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22화 (222/649)

222화. 신전 (1)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눈앞에 굉장히 거대한 섬이 하나 나타났다.

섬 중앙에는 경계비처럼 보이는 산봉우리도 우뚝 서 있었다.

“곧 도착이야.”

장목화는 레드스톤 마켓에서 수집해준 그 섬의 특징과 묘사를 통해 눈앞에 자리한 것이 바로 목적지임을 확신했다.

백새벽은 모터보트 방향을 살짝 조정하면서 조금의 편차도 없도록 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네 사람의 머리칼과 옷이 흩날렸다.

마침내 그 섬에 접근한 구조팀은 초라한 부두 하나를 발견했다. 부두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선 작은 강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성건우가 허리를 살짝 굽히며 잔뜩 흥분한 얼굴로 좌측 수역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의식이 느껴져요. 세 개예요.”

“어인인 것 같아.”

장목화는 그보다 일찍 그들의 존재를 감지했다. 다만 그것이 대형 어류인지 어인인지 잠시 판단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어쩌죠? 최대한 빨리 정박할까요?”

긴장으로 마음이 졸아든 용여홍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행여 어인과의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물 위에서가 아니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장목화가 침착하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 속도가 아주 빨라. 어인들은 아직 이 섬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닌가 봐. 수시로 이쪽 상황을 정찰할 이들을 파견했었나 봐.”

이제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물에 뛰어들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백새벽도 모터보트를 조종하며 연합 202 한 자루를 뽑아 물속 어인들을 쏘려 했다. 하지만 일렁이는 수면 아래, 어인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용여홍 역시 그랬다. 그는 심지어 기이한 생각을 하나 떠올리기도 했다.

‘외골격 장치, 방수 기능은 어떠려나⋯⋯.’

이내 장목화가 어인들의 동향을 알려주었다.

“꽤 깊이 잠수한 상태야. 우리 배 바닥 부분을 망가뜨릴 작정인가 봐.”

그리고 목제 갑판을 밟고 선 그녀가 세 사람에게 말했다.

“전부 다 배 가장자리에서 벗어나. 목제 갑판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접촉하면 안 돼. 물에서 어인과 싸울 필요도 없어. 조금의 승산도 없을 테니까.”

성건우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웅크렸다.

팀원들이 갑판을 밟자, 장목화는 쪼그려 앉아 호수 수면에 왼손을 댔다.

다음 순간, 배 가장자리가 밝게 번쩍였다. 마치 태양이 가장 밝은 빛을 내뿜는 정오로 돌아간 것 같았다.

콰르릉!

은백색 전류가 폭발한 뒤, 호수를 따라 아래로 파고들었다.

이 과정이 십여 초 정도 유지되었을 무렵, 물고기 몇 마리가 배를 뒤집은 채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그보다 더 바깥쪽에선 마찬가지로 수면 쪽으로 떠오른 세 어인이 미친 듯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눈빛까지 멍해 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장목화는 비로소 손을 거두며 고압 전류의 방출을 중단했다. 신전을 탐색할 때 써야 할 전류도 남겨둬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인들이 멀어지는 이 틈을 타, 백새벽은 모터보트를 부두에 정박시키고 한 말뚝에 배를 묶었다.

* * *

배에서 폴짝 뛰어내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장목화가 막 입을 떼려던 그때였다. 그녀를 따라 섬에 오른 성건우는 부근의 작은 강 옆으로 달려가 녹슨 금속 표지판을 하나 일으켜 세웠다.

「물고기를 감전시키지 마시오!」

레드리버어로 적힌 표지판이었다.

장목화는 흠칫 놀랐다. 동시에 그녀는 곁눈으로 가면을 벗은 백새벽과 용여홍이 입술을 꾹 깨문 채 몸을 살짝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했다. 성건우로 말할 것 같으면 아직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웃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어인은 물고기가 아니라고!”

장목화가 자기변호를 하듯 외쳤다. 그리고는 그녀 역시 웃기 시작했다. 부두는 금세 곧 활기에 찼다. 기묘한 우연이었다.

이윽고 용여홍이 성건우의 도움을 받아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는 사이, 백새벽이 자전거 두 대를 끌고 왔다.

용여홍이 장치를 다 착용하자, 장목화도 그제야 웃음을 거두고 진지해졌다.

“새벽이랑 여홍이 너희는 여기 남아 어인들이 배를 망가뜨리지 못하게 잘 지켜줘. 동시에 너희는 예비 전력이기도 해. 신전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진 아무도 몰라. 다 같이 들어갔다가 한꺼번에 몰살되면 어떡해?

그러니 너희가 여기 남아 있어야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가 구조랑 지원을 요청할 수 있어. 내가 신호탄을 터뜨릴 때마다 잘 봐. 만약 우리가 시간을 넘기면 곧장 찾아오고, 뭔가 잘못된 걸 발견하면 바로 회사에 알려.”

팀 활동을 할 때 일반적으론 이런 식으로 분업을 했다.

일부 팀원을 후방에 남겨놓는 건 이러한 탐색에서 꽤 유효한 조치 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백새벽은 아무런 이의도 표할 수 없었다. 용여홍도 마찬가지였다.

장목화는 폭군 유탄 발사기와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어깨에 멘 채 자전거에 올라탔다. 뒤이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회색 바탕에 카무플라주 패턴이 들어간 옷, 검은 가죽 부츠 차림에, 돌격 소총을 메고 아이스모스와 연합 202까지 허리춤에 꽂은 성건우와 자전거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신 역시 다를 바 없겠다는 생각에, 장목화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완전 무장을 하고 미지의 장소를 탐색하러 가는 사람들이 자전거에 올라타 있다니, 진짜 기묘한 느낌이네.”

