미합니다, 신세계의 대문이여!”

생명 제례 교단의 정식 교도인 성건우 역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찬미합니다, 신세계의 대문이여!”

성건우는 이제 추리 광대 능력이 없이도 십방 상사 사람들로부터 제 동료를 대하는 듯한 눈빛을 받게 됐다. 그전까지 성건우를 오르지 못할 나무라 생각했던 여자 직원 둘은 용기를 내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때, 민스가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장목화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만 가봐야겠네.”

“계속 임해 연맹 쪽으로 갈 생각인가, 아니면 타르난으로 돌아갈 생각?”

장목화가 물었다.

민스는 솔직하게 답했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네. 여기서 동남쪽으로 쭉 가면 한나절 안에 치랄 산 구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그곳엔 우리 임해 연맹에 의탁한 거점이 있으니, 더 이상 강도들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그래, 순조로운 여정이 됐으면 좋겠군.”

장목화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성건우 앞에서 공헌자 이철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한 민스는 작별 인사하듯 손을 흔들더니 강도들이 남긴 그나마 온전한 차에 올라탔다.

구조팀이 십방 상사에게 준 차 두 대가 느릿하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들을 쫓아 달리던 성건우가 오른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조심해서 가! 꼭 다시 만나!”

‘눈물이 날 지경이네.’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막 먹어 치운 강도 네 명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포로들은 동시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들로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얼굴을 느릿하게 훑어보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그녀는 일부러 뜸을 들이며 강도들의 심장 박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우리랑 같이 타르난으로 간다. 만약 끝까지 누구도 너희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면 머신 헤븐에 넘기겠어.”

네 강도의 눈이 반짝이던 순간, 장목화가 덧붙였다.

“하지만 너희가 잘 협조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이 결정은 달라질 수도 있어.”

“협조하겠습니다!”

“당연히 협조해야죠!”

강도들은 매우 의욕적이었다.

“좋아. 깔끔하게 정리해.”

장목화가 엉망이 된 골짜기를 가리켰다.

골짜기가 엉망이 된 건 훠궈 잔치가 아닌, 전에 있었던 전투 때문이었다.

“네!”

즉각 대답하며 일어난 강도들은 백새벽의 감시 아래 각종 쓰레기를 정리하고 쓸모있는 물건들을 챙겼다.

현장 정리는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용여홍은 할 일이 없어진 상황에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그 옆에 선 장목화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네가 할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너무 좋지 않아?”

“그러네요.”

용여홍은 지금의 상황을 자세히 만끽했다. 사실 이런 잡일을 맡았을 때도 그렇게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상황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정리를 마치자 장목화가 노란 머리에 똘똘해 보이는 포로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지?”

“요르겐센입니다.”

노란 머리 강도는 희색을 드러내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포로의 이름을 묻는다는 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그를 처형하지 않으리란 뜻이라고 전에 누군가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넌 나머지 세 명의 손을 묶어 차에 태우고, 그 차를 몰고 우릴 쫓아 와.”

장목화가 산 여우 강도단이 남긴 흰 승용차 한 대를 가리키며 지시했다.

그 차는 십방 상사가 가져간 차 두 대를 제외하고 지금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온전했다. 먼지와 진흙을 뒤집어쓴 터라 원래의 색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

“예.”

요르겐센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한 뒤, 동료들의 협조를 받아 밧줄로 그들의 양손을 묶었다.

그런데 차에 오른 순간 그는 돌연 멍해졌다. 구조팀 네 사람 중 단 한 명도 그에게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팀원 하나를 따로 붙여 포로를 감시하기는커녕, 곧바로 지프에 올라 골짜기 반대편 출구를 향해 느릿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개울 상류 구역엔 포로 신분의 네 강도만 남아있었다.

“요르겐센. 차를 돌려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건 어때?”

얼굴에 흉터가 난 강도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요르겐센이 답했다.

“저들이 정말 신경 쓰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혹시 우릴 떠보는 거면?”

강도들은 침묵에 빠졌다.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구조팀은 너무 여유로워 보였다.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그야말로 마음대로 하라는 듯한 태도에 포로들도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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