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31화 (231/649)

231화. 죽은 사람

리만을 보낸 뒤 점심을 먹은 구조팀은 북쪽에 있는 아이언 마운틴으로 향했다.

이때 용여홍이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님, 설마 함정은 아니겠죠?”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덤빌 이유가 있을까? 설령 있다 해도 우리 팀의 실력은 상당히 높아졌어. 지금은 유랑자 거점 하나도 파괴할 수 있을 만한 팀이 됐지.”

군용 외골격 장치의 위력을 시사하는 팀장의 말에 용여홍도 뿌듯해졌다.

* * *

지도 표시대로 나아가던 그들은 거의 두 시간을 들인 끝에 아이언 마운틴에 도착해, 산발치에 숨겨진 지하 방주 출구를 찾아냈다.

골짜기인 이곳 안쪽에는 동굴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하나 나 있었다. 지하 방주 입구는 그 동굴 깊은 곳에 자리해 있었다.

장목화는 곧장 그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감시가 편한 비교적 높은 곳에 올라 모습을 숨긴 채, 동굴의 입구를 면밀하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1분 1초 흐르는 사이, 하늘이 점차 어두워졌다.

쪼그려 앉아 있던 용여홍은 점차 지루해졌다. 그는 고개를 틀어 나무 몇 그루 뒤에 숨은 성건우를 보다가 한담을 하듯 물었다.

“안 지루하냐?”

“난 지금 바위야. 바위는 지루함 따위 느끼지 않지.”

성건우는 전방만 주시하며 답했다.

“⋯⋯바위라면 말도 못 할 텐데.”

용여홍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연기하고 있는 건 말하는 바위야.”

성건우가 다시 덤덤하게 설명했다.

‘난 정말 바보야, 정말로⋯⋯.’

용여홍은 그저 스스로를 욕했다. 심심하다고 성건우에게 말을 거느니,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게 나았다.

바로 그때, 동굴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묵직해 보이는 포대를 하나 끌고 있었다.

동굴에서 나온 두 사람은 같은 제복을 입고서, 기관단총을 하나씩 등에 메고 있었다. 아마도 지하 방주의 경비인 듯했다.

좌우를 둘러보며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둘은 묵직한 포대를 끌고 골짜기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교적 흙이 부드러운 곳을 찾은 그들은 포대에서 삽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장목화는 팀원들에게 몰래 눈짓을 한 후 다 함께 이동해, 경비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곧이어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잔뜩 소리를 낮춰 말했다.

“가.”

성건우는 의로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듯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쥔 채 튀어 나갔다. 이내 그가 땅을 파던 지하 방주의 두 경비를 향해 외쳤다.

“너희들은 이미 포위됐다!”

화들짝 놀란 두 경비는 동시에 삽을 집어 던지면서 각기 다른 곳으로 달아나 쏟아질 총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막 첫발을 뗀 순간 그들의 시야로 사신 바주카포의 시커먼 총구와 출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유탄총이 들어왔다. 빠르게 머리를 굴린 끝에 멈춰선 그들은 두 손을 들어 머리 뒤에 얹으면서 천천히 꿇어앉았다.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가 가까이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할 것 없어. 우린 그저 친구가 되기 위해 온 것일 뿐이니까.”

두 경비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가 성건우의 손에 들린 돌격 소총을 보고 묵묵히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둘은 전형적인 레드리버인이었다. 한 명은 갈색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 한 명은 노란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였으며, 모두 수염을 기르고 있었지만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굳이 특징을 짚어내야 한다면 한 명은 코가 비교적 큰 편이고, 다른 한 명은 눈썹이 상당히 짙은 편이었다.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봐봐. 난 너희들한테 총을 쏘지 않았어. 이렇게 평화롭게 대화하고 있잖아. 그리고 너희들한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하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두 경비는 순간 눈앞의 원숭이 가면을 쓴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친구가 되기 위해 온 사람 같았다.

“일찍 말하지 그랬어. 놀랐잖아.”

코가 큰 편인 갈색 머리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경비는 둘 중 그나마 담이 큰 편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건우는 그를 향해 자신의 친화력을 마음껏 뽐냈다.

“이름이 뭐지?”

“조셉이라고 부르면 돼. 이 녀석은 폴. 너는?”

“장우병.”

성건우가 애쉬랜드어로 가명을 말했다.

