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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213화 (213/649)

213화. 전투의 의의

용여홍은 모래주머니 위쪽, 왼쪽, 오른쪽 등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사격했다. 그렇게 산 요괴들이 근처로 다가올 기회를 사전에 다 차단해버렸다.

인간과 산 요괴들은 각자 엄폐물 뒤쪽에서 몸을 숨긴 채 공격을 주고받았다. 백새벽과 한명호 역시 이 행렬에 가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든 정신을 한 곳에만 쏟진 않았다. 한 명은 적당한 틈을 노리다 몰래 수류탄을 꺼낸 뒤 적합한 각도를 찾았고, 다른 한 명은 몇몇 산 요괴들의 공격 패턴을 관찰하면서 천천히 총구의 위치를 조정했다.

상대가 공격하려고 모습을 드러내면, 단번에 숨통을 끊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때였다. 포탄 하나가 창밖의 무너진 건물 꼭대기에 떨어졌다.

콰광!

거친 충격과 붉은 화염은 창틀과 유리가 없는 이 방으로까지 밀려들었다. 이에 용여홍, 백새벽, 한명호는 바리케이드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잠시 후, 폭발의 여파가 살짝 사그라들자마자 남은 산 요괴들이 지도자의 인솔 아래 엄폐물 뒤쪽에서 튀어나와 돌진했다.

용여홍도 모래주머니 뒤쪽에서 고개를 들자마자 자신과 키가 비슷한 산 요괴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드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산 요괴는 돌격소총으로 포효하듯 총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는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다시 웅크렸다. 소리로 추정하자면 총알은 모래주머니는 물론 그의 머리 위를 바로 스치며 날아다니는 듯했다.

이렇게 숨어 있는 건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용여홍은 결국 용기 내 바리케이드 옆으로 몸을 날리며, 베르세르크 돌격소총으로 응사에 나섰다.

다다다-

방 안에 거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한 명은 바닥을 구르고, 다른 한 명은 미친 듯 전방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누구도 상대의 목숨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저 동시에 그들의 탄창만 비어버렸다.

용여홍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격소총을 버린 뒤 허리춤에 찬 벨트로 손을 가져갔다. 산 요괴는 그 모습을 보고 용여홍의 머리를 향해 들고 있던 돌격소총을 던졌다.

일단 황급히 그 총을 피한 용여홍은 던져진 돌격소총이 애꿎은 바닥만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총을 던진 산 요괴는 군용 칼을 한 자루 뽑아 들고 그의 코앞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용여홍은 그제야 적의 생김새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는 돌격대에 속한 산 요괴들보다 훨씬 크고 건장한 편이었다. 파란 피부와 뾰족한 이빨만 아니면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짙은 눈썹과 큰 눈, 네모진 얼굴, 두꺼운 입술만 보면 그냥 개성 있게 생긴 자였다.

용여홍은 총을 뽑아 들 새도 없이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며 상대의 칼을 피했다. 그 후로도 그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산 요괴를 피하려 계속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그는 격투 훈련 시에 이런 역할을 자주 맡은 덕분인지 공격을 피하는 데는 제법 도가 튼 편이라 다행이었다.

용여홍은 점차 모래주머니 뒤로 밀려났다. 그러던 중,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모를 콘크리트 조각 하나를 밟고 순간 균형을 잃었다.

이내 산 요괴가 미소를 보였다. 마침내 그가 바라던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는 아까부터 계속 용여홍을 각종 돌조각이 널린 곳으로 몰고 있었다.

산 요괴는 험준한 지형 속에서도 평지처럼 걸을 수 있었다. 뛰어난 평형 능력 덕분이었다. 이 점을 이용해 그는 용여홍이 넘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즉각 앞쪽으로 맹렬히 달려들면서 손에 든 군용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이었다. 용여홍은 허리에 힘을 주면서 넘어지는 속도를 살짝 늦췄다. 그런 뒤 그는 오른 다리 근육을 긴장시키며 위쪽을 향해 차올렸다.

퍽!

