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34화 (234/649)

234화. 눈에는 눈

장목화는 몇 초 후에야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집사 울리히의 말이, 라르스는 이미 행방불명되었다던데요. 사진을 한 번 더 보세요. 이 사람이 확실합니까?”

말을 하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리만이 준 사진을 티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디마르코 쪽으로 밀어주었다. 통상적으론 예의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겠지만, 이 레드스톤 마켓에서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행동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많이 경계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디마르코는 꼬았던 오른 다리를 풀고 앞으로 살짝 숙여 사진을 들었다.

“내가 기억을 잘못하고 있을 리 있나? 이건 라르스 그자가 맞아. 울리히는 이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내 곁에는 장기적으로 가면을 착용하는 하인들이 몇 명 있어. 그들은 다 내가 관리하지.”

그는 사진을 슬쩍 살피다가 자신의 옷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장목화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결국에는 리만이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뒤이어 그녀는 제가 한 말은 지킨다는 듯 검지 하나를 들어 보였다.

디마르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말해봐.”

장목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레나토 주교가 급히 경계 교파 본부로 갔다는 사실을 어인과 산 요괴에게 흘리셨습니까?”

그녀의 질문은 매우 직접적이었지만, 질의를 하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디마르코는 두 손을 깍지껴 쥔 채 웃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새로운 주교가 도착하면 그와 이야기하도록 하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그의 말은 구조팀에겐 확답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디마르코는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이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퍼질까 두려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왜 카를을 죽인 거지? 설마 다른 이유가 있었나? 그 아이의 친부가 바로 카를인가?’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가 얼른 거둬들였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성건우를 힐긋 살피다가, 그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당장이라도 앞으로 달려들 듯한 자세였다.

이때, 디마르코가 몸을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상대가 저토록 단호하게 나오는데, 더 이상 어떻게 버티고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구조팀원들은 동시에 일어나 예의 바르게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문 앞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장목화가 순간 뭔가를 떠올린 듯 디마르코를 돌아보고 물었다.

“디마르코 선생, 바주카포로 저희를 기습하고 계속해서 무기 사건을 조사하라고 협박한 건 선생의 사람입니까?”

검은색 바탕에 흰색 무늬가 새겨진 가면을 쓴 디마르코가 여전히 소파에 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카를의 분부였지. 자네들을 해칠 생각은 없었어. 좀 자극하려 했던 것뿐이야. 지상의 녀석들은 많은 걸 얻을수록 욕심을 부려. 그러니 한 수 가르쳐줘야지.”

장목화는 고개를 틀어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니까, 헬빅을 죽인 것도 선생의 사람인가요?”

디마르코가 낮게 웃었다.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죽었더군. 난 이런 작은 일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인정하더라도 피해를 입진 않을 테니까.”

그러자 장목화가 물었다.

“레드스톤 마켓의 애쉬랜더와 레드리버인들이 연합해 지하 방주를 공격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걱정 안 되시나요?”

디마르코는 네 사람을 느릿하게 훑어보더니 덤덤한 말투로 답했다.

“교회만 아니었다면 난 내가 원하는 누구라도 레드스톤 마켓의 주인으로 만들 수 있어. 어인과 산 요괴도 예외는 아니지.”

순간 구조팀은 디마르코에게서 어마어마한 자신감을 느꼈다. 상대는 지하 방주가 폐허 도시 내 애쉬랜더와 레드리버인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교회의 무력도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은가 보네⋯⋯.”

장목화가 의도적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나 레드스톤 마켓 내 경계 교파의 관건 역량이라 할 수 있는 각성자인 주교와 경고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기회를 이용해 디마르코로부터 각성자와 관련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지 확인해 볼 작정이었다.

그 말을 들은 디마르코가 낮게 웃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모든 달지기가 다 에이돌른처럼 자신의 교회당을 주시하는 걸 좋아하진 않거든.”

‘하, 곧장 달지기를 언급하다니.’

장목화는 그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기대했던 답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저 말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만약 문 뒤의 주시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디마르코가 농담으로 정상 범주를 뛰어넘는 경계심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디마르코 역시 에이돌른의 주시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입을 연 사람은 바로 성건우였다. 그는 이 점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디마르코가 웃었다.

“교회 각성자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들은 언제나 과하게 예민하게 굴며 쉽게 격노하거나, 극도의 열등감에 휩싸여 있거나, 지나치게 주위를 경계해. 아주 작은 자극에도 과격한 반응을 보이지. 한낱 인간도 그러는데 경계를 관장하는 에이돌른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까. 자신의 각 교회당을 주시하며 잠재된 위험에 대비해야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군요⋯⋯.”

장목화는 에이돌른 영역의 각성자가 치르는 일부 대가에 대해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상응하는 달지기가 힘을 하사할 때, 저도 모르게 형성되는 불가피한 감염이 대가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일종의 추측일 뿐이라 지금 모든 일을 설명할 순 없었다.

이내 디마르코가 뭔가를 떠올린 듯 웃으며 덧붙였다.

“헬빅의 원수들 사이에서 그를 죽인 범인을 찾아낼 수 없다면, 이런 쪽으로도 한 번 생각해봐. 어쩌면 그자는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다가, 심지어는 그저 누군가를 대상으로 농담을 하다가 상대의 원한을 사는 바람에 기회가 생긴 순간 살해당한 건지도 몰라.”

장목화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듯 반문했다.

