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신전 (2)
대략 방향을 파악한 장목화가 도랑을 따라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어인 포로는 그 신전이 광장 동쪽 골목길 안에 있다고 했었다.
읍내 내부는 외부와 마찬가지로 바람 소리와 자전거 소리를 제외하면 매우 고요했다. 머리가 저릿해질 정도의 적막이었다.
“밖에선 몰랐는데, 여기 들어오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게 좀 기괴하네.”
장목화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이곳이 음산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협소한 도로와 답답한 환경, 무직한 분위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성건우는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여홍이랑 같이 왔어야 하는데.”
“같이 왔으면 뭘 하려고?”
성건우는 한숨을 한 번 더 쉬었다.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려고요.”
“정말 좋은 친구구나.”
장목화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탁 트인 시야에 크지 않은 광장이 드러났다.
광장 동쪽으론 50센티미터 높이 단상이 있었으나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그 단상 너머로 좁은 길이 하나 나 있었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골목길은 아주 오랫동안 바람 한 점조차 통하지 않은 듯했다.
장목화는 빠르게 자전거를 몰고 가, 그 옆에 자전거를 기대놓았다.
두 사람으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성건우 역시 자전거에서 내리며 걱정을 내비쳤다.
“자물쇠 채워둬야 하지 않을까요? 자전거 잃어버리면 큰일 날 텐데요.”
“네 자전거가 사라지면, 내 자전거에 태워줄게.”
장목화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전거가 사라질 리 있겠느냐는 핀잔을 하는 대신, 성건우의 사고 흐름에 맞춰 호응해 주었다.
* * *
10여 초 후, 자전거를 잘 세워둔 두 사람은 돌격 소총을 쥔 채 전방 골목길 안으로 조심조심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공기에서 느껴지는 썩은 냄새는 심해졌다. 금방이라도 실체로 굳어질 듯 심각한 냄새였지만, 성건우와 장목화은 아무런 문제 없이 호흡할 수 있었다.
이 골목길에 자리한 모든 건물의 문과 창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이미 누군가에게 싹 털린 듯 문이 활짝 열려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또한 그 문들은 전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는 동안 장목화는 자신과 성건우의 발소리를 들었다. 발소리는 좁은 골목 안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서로 겹쳐지고 있었다.
“역시 좀 특이한 곳이네.”
장목화가 중얼거리는 사이, 신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골목 끝,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한 신전은 건축 양식으로 볼 때 주위 건물들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단단히 닫힌 검은색 대문 위쪽으론 검은색 기와가 이어져 있었고, 문 양쪽에는 하얀 종이 등롱이 달려 있었다. 처마가 막아주어 그런지, 등롱은 비바람에도 젖거나 망가지지 않고 어젯밤에 내건 듯 아주 멀쩡해 보였다.
그런가 하면 다른 건물들에 비해 좀 높은 문이 달린 신전 처마 아래엔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쓰인 현판이 하나 걸려 있기도 했다. 침착하게 그곳을 살피던 장목화는 현판 내용을 또렷하게 확인했다.
[염라전(閻邏殿)]
“별로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장목화가 거침없이 평가를 내렸다.
곧이어 그녀는 성건우와 함께 신전 문 앞에 이르렀다. 근처에 다다르자마자 일종의 기이한 느낌이 다가왔다. 바로 마음속 깊은 곳을 겨냥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왼손을 뻗어 문에 얹은 뒤 살짝 힘을 주었다. 자전거를 타기 전 그녀와 성건우는 이미 라텍스 장갑을 착용했다. 문에 왼손만 얹은 것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끼익-
신전 검은 문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며 내부를 드러냈다.
장목화와 성건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뜨락이었다.
뜨락의 네 모퉁이엔 물독이 하나씩 놓여 있고, 뜨락 끝엔 편각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 문에 흰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문틀을 넘어 신전으로 들자, 순간 장목화의 두려움도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거대한 돌 여러 개가 얹힌 듯 가슴이 묵직하고 답답했다. 심지어 이곳은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아, 비현실적으로 적막한 분위기였다.
그때,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스피커, 꺼내도 될까요?”
“뭐?”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하던 장목화는 그의 말뜻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노래를 틀려고요.”
성건우가 얼른 설명했다.
‘이 음산하고, 신비롭고, 고요하고, 답답하고, 기이한 신전에서 음악을 틀겠다고? 그 기괴한 음악들을?’
장목화는 그 방법이 지금의 분위기를 타파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래도 께름칙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언제라도 이상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에 ‘너는 나의 작은 사과’ 따위의 노랫말이 울려 퍼지는 건 정말이지 괴이한 일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 근데 준비해두는 건 좋아.”
“알겠습니다.”
성건우는 신이 난 듯 보였다.
* * *
돌격 소총을 쥔 두 사람은 대형을 갖춘 채 정전의 문을 향해 나아갔다.
흰색 장막을 거둬 올리자 제상, 향로, 재, 방석, 흰 양초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제상에 신상 같은 건 없었고, 뒤쪽은 상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성건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인간의 의식이 있어요. 10미터 안쪽에요.”
구체적인 범위를 확신할 순 없는 듯 그의 설명은 조금 모호했다.
“이곳에 들어온 후에야 느껴진 거야?”
장목화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녀는 성건우의 의식 감지 능력의 범위가 최대 20미터에 달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신을 집중한 장목화가 한참 후에야 약간 망설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전기 신호가 있긴 있네. 아주 미약하긴 하지만⋯⋯. 생물의 활성도가 극도로 낮다는 건가?”
그녀는 말을 하는 동시에 성건우와 함께 제상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눈앞에 새카만 관 하나를 발견했다.
