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35화 (235/649)

235화. 심령 복도의 본질

경계 교회당 지하 1층.

구조팀은 경고자 송하균과 마주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돌아오셨군요. 디마르코 선생은 왜 여러분을 지하 방주에 들인 거랍니까?”

송하균이 친절하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을 낼 수가 없었던 그는 결국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장목화가 웃었다.

“디마르코 선생은 호수 가운데 있는 섬의 금기된 신전에 상당한 흥미를 보였습니다. 우리를 직접 만나지 않는 이상, 그곳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렇군요.”

송하균이 대꾸했다. 이유가 그렇게 간단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잠든 신령과 관련해선 무슨 기이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디마르코는 혹시 그와 비슷한 존재가 되고 싶은 건가?’

장목화는 레드스톤 마켓 내부 간첩에 관한 이야기도 언급했다.

“아, 참. 디마르코 선생에게 혹시 레드스톤 마켓을 배신하고 레나토 주교가 본부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어인과 산 요괴에게 팔았느냐고 물었더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더군요. 새로운 주교가 부임하면 그때 그와 이야기를 하겠다고만 말했습니다.”

송하균은 모종의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더 조사하실 필요 없겠습니다. 여러분의 임무는 끝났습니다. 올라가 마저 말씀하시죠. 이렇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단 그게 좋겠네요.”

그가 웃으며 위쪽을 가리켰다.

성건우는 송하균이 약속했던 값을 치르려 한다는 걸, 각성자와 관련한 상식을 알려주려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장목화보다 한발 앞서 답했다.

“좋습니다! 혹시 안마해 줄 사람이 필요하진 않으신가요?”

성건우는 말하는 내내 용여홍을 보고 있었다.

‘제기랄⋯⋯.’

용여홍은 참지 못하고 속으로 욕설을 뇌까렸다.

“예?”

송하균의 얼굴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성건우는 곧장 설명했다.

“선생님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대접이니까요.”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송하균은 순간 젊은이들과의 세대 차이를 실감했다.

* * *

교회당으로 돌아가 송하균의 방에 들어간 구조팀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장목화는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바로 질문했다.

“송 경고자님, 기원의 바다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략 몇 개의 섬을, 몇 가지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하는 겁니까?”

그녀는 각성자가 아닌데도, 그러한 것들에 연구 정신이 상당히 강했다.

송하균은 그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여러분들이 아는 것도 적지 않군요. 제가 과연 충분한 값을 치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지네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고민하다 말했다.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알고 계신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겠습니다. 모든 이들의 마음에 자리한 트라우마와 두려움은 서로 다르고 각자만의 특징을 갖습니다. 그 때문에 극복해야 하는 섬의 수와 특징 역시 같지 않지요.

어떤 이들은 여덟아홉 개 섬을 극복한 후에야 자신을 찾지만 어떤 이들은 네다섯 개, 심지어는 두세 개의 섬을 통과한 뒤 바로 그 종점에 도달합니다.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극복해야 하는 섬의 수는 개인마다 다 달라요.

간단히 말해, 용기가 충만하고 트라우마가 많지 않은 이들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기원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겁니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여기서 문제는, 아시겠지만 각성자가 한 섬을 극복할 때마다 그 능력도 어느 정도 강화됩니다. 그럼 여덟아홉 개 섬을 극복한 사람이 두세 개의 섬을 극복한 사람보다 더 강해지지 않을까요?”

여덟아홉 번의 강화를 거친 사람과 두세 번의 강화를 거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끝내 심령의 복도에 이르렀을 때 둘의 실력에는 꽤 큰 차이가 생길지도 몰랐다.

송하균은 네 사람을 천천히 훑어보며 웃었다.

“심령의 복도에 막 진입한 두 각성자에게는 분명 실력 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차이는 매우 작습니다. 이 차이는 주로 자신이 가진 능력의 응용, 서로를 통제하는 상황,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의 경험 등에 기인하지요.

일고여덟 개 섬을 극복한 각성자든, 두세 개 섬을 극복한 각성자든 스스로를 찾고 심령을 보완한 후의 실력은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집니다. 그간 많은 강화를 해온 전자라면 심령을 보완했을 때 실력은 조금 덜 높아지고, 강화를 덜 해온 후자는 심령을 보완하면서 그 실력이 대폭 강화되는 식으로 말이죠.

예를 들어 이 레드스톤 마켓에서 연합 공업 본부로 가본다고 생각해봅시다. 차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걸어서 가든,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성과는 단 하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겁니다. 주된 차이는 도중에 소요되는 시간과 각종 상황에서 얻어지는 경험이죠.

각성자에게 섬으로 표현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그 본질적인 목적은 기원의 바다를 건너는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원의 바다를 건너 심령의 복도에 도착하는 게 모든 각성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가장 중요한 결과예요.”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이해했습니다. 달리기 시합과 다르지 않네요. 누군가는 여러 개 허들을 뛰어넘어야 하고 누군가는 얕은 구덩이 몇 개만 건너면 되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먼저 골인 지점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죠.”

송하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입니다. 그 둘의 차이는 나중에 어떤 허들을 뛰어넘어야 할 때 비슷한 경험이 있는 자가 그 장애물을 조금 더 쉽게 넘으리라는 것이죠.”

“시합을 마친 이후에도 허들을 맞닥뜨리게 될 가능성이 있나요?”

