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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228화 (228/649)

228화. 인간 (2)

그때, 백새벽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럼 넌 왜 그들 반대편에 서 있는 거야? 네가 그랬잖아. 넌 적잖은 어인과 산 요괴를 죽였다고.”

살짝 놀라는 듯했던 한명호는 곧 자조적인 표정을 드러냈다.

“나 자신을 인간으로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시기 전 내게 우리는 인간이라고, 그저 기괴한 병을 앓는 인간이라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어.

그 후 애쉬랜드를 유랑하기 시작한 난 매번 어마어마한 기대감을 안은 채 인간과 어울렸지만, 내 비밀을 발견한 그들은 늘 나를 기괴한 눈빛으로 대했어. 꼭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 더 이상 나랑 접촉하기 싫다는 듯한 눈빛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 살기 어린 눈빛을 드러내는 이들도 상당했으니까.

난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 구세계가 남긴 수많은 책을 찾고 그 위에 적힌 대로 행동했어. 때로는 무서워도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사람을 구했고, 때로는 가치 있는 물건을 독차지하고 싶어도 공평하게 분배하길 택했어.

때로는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그가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끝내 참아냈고, 때로는 비정상적일 정도의 경계심을 안은 사람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감정을 추슬렀지. 그들을 다독이고 조직하기 위해 솔선수범해서 시범을 보였어.

일찍이 한 산 요괴가 죽기 전 내 비밀을 발견했던 적이 있었지. 그자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더군. 이기적인 자식.”

이미 눈빛에 초점을 잃어버린 한명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그렇게 한명호는 가면을 쓴 구조팀원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조소를 보였다.

“그래, 난 이기적인 놈이야. 내가 했던 모든 일은 다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해 한 일이었으니까. 전부 인정받기 위해 했던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하고도, 이렇게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도 결국은 아류인이라고 손가락질이나 받게 되지.

인간의 기준이라는 게 있다면 이익을 위해 적에게 무기를 판 헬빅과 앙헤바스, 적들이 기습해 올 때 두려움에 벌벌 떨며 오히려 뒤로 물러나던 녀석들, 가장 기본적인 믿음조차 주지 못하는 경계 교파의 신도들보다 내가 더 인간에 가까울 거야. 언제나 나를 채찍질하면서도 끝끝내 인간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던 내가!

그래, 난 아류인이다! 내가 바로 아류인이야! 하지만 이 마을, 이 세상의 인간 대부분과 비교한다 해도 나보다 더 인간다운 사람은 없을 거다!”

한명호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장목화는 이런 상황에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그런 질문을 한 게 약간 후회스럽기도 했다.

바로 그때였다. 앞으로 나선 성건우가 잠시 한명호를 바라보다 말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춤으로 표현할게.”

그는 몇 가지 춤 동작을 취하더니, 그대로 돌아서서 떠나버렸다.

그 모습에 한명호뿐만 아니라 구조팀원 전부가 흠칫 놀랐다.

이는 더 이상 성건우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과 성건우는 전혀 다른 두 세계에 자리해 있는 듯 상태도 리듬도 완전히 달랐다.

다음 순간, 장목화는 성건우를 따라 이대로 떠나버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방금 한명호의 고백을 들은 이후 그를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로 대해야 할지 몰라 자신이 없어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건 알맞지 않았다. 구조팀은 한명호에게 선 넘는 짓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간단한 질문만 했을 뿐이었다.

그저 웃으며 슬쩍 넘어가기에는 진실성이 떨어져 보였고, 그렇다고 이 일을 아예 없던 일인 양 다른 질문을 하는 건 더더욱 불편했다.

