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25화 (225/649)

225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

두 사람은 다시 대형을 맞춰 신전을 빠져나왔다. 성건우는 대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시 돌아서더니 검은 대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장목화가 묘한 말투로 평했다.

“정말 예의 바르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다른 건물 안도 한 번 살펴보자. 어떤 단서가 있을지 모르잖아.”

두 사람은 곧장 신전 밖 골목길에 자리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 내부를 간단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어인들에게 싹 털리기라도 한 듯 이곳에 남은 문자 기록 같은 것은 없었다.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거라곤 적지 않은 곳에 남은 싸움의 흔적과 이미 까맣게 말라붙은 혈흔이었다.

“정말 무심자의 습격이 있었던 모양이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겠어⋯⋯.”

장목화는 어인 포로의 진술을 토대로 판단을 내렸다.

이 섬에 대규모의 무심병이 발발한 뒤 남은 인간들은 전부 무심자들의 사냥감이 되었다고 했다.

시간 때문에 이곳에 마냥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골목길 안의 건물에서 나온 성건우와 장목화는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골목길에서 거의 빠져나가려던 그때였다. 장목화는 자신이 일부러 닫고 나오지 않았던 문들을 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물었다.

“그럼 저 문들을 닫아뒀던 건 누굴까?”

닥치는 대로 달려들어 사람을 죽였을 무심자들에게는 문을 닫을 본능 따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동문일지도요.”

진지하게 답한 성건우가 바로 골목길 밖을 가리키며 기쁘게 말했다.

“자전거가 아직 그대로 있네요.”

“정말 도둑맞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목소리를 점점 더 낮추던 장목화가 고개를 틀어 섬 중앙에 자리한 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쩌면 무심자들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이라고 자전거를 타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 * *

장목화와 성건우는 자전거를 타고, 원래의 길을 따라 읍내를 빠져나갔다.

겨울 저녁이 이미 성큼 다가온 이때 하늘은 적잖이 어두워져 있었다.

한참을 달려가던 장목화가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신전이 자리한 읍내를 돌아보았다.

사방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구세계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적막한 읍내에선 더더욱 어떠한 생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 무엇 때문인지 장목화는 해자 마을의 저녁 풍경이 떠올랐다.

뒤쪽 논밭과 야외 숲에서 돌아와 불법 건축물이 즐비한 광장 위에서 화로에 불을 피우고 밥을 짓는 주민들, 학교에서 돌아와 서로를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기대 가득한 눈으로 끓는 냄비를 보는 아이들이 있던 그곳이.

* *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금 적막해진 읍내, 신전이 자리한 골목길 안.

돌연 불어온 거친 바람에 활짝 열린 몇몇 건물들 문이 속속들이 닫혔다.

쾅!

* * *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두 자전거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끌고 황량한 논밭과 시든 나무 사이를 달렸다.

페달을 열심히 밟아나가던 그때, 장목화가 돌연 손짓으로 성건우에게 속도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후 길가로 나아간 그녀는 자전거를 잘 세워둔 뒤 부드러운 나뭇가지들을 몇 개 꺾었다.

“뭐 하세요?”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가면을 쓰지 않은 장목화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집안의 규율을 다잡을 준비.”

성건우는 깊은 공감의 뜻을 밝혔다.

“그래요. 요즘 여홍이가 좀 나대긴 하더라고요. 세상 물정을 좀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장목화는 피식 웃으며 가지들을 뒷좌석에 싣더니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가자.”

* * *

하늘 가장자리가 불타듯 물들었을 무렵, 두 사람은 부두에 도착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용여홍은 무사히 돌아온 두 사람을 보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땠어요? 무슨 발견이라도 하셨어요?”

장목화는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의 색을 살폈다.

“수확이 있기는 했어. 돌아가서 이야기해줄게.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하늘이 완전히 새카매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까.”

사방이 캄캄해지면 호수에서는 주위를 분간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테고, 어인들은 더욱 신출귀몰하게 움직일 것이었다.

물론 여기엔 적들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인간 레이더가 둘이나 있었지만, 열병기 시대인 이때, 배를 타고 다가온 어인들이 어두운 밤하늘 아래 1~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바주카포라도 쐈다간 매우 골치가 아파질 터였다.

또한 장목화는 이러한 상황에 소름 끼쳤던 탐색 경험을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한 이야기에 용여홍과 백새벽이 영향을 받게 될지도 몰랐다.

그녀의 제안에 백새벽과 용여홍은 아무런 이의도 표하지 않았다. 태양은 정말로 조금씩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 * *

자전거를 잘 싣은 다음, 백새벽이 모터보트에 시동을 걸었다.

장목화는 자리에 앉아 꺾어온 가지들을 열심히 엮기 시작했다.

“팀장님, 뭐 하세요?”

용여홍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집안의 규율을 다잡을 준비.”

성건우는 일부러 가면까지 벗어가며 용여홍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장목화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꽤 유용할 거야. 어인과의 전투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으니까. 우린 최후 빌런이잖아.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배워야지.”

용여홍은 팀장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지를 엮는 것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사이에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그때, 모터보트 운전을 맡고 있던 백새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인을 기만하려고 하시나 봐요.”

바람이 그렇게 세게 불지 않아서인지, 장목화는 예리하게도 금세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기만이라니? 전술적인 속임수지.”

“그 둘이 뭐가 다르죠?”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이번엔 성건우가 나서서 설명을 도왔다.

“전술적인 속임수가 듣기에는 더 좋아 보이잖아.”

