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17화 (217/649)

217화. 달라진 태도

송하균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어인은 알아서 답을 이었다.

“당시 홀로 신전에 들어갔다가 15분도 안 돼서 나왔는데, 신전 안이 매우 위험하니 본인 허락 없인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어. 그로부터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그가 모두에게 그 섬에서 철수하라고 명령했지.”

고개를 끄덕이던 송하균은 차근차근 잘 타일러 가르치듯 물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하리만치 강력해졌을 테고?”

어인 포로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모르겠어. 우리는 2주 후에 있었던 대미사에서 그의 강한 위력을 느끼게 됐거든. 그 자리에서 그는 스스로를 신사라고 칭했어.”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생각에 빠진 송하균은 한동안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성건우는 이 기회를 이용해 호기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그는 평소에 잠이 많은 편이야?”

어인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드러내다가 답했다.

“잘 모르겠어. 신사는 교회당 뒤에서 혼자 살거든. 설교할 때나 미사가 있을 때, 그리고 어젯밤처럼 큰일이 있을 때만 나와.”

송하균과 성건우는 차례대로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인 포로도 일부러 뭔가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몸을 일으킨 송하균이 친절하게 말했다.

곧 어인 포로의 표정이 멍해졌다.

“나를 죽일 거야?”

그의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를 힐긋 보던 성건우는 송하균을 돌아보며 물음을 구했다.

“이 포로들이 살 수 있을까요?”

잠시 침묵하던 송하균은 웃으며 한숨을 내쉬더니 레드리버어로 말했다.

“저들은 진정한 의미의 침략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스스로 지켜야 할 집이 있지 않습니까?

전쟁터에서 칼과 총에는 눈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 되지요.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지만 않았다면 포로들에게 보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달지기님이 보시는 가운데, 그저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심판을 받으면 되는 겁니다. 이건 인간이 짐승과 달라지기 위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 중 하나기도 하죠.

마침 잘됐네요, 우리 쪽의 보초팀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후에 그곳에 정찰을 나갔던 마을 경비대원도 어인과 산 요괴에게 붙잡혀 갔거든요. 만약 그들이 아직 살아있다면 여기 갇혀 있긴 해도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던 포로들과 쌍방 교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인은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무너져 내리듯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 * *

다시 심문실을 나온 성건우와 용여홍은 송하균과 함께 레드리버 마켓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지프를 세워놓은 곳에 막 이른 그때, 성건우가 순간 뭔가를 떠올렸다.

“아, 버즈가 안 보이네요?”

송하균은 잠깐의 침묵 끝에 대꾸했다.

“그 아이 역시 마을 경비대원입니다. 어젯밤 방어선에 지원을 나갔지만 돌아오지 못했지요.”

그 아주 완곡한 표현에 용여홍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어젯밤 전투 중 목숨을 잃은 레드스톤 마을 주민들을 적잖이 목격했었다. 그러나 접점이랄 게 전혀 없어서, 죽음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버즈는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살기 위해 보호해줄 이를 간절히 찾던 버즈가 결국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앙헤바스와 헬빅의 수작이 까발려진 후 교회당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런데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니, 용여홍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생전 그렇게나 많은 땅굴을 파뒀어도, 그게 전쟁터에서까지 버즈를 보호해주지는 못했구나. 이런 전쟁에서 개인은 정말이지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야. 자칫 잘못하다가는 곧장 죽음을 맞게 되잖아.’

용여홍은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하지만 원숭이 가면을 쓴 친구에게선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한동안 침묵하던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장례식을 거행해주실 예정인가요? 전 장례식에 대해 꽤 많이 압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버즈는 에이돌른의 인도 아래 신세계에 도착한 겁니다. 우리 교파에서는 번잡스러운 장례식을 치르지는 않아요. 고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만 한 차례 진행할 뿐이지요.”

송하균이 말했다.

“제가 참석해도 되나요?”

성건우가 물었다.

송하균은 곧바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요. 여러분들이 없었더라면 레드스톤 마켓의 주민은 훨씬 더 많이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그 길로 송하균과 작별한 뒤, 성건우, 용여홍은 조용히 여관으로 향했다.

* * *

소염제를 먹은 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장목화는 정신도, 몸도 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하지만 버즈의 죽음에, 그녀 역시 슬픔에 잠긴 채 생명의 나약함에 대해 몇 마디 한탄을 남겼다.

곧이어 용여홍이 호수의 가장 큰 섬과 잠든 신, 금지된 신전, 대규모의 무심병 발병 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자 장목화의 눈이 점점 밝아졌다. 전부 그녀가 굉장히 흥미를 느낄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을 보호하던 신령이 잠든 후 대규모의 무심병이 발병했다고? 그 둘 사이에 정말 어떤 연관이 있을까? 만약 그게 사실이고, 그 연관성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우리는 무심병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몰라!”

장목화는 갈수록 흥분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병든 몸을 이끌고 호숫가로 달려갈 듯한 기세였다.

무심병 뿐만 아니라 잠든 신, 심령의 복도 깊은 곳에 이른 듯한 구시대 각성자에 관련된 이 이야기는 연구 욕망을 불태우기 충분했다. 이는 노력한다고 해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운에 달린 일이었다.

열의가 넘치는 장목화의 모습에 용여홍은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팀장님, 분노의 호수는 어인들의 영역이에요.”