한명호는 이렇게나 격앙된 상태로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 그에게 아무런 일도 없었던 척 구는 건 그야말로 그에 대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답을 하자니 장목화의 마음은 굉장히 복잡해졌다. 어떤 말을 해도 한명호의 인생을 위로할 수는 없었다. 순수한 인간인 그들은 절대 아류인의 삶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갑작스럽더라도 춤을 추다가 그냥 홱, 이 자리를 떠나버리는 것이 황당할지언정 최상의 방책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 이게 양측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가 그대로 성건우의 뒤를 따라 이 건물을 빠져나갔다.

용여홍과 백새벽은 자연히 팀장의 결정을 따랐다.

단 10여 초 만에 건물엔 한명호 혼자만 남게 되었다.

어지러운 발자국이 널린 주방을, 텅 빈 거실을 바라보던 한명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활짝 열린 대문 밖이었다.

멍한 표정의 한명호는 방금 자신을 찾아왔던 무리가 정녕 자신 앞에서 춤을 추고 떠나버린 것이 맞는지 약간 혼란스러웠다.

무의식적으로 소매를 걷은 그는 팔에 난 호박색 비늘을 다시 살폈다.

바로 그때였다. 문 앞에 가면을 쓴 얼굴 하나가 쑥 튀어나왔다.

우아한 중 가면이었다.

어색하게 두어 번 웃던 장목화가 검지를 들어 보였다.

“마지막 질문.”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옆에서는 털이 부숭부숭하고 입이 뾰족한 원숭이 가면과 코에 콘센트를 꽂아도 될 법한 돼지 가면이 따라 나타났다. 험악한 남자 가면을 쓴 백새벽도 문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복잡한 감정을 안은 한명호는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말했다.

“말해.”

장목화는 목을 가다듬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물었다.

“레나토 주교가 경계 교파 본부로 돌아갔다는 정보, 어인과 산 요괴에게 팔았어?”

한명호가 코웃음을 쳤다.

“그들에게 그 정보를 팔아서 내게 남는 이득이 뭐지? 환영받으며 아류인으로 돌아가기?”

“난 네 짓이 아닐 줄 알았어!”

성건우가 유쾌한 말투로 대꾸했다.

한명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분명 있기는 했지만, 장목화는 그가 이전에 했던 고백이 진실이리라 믿었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스스로를 인간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는 각성자 능력을 통해 확인한 결과가 아닌, 한명호가 평소 보인 모습과 방금 한 말에 담긴 논리를 결합한 끝에 내린 판단이었다.

장목화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널 믿어. 해야만 하는 질문이 있었을 뿐이지. 사실 우리한테는 의심 대상이 따로 있어. 넌 아니야.”

어제 이 문제에 관해 조사했었던 한명호는 조금 전 폭발했던 감정은 모두 잊은 듯 캐물었다.

“누구지?”

“디마르코. 혹은 지하 방주를 대표하는 누군가.”

장목화가 솔직하게 답했다.

한명호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생각해봤어. 아류인의 침략은 레드리버인에게도, 애쉬랜더에게도 재난이야. 하지만 지하 방주에게는 아니지.”

장목화가 동조했다.

“아류인이 지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지하 방주가 대외 물자 교환으로 이 지역 밀수업계에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기만 하면 아류인은 그들과 얘기 끝에 일정한 합작 협의를 달성할 수 있었을 거야. 내내 지하에 처박혀 있을 그들은 어인이나 산 요괴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아닐 테니까.”

이때, 백새벽이 끼어들었다.

“지하 방주 안의 디마르코에게 합작하지 못할 상대가 어디 있겠어? 어인과 산 요괴, 지하 방주의 관계는 레드스톤 마켓 주민과 지하 방주의 관계보다 더 가까워.”

장목화도 기억을 되새기며 맞장구쳤다.

“맞아, 그들의 조상은 디마르코의 선조와 마찬가지로 모두 이 도시의 원주민이니까.”

한명호도 말을 보탰다.

