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용광로 교파
민스를 비롯한 십방 상사 직원들은 약간 혼란스러워하는가 싶더니, 곧 놀란 얼굴로 매우 기뻐하며 물었다.
“자네도 우리 교파였나?”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직 그쪽 주교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어.”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하, 이번엔 성찬이 뭔지 묻지도 않아? 춤이 그렇게도 좋은 거야?’
여전히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채 사주 경계를 담당하고 있던 용여홍이 흠칫하며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스, 스스로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민스는 순간 성건우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몇 초가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는 듯 웃었다.
“우리 교파에 가입하고 싶은 건가? 하하, 우리에게는 주교가 없네. 하나의 교구를 담당하는 것은 공헌자, 일상적인 전도를 담당하는 것은 찬미자, 우리처럼 일반적인 신도는 감사하는 자라고 부르지.”
장목화는 그 세 명칭을 다른 교파에 대입해 보고, 바로 질문을 이었다.
“그보다 더 위는? 공헌자 위에는 뭐가 있지?”
“작열자도 있고, 달지기의 사자이자 대변인인 신의 춤꾼도 있지.”
민스는 숨김없이 답했다. 그가 설명하는 것들은 비밀도 아닌 모양이었다.
“신의 춤꾼⋯⋯. 춤 실력이 무척 대단한가 본데?”
성건우가 화제를 전환했다. 당장이라도 상대와 춤으로 한 번 붙어 보고 싶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이야기에 전도할 책임을 느낀 민스가 말했다.
“난 신의 춤꾼님을 본 적이 없네. 우리가 믿는 작열하는 문 달지기는 신세계 대문의 화신이야. 우리 인간은 그분의 인정과 비호를 받아야만 대문을 통과하면서 애쉬랜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지.
장기적으로 그분을 즐겁게 하고 찬미하면서 그분의 은혜를 얻고 인도를 받아 신세계에 직접 들어가는 방법도 있고, 그분을 믿으면서 애쉬랜드의 어느 폐허 도시 안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신세계의 대문을 찾는 방법도 있네. 때가 되면 작열의 문 앞으로 걸어간 모든 신도는 구원받게 돼.
신세계의 대문을 찬미합니다!”
민스는 끝으로 다시 한번 불에 데인 듯 몸을 뒤틀며 기도를 올렸다.
‘달지기에 대한 신앙과 신세계 전설을 결합한 교파로 볼 수 있겠네. 아마도 달지기의 칭호에 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 걸 거야.’
장목화는 민스의 설명을 흥미롭게 들으며 이야기를 빠르게 분석하고 평가했다. 이는 그녀의 취미였다.
잠시 고민하던 성건우는 역시 이번에도 그 질문을 던졌다.
“성찬은 뭐지?”
“우리의 성찬은 불과 관련되어 있다네.”
민스가 답했다.
용광로 교파는 이 팀에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 자신의 동료들 모두가 이 팀 덕분에 안전해졌기 때문이다.
또 여러 교파와 접촉한 적 있는 민스는 용광로 교파의 성찬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는 구조팀 네 사람의 호기심 어린 얼굴을 바라보며 열정적인 설명에 나섰다.
“우리의 성찬은 구세계에선 훠궈라고 불렸지.”
성건우의 눈이 한 번 더 번득였다.
민스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화염은 달지기의 총아라네. 그걸 사용하는 것 역시 달지기를 즐겁게 하는 방법이지. 우리 임해 연맹 남부 지역에서는 향신료도 아주 많이 나고 고추도 재배한다네. 그것들이 훠궈의 재료가 되지.
석탄이나 숯에 불이 붙고 훠궈가 끓기 시작하면 미리 준비해준 소고기와 내장, 감자, 죽순 등을 그 안에 넣어 익히는 거야.
구체적인 종류는 그때그때 있는 식재료에 따라 달라진다네. 가난한 자에게도, 풍요로운 자에게도 나름의 먹는 방법이 다 있지. 황야에 별 재료가 없어도 물만 끓일 수 있으면 성찬을 즐길 수 있는 것이라네.”