“브랜드처럼 분노에 찬 사람에게요?”

“그래, 그런 식이지. 질문은 이미 충분히 한 것 같은데.”

디마르코는 재차 손님들을 쫓아냈다.

장목화도 바로 붉은색 나무 문을 열고 카펫이 깔린 복도로 나갔다.

* * *

구조팀은 집사 울리히를 따라 엘리베이터 쪽으로 곧장 나아갔다. 같이 이동하면서 성건우는 대열의 맨 끝으로 물러났다.

그런 그를 힐긋 바라보다가 장목화는 마침 이쪽을 응시하던 성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장목화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곧 엘리베이터 로비에 이르자, 다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검은 바탕에 흰 무늬가 들어간 가면을 쓴 디마르코는 그제야 방에서 나와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두 경비가 포함된 이들과 합류했다.

그때였다. 돌연 홱 돌아선 성건우가 벨트에 걸린 수류탄을 하나 뽑았다. 동시에 앞으로 맹렬히 튀어 나간 그가 소리쳤다.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을 대신해 보낸다!”

고함을 지르며 오른팔을 단단히 긴장시킨 성건우가 온 힘을 다해 디마르코 쪽으로 수류탄을 내던졌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두 경비와 나머지 경비 여섯은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더러는 보조 시스템을 이용해 수류탄을 허공에서 폭발시키려 했고, 더러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총을 쏠 준비를 했으며, 더러는 디마르코 쪽으로 몸을 날리면서 주인을 방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지각을 잃은 듯 원하는 대로 양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오직 그중 두 사람만이 가까스로 생각대로 움직이면서 디마르코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강하게 떠밀린 디마르코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한동안 비틀거렸다.

그 사이 성건우가 던진 수류탄은 카펫에 떨어졌지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핀조차 뽑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엘리베이터 안으로 물러난 성건우는 양손을 들어 두 눈을 가리며, 디마르코를 포함한 이들에게 예를 갖췄다.

다음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은 그의 앞에서 스르륵 닫혔다.

이 광경을 목격한 경비들은 그야말로 넋을 놓고 말았다.

* * *

올라가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

안내를 담당한 집사 울리히가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채 입을 열었다.

“당신들?”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가 웃으며 답했다.

“그냥 좀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자극한 것뿐이에요. 폭발하진 않아요.”

안정을 찾은 울리히는 자신에게로 향한 장목화의 권총을 보고 더 의혹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러는 겁니까?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그들은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도 하지 않았다고요.”

성건우가 웃었다.

“이건 제 독단적인 행동입니다. 그들의 결정은 제 뜻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하지만 우리 팀장님께선 바주카포로 우릴 놀라게 한 사람을 찾아, 같은 방식으로 그 빚을 갚아주라고 말씀하셨죠. 아쉽게도 바주카포를 가지고 오진 않았던 데다, 장소가 너무 협소해서 수류탄으로 대신했네요.”

말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에 도착해 입을 벌렸다.

“이런 때엔 내 이름 팔지 말고, 그냥 네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말해.”

장목화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며 살짝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성건우를 향해 남몰래 엄지를 들어 올려 보였다.

‘우리 구조팀은 원한을 반드시 갚아주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게 이유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울리히는 눈앞의 이들이 전부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데다, 더 이상 그들과 얽히고 싶지도 않았던 울리히는 황급히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눈앞의 유적 사냥꾼들로부터 최대한 빨리 멀어질 작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용여홍 역시 성건우에게 솔직한 감상을 표했다.

“진짜 멋졌어!”

이런 식으로나마 복수를 하니 정말이지 통쾌했다.

백새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성건우를 위해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그 모습을 봤을 때 그녀의 생각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장목화는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경고자 송하균을 힐끔 보며 의혹과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마지막엔 왜 반 지성교의 방식으로 예를 갖췄어? 거기 뒤집어씌우려고?”

성건우는 솔직하게 답했다.

“생각해봤는데 그게 가장 비웃는 듯한 느낌이 날 것 같아서요.”

“⋯⋯왜 네 각성자 능력이 도발이 아닌 거지?”

장목화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 * *

접견실 안.

검은 바탕에 흰색 무늬가 들어간 가면을 쓴 디마르코가 비틀거리던 몸을 겨우 바로 세웠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경비 한 명이 달려와 다급히 물었다.

그들은 수류탄의 핀이 뽑혀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상태였다.

디마르코는 엘리베이터 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찮아.”

잠시 후, 디마르코는 지하 깊은 곳에 자리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 방안엔 그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 주머니에서 리만이 준 라르스의 사진을 꺼내더니 고개를 숙여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라르스의 짧은 머리칼은 린넨색이었으며, 눈동자는 옅은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콧대는 높고 입 주위에는 짧은 수염이, 이마 가장자리엔 그리 크지 않은 파란색 모반이 있었다.

“하.”

낮게 웃던 디마르코는 그 사진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뒤이어 전신 거울 앞으로 다가간 그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경비가 보고했다.

“주인님, 호숫가로 보냈던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원거리에서 관찰한 결과 그 섬에 이상한 점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알겠다.”

디마르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오른손으로 가면을 벗었다.

전방의 전신 거울에 그의 진짜 얼굴이 비쳤다.

린넨색 머리카락과 옅은 파란색 눈동자, 높은 콧대, 이마에 난 파란색 모반, 그리고 입가엔 즐거움과 조롱이 어린 웃음이 걸려 있었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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