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교활하지 않은 상인은 없다
구조팀이 여관에 돌아왔을 때, 리만은 이미 도착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수룩한 농부처럼 보이는 이 밀수업자는 네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걸 보자마자 한껏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비위를 맞추려는 태도였다.
“지하 방주에 들어가 디마르코를 만났다면서?”
그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리만은 경호원들을 멀찍이 물려놓고 혼자서만 구조팀을 마주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팀이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들 앞에서는 경호원을 대동하든, 하지 않든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또한 리만은 손님이 예약 주문해둔 군용 외골격 장치를 자신이 먼저 사용한다 한들 큰 의의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상대 팀도 군용 외골격 장치를 한 대 가지고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각성자는 외골격 장치를 착용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차라리 모든 경호원을 물려놓음으로써 진심을 표현하는 게 나았다.
리만의 질문에, 장목화가 웃으며 상대를 놀리듯 말했다.
“친구가 꽤 많은가 봐. 경계 교회당에도 친구가 있는 거야?”
리만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때? 디마르코가 뭐래?”
“그의 말에 따르면 지하 방주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은 라르스는 더 이상 지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대. 믿지 못하겠다면 경계 교회당으로 오래. 라르스와 직접 영상 통화할 수 있게 해준다고.”
리만은 무너져 내리는 표정을 다잡지 못했다. 그 답을 믿지 못하는 것 같기도,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영상 통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끝내 마음을 추슬렀다.
이는 디마르코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소리였다. 세상에 곧바로 간파당할 수 있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리만은 입꼬리를 힘겹게 끌어올렸다.
“가서 확인해 볼게. 도와줘서 고마워.”
장목화는 리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상대를 보니 조금 동정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럼, 보수는?”
리만의 표정이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왔다.
“뭘 원해? 전에 말했듯이, 군용 외골격 장치나 T1 기계 팔과 같은 통제 품목을 구해줄 수도 있어. 그러다 보면 내가 그간 쌓아온 인맥도 활용해야 할 테고, 힘겹게 세워둔 관계에도 균열이 생길지 모르지.
즉, 내가 지불할 보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가치는 어마어마한, 인맥과 루트라는 뜻이야. 물품 자체의 값은 너희들이 치러야 해. 물론 할인은 해줄 수는 있어. 최대한 깎아주도록 할게.”
장목화가 무슨 대꾸를 할 새도 없이, 성건우가 끼어들었다.
“그 사람은 네 애인이잖아!”
리만이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은 더 이상 아닌 것 같은데.”
장목화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서 값을 깎으시겠다? 리만은 보이는 모습과 달리 교활한 상인이었다.
하지만 장목화 역시 한두 개 질문으로 군용 외골격 장치나 최신형 기계 팔을 얻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쏟아지는 포화와 총알 세례, 각성자 몇 명의 방해를 뚫고 지하 방주로 쳐들어가 라르스를 데려오는 일 정도는 해야 그만한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장목화는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
“슬쩍 말을 바꾸네. 레드스톤 마켓에서 살아서 나가고 싶지 않은 거야?”
순간 리만의 몸이 살짝 굳어버렸다.
이를 보고 용여홍이 피식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의 최종 빌런스러운 이미지는 이대로 굳어지는 건가⋯⋯.’
장목화도 어쩌다 보니 자신이 너무나 불량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또 어김없이 이에 맞춰 연기하려는 성건우를 발견하고, 곧장 그를 저지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애인을 잃은 슬픈 상황이니까 이렇게 하자고. 돌아가 네 루트와 인맥을 통해 우리에게 군용 외골격 장치 한 대와 기계 팔 하나를 구해줘. 지나치게 오래된 모델은 안 돼. 그리고 물건이 구해지면 우리에게 연락해. 그때까지 모은 물자로 교환할 테니까.”
그러한 통제 품목은 필요할 때 사용하진 못해도 팔아서 꽤 쏠쏠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자 리만이 약간 곤란하다는 듯 물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와 기계 팔 둘 다?”
“그래.”
장목화의 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대형 빌런이 이미 이렇게 한발 물러나 준 상황이었다. 더 이상의 고집을 부릴 수 없었던 리만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
“좋아, 하지만 시간은 좀 걸려. 너희들에게 어떻게 연락하지?”
이미 그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두었던 장목화가 곧장 답했다.
“너한테 전보의 주파수와 대응하는 비밀번호를 알려줄게. 두 물건 다 구하면 매일 밤 8시에 우리한테 전보를 보내. 한 달간 계속. 만약 우리가 한 달이 지날 때까지 답이 없다면, 그 이후엔 구해둔 물건을 마음대로 해도 돼.”
그녀가 준비한 전보의 비밀번호는 애쉬랜드에서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리만에게 받아야 할 연락이 기밀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리만은 곧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가 떠난 후, 장목화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한 가지 일이 더 해결됐네. 이젠 레드스톤 마켓으로 가 테레사 부인에게 최근 한 달간 헬빅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이들이 누구인지 물어보자.”
