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19화 (219/649)

219화. 관건은 자신감

“너, 저분한테 최고로 잘 대해주더라.”

용여홍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성건우가 감사하다는 인사는 박수보다 한 단계 높은 표현이라고 했던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진심이 느껴지잖아.”

성건우가 덤덤하게 답했다.

“음, 그럼 경계 교파에서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차를 모는 성건우가 원숭이 가면을 쓴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최대한 빨리 가지 않으면 공포 주교단이 보낸 이들에게 선수를 빼앗겨 우리 몫이 남지 않을 거라는 뜻 아니었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용여홍은 왠지 좀 자신이 없어 보였다.

“팀장님처럼 생각해본 다음에 추리한 건데. 유일한 고민거리는 어인의 존재야.”

그에 반해 성건우는 어찌나 자신감이 넘치는지, 여유롭게 장목화를 흉내 내기까지 했다.

용여홍은 성건우에게 아무 반박도 못 하고, 화제만 전환했다.

“정말 가려고? 잠들어 있는 신령은 굉장히 위험한 존재일 거야. 이름만 신령일 뿐일 존재라도.”

“봐봐.”

성건우가 이 말을 하자마자 용여홍은 차 문 쪽으로 몸을 바짝 웅크렸다.

그러자 성건우가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어인 각성자는 멀쩡했잖아?”

“멀쩡했다고? 그 녀석, 죽기 직전에 꼭 괴물을 낳으려는 것처럼 기이한 모습이었다며!”

용여홍이 따지고 들었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하지만 매우 의욕적인 성건우를 보고, 용여홍도 말문이 막혀버렸다.

차가 계속해서 폐허 도시를 나아가는 동안, 성건우는 침묵한 채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점차 묵직해지는 분위기에 용여홍이 물었다.

“무슨 생각 하냐?”

“디마르코를 만날 방법.”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용여홍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나름 머리를 굴려보았다.

“쓰읍, 쉽지 않을 것 같던데. 디마르코가 보낸 집사와 친구가 되는 건 어때? 친구를 통해 지하 방주에 들어가면 디마르코와 만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잖아. 음, 지하 방주도 분명 정기적으로 물자를 보충할 거야. 그중 한 상자에 숨어 들어가는 방법도 있고. 집사가 뒤만 봐주면 안 들킬 거야.”

얌전히 그의 이야기를 듣던 성건우가 냉정하게 평가했다.

“뻔해.”

“그럼 네가 안 뻔한 방법을 생각해보든가!”

용여홍이 발끈했다.

성건우는 재차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전방으로 선루프를 연 붉은 세단 한 대가 달려왔다. 새것은 아니어도 꽤 깔끔한 편이었다. 그 차 운전석엔 치안소의 법의관, 바람둥이 웰러가 앉아있었다.

“차랑 사람이랑 똑같네.”

용여홍이 중얼거렸다.

성건우는 웰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웰러는 폐허 도시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그를 눈으로 배웅하던 성건우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차는 깨끗해도 저 사람 얼굴은 수염으로 덥수룩하잖아.”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용여홍은 겨우 반박할 말을 찾았다.

“그 수염이 자신의 남성미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나 보지.”

웃고 떠드는 사이 두 사람은 레드스톤 마켓에 도착했다. 곧이어 그들은 테레사 부인과 함께 사냥꾼 길드로 가서 수속을 마쳤다.

덕분에 그들은 개인당 신용 점수 100점을 얻게 되었다.

성건우, 용여홍, 장목화가 중급 사냥꾼이 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적어도 각자 700점 이상씩은 더 쌓아야 했다. 하지만 백새벽은 앞으로 140점만 더 쌓으면 베테랑 사냥꾼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 * *

유전자 개량에, 유전자 개조까지 받은 터라 장목화의 회복 속도는 무척 빨랐다. 하루를 푹 쉬고 난 다음 날부터는 다시 팔팔해졌다.

기지개를 켜듯 왼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그녀가 실실 웃으며 운을 뗐다.

“어때? 병에 대한 두려움이 좀 줄어들지 않았어?”

성건우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러자 장목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병 대부분은 건강하기만 해도 자연적으로 치유돼. 봐봐, 나도 멀쩡하잖아. 어떤 병들은 약이나 수술로도 치료 가능하고. 오늘날까지 해결하기 어려운 병은 소수에 불과해. 인류 문명이 멸망하지 않고 의료 기술이 계속 발전하기만 한다면, 머잖은 미래엔 그런 병들도 고칠 수 있을 거야.”

잠시 생각하던 성건우가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소리쳤다.

“알겠다!”

“뭘?”

장목화가 약간 경계심을 보였다.

성건우는 곧장 자신의 침대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시도부터 해볼게요.”

그 즉시 뒤로 누운 그가 관자놀이 양쪽을 꾹꾹 눌렀다.

* * *

기원의 바다 안.

성건우는 전처럼 반고 바이오가 되어 셀 수 없이 많은 성건우로 분열되었다가 하나의 병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공상과학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성건우 금속 칸을 여러 개 준비하기도 했다.

뒤이어 성건우는 각종 방식으로 조합된 성건우 집단을 능숙하게 이용하면서 흰색 침대보를 뒤집어쓴, 시커먼 인영에 대항했다.

이송과 치료, 격리, 소독, 주사 등의 과정을 바쁘게 반복한 성건우 의사와 성건우 간호사들은 또 한 번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상하리만치 피곤해진 그들은 점차 질병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분분히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성건우 금속 칸으로 달려갔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은 냉동칸이었다. 이는 그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적 있는 공상과학적 물건이었다. 난치병에 걸린 사람의 체온을 낮춰 몸을 얼린 다음, 훗날 그 병을 고칠 수 있게 될 때까지 사람을 넣어두는 공간이라고 했다.

