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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239화 (239/649)

239화. 세상에 강림한 천신

몇 번의 도약 끝에 강도단 주력과의 거리를 좁힌 용여홍은 왼팔에 장착된 경기관총으로 그곳을 한 번 더 난사했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그의 어마어마한 전력을 확인한 강도단 우두머리는 순간 두려움에 잠식돼 버렸다. 그는 결국 금속판 몇 개를 덧댄 자신의 SUV 뒤에 쪼그려 앉아, 큰소리로 외쳤다.

“후퇴하라!”

강도단은 주위 구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만큼 단순한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이들에게도 당연히 후퇴 작전이 있었다.

유탄 발사기와 기관단총을 들고 있던 강도들은 각자 숨어있던 곳에서 빠져나와,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용여홍을 향해 미친 듯 방아쇠를 당겼다.

다다다!

탕탕탕!

콰광! 콰광!

요란한 소리가 화음처럼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강도 중 몇몇은 피를 뿜었으며 몇몇은 신체 일부를 잃은 채 쓰러졌다.

반면 용여홍은 인간을 초월하는 점프력과 속도, 민첩성과 종합 경보 시스템 덕분에 조금도 상처 입지 않았다.

가끔 총알 몇 발을 미처 피할 수 없을 때도 쪼그리거나, 옆으로 돌아서거나, 손을 들면서 금속 골격과 검은 장갑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했다.

반면 강도단은 일고여덟 명의 희생 덕에 살 기회를 얻었다. 남은 자들은 각자 무기를 든 채 서둘러 차에 올라타, 개울을 따라 상류로 향하며 이 골짜기의 다른 출구를 향해 돌진했다. 피신만이 유일한 방책인 강도단에게 여기 남은 일부 물자와 포로들까지 챙길 정신은 없었다.

“어때, 부럽지? 돌아가면 너한테도 한 대 마련해줄게.”

절벽 모퉁이에 있던 장목화가 저격 자세를 갖추고 있는 백새벽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백새벽은 아주 편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바주카포를 메고 있었다.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장목화의 질문을 묵인했다.

백새벽은 지금 용여홍에게 위협이 될 만한 적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가 전방에서 모든 화력을 유도해주고 있었으므로 후방에 남은 세 사람은 꽤 여유가 있었다.

돌격 소총을 쥔 성건우는 운 좋게 살아남은 강도 몇몇을 꿇어 앉혔다. 작은 스피커는 혹여나 격한 전투에 망가지지 않게 절벽 반대편에 고이 모셔둔 상태였다. 성건우는 그걸 상당히 귀중하게 여기는 편이었다.

이내 고개를 살짝 틀어 백새벽을 힐긋 바라보던 장목화는 여유롭게 바주카포를 사용했다.

콰광!

강도단 차량 행렬 중 뒤쪽에 있던 승용차 한 대가 거대한 불덩어리 하나로 폭발해 버렸다.

그 뒤를 따르던 차는 급하게 방향을 틀더니 활활 타오르는 승용차엔 눈길도 주지 않고 곧바로 우회해 골짜기 출구로 내달렸다.

이때 자신을 압박하던 화력이 다 사라지자, 용여홍은 유탄 발사기가 장착된 오른팔로 강도단의 차량 행렬에 유탄 몇 발을 날리려 했다. 정조준 시스템의 도움 아래 줌을 당기면, 넋이 나간 강도들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였다.

잠시 망설이던 용여홍은 결국 유탄을 발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도단의 차량 행렬은 곧 골짜기 밖으로 벗어났다.

“궁지에 몰린 적을 쫓아서는 안 되는 법!”

장목화가 외쳤다.

그녀는 마음이 약해진 용여홍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거의 모든 저항을 포기한 적들을 향해 자비를 베푸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되기 위해 그렇게나 노력하는 한명호도 있었다. 그를 떠올리면 감사하게도 인간으로 태어난 만큼, 더 인간다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차를 몰고 미친 듯이 도망친 강도들은 더는 그 무시무시한 적이 쫓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제야 속도를 살짝 낮추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디에서 온 녀석들이지?”