용여홍의 다리가 산 요괴의 복부를 정확히 강타했다. 이로 인해 저도 모르게 허리를 구부린 용여홍은 반동을 이용해 땅을 한 바퀴 굴렀다. 그런 뒤, 다시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아이스모스 권총을 뽑아 들었다.

탕! 탕!

용여홍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군용 칼을 휘두르던 산 요괴의 몸에 조금씩 붉은 파장이 일어났다.

적의 근처를 샅샅이 살펴도 근처에 무기는 없었다. 이에 용여홍은 곧장 백새벽에게 시선을 돌리며 그녀를 지원하려 했다.

이때, 백새벽은 또 다른 산 요괴 뒤로 방향을 틀어 발을 차올렸다.

퍽!

다리 사이를 강타당한 산 요괴는 극도의 고통이 느껴지는지 몸을 단단히 웅크렸다. 그 틈을 타 백새벽은 총을 뽑아 들고 상대의 머리를 날렸다.

붉고 흰 액체가 사방으로 튀는 사이, 한명호도 맞서던 적을 처리했다.

왼팔을 미끼 삼아 상대의 칼을 받아낸 한명호는 산 요괴가 자신의 코앞에 이른 틈을 타 그를 걷어찼다. 이내 발길질 당한 산 요괴가 비틀거리며 달려들자, 그는 즉각 허리춤에서 연합 202를 뽑아 들고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이윽고 용여홍을 돌아본 백새벽은 그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원래의 바리케이드로 돌아가 사신 개인 바주카포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 장목화가 놓아두고 간 것이었다.

백새벽은 곧 바주카포를 어깨에 메고 반쯤 쪼그려 앉아 바깥에서 계속 밀려드는 산 요괴와 어인들을 바라보다가 주저 없이 포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콰광!

아류인 무리 사이로 불덩어리가 피어오르며 수많은 생명을 집어삼켰다. 진격하던 돌격대의 기세도 순식간에 한풀 꺾였다.

이는 마치 신호탄이 된 것 같았다. 방어선 내 각기 다른 곳에 자리한 레드스톤 마켓 마을 경비대원들도 반격의 틈을 본 듯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콰광! 콰광!

이제 레드스톤 마켓의 대포들도 침묵에서 깨어났다.

맹렬히 피어오르는 포화 속, 산 요괴와 어인들의 돌격은 결국 저지됐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 가볍게 휘파람을 부는 소리에 아류인들은 동족의 시체를 내버려 둔 채 원래의 진지로 후퇴했다.

* * *

‘휴, 이 정도 수준에 이른 각성자라도 육신엔 큰 변이가 일어나진 않은 모양이네. 아니,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또 건우가 불길한 얘기라고 할라.’

장목화는 성건우가 어인을 때려눕힌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재빨리 그 곁으로 다가가 최후 처리할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였다. 바닥에 쓰러진 덩치 큰 어인의 피부가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꼭 셀 수도 없는 거대한 기생충이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다음 순간, 그곳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발산하며 주변의 달빛마저 어둡게 만들었다. 어인의 몸속에서 회오리 같은 블랙홀이 나타나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그것들은 주위 모든 물질을 집어삼키며 이 세상에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될 생명을 만들어내려는 듯했다.

장목화는 다시 숨이 막히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레나토 뒤의 존재를 마주했을 만큼은 아니었어도, 매우 무시무시한 느낌이었다.

한편 숨을 참고 권총 두 자루를 뽑아 든 성건우는 이런 상황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듯 변이된 어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그가 쏜 총알 중 빗나간 건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어인의 피부 위에서 멈춘 채 그 안쪽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성건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소도회 서곡의 박자에 맞춰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장목화 역시 그의 끈질긴 태도에 전염된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 연합 202로 어인을 쐈다.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미친 듯이 사격을 이어나갔다.

비로소 보이지 않는 장벽이 깨지더니, 성건우와 장목화가 쏜 총알이 월계관 어인의 몸에 붉은 구멍을 하나둘 새겼다.

몇 차례 경련하던 어인은 드디어 완전히 숨을 거뒀다. 체내의 기이한 꿈틀거림도 겨우 잠들고 더는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 * *

어인과 산 요괴의 첫 번째 진격을 힘겹게 막아낸 용여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백새벽과 한명호를 향해 말했다.