마지막 순간, 성건우 의사들과 성건우 간호사들은 서로를 돌아보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살아남아야 해!”

벌써 흰색 침대보를 뒤집어쓴 그들은 응원의 한마디를 남긴 뒤, 속속들이 냉동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곧 그들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온몸으로 참을 수 없는 한기가 퍼져나갔다.

그 순간, 성건우들은 이대로 잠들고 싶지는 않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그다지 크진 않아 보였다.

이윽고 그의 왼편에, 20여 년 정도의 인생을 살면서 알고 지냈던 사람 중 병에 걸렸다가 회복한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기억이 천천히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하지만 또 머지않아 오른편엔 병에 걸려 죽은 이들의 어둡고 초췌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성건우들은 동료와 미래를 믿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둠 속, 그들의 마지막 의식이 꺼지고 온몸의 감각도 사라졌다. 그래도 이러한 상태에서의 장점이 있다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한 성건우의 눈앞이 돌연 붉게 물들었다.

눈을 번쩍 뜬 그는 이미 열린 냉동칸과 살아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 그가 성건우 냉동칸이 이미 전부 파괴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성건우 의사 네 명과 성건우 간호사 넷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들을 뒤덮은 흰색 침대보는 사라진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깨어난 성건우는 폴짝폴짝 뛰면서 생존자들의 손을 부여잡고 승리를 축하했다.

* * *

눈을 뜬 성건우의 시야에 가장 먼저 비친 건 장목화였다.

그는 순간 햇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성공했어요.”

“어떻게?”

장목화가 기뻐하며 물었다. 또한 성건우가 쓴 방법이 범상치 않으리라는 건 예상하고 있긴 하지만, 도저히 궁금해서 그 방법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건우는 곧장 자신의 성공 경험담을 공유해주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미간을 구기던 장목화가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미래를 믿고 냉동 상태를 견디기로 했을 때부터 성공한 거였네. 병에 대한 승리의 관건은 바로 자신감이었어. 능력은 어떻게 변했어?”

성건우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동시에 아홉 명한테 양손 동작 불능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왜 아홉 명이야?”

장목화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제가 아홉 명뿐이었거든요.”

“⋯⋯.”

성건우의 진지한 설명에, 장목화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꿈틀거렸다.

순간 장목화는 기원의 바다에 깊이 들어갈수록 그 대가도 커진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심지어 섬으로 표현된 그 하나하나의 섬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대가를 크게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들었다.

이에 장목화는 ‘아홉 명의 자신’으로 성건우와 논쟁하는 걸 포기했다. 심령 세계에서의 판타지가 현실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물었다.

“다른 건?”

성건우가 문을 바라보았다.

“실험해봐야겠어요.”

그의 말뜻을 단박에 알아들은 장목화는 곧장 문을 열고 여관 구역 공터로 걸어가 성건우와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그 사이 장목화는 묵묵히 걸음 수를 세는 한편, 직선으로 곧게 나아가려 애썼다.

얼마 후, 성건우가 외쳤다.

“거기예요.”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 장목화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양손 동작 불능의 영향 범위가 여기까지냐는 뜻이었다. 감지 능력을 통해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기에, 비밀이 유출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곧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목화가 대략 계산한 거리를 알렸다.

“거의 20미터 정도야!”

이때 그녀는 살짝 놀라고 있었다. 이는 전에 비해 거의 절반 정도가 늘어난 거리였다. 이뿐만 아니라 동시에 아홉 명에게 발휘할 수 있는 양손 동작 불능 능력은 열병기 전투 속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야말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적어도 양손 동작 불능 능력에 한해서는 그랬다.

장목화는 다시 성건우를 향해 돌아가다가, 그의 외침에 멈춰 섰다.

“억지쟁이?”

장목화가 물었다.

이때, 용여홍과 백새벽도 바깥의 기척을 듣고 방에서 나와 곁에서 그들의 실험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

성건우가 큰 소리로 답했다.

‘약 10미터. 이 능력의 영향 범위도 오십 퍼센트 정도 확대되었어.’

장목화는 계속 나아가다가 성건우가 세 번째로 외친 순간 또 우뚝 섰다.

지금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대략 6미터 정도였다.

“범위의 변화 말고 다른 건?”

실험을 마친 장목화가 소리를 낮춰 물었다.

두 사람을 보고 나름의 추측을 하고 있던 용여홍은 이 말을 듣고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흥분과 충격이 어려 있었다.

“질병 섬을 이겨낸 거야?”

“이겨냈다기보다는, 살아남은 거지.”

솔직하게 답한 성건우가 다시 장목화를 보며 말했다.

“억지쟁이는 여전히 일대일로만 사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 더 오래 억지쟁이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소에도 종종 부리곤 하는 억지라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아요.”

“대충 얼마나 갈 것 같은데?”

장목화가 물었다.

성건우는 이미 팀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대부분 드러낸 터라, 더 이상 이 부분에 관해 일부러 숨길 필요도 없었다.

“시도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성건우는 대답과 동시에 용여홍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용여홍이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났다.

시선을 거둔 성건우가 다시 자신의 추측을 밝혔다.

“하지만 몇 분 정도 유지되는 게 아니고, 시간 단위는 될 것 같아요.”

장목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추리 광대는? 도제훈처럼 전자 기기로 범위를 확장할 수도 있어?”

“한 번 해볼게요.”

일찍이 그런 생각을 해봤는지 성건우는 의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침대 옆으로 돌아가 소형 스피커를 집어 들었다. 파괴되기 전의 구세계에서 생산된 이 스피커엔 녹음 기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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