장목화는 바로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좋아, 둘이 아주 죽이 잘 맞네. 정말로 집안의 규율을 다잡아야겠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모터보트는 원래의 길을 따라 레드스톤 마켓 쪽으로 용감하게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목화는 꺾은 가지 절반으로 팔찌를 하나 완성했다.

“잊지 않고 계셨네요.”

성건우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순간 장목화는 사레에 들릴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며 대꾸했다.

“너무 끔찍한 대사인데.”

“무슨 말이죠?”

또 한 번 용여홍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 신전 안에서 나뭇가지로 엮은 팔찌를 하나 발견했어. 감히 가져올 엄두는 낼 수 없었지만.”

장목화가 답했다.

“그렇죠. 그런 곳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면 안 되죠.”

용여홍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말을 받았다.

곧이어 왼팔에 팔찌를 찬 장목화가 백새벽 앞으로 팔을 내밀었다.

“어때? 내 손재주?”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시면 안 돼요. 7살 때 저보다도 못하신데요.”

백새벽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장목화는 그녀의 평가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비교하는 건 불공평하지. 난 7살 때 진짜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는데. 세상의 모든 나무가 다 목화처럼 생긴 줄 알았다고.”

모터보트가 계속해서 나아가는 가운데 하늘은 점차 어두워졌다.

그러다 시야에 호숫가가 들어올 무렵, 장목화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곧이어 성건우도 입을 열었다.

“물속에 인간들이 많습니다.”

장목화가 웃으며 표정을 살짝 풀었다.

“하, 아주 신중하시네. 우리를 쫓아온 게 어인이 아닐 수도 있다, 이거야? 대략 서른 명 정도네.”

“그렇게나 많다고요?”

용여홍은 이 오래된 골동품과 같은 외골격 장치가 물속에서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모터보트 가장자리로 다가간 장목화가 어인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왼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크게 외쳤다.

“우리는 그 금기된 신전에 다녀왔어. 이 물건도 손에 넣었지. 너희들의 신사가 그때 뭘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을 거야. 그 이후에 그가 얼마나 강력해졌는지도 똑똑히 알고 있을 테고. 한 번 시험해 볼까?”

말을 마친 장목화가 고개를 돌리더니 성건우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청력이 그다지 예리하지 않은 물속 어인들은 ‘신전’, ‘신사’, ‘강력’ 등의 단어만 겨우 들었을 뿐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일렁이는 수면 너머로 장목화의 손목에 걸려 있는 나뭇가지 팔찌를 발견했다.

그들은 자연스레 특정 사건을, 당시 신사가 보여준 무시무시한 위력을 떠올렸다. 바로 다음 순간 어인들은 갑작스레 두 손에 대한 감각을 잃었다. 굳어버린 두 손은 더 이상 물속을 헤집지 못했다. 그로 인해 약간 가라앉게 된 이들은 급히 양발을 움직여 균형을 유지했다.

이러한 일을 실제로 겪자, 어인들은 장목화의 말을 안 믿으려야 안 믿을 수가 없었다. 신사에게 대항했던 강력한 적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전쟁으로 그들도 적잖은 병력을 잃었다. 또 아무런 이유도 없이 3, 40명의 젊은 청년들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어인들은 급히 본인 상태를 동료에게 알렸다.

7, 8초 후, 그들은 동시에 아래쪽으로 깊숙이 잠수하더니 이 수역으로부터 멀리 벗어났다.

장목화는 곧 웃으며 용여홍과 성건우, 백새벽을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지, 싸우지 않고도 이긴다고.”

용여홍이 깊이 탄복하는 사이 성건우는 곧장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만약 저들에게 우리가 신사를 죽였다고 말했다면 알아서 도망쳤을까요?”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화를 바탕으로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성건우는 어인의 신사를 죽인 것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심리적인 부담도 느끼지 않았다.

‘물론 전장에서는 누군가의 목숨이 그다지 귀하게 여겨지지 않지. 실수로 전우를 죽인 게 아닌 이상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고. 그때 건우에겐 어인 각성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어. 갑자기 변이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생포했을 테지.’

장목화는 원래 계획해둔 성건우를 위한 심리 치료를 속으로 조용히 취소했다.

이제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절반쯤 가라앉았을 무렵, 모터보트는 레드스톤 마켓 부두에 도착했다.

* * *

여관 구역, 05호 방.

장목화는 탐색으로 발견한 것들을 용여홍과 백새벽에게 공유해주었다.

용여홍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싸늘해지는 듯한 주변 공기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러다 주위를 살피던 그가 돌연 성건우를 노려봤다.

“야! 어느새 또 문을 열어둔 거야?”

어쩐지 공기가 싸늘했던 건, 밖에서 불어닥치는 겨울바람 때문이었다.

“1분 전에. 당시 환경을 재현시켜준 거야. 정말로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나도록.”

성건우가 용여홍의 질문에 답하며 나름의 이유를 밝혔다.

“그럴 필요 없어! 누가 그런 깊은 몰입 같은 거 하고 싶다고 했냐고!”

성건우는 다시 문을 닫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 환상적인 이야기이긴 하지.”

실제로 겪지 않은 이상 믿기 힘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장목화도 따라서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심령의 복도 깊은 곳에 이른 강력한 각성자, 그리고 달지기는 정말 예사롭지 않아. 그들 주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진짜 난 정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니까.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말을 믿는 건 상관없는데 현재의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건 아예 없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거야.

오늘날의 과학은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해. 대담하게 가설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검증하는 게 과학의 정신이야. 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거지.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제자리걸음만 하며 맹목적인 배척을 해선 안 돼.”

장목화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