조셉은 그 이름을 듣고 그제야 알았다는 듯 물었다.

“애쉬랜더야?”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이지. 굳이 그 안에서 또 구분 지을 필요 없잖아.”

성건우는 제 생각을 강조하듯 말했다.

이때 포대 앞으로 다가온 장목화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포대 입구를 끌어 내린 다음, 안을 살펴봤다.

그 안에 든 것은 바로 시체였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검은색 슈트를 입은 그의 가슴팍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집사 카를이야!”

장목화는 한눈에 그 시체를 알아보았다. 상대는 디마르코의 세 집사 중 한 명으로 무기 사업을 담당하는 카를이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그는 경고자 송하균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인과 산 요괴에게 정보를 판 일이 없다고 증언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나 정갈하게 뒤로 빗어 넘겨져 있던 머리도 상당히 헝클어져 있었다. 단 몇 시간 전까지 살아있던 카를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카를이라고요?”

놀란 용여홍이 그 말을 반복했다. 포대 안에 그의 시체가 들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디마르코 선생의 성질을 건드린 다른 하인이겠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집사도 하인 중 하나이긴 했지만.

“카를 집사가 어떻게 죽었지?”

성건우가 이미 친해진 지하 방주의 두 경비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친구가 되는 능력 대신, 추리 광대로 경고자 송하균의 친화 능력을 흉내 냈다.

한편, 장목화는 시체를 살펴보며 카를이 죽은 이유가 가슴에 입은 총상 때문임을 확인했다.

이윽고 코가 큰 조셉이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디마르코 선생이 죽였어.”

“왜?”

용여홍이 물었다.

그는 집사 카를이 굉장히 충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카를은 경계 교파의 신도임에도 불구하고, 디마르코 선생의 무기 사업을 위해 어디로도 숨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충심을 알 수 있었다.

눈썹이 짙은 폴은 조셉과 시선을 주고받더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오전에 경계 교파의 그 경고자와 만난 뒤, 카를은 계속해서 디마르코 선생을 만나려 했어. 방에서 쉬고 있던 디마르코 선생은 오후가 되어서야 그를 방으로 들였지. 그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우리도 잘 몰라. 그저 조금 있다가 일어난 말다툼 끝에 격노한 디마르코 선생이 카를에게 총을 쏴서 죽였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야.”

장목화가 몸을 일으키는 사이, 명탐정 연기에 심취한 성건우가 물었다.

“둘이 말다툼하는 거, 직접 목격했어?”

조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는 방 안의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만 들었어. 문을 열고 들어가 디마르코 선생을 보호하려 했을 때 카를은 이미 죽어있었지. 말다툼을 했다는 건 디마르코 선생의 말씀이었어.”

‘설마 송 경고자와의 면담을 마치고 지하 방주로 돌아간 집사 카를이 모종의 사건을 떠올리고, 디마르코가 레나토 주교와 관련한 사건을 산 요괴에게 팔았을 수도 있겠다고 의심하게 된 건가? 그래서 이에 대한 설명을 구하려다 잔인한 디마르코를 건드려 그 자리에서 총살당한 건가? 하지만 이건 집사 카를의 충성스러운 이미지에는 부합하지 않는 행동인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순간 한 가지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디마르코 선생과 카를이 대화하는 동안, 그 옆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나?”

문밖의 경비가 디마르코를 지키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는 건 결국 그 안에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조셉이 답했다.

“맞아.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 않은 이상 디마르코 선생은 누구도 자신의 방에 있도록 두지 않아. 누군가가 자신의 방에 있는 걸 싫어하거든.”

그러자 성건우가 혀를 쯧쯧 찼다.

“경계 교파의 신도라기에는 마음가짐이 덜 됐네.”

그 말을 들은 용여홍은 방금의 진술에서 모순되는 점을 하나 발견했다. 디마르코는 경계 교파의 신도인데도 타인과 독대하는 상황에 습격이 두렵지도 않은지 모든 경비를 문밖에 물려두었다. 이건 너무나 부주의한 행동이었다.

“에이돌른에 대한 믿음이 그리 깊지 않은지도 모르지.”

백새벽은 이것이 가장 가능성 있고 합리적인 설명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썹이 짙은 폴은 곧장 그 말을 부인했다.