강도단 우두머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무력한 새끼 양 같았던 그들이 돌연 머리에 뿔을 세우고 화염에 휩싸인 악마로 변해버리다니! 그들에게 군용 외골격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활짝 웃으며 잘 보이려 노력했을 텐데!’

게다가 강도단은 그들을 발견한 순간 푹 쉬고 있느라 미처 도망칠 수 없었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때 보조석에 앉아있던 강도는 아직도 두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 의혹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두목, 그들은 네, 네 명뿐인 것 같았습니다.”

그는 격렬한 전투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사실을 확인했었다.

“네 명?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한 사람이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놓았으니, 나머지 셋까지 튀어나왔다면 우리는 꿇어앉아 대가리를 박은 채 투항할 수밖에 없었겠군!”

우두머리는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자아비판을 하듯 지껄였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팀이었다. 물론 이 강도단도 죽기 살기로 나선다면 상대측 두세 명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도단에게 그럴 정신이 있을 리 없었다.

몇 초간 침묵하던 우두머리가 덧붙였다.

“애쉬랜드에 규모는 작지만 어마어마한 실력, 혹은 가장 선진화된 장비를 갖춘 팀원들로만 이루어진 유적 사냥꾼 팀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런 팀이라면 대형 세력에 속한 일정 규모의 군대에도 대항할 수 있을 거야.

생존과 영위는 더 이상 문제도 아니지. 그들이 애쉬랜드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자리한 폐허 도시를 탐색하는 건, 신세계로 통하는 대문을 찾기 위해서라더군. 방금 만난 그 팀도 그런 이들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반항을 한다 한들 소용없을 것이다. 그랬다간 강도단 전체가 몰살당하고 말 것이 분명했다.

우두머리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수하들의 사기를 꺼뜨림으로써 제 의욕을 드높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비참하게 도망쳐버린 상황에서는 적들이 더 강할수록 본인의 자신감을 회복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는 우두머리의 판단이 틀렸다거나, 지휘에 실수가 있었다거나, 작전이 덜 용맹했던 것이 아니라 적들의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

그렇게 강력한 적을 맞닥뜨린 상황에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처사였다.

* * *

강도단이 남기고 간 포로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용여홍을 혼란과 두려움이 어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꼭 세상에 강림한 천신을 마주한 듯한 눈이었다.

겨우 차 한 대를 몰고 온 몇 사람이 자신들을 구해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중 단 한 명이 눈 깜짝할 사이 규모도 크고 무기도 많은 산 여우 강도단을 물리치고 처리했다.

군용 외골격 장치는 정말이지 전쟁의 이기였다. 포로들은 다 같은 생각을 하며, 갑자기 또 공포에 떨었다. 저 사람들도 계속 자신들을 포로 삼아 다른 곳에 팔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무리 중 머리가 이미 많이 센 반백의 노인이 힘겨운 듯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골짜기를 관통하는 찬 바람에 노인은 덜덜 떠는 중이었다.

양손이 묶인 그는 린넨 셔츠와 검은색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파란 눈동자로 강도들 몇 명을 잡아 온 장목화와 백새벽을 바라보다가 자발적으로 자기소개부터 했다.

“난 임해 연맹 십방 상사의 간사, 민스라고 하네.”

그는 꽤 유창하게 애쉬랜드어를 구사했다.

“임해 연맹?”

그 단어를 들은 장목화는 민스의 훌륭한 애쉬랜드어 실력에 어떠한 의혹도 품지 않았다. 연합 공업 남쪽에 자리한 임해 연맹의 절반은 골든리버 유역에, 나머지 절반은 남부 해안에 걸쳐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애쉬랜드인이 건립한 하나하나의 도시 국가로 이루어졌고, 표준어는 바로 애쉬랜드어였다. 물론 그들과 반고 바이오 직원들의 발음은 많이 달랐다.

