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레드스톤 마켓의 불량배
성건우가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럼 무심병의 폭발적인 발병 원인과 관련되어 있나?”
‘오, 좀 협조적인데?’
장목화가 속으로 그를 칭찬했다.
이들의 생각을 조금도 쫓아갈 수 없었던 리만은 영문도 모른 채 답했다.
“아니.”
동시에 그는 강력한 각성자일수록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거나 이상한 버릇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설마 이 두 녀석도 그런 건가? 그래서 그 강력한 각성자를 해치웠나?’
장목화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 아무 임무나 받지는 않아. 미안.”
리만은 그제야 조금 전에 이들이 한 질문이 거절의 명분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약간 분노가 치밀었다. 상대에게 완전히 농락당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밀수업자로서 상대와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고 비교할 줄 아는 그는 잠시 생각 끝에 분노를 가라앉히곤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정말 아쉽네. 보수가 상당히 짭짤한데 말이야.”
장목화는 어떤 보수인지를 묻는 대신 상대의 제안을 재차 거절했다.
“우리 팀에게는 휴식이 필요해. 당분간은 임무를 맡지 않을 생각이야.”
“좋아, 만약 맡고 싶다면 언제든 날 찾아오라고. 난 레드스톤 마켓에 며칠 더 머물 테니까.”
완강한 태도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리만이 곧 예의 바르게 작별을 고했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장목화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외골격 장치 한 대를 예약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 사람 임무를 맡을지 말지 고민했겠지.
앞으로 우리 목표는 세 가지야. 첫째, 지하 방주 안의 디마르코와 접촉할 방법을 찾고, 그로부터 구세계 파괴 당시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확인하기. 둘째, 호수의 섬으로 가서 잠든 신령을 확인하기, 셋째, 머신헤븐의 자료를 수집해 후에 있을 그들과의 접촉을 준비하기.”
실제 유적 사냥꾼 팀이 아닌 네 사람은 임무를 통해서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픈 와중에도 장목화는 상당히 또렷하게 사고할 줄 알았다.
성건우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외골격 장치라면 한 대 더 있어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작은 흰둥이도 더 강해지면 좋을 테니까. 외골격 장치 같은 무기가 많아지는 게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우리도 사용할 수 있잖아. 음, 근데 급하지도 않은 일에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려 할 필요는 없어.”
가면과 외투를 벗고 다시 침대에 누워 환자의 본분을 이어가려던 장목화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존재를 감지한 것이다.
그녀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환자한테는 무엇보다 안정을 취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자 성건우가 곧장 종이 한 장을 꺼내 글씨를 썼다.
「방해하지 마시오.」
즉각 문에 종이를 붙이러 밖으로 나간 성건우는 막 문을 두드리려던 테레사 부인과 마주쳤다.
여전히 검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쓴 그녀의 뒤론 완전 무장을 한 채 가면을 쓴 여러 남자가 따르고 있었다.
흠칫 놀란 테레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기를 되찾았다죠?”
“네, 부인의 몫인 절반은 교회당에 있습니다.”
성건우가 기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사이, 그는 테레사의 뒤쪽에 자리한 이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남자들은 순간 바짝 긴장했다. 심지어는 몸을 살짝 떠는 이들도 있었다. 무슨 낌새라도 보이면 곧장 숨을 곳을 찾아 달아날 것만 같았다.
어젯밤 그 아류인 각성자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직접 경험했던 그들은 그 무시무시한 존재를 제거한 승자의 앞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진심으로 충고했다.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괜찮았겠지만, 이 말 한마디에 테레사를 따라온 남자들은 당장이라도 돌아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다행히도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테레사도 상황을 확인하고 황급히 그들을 소개했다.
“헬빅에게 충성했던 수하들이에요. 지금은 절 보호해주고 있고요.”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레드리버어로만 이루어졌다.
이때, 장목화가 문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지금 바로 교회당으로 가시면 남은 무기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무기를 받으시면 길드로 가서 저희가 임무를 완수했단 걸 확인해주셔야 해요.”