“아냐, 디마르코 선생은 굉장히 신실하신 분이셔. 가면도 수시로 쓰고 계시고. 최근 1년 정도는 매일 쓰고 계셨다니까? 잘 때 빼고는 벗지 않으셔.”

성건우가 곧장 물었다.

“잘 때는 벗는다는 걸 어떻게 알아?”

폴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그, 그냥 그럴 것 같다는 거야.”

성건우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캐물었다.

“그가 여자랑, 음, 남자도 포함해서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자기도 해?”

“응. 디마르코 선생에게는 여자가 아주 많아.”

조셉은 이러한 화제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성실히 답해주었다.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 짓을 할 때는 가면을 벗을까?”

조셉은 폴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기억을 더듬었다.

잠시 후 폴이 답했다.

“디마르코 선생과 함께 잤던 여자 하인 몇 명한테 들었는데, 쓰고 할 때도 있고 벗고 할 때도 있대.”

조셉도 이전에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며 말했다.

“맞아. 이전에는 가면을 쓰고 다니지 않는 때가 더 많았는데, 요즘은 쓰고 있을 때가 더 많아.”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그렇게 바뀌었지?”

장목화가 물었다.

“모르겠어.”

조셉과 폴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고민하던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가 최근에 레나토 주교와 대화를 할 때는 가면을 쓰고 있었어?”

“썼지. 최근 1년 동안에는 매일 쓰고 있었다니까?”

조셉의 말투는 확신으로 차 있었다.

‘최근 1년⋯⋯.’

장목화는 순간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리만의 친구 라르스가 실종된 지도 거의 1년이 되었다고 했어! 이 사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데⋯⋯.’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성건우는 화제를 한 번 더 바꿨다.

“디마르코와 그의 선조는 어땠어?”

어땠냐니? 조셉과 폴은 한동안 질문의 감을 잡지 못했다.

장목화는 잠시 위를 쳐다보며 한숨을 토해낸 뒤 설명을 이었다.

“디마르코와 그의 선조가 지하 방주를 어떻게 통치했느냐는 말이야.”

조셉과 폴은 서로 눈을 맞출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성건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 근처에 다른 사람은 없어.”

조셉은 그제야 기댈 곳을 찾은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디마르코와 그의 선조의 몸에는 잔인한 피가 흘러. 우리 부모님도 지하 방주의 사람이었어. 아버지는 경비였고, 어머니는 하인이었지. 부모님은 내게 매해 수많은 하인이 각종 이유로 죽음을 맞은 뒤 이 골짜기에 묻힌다고 하셨어. 그중에 소수의 몇몇만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너랑 너희 부모님은 운이 좋았던 모양이네?”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조셉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아니. 디마르코와 그의 선조는 경비들의 가족은 거의 죽이지 않았어. 몇 년 전 아들을 잃은 디마르코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몇몇 경비들을 처형한 적은 있었지만. 일단 일반적인 상황에서 경비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살 기회가 두세 번 정도 있어.”

“그렇게까지 미치광이는 아닌가 보네. 디마르코의 아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장목화는 어떠한 가치 평가도 내리지 않은 채 질문을 이어나갔다.

조셉이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디마르코 선생과 그의 선조는 잔인하고 포악하기는 했어도 새 생명만큼은 끔찍이 사랑했어. 디마르코의 할아버지부터 지하 방주 주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수많은 정부를 두고 수많은 자식을 낳은 뒤, 그중 가장 뛰어난 자식에게 지하 방주를 물려줬지. 게다가 그들은 경비들에게도 여자 하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으라고 적극적으로 장려했었어.”

“한 명도 빠짐없이⋯⋯.”

성건우가 되뇌는 소리를 듣고, 조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확실해.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말씀해주셨어.”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주인의 잔인한 성미 때문에, 사람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갔어. 그러다 디마르코 선생의 아버지가 중병에 든 후, 하인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폭동을 일으켰지. 그 속에서 디마르코의 자식들이 적잖이 목숨을 잃었어. 살아남은 건 겨우 소수고.

그 폭동을 잠재운 디마르코는 지하 방주 주인이 된 후 그 안에서 수많은 여자를 취했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낳은 자식은 셋뿐이었어. 그중 그가 가장 아낀 건 막내였는데 불행하게도 3년 전 그 아이는 병들어 요절하고 말았지. 그동안 디마르코 선생은 미친 사람과 다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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