“최근 몇 년간 밀수사업으로 인한 분쟁으로 레드리버인도, 애쉬랜더도 지하 방주와 갈등하고 있었어. 지하 방주는 이 틈을 타 레드스톤 마켓을 물갈이하고 싶어 할 법도 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앞으로의 일은 너희들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리고 한명호가 돌연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장목화는 곧장 대꾸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아류인에 대한 송 경고자님의 태도는 언제나 온화한 편이었어. 네 출신에 대해서는 절대 개의치 않으실 거야.

게다가 그분은 네가 여태 보인 모습을 칭찬하면서 널 레드스톤 마켓의 진정한 치안관으로 여기던걸. 네가 레드스톤 마켓을 팔아먹는 짓만 하지 않았다면, 네가 아류인이란 사실을 모른 척할 수도 있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치기까지 했다고.

웰러로 말할 것 같으면 너도 잘 알겠지만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대가 아니잖아. 네게 예쁜 아내만 없다면 그자도 꽤 믿을 만한 사람이야.

음, 일단 지금으로서는 송 경고자와 웰러, 그리고 우리 네 사람만 네 출신을 알고 있어. 거기다 우리는 며칠 뒤 레드스톤 마켓을 떠날 거고, 그 후에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한동안 침묵에 빠져있던 한명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 아류인이라는 정체가 밝혀진 순간부터는 그 사실을 몇 명이 알고 있든,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특히나 내가 용감하고, 정직하고, 공평하게 보이려 노력했다는 사실을 들킨 순간에는 내 출신을 알고 있는 이들이 그런 나를 여태까지 우스꽝스럽게 연기해온 광대로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게다가 언젠가, 언젠가 송 경고자가 내 정체를 새로 부임한 주교에게 알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언젠가 웰러가 밀수업자와 술을 마시다 알딸딸하게 취한 날에 저도 모르게 내 출신을 흘려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자꾸 걱정돼.

이런 걱정은 끝내 만약 이 세상에 송 경고자와 웰러만 없으면 아무 위험도 없고, 뜻밖의 상황도 벌어지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발전되지. 악한 마음은 아주 무시무시한 존재야. 차라리 전에 여기로부터 멀리 떠나버리는 게 나아.”

한껏 낮게 깐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한명호가 결국 한숨을 토하며 낮게 웃었다. 장목화도 그런 말까지 하는 상대를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네가 떠나기 전까지 진상을 밝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한명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송 경고자에게 악의가 없다면 급하게 도망칠 필요는 없겠군. 며칠 더 머무르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해야지. 하하, 물론 너희들이 부탁했던 머신 헤븐과 관련한 자료 수집도.”

* * *

한명호에게 작별을 고한 뒤 지프로 돌아간 용여홍은 여전히 문이 활짝 열린 건물을 돌아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인간이라는 신분이 이렇게나 중요한지 처음 알았어요.”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아류인들의 조상도 처음엔 인간이었어. 재난과 변이, 구세계의 파괴로 그들과 그 후손들의 운명이 영원히 바뀌어버린 거지. 난 한명호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운명에 굴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려고 노력하잖아.”

차창에 기대있던 성건우는 점점 멀어지는 건물을 보다, 불쑥 이야기했다.

“저자를 회사에 데려갈 수는 없을까요?”

장목화도 그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다.

“시도는 해보지, 뭐. 오후에 보고 보내볼게. 회사에서 뭐라고 하는지 보자. 이 일에 있어선 우리 멋대로 결정 내릴 수 없어. 그랬다간 저자를 데리고 회사 대문 앞까지 갔다가 들어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반고 바이오 직원 중에도 아류인을 멸시하고 배척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이들은 없었다.

애쉬랜드의 다른 대형 세력에 비하면 훨씬 열린 태도였다. 심지어 반고 바이오는 자발적으로 아류인 무리를 자신의 세력에 종속시키기도 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 반고 바이오의 직원 대부분은 더 이상 순수한 인간이 아니었다. 유전자 개조, 개량이 자연법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일부 세력이 보기엔 선택받은 자나 아류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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