장목화는 예리하게도 송하균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간파했다.

“이는 심령의 복도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송하균이 답하며, 옆에 놓인 물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네 사람은 약간 초조해졌다. 백새벽과 용여홍은 각성자도 아니고 왕성한 연구 욕구도 없었지만, 호기심까지 떨쳐낼 수는 없었다. 이는 현재의 인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신비롭고도 가장 기묘한 일종의 힘이었다.

물을 마신 송하균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기원의 바다가 비추는 건 자신의 심령입니다. 그리고 그 위의 섬들은 각자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된 두려움, 혹은 트라우마지요. 하지만 심령의 복도에는 모든 각성자의 심령이 연결돼 있습니다.

저를 입교시켜주었던 그 공포 주교의 말씀에 따르면 심령의 복도 안에는 굉장히 많은 문이 있고, 그 문은 각각 하나의 심령 세계에 대응한다고 합니다.

그 많은 문 중엔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강력한 각성자의 것도 있고, 달지기들의 꿈과 연결돼 형상이 기이하고 색채가 다양한 심령 세계를 담은 문도 있고, 심령 세계 주인이 극복했던 트라우마의 반영을 포함해 현실을 초월하는 광경이 담긴 문도 있답니다.”

‘자신의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거쳤던 두려움의 섬까지 맞닥뜨리게 된다는 건가⋯⋯.’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성건우가 살짝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이들의 심령 세계에 연결된 그 문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단 겁니까?”

송하균은 2초간 멍한 표정을 드러내다가 답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일반 각성자의 심령에 대응하는 문을 열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심령의 복도 깊은 곳을 탐색하기 전까지는 불가하죠. 염호 같은 존재의 문을 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장목화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동시에 어인 신사의 체내에서 배양된 괴이한 존재가 또다시 떠올랐다.

‘오히려 안쪽에서 문을 연다면 다른 사람의 심령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도 있나? 본인의 기운을 다른 사람의 몸에 녹여 넣은 뒤, 정확한 위치를 제공한 상태라면?’

새로운 추측을 떠올린 장목화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럼 심령의 복도를 탐색하는 그 목적은 뭡니까?”

송하균의 얼굴에 약간 슬픈 빛이 떠올랐다.

“애쉬랜드의 수많은 이들은 이 세상에는 하나의 신세계가 있고, 어느 폐허 도시 깊은 곳에 자리한 대문을 통과하면 기아도 감염도 전쟁도 없는 그 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각성자들 역시 심령의 복도 내 수많은 문 중 하나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질적으로 변화시켜줄 신세계 말입니다.”

네 사람은 순간 염호가 손톱으로 관 벽에 새긴 그 글자를 떠올렸다.

새로운 세계.

이는 이전에 만난 이두형이 해줬던 이야기와도 비슷했다.

곧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틀린 문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죠?”

송하균이 경고했다.

“그럼 기이하고 이상한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만약 그 안에 존재하는 위험을 순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게 될 가능성도 있어요. 기원의 바다 안에서의 실패는 그저 실패일 뿐입니다. 아무리 많이 실패해봤자 조금 더 피곤해지는 정도에 그치고 말죠. 성공할 경우엔 상당히 많은 보상을 얻고요. 하지만 심령의 복도에서의 실패는 종종 현실에도 반영되곤 합니다.”

“굉장히 위험하겠네요.”

용여홍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송하균이 피식 웃었다.

“그렇습니다. 각성자들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것과 마주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겁쟁이는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수밖에 없지요.”

‘겁쟁이라⋯⋯.’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여홍은 순간 송 경고자의 실제 모습은 다르다는 비엘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그게 저자가 치른 대가일까?’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송하균이 재차 입을 열었다.

“심령의 복도에 관해 제가 아는 건 이뿐입니다. 다른 질문을 하시죠.”

“한 사람을 안정적으로 각성시킬 방법이 있나요?”

장목화는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듯, 한 교파의 핵심 기밀일지도 모르는 그 방법을 물었다.

송하균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가입해 수시로 미사에 참석하시면서 에이돌른의 주시를 받는다면 각성할 가능성은 커집니다. 에이돌른께서 직접 은혜를 베풀려 하신다면 그 성공률은 더욱 높아지죠.”

‘이런 식으로 우리를 경계 교파에 끌어들이시겠다? 하하, 성찬도 없으면서 건우를 어떻게 유혹하려고? 보아하니 달지기들은 각성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장목화는 더 이상 질문해봤자 원하는 답이 나올 리 없음을 알고, 이성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성건우는 기원의 바다에 관한 질문을 몇 가지 더 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꽤 만족스러웠다.

* * *

송하균에게 작별을 고한 뒤 네 사람은 지프에 올랐다.

조수석에 탄 장목화가 경계 교회당을 한 번 돌아보았다.

“새로운 주교가 곧 올 거야. 우리는 그 전에 여길 떠나는 게 좋겠어. 여관 구역에 돌아가면 리만에게 라르스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직접 가서 확인해 보라고 하자. 그 후에 우리가 할 일은 머신 헤븐과 관련한 자료를 얻을 때까지 헬빅의 죽음을 조사하는 것밖에 없어. 아, 회사의 회신도 기다려야지.”

그녀는 어젯밤 이미 신전의 탐색 결과 보고서와 한명호의 추천서를 포함한 전보를 반고 바이오에 보내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