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32화 (232/649)

232화. 우여곡절

성건우는 조셉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평소에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야?”

“좀 잔인하고 쉽게 욱하는 편이긴 해도, 그 외 다른 부분은 다 정상이었어.”

조셉은 본인의 의견을 고집했다.

장목화는 성건우가 상대와 계속 입씨름을 이어나가지 않도록 적당한 때에 끼어들었다.

“그동안 디마르코 선생의 모습은 평소와 어떻게 달랐는데?”

조셉의 얼굴이 재차 어두워졌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을 떠올린 듯했다.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더 잔인하고 포악해졌어. 경비들에게도 더는 자비롭지 않았지. 우린 매일 당직이 돌아올 때마다 덜덜 떨었어. 방귀라도 뀌었다가 디마르코 선생에게 그 소리를 들키면 바로 처형될 수도 있으니까.”

폴 역시 공감한다는 듯 덧붙였다.

“이전까지 디마르코 선생에게 신임받던 경비도 사소한 일로 맞아 죽었어.”

조셉의 말이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디마르코 선생은 아이를 낳고 싶어 미친 사람처럼 굴기도 했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들은 내버려 둔 채,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하인들 아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지. 그런 행동에 우린 모두 극도로 분노했지만, 감히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어. 다행히 그런 상태가 몇 년 가진 않았어. 그러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진짜⋯⋯.”

말을 마친 조셉은 재차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성건우에게 아무리 친근감을 느껴도 저 깊은 어두운 마음까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혹여나 그런 마음을 디마르코에게 들키게 된다면, 이 골짜기에 묻히게 될 다음 타자는 그가 될 터였다.

“디마르코가 원래대로 돌아온 건 마침내 새로운 아이를 얻었기 때문인가?”

장목화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아이에 대한 디마르코의 집착이 비정상적이라 생각되었다. 그건 분명 병이었다. 요절한 그 아이 외에도 아이 두 명이 또 있지 않던가.

조셉은 장목화의 추측을 부정했다.

“아니. 몇 차례 반복해서 화풀이하는 동안 점차 정신을 차린 건지, 더 이상은 그러지 않더라고. 그리고 정신을 차린 그에게 그 보답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오 개월 전에 정부 중 하나가 마침내 아이를 가졌어.”

“그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잖아.”

성건우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거야, 우리도 모르지.”

조셉은 딱히 그 가능성을 부인하진 않았다.

그러자 장목화는 지하 방주 경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어쩌면 벌써 암암리에 그 아이의 친부가 누구인지를 맞히는 내기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물었다.

“디마르코 선생의 다른 두 아이는 전부 여자애야? 요절한 애는 남자고?”

장목화가 생각하기에 어린 자식을 잃은 디마르코가 그렇게까지 미쳐버린 이유는 이것밖에 없었다.

조셉은 자신의 큰 코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죽은 애는 남자앤데, 나머지 둘 중 하나도 남자애야.”

그의 답에, 장목화는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성건우가 의욕적인 모습으로 물었다.

“혹시 우리가 너희를 따라 지하 방주에 들어갈 순 없을까?”

“안 돼.”

조셉과 폴은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조금 어려 있었다.

“왜?”

성건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조셉이 얼른 설명했다.

“모든 입구에선 검사가 삼중으로 실시되고, 경비도 상당히 많이 배치돼 있어. 우리 둘이 나갔다가 여섯이서 돌아간다면 단박에 들키고 말아.”

조셉은 성건우가 자신과 폴을 돕고자 함께 들어가려는 것이라 여겼다.

“내가 그들하고 이야기해볼게.”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조셉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우린 다 디마르코 선생을 두려워해. 그의 허락 없인 방주에 외부인을 들일 수 없어. 게다가 모든 검문소에 카메라도 설치돼 있어. 담당 경비들이 그 카메라에 비친 화면을 감시 중이야. 문제가 발각된 순간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모든 시설이 중단되고, 방주와 외부는 철저하게 격리돼.”

폴도 나서서 성건우를 만류했다.

“디마르코 선생의 가장 큰 취미 중 하나가 바로 감시야. 누구도 감히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어.”

‘안타깝군. 건우의 추리 광대 능력은 복잡한 전환을 거친 이후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으니. 감시 카메라는 소리를 확산시켜주는 기기도 아니고.’

아쉬워하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를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냐? 우린 너희를 이용해 지하 방주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너희를 통해 디마르코 선생에게 구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려는 것뿐이야. 이게 우리 주목적인데, 이걸 제외한다면 아주 간단한 질문 몇 가지밖에 없어.”

조셉과 폴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조셉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들 소개 좀 해줄래? 디마르코 선생은 분명 그 질문을 할 거거든.”

“우리는 유적 사냥꾼 팀이야. 팀장은 전하얀이고.”

장목화는 레드리버어로 소개하며 백새벽을 가리켰다.

조셉과 폴은 그들을 쓱 훑어보았다. 가장 말이 없고 가장 키가 작은 사람이 이 팀의 팀장이라는 사실에 의혹을 느끼는 듯했다.

장목화도 이 정도의 소개론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자화자찬하듯 말했다.

“전에 그 어인 신사를 처리해 레드스톤 마켓을 구한 게 바로 우리야.”

“뭐?”

조셉과 폴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보아하니 폐쇄적인 지하 방주에서는 세상의 소식을 잘 접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는 하층에 국한된 문제였다. 디마르코와 그의 집사, 그리고 경비대 대장은 최근 레드스톤 마켓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전하얀 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디마르코 선생에게 이대로 전하면 돼.”

장목화가 덧붙였다.

“알겠어.”

조셉과 폴이 곧장 답했다.

