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사람 찾기
기다리던 송하균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송하균은 별다른 변화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디마르코 선생의 세 집사와 면담한 결과, 기본적으로 그들이 어인과 산 요괴에게 레나토 주교와 관련한 일을 전하지 않았단 걸 확인했습니다. 또한 지하 방주를 통틀어 그들을 제외하고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디마르코 선생뿐이었어요. 그들도 디마르코 선생이 다른 사람에게 해당 사실을 전했는지는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영상 통화로 디마르코 선생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는 없을까요?”
송하균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합니다. 새로운 주교가 도착하기 전까지는요.”
네 사람 모두 실망한 기색이었다. 이제는 영락없이 다른 용의자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 * *
정오, 여관 구역.
다시 돌아온 구조팀은 구입한 식재료로 식사 준비를 했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그때, 연합 공업의 밀수업자 리만이 찾아왔다.
생긴 건 꼭 레드리버 농부처럼 생긴 딸기코 상인은 제 손을 비비며 어색한 애쉬랜드어로 말했다.
“친구 말이, 너희가 지하 방주의 디마르코를 조사하는 것 같다던데.”
장목화가 곧장 답했다.
“우리가 이전에 받은 임무가 디마르코 선생과 관련이 좀 있어서.”
리만이 웃으며 대꾸했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맡기려 한 일도 마침 지하 방주와 관련돼 있어.”
리만의 말에, 가면을 쓴 장목화가 잠시 뜸을 들이다 웃었다.
“공교로운 우연이네. 이전까지는 네 의뢰가 연합 공업과 관련된,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거든.”
이 신비로운 유적 사냥꾼 팀이 보이는 호의에 리만의 얼굴도 환해졌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연합 공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뢰도 맡길 수 있어.”
성건우가 흥미진진하다는 듯 물었다.
“어떤 것들이 있는데?”
그러자 리안은 말문이 막혔다. 순전히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다. 그는 평소 연합 공업과 관련된 일을 해결하려면 좋은 기술보다 좋은 관계가 훨씬 도움이 된다고 신봉하던 사람이었다.
속으로 웃음을 삼킨 장목화는 용여홍에게 계속해서 백새벽을 도와 요리를 하라고 지시하며 리만에게 물었다.
“네가 우리한테 맡기려 한 의뢰가 뭔지 말해봐. 하지만 반드시 맡으리라는 보장은 못 해.”
리만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 연합 공업의 어느 군수 기업에 속한 직원이었을 때 한 유적 사냥꾼한테 도움받은 적이 있었어. 이름은 라르스였지. 나보다 좀 어렸는데, 사격 실력도 아주 뛰어나고 격투 실력도 출중한 베테랑 사냥꾼이었어.
그 후 우린 수시로 만났지. 그자가 날 여러 차례 도와주기도 했고, 나도 그자에게 적잖게 의뢰를 맡기면서 그가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줬지. 아무튼 그 녀석은 나랑 제일 친한 친구였단 말이야.”
리만이 과거 이야기를 간단히 전하며 이렇게 정리했다.
“그가 어떻게 됐는데?”
장목화가 물었다.
백새벽을 도와 요리 중이던 용여홍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퍽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내 리만의 표정이 점점 무거워졌다.
“사라졌어. 한 1년 전에 레드스톤 마켓에서 실종됐어.”
“실종 전에 너한테 무슨 이야기를 했었어?”
이는 성건우의 질문이었다. 그는 한쪽 손으론 팔짱을 낀 채 다른 쪽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파이프만 없을 뿐이지 꼭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오는 명탐정 같은 모습이었다.
리만은 느릿하게 숨을 토해냈다.
“과거 라르스의 출신지인 어느 거점은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어. 그는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유일한 여동생은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됐지.
줄곧 동생 행방을 찾아다니던 그는 어느 날 기쁨에 찬 얼굴로 찾아와 단서를 찾았다고 했어. 그 단서에 따르면 동생이 이미 레드스톤 마켓에 팔려 가, 지하 방주의 하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야.
난 지하 방주에서 사람 하나를 사 오는 것쯤이야 아무 어려움도 없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라르스의 동생이 있다는 것만 확인되면, 그 애를 되찾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주겠다고 말했지.
라르스는 곧바로 레드스톤 마켓을 향해 출발했어. 그리고 내 다른 친구가 그 녀석이 분명 레드스톤 마켓에 도착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볼 수 없었다고 말했어. 녀석은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만 거야.”
침울한 리만의 얼굴을 보며 장목화가 물었다.
“그자의 실종이 지하 방주와 관련돼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때 성건우가 다른 가설을 말했다.
“레드스톤 마켓의 누군가와 싸움이 붙은 끝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한 거 아닐까? 그대로 돌에 묶여 호수에 던져졌을지도 모르잖아.”
애쉬랜드 내 몇몇 대형 세력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질서와 혼란이 공존했다. 그런 곳에서 살인은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리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거점이었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은 숨어있길 좋아해. 애초에 사업상 갈등이 있지 않은 이상. 외부인과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난 여기 있는 내 친구들이 라르스를 도와줬으면 해서, 라르스 편에 내 편지를 함께 보내기도 했어.”
“예를 들면 헬빅처럼?”
장목화가 웃으며 반문했다.
“맞아.”
리만은 부인하지 않았다.
죽기 전 헬빅은 레드스톤 마켓 내 리만의 주요 사업 파트너였다. 그런 그를 친구로 여기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이내 성건우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헬빅이 죽였을 가능성은? 헬빅은 아내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잖아. 능력 있는 사냥꾼인 라르스가 그들 집에 묵다가 헬빅의 아내인 테레사 부인과 정분이 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헬빅이 분노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그를 죽인 건 아닐까?”