비늘과 아가미가 달려있어 잠수에 능한 아류인이라면. 신전이 있다는 섬으로 향하는 배를 몇 척이고 뒤집어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잠든 신과 금지된 신전, 폭발적으로 일어난 무심병은 전부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난 병에 걸렸을 뿐이지, 바보가 된 건 아니야. 그렇지, 작은 흰둥이?”

장목화가 웃으며 대꾸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백새벽이 몇 초간 생각하다 답했다.

“앞 구절은 동의해요.”

“앞 구절은 동의한다고? 뭐? 하, 그럼 날 바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장목화는 평소만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지 시간을 꽤 들인 후에야 백새벽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난 백새벽이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팀장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할 말을 잃은 장목화가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너한테 옮은 것 같지 않아? 원래 작은 흰둥이는 저렇게 빈정댈 줄 모르는데. 아, 옛날의 작은 흰둥이가 그리워!”

구조팀은 그렇게 한동안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백새벽과 용여홍은 휴식을 취해야 하는 환자를 위해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 저녁은 나중에 레드스톤 마켓에서 신선한 음식을 사다가 좀 푸짐하게 먹을 계획이었다.

두 사람이 방에서 나간 뒤, 장목화는 바로 웃음을 거뒀다.

그녀는 여전히 마음속의 열의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었다. 호수의 큰 섬으로 가서, 그곳에 잠들어 있다는 신령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구세계 파괴 원인 조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지라, 구조팀이 해야 할 일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개인적인 흥미를 위해 백새벽과 용여홍, 성건우를 위험에 몰아넣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 곤란하네. 몰래 나가봐? 하지만 모든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할 팀장이 돼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해?’

장목화는 베개에 기댄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다른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성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저한테 미리 눈짓은 주세요.”

“뭐?”

흠칫 놀란 장목화가 물었다. 어딘지 익숙한 말이었다. 곰곰이 생각을 더듬으니, 언젠가 자신이 그와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위드 시티에서 갑자기 귀족들을 위협한 뒤 그들을 형제로 만든 성건우에게 했던 경고였다. 앞으로 그런 짓을 벌이려거든 냅다 달려들지 말고 적어도 눈짓을 통한 암시라도 해달라는 말이었다.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성건우를 돕고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동료란 눈빛만으로도 죽음까지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 나를 지지한다는 거야? 나랑 같이 그 호수 섬의 신전을 탐색할 생각이 있다는 건가?’

순간 깨달음을 얻은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하지만 겉으로는 괜스레 코웃음만 쳤다.

“그냥 네가 가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냐?”

“맞아요.”

성건우의 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장목화는 그를 흘겨보면서도 입가에 웃음은 떠나지 않았다.

“난 아직 환자야.”

정말 가려고 한다면 병이 좀 호전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성건우는 더 이상의 말을 잇는 대신 전술 배낭 안에서 꺼낸 소형 스피커를 꺼내 자세히 살피고 검사하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성건우와 장목화는 순간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똑똑똑-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성건우가 즉각 원숭이 가면을 쓰며 레드리버어로 물었다.

문밖의 방문자는 어색한 애쉬랜드어로 답했다.

“리만이다. 연합공업에서 온 상인, 리만.”

‘헬빅에게 무기를 팔았던 그 밀수업자? 전엔 우리랑 만남도 거부하고 레드스톤 마켓 사건에 발 들이지 않으려더니 왜 갑자기 찾아온 거지?’

퍼뜩 정신을 차린 장목화는 외투를 걸치고 가면을 썼다.

외양만 봤을 때 리만은 전혀 무기 밀수업자 같지 않았다. 옅은 파란색 눈동자와 살짝 헝클어진 노란색 짧은 머리카락, 약간 긴장한 듯한 모습, 크기도, 작지도 않은 키, 평범한 생김새, 매우 수줍어하는 기질은 위드 시티 외부의 대귀족 장원에 있던 중년 레드리버인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다.

특징적인 건 오래도록 술에 절어 살아야만 나타나는 딸기코뿐이었다.

이곳 애쉬랜드에서는 장기적으로 술에 취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도 그의 지위와 가치를 증명했다.

리만은 곧 경호원 몇 명을 둘러싸고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웃으며 두 손을 비비던 그가 조악한 애쉬랜드어로 말했다.

“듣자 하니 너희들이 굉장히 강력한 각성자 한 명을 죽였다지?”

리만의 애쉬랜드어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장목화는 그에게 레드리버어로 말해도 괜찮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누구한테서 들었는데?”

성건우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우리 비밀이 새어 나갔나 본데?”

순간 리만은 그대로 살짝 굳어버렸다.

리만은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양손을 모아 깍지를 끼다가,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레드스톤 마켓에 친구가 몇 명 있어. 친구들이 어젯밤 너희를 봤대.”

그는 사실 레드스톤 마켓의 모든 사람이 이 유적 사냥꾼팀이 강력한 각성자 한 명을 처리했단 사실을 알고 있다고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장목화도 말꼬리를 붙잡는 대신,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우리를 찾아온 이유는?”

리만은 약간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 임무 좀 부탁하려고. 좀 위험한 일이긴 한데 그렇게까지 걱정할 건 아니고. 사냥꾼 길드의 심사를 받고 그곳을 통해 공포할 생각이니까.”

몇 초간 고민하던 장목화는 가면 뒤에서 입꼬리를 씩 올렸다.

“구세계 파괴 원인과 관련된 임무인가?”

멍한 얼굴의 리만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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