잠시 고민하던 성건우가 대꾸했다.

“적어도 트랙터는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무장한 채 트랙터를 모는 장면을 상상해보던 장목화는 지금의 조건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뒤이어 자전거의 페달을 밟기 시작한 두 사람은 신전으로 향했다.

* * *

이제 오후 네 시였지만, 겨울 하늘은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땅을 비추는 노을과 느릿하게 부는 호수의 바람 때문에 이른 아침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섬의 도로는 어인 포로가 말했던 대로 그리 많이 손상되어 있지 않았다. 햇빛과 비에 마르고 젖는 사이에 생긴 균열만 군데군데 나 있을 뿐이었다. 일부 도로는 흙과 먼지로 뒤덮여 있는 곳도 있었다.

장목화는 자전거 위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았다. 그러자 머릿속이 곧 상쾌해졌다. 좌측으론 산 아래까지 이어진 광대한 논밭과 우측엔 두 줄로 늘어선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보이는 호수가 있었다. 보자마자 가슴이 탁 트이고 정신이 편안해지는 광경이었다.

어깨에 멘 유탄 발사기와 돌격 소총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온 목적까지 잊어버렸을 것 같았다.

“겨울이라 아쉽네. 논밭과 나무가 파릇파릇할 때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장목화가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말했다.

성건우는 팀장과의 거리가 너무 많이 벌어지지 않게 애쓰며 답했다.

“가을이 더 아름다울걸요.”

“왜?”

특정 계절을 짚은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는 의아해했다.

“가지에 열매가 적잖게 열려 있었을 테니까요.”

“⋯⋯.”

역시 그 다운 대답이었다. 장목화는 더 이상 이러한 흐름을 이어나가지 않기 위해 화제를 전환했다.

“어인들은 이 섬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 같아. 신사의 명령 때문이었나? 아니면 여기서 사흘 이상 지내다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을까?”

이는 반고 바이오에서 전달한 주의사항 중 하나였다.

섬에서 사흘 이상 머무르지 말 것.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가 말했다.

“어인 포로에게 그 질문은 못 했네요.”

“그때는 몰랐으니까.”

장목화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위로했다.

성건우와 용여홍이 어인 포로를 심문하러 갔을 당시, 장목화는 아파서 몸져누워있었다. 그래서 회사에 그 일을 보고하지도, 금기된 신전을 탐색하려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도 전달받지 못한 상태였다.

거기다 레드스톤 마켓과 어인, 산 요괴들이 포로를 교환한 건 반고 바이오가 회신을 보낸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

속도를 더 내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 참은 성건우가 고개를 돌려 장목화를 힐긋 바라보았다.

“신사의 명령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음?”

장목화 역시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성건우가 그런 판단을 내린 과정이 궁금했다. 그녀는 최근 자신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제자리걸음만 해서는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상당수의 각성자가 어느 정도 정신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논리나 생각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쉬이 추측하고 짐작할 수 없었다.

성건우는 솔직하게 답했다.

“그 어인 포로와 송 경고자는 이미 친구가 돼 있었어요. 여기 오래 머무를 경우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 섬과 금기된 신전이 언급됐을 때 그 얘기를 하지 않았을 리 없어요.”

“그렇지.”

장목화는 생각보다 정상적인 추리에 약간 실망했다.

따르릉!

이때, 성건우는 약간 신이 난 듯 자전거 벨을 울렸다. 그것으로 짧은 음악이라도 연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작 자전거 벨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

장목화도 조금 전 섣불리 했던 실망을 거둬들였다.

* * *

호숫가를 따라 버려진 건물들을 지나 십여 분 정도 달렸을 무렵, 눈앞에 마침내 읍내 하나가 나타났다.

건물들은 위드 시티와 비슷했다. 흰 벽과 검은 기와, 멋들어진 처마 등 구세계의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물론 위드 시티와 다른 점도 있었다.

첫 번째는 성벽이 없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집들이 대개 높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2, 3층이었다.

은배 안쪽 길엔 청석판이 깔려 있고, 노랗게 말라버린 잡초는 수시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장목화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빛이 약간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야에 비친 광경은 고즈넉하면서도 약간 음산해 보였다. 사람이 사는 듯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겨울이 아니라 다른 계절이었다면, 이곳은 이미 녹색 식물과 야생 동물들의 낙원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벽 모서리나 도랑 등에 말라버린 동물의 배설물들이 보이곤 했다.

“냄새는 안 나네요.”

성건우가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장목화는 그에게 별 신경 쓰지 않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은 4시 16분이니까 가치 있는 물건을 찾든 못 찾든, 4시 42분 전에 이 마을을 떠나야 해.”

성건우가 지적했다.

“팀장님, 계산 잘못하셨는데요.”

그가 알기로 신전 근처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0분이었다.

장목화는 어인 포로의 진술로 길을 판별해 신전을 찾다가 코웃음을 쳤다.

“여유 시간을 남겨놓고 계산한 거야. 여기가 회사에서 전에 발견했던 곳과 다를지 어떻게 알아. 회사의 주의사항만 철석같이 믿고 따를 수는 없어. 조금 엄격한 기준에 맞춰 움직여야지.”

“경계 교파에 들어가셔도 되겠네요.”

장목화가 칭찬하는 성건우를 홱 째려보았다.

“욕처럼 들리는데. 경계 교파 신도가 일반인 수준으로 경계를 하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