임해 연맹 내부엔 레드리버인과 해안인 위주로 이뤄진 도시 국가도 있었다. 평범한 모든 것을 가진 이 대형 세력은 비교적 저질의, 혹은 비교적 오래된 제품을 복제하는 데 능했지만, 고급 제품은 수입했다. 또한 그들은 석탄과 철광석이 부족한 편이었다.

한편 해안인은 애쉬랜드인의 분파였다. 피부색이 더 짙은 그들의 발음은 사뭇 달라서 말을 알아듣긴 어려웠다.

“그래.”

민스가 장목화에게 답하며, 한 동료의 도움 아래 밧줄에서 벗어났다. 뒤이어 소매를 걷어붙인 그가 꼭 뜨거운 물에 데기라도 한 듯 몸을 비틀며 기괴한 춤을 추었다.

그렇게 간단한 동작을 몇 개 선보인 반백의 노인이 말했다.

“신의 숨결에 푹 빠지기를.”

방금 막 스피커를 챙겨 지프를 끌고 온 성건우가 이 광경을 정면으로 목격하고 눈을 번득였다.

민스의 동작과 그의 축복을 들은 장목화가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돌아서서 절벽 모퉁이 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예상처럼 제자리로 돌아온 지프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췄다.

뒤이어 운전석 문을 연 성건우가 밖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다른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회색 제복을 입고 있는 그가 빠른 걸음으로 민스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당신들, 어느 교파지? 믿는 달지기는?”

‘꼭 부모님만 다른 형제를 만난 것 같은 반응이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장목화는 막상 실제로 보게 된 성건우의 반응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 레드스톤 마켓에서의 가면 생활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졌다.

흠칫했던 민스는 성건우의 얼굴을 제대로 본 후에야 예를 갖춰 답했다.

“우리는 용광로 교파의 사람들이라네. 8월을 대표하는 달지기, 작열하는 문을 믿지.”

‘작열하는 문이라, 이 달지기는 주목을 거의 못 받아. 그래서 북방에서의 유명세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지.’

장목화는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과 회사에서 준 자료, 그리고 백새벽의 설명을 떠올리며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바로 성건우의 질문이 이어졌다.

“방금 전 예를 표하는 동작은 춤이었던 건가?”

민스는 이 잘생긴 청년이 왜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솔직하게 답했다.

“춤은 우리가 신령을 즐겁게 하는 방법이야. 교파에서 정한 예법도 특수한 춤을 추는 거지. 이 춤은 달지기 앞에서 모든 사람이 보이는 본능적인 반응을 상징한다네.”

‘작열하는 문에 데는 거?’

장목화와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심지어 예의 바르게 웃기까지 하며 동조했다.

“내가 본 구세계 책 몇 권에, 오래전 인간들도 각양각색의 춤으로 신을 즐겁게 하면서 소통을 했다고 해.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 존재하는 상당한 제사 의식의 기원이기도 하고.”

민스는 산 여우 강도단을 가볍게 해치운 이 팀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안도하며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네. 우리가 춤을 추기로 한 것은 그것과 화염이 달지기를 가장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야.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가장 큰 존경과 축복을 표할 때 이렇게 예를 갖추면서 ‘신의 숨결에 푹 빠지기를’, 혹은 ‘그대들을 위한 춤을 바치리.’라고 말하지. 후자를 말할 때는 자신이 만든 짧은 춤을 추기도 한다네.”

‘진짜 흥미롭네. 근데 백발이 된 당신 같은 노인이 이렇게 격렬한 춤을 추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

방금 전 목격했던 광경은 장목화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오오.”

성건우는 눈을 반짝 빛내며 열정적으로 호응하더니 몸을 비틀면서 뭔가에 데인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대들을 위한 춤을 바치리.”

말을 마친 뒤, 다시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근본 없는 춤사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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