테레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격스럽다는 듯 대꾸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나 강할 줄은 몰랐답니다. 애쉬랜더인지도요. 그때 당시에는 감정이 너무 격해져 있었어요. 헬빅과의 관계가 그렇게 좋았던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제 남편이니까요.”
그녀는 레드스톤 마켓의 다른 주민들로부터 이 유적 사냥꾼들이 애쉬랜더라는 사실도 들은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장목화는 이미 그 당시의 대화를 거의 잊어버린 상태였다.
잠시 침묵하던 테레사가 물었다.
“헬빅을 죽인 범인도 찾아내셨나요?”
“아직요. 용의자 몇 명만 배제했네요.”
장목화가 솔직하게 답했다.
‘범인을 밝혀내지도 못했으면서, 무기는 왜 절반이나 가져간 거죠?’
테레사는 마음 같아선 이렇게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이 어젯밤 어마어마한 공훈을 세웠다는 사실과 뒤에 있는 경호원들이 불안해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애써 웃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보아하니 곧 진범도 밝혀질 것 같네요.”
이 순간 그녀는 지난 몇 년 동안 레드스톤 마켓의 일부 주민들이 헬빅을 마주할 때마다 느꼈을 감정이 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구역의 불량배를 향해 감히 내뱉지는 못하고 삼키기만 했던 그 분노를.
멀쩡한 상태가 아닌 장목화는 더 이상의 말을 잇는 대신 성건우에게 용여홍과 함께 테레사 부인을 경계 교회당까지 배웅하고 오라고 지시했다.
* * *
성건우, 용여홍은 경고자 송하균을 만난 후, 곧장 그에게 일의 마무리를 부탁하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프 옆에 서서 바쁘게 무기를 헤아리고 옮기는 테레사 부인의 경호원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때, 성건우가 다른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의 시선 끝에 교회당 측면을 빙 둘러오는 비엘이 있었다.
이내 용여홍의 곁으로 온 비엘은 교회당 안에서 기도 중인 테레사를 바라보며 낮게 웃었다.
“저 여자의 진짜 모습이 뭔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 할걸.”
“그래?”
성건우가 흥미를 보이자, 비엘이 씩 웃었다.
“전의 그 미사에서 헬빅은 무기 거래를 하느라 바빠서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 금세 발각됐어. 얼마 지나지 않아 테레사 부인도 발견됐지만, 부인은 교회당을 떠나지 않았지.
있잖아, 난 통풍관에 숨어 있으면서 테레사 부인이 레나토 주교님 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 하하! 어쩌면 레나토 주교님은 신벌을 받아 무심자가 된 건지도 몰라.”
비엘은 비밀을 알아낸 스스로가 꽤 뿌듯한 모양이었다.
“뭐?”
비엘은 레드리버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용여홍은 잠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파악한 건 그로부터 몇 초가 지난 뒤였다.
‘레나토 주교와 테레사 부인이 사통했다고? 비엘 이 녀석, 통풍관 안에 숨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밀을 목격한 거야?’
용여홍이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사이, 성건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달지기는 너무 바쁘겠는데.”
비엘이 성건우를 팩 노려보았다.
“나 비웃는 거지? 원래 모든 사람은 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가면을 쓰고 있어. 오직 통풍관 안의 또 다른 세계에서만 가면 속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거야. 혹시 송 경고자님의 가면 속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지 않아? 너희는 꿈에도 모를 걸?”
비엘이 재차 웃음을 흘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용여홍은 성건우보다 앞서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랑 아무 상관도 없어. 송 경고자님이 몰래 우리를 음해하려는 게 아니면,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럼, 그럼.”
성건우가 동조했다.
비엘은 입을 비죽였다.
“그럼 재미가 없잖아.”
그때, 성건우는 무슨 생각이 든 건지 갑자기 상당한 의욕을 보였다.
“그럼 혹시 지하 방주 안의 상황도 관찰한 적 있어?”
비엘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지하 방주의 모든 통풍구에는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 거기 들어갈 방법은 없어. 근데 통풍구를 지키는 이들도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기는 하지.”