이야기를 듣던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싶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입안이 바싹 말라 있어 그러지는 못했다.
‘이 용광로 교파는 다른 교파의 화풍과 사뭇 다른 것 같네. 그야말로 미식가 연맹이잖아? 나도 이렇게 마음이 동하는데. 보아하니 임해 연맹 내부에선 식재료 공급이 충분히 잘되고 있는 것 같아.’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백새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잡혀 있는 강도들을 감시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곧이어 성건우가 잽싸게 물었다.
“그럼 그 교파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민스는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공헌자를 만나기만 하면 돼. 어, 찬미자도 상관없지. 그의 인도를 받으면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다네. 음,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공헌자는 타르난에 있고.”
‘타르난이라면 우리 목적지잖아? 머신 헤븐의 대외 무역지.’
장목화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머신 헤븐의 사람들도 작열하는 문을 믿어?”
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타르난에서 만난 이들은 전부 지능 로봇이었네. 그들에게 종교에 대한 믿음이란 없지. 이철 님이 타르난에 있는 건 임해 연맹의 상인들과 사냥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라네.
그곳엔 그분 말고 다른 교파의 성직자들도 있다네. 우리 임해 연맹과 머신 헤븐은 인접해 있는 데다 아주 오랫동안 무역을 해왔어. 때문에 타르난에 있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다 우리 임해 연맹 출신이지.”
“당신들도 타르난에서 온 거였어?”
장목화가 예리하게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해 냈다.
민스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우린 타르난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며 거래를 마쳤네. 다들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 겨울에 돌아다니는 상인단은 거의 없고, 유랑자 거점에서도 외출을 삼가니까 강도들이 활동할 가능성도 낮으리라 생각했거든. 추울 때를 틈타 치랄 산을 넘어 임해 연맹으로 돌아가려 한 거라네. 그런데 여기서 산 여우 강도단을 딱 맞닥뜨릴 줄은 몰랐던 거지⋯⋯.”
산 여우가 치랄 산 구역에서 상당히 유명하고 강력한 강도단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려 했던 민스는 문득 방금 전 전투를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눈앞의 팀에게 산 여우는 그야말로 비교도 안 되는 상대였다.
민스의 답을 들은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역발상이 효과적일 때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일단 여러 방면으로 고민을 해봐야 해. 만약 일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 그런 상황을 감당할 능력과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곁에 있던 백새벽이 캐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급하게 임해 연맹으로 돌아가려 한 거지? 애쉬랜드에서 유랑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겨울이 가장 버티기 힘든 계절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 질문에 약간 망설이던 민스가 동료를 돌아보며 머뭇거리다 말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타르난에 있는 머신 헤븐 쪽 인원은 전부 지능 로봇이야. 그들에게는 음식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경작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지. 모든 상인단과 사냥꾼은 본인들 식량을 알아서 가져오거나 팀을 조직해 주위에서 찾아야 한다네.
어떤 세력에서는 이 기회를 노려 식량만 가져와 팔기도 하는데, 그들이 파는 식량은 휴대와 운송이 편한 통조림과 압축 비스킷 정도에 불과하지. 한두 달 동안 내내 통조림과 압축 비스킷만 먹었더니,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민스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들의 바보 같은 짓이 비웃음을 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눈앞에 자리한 이 강력한 팀은 사주 경계를 하느라 돌아서 있는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자를 제외하면, 전부 다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타르난도 마냥 좋은 곳만은 아니네.”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성건우도 그녀를 따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구조와 인정을 받은 민스는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곧장 말을 이었다.
“만약 우리 용광로 교파에 가입하고 싶다면 타르난에 한 번 가보게. 이철님에게 자네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굴었는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알리는 편지를 써줄 테니.”