싸웠던 이들뿐만 아니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이들까지 물어보려 하는 건, 혹시나 있을 수 있는 빈틈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때 백새벽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조사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디마르코의 말에 따르면, 상대는 단순한 몇 마디 농담만으로도 살의를 느꼈을지 모른다고 했어요. 일상생활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농담하곤 하잖아요. 그 모든 농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 여홍이도 하루에 건우에게 몇 번씩이나 공격당하잖아요. 그런데도 그 횟수는 기억하지 못하고요.”
용여홍은 정말로 그 횟수를 기억하지 못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홍이가 기억한다면?”
성건우가 본론에서 벗어난 질문을 던졌다.
백새벽이 입술을 꾹 깨문 채 무시하자,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는 건 여홍이가 네 공격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지. 우리 작은 빨강이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다행이야.”
장목화는 용여홍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 전에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용여홍은 순간 살짝 부끄러워졌다.
“별것 아니에요.”
이를 보고, 성건우가 웃으며 대꾸했다.
“넌 다섯 살 때까지 이불에 지도를 그렸잖아.”
“꺼져!”
용여홍은 순간 울컥 차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
* * *
레드스톤 마켓, 건파이어 가게.
구조팀은 재차 테레사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검은색 두꺼운 드레스를 입은 채 같은 색의 베일이 길게 드리워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무슨 진전이라도 있었나요?”
테레사가 덤덤한 말투로 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렇게 겁에 질려 있거나, 흥분해 있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새 꽤 침착해진 듯했다.
“기본적으로 헬빅 씨의 원수 목록을 조사해봤지만, 그중에 혐의가 있어 보이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왔습니다. 최근 몇 달 안에 헬빅 씨가 누군가와 사이가 나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농담을 했다거나요.”
장목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테레사가 답했다.
“너무 많네요. 헬빅은 남을 비웃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헬빅의 지나친 농담에 눈살을 찌푸린 사람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레드스톤 마켓의 주민 들 대부분이 용의자일 거예요.”
‘헬빅은 대체 얼마나 인간 말종이었던 거지⋯⋯?’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성건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타깝네⋯⋯.”
“뭐가 안타까워?”
용여홍이 협조적인 태도로 그 이유를 물었다.
성건우는 얼굴에 쓴 원숭이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살아있는 헬빅 씨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게. 그러지 않았다면 누가 먼저 그를 화나게 하는지, 시합해볼 수 있었을 텐데.”
테레사는 성건우와 용여홍의 대화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은 채 몇 초간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 임무는 이쯤 하시죠.”
“더 이상 조사를 안 해도 되겠습니까?”
장목화가 약간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그러자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 같네요. 거기다 레드스톤 마켓 주민 대부분이 연루돼 있을지도 모르고요. 전 저와 제 아이의 삶도 고려해야 해요. 헬빅이 워낙 많은 사람에게 죄를 짓고 살았던 터라, 갑자기 죽을 것에 대한 각오도 진즉부터 하고 있었고요.”
‘전에는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장목화가 속으로만 반박했다. 하지만 동시에 테레사 부인이 태도에 변화를 보인 그 이유도 깨달았다.
헬빅이 죽었을 때 테레사가 걱정했던 건 무기 사업을 누군가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부하들이 다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남편을 중시하고 이 사건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작은 세력도 안정을 찾았고, 리만을 비롯한 이들과의 우의도 재차 확인했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걱정거리가 없었다. 헬빅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이제는 그다지 신경 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테레사와 헬빅은 애정이랄 것도 없는 사이였다. 어쩌면 그녀 역시 헬빅의 죽음을 바랐던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인지도 몰랐다.
네 사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자, 테레사는 이를 시위하고 있다고 오해했는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미 지불한 보수를 다시 돌려달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여러분이 짧은 시간 안에 무기를 되찾아 준 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헬빅은 정말 쓰레기였나 봐.’
장목화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길드로 가서 해당 임무를 취소하시면 됩니다.”
* * *
건파이어에서 나온 장목화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감정을 추스른 뒤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제 무독 식당에 식재료를 사러 가자. 저녁에 우리끼리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축하하는 거야!”
레드스톤 마켓에서 있던 대부분 일을 일단락지은 걸 자축할 생각이었다.
“좋아요, 좋아!”
용여홍이 눈을 빛냈다.
장목화가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향신료랑 숯도 좀 구해와야겠어. 너희들에게 이 장 셰프의 비법으로 구운 바비큐를 선보여주지.”
“내기하실래요?”
성건우가 의욕을 보였다.
“붙어!”
요리 솜씨에 자신이 있던 장목화는 곧장 그 제안에 응했다. 그러나 말을 마침과 동시에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데, 무슨 내기?”
“많이 먹기 내기요.”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그를 무시했다.
* * *
저녁 무렵, 여관 구역 안,
구조팀은 염지한 고기를 임시로 조립한 그릴 위에 얹었다.
바로 그때, 반고 바이오에서 회신을 보내왔다.
장목화는 빠르게 암호문을 해독했다. 회사에서 보낸 전보는 단 두 줄이었다.
「첫째, 호수의 섬 신전에 대한 탐색은 더는 안 해도 됨.
둘째, 한명호를 조금 더 관찰할 것.」
전보를 다 읽은 장목화가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 더 관찰하라고? 금방이라도 떠날 작정인 사람을 무슨 수로 관찰하라는 거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