뒤이어 그들의 시선은 카를의 시체로 향했다. 지금 바로 지하 방주로 돌아가 보고를 해야 할지, 아니면 시체부터 처리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듯했다.

그들의 모습에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우리가 처리할게.”

‘친구? 팀장님, 벌써 건우한테 옮으신 건가요.’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목화의 허락을 받은 조셉과 폴은 마음 놓고 돌아서 동굴로 향했다.

장목화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성건우와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카를의 시체를 지프 트렁크에 실어.”

“예?”

막 삽 하나를 집어 들려던 용여홍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웰러에게 가져가서 자세히 부검하게 할 거야. 사망 원인에 이상한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게.”

장목화가 설명했다.

용여홍은 그제야 장목화의 의도를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순수하게 그녀가 죽은 카를을 끝까지 책임지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때 성건우가 동굴 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네⋯⋯.”

장목화가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이래서는 너의 총명한 머리와 각성자 능력을 발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지하 방주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일단은 예의를 차린 다음에, 정 안 되면 무력을 행사할 거니까.”

성건우는 고개를 돌려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당장 달려가 바주카포로 지하 방주의 대문을 날려버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건데요.”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거칠어진 거야?”

황당해하는 장목화를 보고, 성건우가 태연하게 답했다.

“몇 분 전에요. 지금은 사납고 무모한 성건우입니다.”

“⋯⋯.”

장목화는 상대를 위아래로 몇 번 훑다가 이성적으로 이 대화를 마쳤다.

* * *

성건우와 용여홍이 카를의 시체를 지프에 싣고도 한참을 더 기다렸을 때, 조셉과 폴이 다시 나왔다. 그들은 여전히 단순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고 기관단총을 한 정씩 메고 있었다.

성건우의 기대에 찬 눈을 보고, 조셉이 민망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디마르코 선생은 할 말 없으시대. 경계 교파의 주교와만 대화하겠다고.”

“알겠어.”

장목화는 더 이상 그들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대화 상대를 직접 마주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말만 주고받는 건 별 의미 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구조팀이 지프를 세워둔 곳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성건우는 아쉽다는 듯 조셉과 폴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 * *

지프가 아이언마운틴 발치에서 나왔을 무렵, 용여홍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떡하죠? 지하 방주로 잠입할 방법을 세워봐야 하나요?”

장목화는 사방을 살핀 후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한 가지 고민이 있어. 디마르코 선생에게 접촉하자고 지하 방주로 잠입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까지 있을까?

그의 선조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종말에 대한 두려움만 안고 있었어. 레드스톤 마켓의 배반자도, 리만의 부탁도 사실 우리한텐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진상을 밝혀낸다면 좋겠지만,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단 거지. 우린 그러겠다 약속한 적도 없고, 아직 어떤 보수를 받은 것도 아니잖아.”

백새벽이 그 말에 동조했다.

“우리가 더 이상의 조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건, 그 경계 교파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디마르코 선생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잖아요. 이건 그들의 문제지, 우리와는 관련 없는 문제예요.”

장목화는 자신과 같은 의견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맞아! 위험을 무릅쓰고 잠입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안은 고려해볼 수 있어.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지금 미리 그 방안을 생각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용여홍은 곁의 성건우를 힐긋 보다가, 집사와 친구가 된 후 물자 상자에 숨어 지하 방주로 잠입하는 방안까진 언급하지 않았다. 카를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라기보단, 디마르코가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를 실행에 옮기면 자신들을 도운 집사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 후로도 계속 고민하던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통풍관을 통해서 들어가는 건 어떨까요? 비엘은 모든 통풍구에 그곳을 지키는 경비가 있다고 하긴 했지만, 그곳을 지키는 경비의 수는 정식 입구를 지키는 경비보다는 많지 않을 거예요. 일단 그들부터 통제한 뒤 정신을 잃게 한다면,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성건우의 양손 동작 불능과 억지쟁이 능력이면, 이는 일도 아니었다.

장목화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가능은 해. 하지만 그 전에 통풍구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만약 있다면 그건 어떻게 해결하지?”

팀원들이 토론을 이어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성건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이제야 이를 알아차린 장목화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야, 넌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성건우는 곧장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일단 두 가지를 확인해두고 싶네요. 첫째, 우리 목적은 디마르코와 접촉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맞죠?”

그렇다고 하자, 성건우가 계속 말을 이었다.

“디마르코는 이에 대한 답을 전했어요. 경계 교파의 주교하고만 대화하겠다고요. 그렇다면 이러한 진술을 토대로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도출되죠. 우리가 경계 교파의 주교가 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거예요.”

장목화는 느릿하게 숨을 뱉어냈다.

“그것도 방법이긴 하지. 하지만 문제는 경계 교파의 주교가 되는 것도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거잖아.”

그녀의 기억 속, 문 뒤에서 주시하던 그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전, 레드스톤 마켓에 한 번 더 방문했다가 여관 구역으로 돌아온 구조팀은 더 이상 낮에 있었던 일에 관해선 고민하지 않았다.

* * *

그런데 다음 날 이른 아침, 누군가가 구조팀을 찾아왔다.

카를과 비슷하게 빳빳한 검은색 슈트를 입고, 검은 머리를 뒤로 정갈하게 빗어넘긴 남자는 헤어라인이 살짝 높은 편이었다. 또 나이는 40대 정도로, 외형만 봐도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풍겼다.

파란색 눈으로 구조팀원들을 한 번 훑어보던 그가 공손하게 말했다.

“숙녀분들, 신사분들, 저는 디마르코 선생의 집사 울리히입니다. 선생께서 여러분들을 지하 방주의 전용 접견실에서 뵙고자 하십니다.”

네 사람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만남을 거절했던 디마르코가 생각을 바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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