열려 있는 관 안에는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바깥에서 햇빛이 들어오더니 말아 올려놓은 장막을 지나 신전 깊은 곳을 비췄다. 덕분에 장목화와 성건우도 어렵게나마 관 안에 누운 사람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검은색 머리칼을 매우 길게 기른 그는 흰 삼베옷을 입고 있었으며, 방부제를 바른 다음 오랫동안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두기라도 한 듯 온몸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 때문에 장목화는 그의 실제 생김새를 볼 수 없었다. 뼈만 남은 듯한 그를 컴퓨터로 환원시키지 않는 이상에는 기형인지 아닌지만 기본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미약하게 느껴지는 전기 신호로 상대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지 못했더라면, 장목화는 관 안의 존재를 특수한 환경 때문에 썩지 않은 미라로 여겼을 것 같았다. 잠든 신령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다.
코끝에 방부제 냄새도 어렴풋이 닿았다. 이러한 조건들이 어우러진 이곳 환경은 더더욱 싸늘하고 음산하기만 했다.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린 장목화는 잠든 신령의 오른팔에 걸린,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듯한 팔찌를 발견했다.
쿵쿵-
장목화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털이 북슬북슬한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는 시체처럼 잠든 신령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생각해?”
살짝 머뭇거리던 장목화가 물었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그리고 페이스메이커요.”
성건우는 진지하게 답을 했다.
“⋯⋯.”
장목화는 자신의 정신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라는 걸, 성건우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몇 초 후에야 그녀는 약간의 짜증과 웃음이 동시에 섞인 소리로 말했다.
“회사 주의사항 기억 안 나?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소위 신령이라는 존재랑 접촉하지 말랬잖아.”
“이동시키지 말라고만 하지 않았나요?”
성건우의 기억력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럼 내가 방금 말한 건? 여유분이 있어야 한다고, 조건을 더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했잖아. 하마터면 너 때문에 잊어버릴 뻔했네. 저 나뭇가지 팔찌, 어딘가 낯익지 않아?”
코웃음을 치던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반박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어인 각성자가 쓰고 있던 월계관과 비슷하네요.”
성건우 역시 이미 그 팔찌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장목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의 힘은 그 월계관에서 기인하는 것 같았어. 그때 그 월계관을 만졌을 때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어?”
성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주 평범했어요.”
“하긴, 특별한 뭔가 있었다면 진즉 가져왔겠지. 송 경고자는 심령의 복도 깊은 곳에 이른 강력한 각성자는 자신의 기운을 심령의 복도 내부나 현실 세계에 남겨둔 채 어떤 물건, 심지어 인간과도 융합시킬 수 있다고 했어.
원래는 그 월계관에 녹아들어 있던 기운이 어인 각성자 손에 들어간 뒤엔 체내로 침투하면서 그를 강력하게 변하게 한 걸까? 하지만 그런데도 잠재된 위험은 남아 있었던 거야. 그때 그는 꼭 괴물을 낳을 것처럼 보였잖아.
만약 우리가 그때 계속해서 총을 쏘지 않았다면, 그 변화가 이어지도록 내버려 뒀다면 결국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잠든 신령은 그로 인해 깨어나거나 하지 않았을까?
근데 또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그를 믿던 이전의 신도들은 벌써 해당 작업을 마쳤겠지. 신령이 지니고 있던 물건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는 건 아주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설마 같은 영역의 각성자여야만 그 기운과 융합할 수 있는 건가?”
장목화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녀는 고개 숙여 가죽과 뼈만 남은 미라를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발한 생각이었지만, 이는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 설명될 수 있었다. 이것들을 뒷받침할 증거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소위 염라의 강세라는 이 신령은 잠들기 전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던 나머지,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그를 두려워했던 신도들은 깊은 잠에 빠진 그의 육체를 감히 건드리거나, 그가 지니고 있던 물건을 취할 엄두는 절대로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내 성건우는 장목화의 추측을 검증할 만한 방법을 제시했다.
“시도해보면 바로 알게 될 텐데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장목화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욕구를 애써 억눌렀다. 그녀도 성건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성건우와 어인 각성자는 같은 영역에 속해있지 않았다. 장목화 자신은 각성자조차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만약 저 나뭇가지 팔찌를 취해 직접 사용하더라도, 그 기운이 체내에 스며들지 않는다면 많은 것들이 설명될 터였다.
하지만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한숨을 토해낸 장목화가 한 손에만 총을 쥐고 반대쪽 손에 찬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앞으로 9분 남았어.”
그녀는 신전의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 역시 여유분까지 계산했을 때 남은 시간이었다. 15분을 꼭 채우기까지는 사실 13분이 남아 있었다.
성건우는 낭비할 시간 따위 없다는 듯, 한 가지 생각을 제안했다.
“이자가 우리 말을 듣고 있을까요? 만약 제가 음악을 튼다면 감상도 할까요? 혹시 특정한 음악을 틀면 벌떡 일어나 춤을 추진 않을까요?”
‘얘랑 같이 있으면 아무리 기이하고 무서운 상황도 기괴해진다니까. 심지어 우스워지기까지 해. 정말 누군가를 놀라게 할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에는.’
장목화는 저 관 속에 누운 미라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조금 섬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표정으로 미라를 대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대꾸했다.
“대화를 한 번 시도해봐. 음악 말고.”
아쉽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쉰 성건우가 관 앞으로 다가갔다.
“내 말 들려? 들리면 눈을 한 번 깜빡여봐.”
그는 친절하게도 애쉬랜드어, 레드리버어를 모두 써서 그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비쩍 마른 신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성건우는 순간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가 네 모자를 훔쳐 갔다고!”
그가 말하는 모자란 그 월계관을 가리켰다.
그래도 미라 같은 신령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