장목화의 미간이 구겨졌다. 성건우가 자꾸 어디에서 저런 영감을 얻는 건지 대강 짐작이 갔다.
‘회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야? 아니, 근데 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익숙하게 들리는 거지? 웰러가 상사의 아내와 바람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고, 무심병에 걸린 레나토 주교와 쇼크사로 통풍관 안에서 쇼크사한 헬빅의 이야기를 다 뒤섞어 만든 이야기인가?’
리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어.”
“증거라도 있어?”
성건우가 못 받아들이겠다는 듯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리만이 두 손을 깍지껴 쥐었다.
“라르스가 테레사 부인과 정분이 날 리 없다는 이야기야. 왜냐하면 그 녀석은 남자를 좋아하거든.”
장목화는 리만을 바라보다가 성건우에게 눈짓했다. 아니, 눈으로 지시했다.
‘건우가 계속 추리한답시고 그럼 라르스는 헬빅과 정분이 났고, 그 사실에 분노한 테레사가 불륜 상대인 레나토 주교에게 그를 죽여달라고 한 모양이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성건우의 입에서 나올 말이 너무 혼란스럽고 복잡한 이야기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리만의 마음에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성건우는 아쉽다는 듯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장목화가 물었다.
“그 후에 발견한 다른 단서는 없어?”
몇 초간 뜸을 들이던 리만이 답했다.
“라르스가 비자 무역 회사에 방문해 디마르코의 집사 중 한 명인 울리히라는 자와 만났다는 것을 알아냈어. 그것 말고 단서는 더 이상 없어.
내 수하들을 시켜 레드스톤 마켓의 여러 사람을 통해 지하 방주와 관련한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지.
난 심지어 울리히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어. 하지만 그자는 라르스가 여동생이 불행히 병사했음을 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말했지.
그래, 라르스의 여동생은 분명히 지하 방주에 들어갔었어. 그곳의 하인으로 살다가 몇 달 되지 않아 병들어 죽었다는 거야.”
병들어 죽었다고? 장목화는 순간 비엘이 아까 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성격이 잔인한 디마르코는 하인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는 것을 매우 즐기며,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리만은 장목화를 바라보다, 잠시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난 최근 헬빅을 통해 한 가지 소식을 들었어. 아이언 마운틴 모처에 지하 방주 출구가 하나 있는데, 그곳으로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든다더라고.”
폐허 도시 북쪽에 자리한 아이언 마운틴은 산 요괴가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아이언 마운틴 산맥의 다른 한쪽에는 혼란의 시대에 상당히 유명했던 폐허인 아이언 마운틴 시티도 있었다.
이는 비엘이 해줬던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졌다.
장목화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물었다.
“헬빅은 그걸 어떻게 알았다는데?”
리만은 이미 죽은 자의 비밀을 지켜줄 생각 따위 없다는 듯 즉답했다.
“앙헤바스를 통해 알았대. 앙헤바스는 산 요괴한테 들었고.”
‘그래, 앙헤바스와 산 요괴는 줄곧 몰래 거래하고 있었으니까. 잠깐, 근데 아이언 마운틴 쪽에 지하 방주 출구가 있다고? 그곳은 산 요괴들의 거점과 멀지 않아. 만약 디마르코가 레드스톤 마켓의 정보를 팔려고 했다면 누구도 모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겠어.’
장목화는 빠르게 여러 개의 정보를 하나로 엮어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데?”
장목화의 물음에, 리만은 손으로 그린 지도 한 장을 펼쳐 보이며 그 위에 그려진 붉은 동그라미를 가리켰다.
“여기.”
뒤이어 그는 전하얀 팀이 정확히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그 지도에 그려진 각종 표식이 무슨 뜻인지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마친 그가 사진 한 장을 더 꺼내 보였다.
“이건 라르스가 실종되기 며칠 전에 찍은 거야.”
장목화는 받아든 사진을 살펴보았다. 라르스는 상당한 남성미가 느껴지는 장년의 남자였다.
짧은 린넨색 머리카락, 굉장히 높은 콧대, 옅은 파란색 눈동자, 입가 주위로 난 짧은 수염,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이마 가장자리에 난 크지 않은 파란색 모반이었다.
다만 사진으로는 그의 키까지 파악할 수 없었다.
장목화가 사진을 볼 때까지 기다리던 리만이 약간 망설이다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 내 부탁에 응해주길 바라진 않아. 그저 지하 방주를 조사하는 와중에 이쪽에도 조금만 신경 써줬으면 하는 거야. 만약 라르스의 행방, 혹은 그와 관련한 단서가 발견된다면 언제든 내게 찾아와 보수를 요구해도 좋아.”
‘거래 좀 할 줄 아는 놈이군. 하긴, 그러지 않았다면 무기 거상이 되지도 못했겠지. 사실 이런 공손한 태도를 자기보다 강한 상대 앞에서만 보인다는 게 유일한 문제지만.’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신경 써서 살펴볼게.”
“보수는 어떻게 줄 생각인데?”
성건우가 끼어들었다.
장목화는 이번에는 그를 노려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이 질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리만이 웃었다.
“예를 들면 최신형 외골격 장치 같은 거? 근데 이런 물건은 1년 정도는 기다려야 돼. 마찬가지로 T1형 멀티 기계 팔은 반년 이상 걸리고. 음, 이식까진 포함 안 돼. 장갑차, 탱크, 여러 종의 대포도 있고⋯⋯.”
그의 이야기를 얌전히 듣던 장목화가 대꾸했다.
“너도 큰 기대는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