살짝 혼잣말하듯 여운을 남긴 소년은 성건우가 재차 묻기 전, 냅다 달려가 무너진 건물 잔해 뒤쪽으로 사라졌다.
용여홍은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지하 방주 내부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뜻인가?”
성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약 내가 쟤를 찾아내서 이기면 들었던 것들을 말해주지 않을까?”
“너랑 내기할 생각은 없을 것 같은데?”
깜짝 놀란 용여홍이 답했다. 성건우가 일을 내려는 줄 안 것이다. 팀장이 성건우와 함께 이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을 때부터, 그는 제 친구가 아무 수작도 부리지 못하도록 주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그도 성건우가 마음을 먹으면 자신이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때, 테레사의 경호원들은 이미 무기들을 차에 다 실은 상태였다. 테레사 역시 기도를 마치고 경고자 송하균과 함께 교회당 밖으로 나갔다.
“이제 사냥꾼 길드로 가면 되겠군요.”
테레사가 성건우와 용여홍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 사냥꾼 팀이 아직 헬빅을 죽인 진범을 찾아내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잃어버린 무기를 되찾은 것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최근 며칠간 테레사는 무기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적잖은 물자를 내어, 헬빅의 부하들에게 나눠 주거나 밀수업자 리만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모아둔 자산은 적지 않았지만, 지출만 있고 수입은 없는 상황은 아무래도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점차 초조해질 무렵, 무기를 찾았단 소식을 들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성건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송하균에게 레드리버어로 물었다.
“디마르코…… 선생을 직접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름으로만 칭하는 건 자칫 예의 없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성건우는 서둘러 ‘선생’이라는 존칭을 붙였다.
그러자 송하균이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저 역시 디마르코 선생을 직접 만날 순 없으니까요. 오직 공포 주교단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주교만이 영상 통화로 디마르코 선생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성건우는 이제야 한 가지 중요한 난제를 풀어냈다는 듯,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정말 살아계시긴 하군요.”
순간 멍한 표정이 된 용여홍은 성건우의 생각을 헤아려보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디마르코는 밖으로 나온 적도 없고, 외부인을 만난 것도 없어. 그러니 그가 이미 죽었어도 그 사실을 알 도리가 없지. 그의 세 집사는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디마르코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얼마든 위장할 수도 있고.’
하지만 경계 교파 주교가 디마르코와 영상 통화로 대화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
생각을 정리한 용여홍은 호기심 해소를 위해, 그리고 화제 전환을 위해 물었다.
“디마르코 선생은 미사에 함께 참여하기도 하나요?”
송하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분은 매번 본인 대신 집사를 참여시키십니다. 하하, 우리 주님께 귀의하기 전엔 지하 방주를 떠나지도, 주교를 안에 들이지도 않았었죠.”
‘경계심이 상당한데.’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옆에 있던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용여홍은 이미 친구의 기행에 워낙 면역이 된 터라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놀라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짧게 감탄을 표한 성건우가 물었다.
“레드스톤 마켓에서 배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잠시 기억을 떠올려보던 송하균이 답했다.
“앙헤바스에게 모터보트가 한 대 있습니다. 마을 경비대에도 한 대 있고요. 그 이외에는 조악한 나무배 몇 대밖에 없죠.”
성건우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대충 짐작한 용여홍은 직접적인 충고를 하기보단 언질만 주었다.
“어인들은 호수를 거의 장악하고 있어.”
그때, 머뭇거리던 송하균이 말을 이었다.
“호수의 신전 문제에 대해 공포 주교단에 이미 보고했습니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좀 기다렸다가 그들이 이에 흥미를 느끼는지, 사람을 보내 탐색을 하게 할지 한번 보시죠.”
용여홍은 감격스러워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정말 좋으신 분이야. 우리에게 해결 방법까지 제공해주시다니. 오랫동안 친화 능력을 사용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렇게 우호적이고 친절해졌나?’
“감사합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성건우가 말했다.
이윽고 송하균에게 작별을 고한 뒤, 성건우과 용여홍은 지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