안 그래도 타르난에 갈 생각이었던 장목화는 평소처럼 성건우를 눈빛으로 저지하는 대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좋아, 좋아.”
역시 성건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을 했다. 동시에 그는 지금 당장 쓰라는 듯 종이와 펜을 꺼내 들기까지 했다.
민스는 그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물론 방금 한 말이 말뿐인 인사치레인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바로 편지를 쓸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그가 난감해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곧장 화제를 전환했다.
“타르난에는 임해 연맹 말고 또 어떤 대형 세력이 있지?”
민스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답했다.
“없어. 머신 헤븐과 워낙 가까운 데다 관계도 좋은 편이라, 우리만 진입하고 주둔하는 걸 허락받았다네. 우리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형 세력은 타르난의 존재 자체도 모르거나, 머신 헤븐의 허가를 받은 특정 중소 세력을 통해서만 거래할 수 있지.”
‘레드스톤 마켓이나 퍼스트 시티 세력 범위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특수한 위드 시티처럼 말이지?’
장목화는 암거래의 허브와도 같은 레드스톤 마켓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머신 헤븐은 꽤 신중한 편인가 보네.”
“사실 타르난도 그렇게 특별한 장소는 아니야. 로봇과 기계, 전자 제품이 비교적 많을 뿐이지.”
민스는 머신 헤븐이 그렇게까지 조심스럽게 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그때, 문득 시선을 돌린 장목화가 흠칫했다. 산골짜기를 관통하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민스를 비롯한 십방 상사 직원들이 바들바들 떠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들은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옷도 다 빼앗긴 듯했다.
아차 싶었던 장목화가 얼른 말을 이었다.
“대화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다들 옷차림이 허술하다는 것도 잊고 있었네. 여기, 옷과 물자가 넉넉히 있어서 다행이야. 음, 대신 그 보수로 시체는 당신들이 직접 묻어.”
장목화가 턱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주위에는 숨을 거둔 강도들 여럿이 쓰러져 있었다.
중상을 입었을 뿐 아직 죽지 않은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구조팀도 회사를 떠난 지 오래라 의료 물품이 부족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그들 역시 이미 죽은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민스는 그렇지 않아도 죽은 이가 걸친 옷을 챙겨 입고 싶었지만, 당황한 나머지 입을 열지 못했다. 머신 헤븐과 임해 연맹 중간 지대의 규칙에 따르면 전리품을 누릴 수 있는 건 오직 승리에 공헌을 한 자들뿐이었다.
그래서 민스는 이 눈앞의 늠름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시체들이 입고 있는 옷을 베풀어줄 줄은, 그뿐만 아니라 겁에 질린 강도들이 차마 챙기지 못한 물건들까지 주려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도 못했었다.
“그, 그럴 수는 없네.”
잠시 망설이던 민스가 손을 내저었다. 이는 남의 물건을 차지하고 싶지 않다는 높은 도덕성때문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팀에게 조금이라도 밉보였다간 살아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장목화가 웃었다.
“사양하지 마. 당신들, 그런 차림을 하고 있으면 오늘 밤 안에 다 얼어 죽을 거야. 게다가 가지고 있는 식량도, 차도 없잖아.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려고 그래? 어, 저 기계들도 당신들 거야?”
그녀가 가리킨 건 여러 대의 차들 중 한 대를 가득 채운 휴대용 컴퓨터들이었다. 색깔은 흰색이나 검은색인 데다, 상당히 얇고 번쩍거렸다.
민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맞아. 옷과 식량, 차는 감사히 받겠네. 어쩔 수 없으니까. 대신 저 휴대용 컴퓨터들은 자네들이 가져가도록 해. 우리를 구해준 데에 대한 보답이야.”
“너무 많아. 유적 사냥꾼 규칙에 따르자고. 이런 임무에서는 보통 전리품의 30퍼센트 정도를 보수로 받거든.”
장목화도 상대의 제안을 굳이 사양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중에 리만이 구해올 장비를 얻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물자를 모아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