“살아있는 녀석이 더 있는지 찾아볼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누군가가 중요한 순간에 습격할 수도 있었다. 동시에 마을 경비대원들 중에 아직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살펴야 했다.

잠시 후, 샅샅이 주변을 살피던 용여홍은 조금 전 자신이 총으로 쐈던 그 산 요괴가 아직 살아있음을 발견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른 그 산 요괴는 돼지 가면을 쓴 자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한숨을 토하며 입을 열었다.

“넌 엄청나게 강하다.”

그는 산 요괴어를 썼지만, 애쉬랜드어에 기반을 둔 그 언어는 방언에 가까워 용여홍도 어렵게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적의 칭찬에 용여홍은 기쁨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내 그는 산 요괴 곁에 쪼그려 앉으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난 우리 팀에서 가장 약한 팀원이야.”

산 요괴는 죽어가면서도 그 답에 흠칫 놀랐다.

“너희는, 레드스톤 마켓 사람이 아닌 거냐?”

“응, 우리는 용병이야.”

용여홍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상대의 모습에 친절을 베풀었다.

“녀석들, 운이 좋았군. 너희처럼, 강한 용병을 고용하다니.”

산 요괴는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용여홍은 깔딱깔딱 숨이 넘어가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다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질문했다.

“너희는 왜 그렇게 레드스톤 마켓을 빼앗지 못해 안달인 거야? 꼭 그렇게 마을 주민들과 척져야겠어? 산에는 논밭도 있고 탄광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굳이 이런 전쟁까지 벌일 필요는 없잖아.”

산 요괴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우리 산민이, 몇 대 전부터, 이어온, 집념이니까. 우리, 우리,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반복해서 가르쳐주셨어. 이 비옥한 호숫가는, 이 구세계 도시는, 우리 고향이라고.

그분들은, 그분들은, 호숫가 어느 정원엔 꽃밭도 있고, 그네도 있고, 아주 작은, 텃밭도 있고, 부드러운 바람도 있고, 맑은 물도 있고, 도시에서 온 흰 비둘기도 있다고 하셨어. 정원이 딸린 그 집엔, 아이들을 위한, 나무 블록과, 퍼즐과, 장난감……, 만화, 책이 가득한……, 방도 있다고 하셨지⋯⋯.”

점점 희미해지던 목소리는 그렇게 완전히 끊겨버렸다.

* * *

“방금 그거, 뭐지?”

장목화는 별다른 기대 없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성건우가 쪼그려 앉아 시체를 살피며 진지하게 웃었다.

“사후 경직이요.”

장목화의 얼굴 근육이 살짝 경련했다.

“⋯⋯그것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배운 말이냐?”

“예.”

성건우의 답은 언제나처럼 솔직했다.

장목화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정도 급의 각성자는 죽은 뒤에 다 이러한 변이를 보이는 걸까? 아니면 이 각성자에게만 그런 비정상적인 일이 생긴 걸까?”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이 사람한테 물어보셔야죠.”

“……대답을 할 수 있냐? 하……. 돌아가 송 경고자에게 물어보자.”

이젠 그런 반응에도 면역이 된 듯 성건우를 살짝 흘겨본 장목화가 알아서 답을 내렸다.

그리고 성건우는 어인의 남루한 파란색 망토 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지도 한 장을 찾아냈다. 굉장히 오래된 지도는 구세계의 것이 확실해 보였다.

빠르게 펼쳐보니, 송하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지도였다.

전부 과거에 만들어진 이 도시의 관광안내도였다.

이 지도에 별도로 표시된 건 많지 않았다. 도시 모처에 붉은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 붉은 동그라미 밖에는 레드리버어 단어 하나가 적혀 있었다.

「집」

장목화는 고개 숙여 지도와 옆쪽에 떨어진 월계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인과 산 요괴의 유래에 대한 한명호의 설명을 떠올리던 그녀는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진짜 최종 빌런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레드스톤 마켓 현 주민들이 자신들의 집을 지키려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은 아니지.”

뒤이어 장목화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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