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11화 (211/649)

211화. 배경 음악

장목화의 심장 박동은 50bpm에서 180bpm으로 단번에 치솟았다. 거기에 가슴은 답답해지고, 호흡도 힘겨워지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도제훈이 남은 힘을 짜내 모두에게 적의 능력을 알렸을 때와 달리, 장목화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현기증이 일었다. 심장이 제 기능을 다 하기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도 않은 것 같았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상대와 100미터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받는 영향력과 수십 미터 거리를 둔 상태에서 받는 영향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장목화는 유전자 개조를 받은 자신의 육신이 이렇게나 빠르게 악화되리라곤 상상치도 못했다.

이를 악문 그녀가 왼손으로 또 하나의 수류탄을 꺼내 핀을 뽑은 뒤 월계관을 쓴 어인을 향해 던졌다. 상대를 터뜨려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현재 장목화와 성건우, 그리고 남은 어인들이 자리한 이 구역은 테크놀로지 빌딩 때문에 반 이상이 가려져 있었다. 더 이상 지원군의 엄호는 유효하지도 못한 상황이라, 이젠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다.

수류탄이 미처 던져지기 전, 월계관을 쓴 어인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목적지는 두꺼운 장갑으로 뒤덮인 차량이었다. 하지만 심장 박동 가속 능력을 발휘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남아 있던 두 어인 경호원 중 한 명이 돌연 엄폐물 뒤쪽에서 튀어나와 장갑차 옆쪽으로 몸을 날렸다. 직접 본인의 몸으로 공격을 막아주기 위함이었다.

콰광!

수류탄은 원래 덩치 큰 어인이 있던 곳에서 폭발했다.

붉은 화염과 파편이 그 주위로 널리 퍼지자, 방패막이가 되어준 어인은 어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숨을 거뒀다.

가물가물 흐려지는 어인의 의식 속, 언젠가 증조부가 종종 묘사하던 고향의 광경이 펼쳐졌다. 호숫가의 비옥한 토지, 번화한 도시, 넓지는 않아도 분명 자신들의 것인 집⋯⋯.

쿵쾅! 쿵쾅!

한편, 아직도 장목화의 심장 박동은 좀체 느려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든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심지어 쇼크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월계관을 쓴 덩치 큰 어인은 곧 자신의 몸에 튄 어인의 살점들을 툭툭 털어낸 뒤, 통한의 눈빛으로 장목화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때 기회를 틈타 몸을 굴린 성건우가 장갑차로부터 7미터가량 떨어진 범위 내로 진입했다. 낭비할 시간 따위 없다는 듯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긴 그는 목표를 등진 채 즉각 큰소리로 외쳤다.

“자신 있다면⋯⋯.”

말을 채 맺기도 전, 장목화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허가 된 화단 뒤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이곳은 그녀가 택한 또 다른 엄폐물이었다.

그녀가 조금 전 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했던 건, 성건우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진입할 때까지 그를 엄호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결국 성건우의 심장 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마치 그의 귓가에서 뛰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성건우는 불편함을 애써 억누르며 계속해서 외쳤다.

“우리의 숨통을 옥죄어봐라! 자신 있다면 우리 숨통을 옥죄어봐!”

이는 도발이 아닌 억지쟁이였다. 다만 그 효과를 조금이라도 더 지속하고 능력을 발휘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은근하고 부드러운 방식을 썼다. 구체적인 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조절할 생각이었다.

만약 강제로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게 한다면 상대는 그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게 될 테고, 그럼 공격할 기회조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런 말로 유도한 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상대가 가벼운 억지를 부리게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 이것이 바로 성건우의 계획이었다. 지난 가짜 신부와의 전투 경험에서 그는 적잖은 교훈을 얻었다.

점점 성건우의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하며 다른 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그의 귓가에 요란한 총성과 포성이 파고들었다. 어느새 심장 박동도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와 있었다.

성건우는 재빨리 입을 크게 벌린 채 숨을 헐떡였다. 누군가가 주변 공기를 통째 뽑아가기라도 한 듯, 산소는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엘 마트와 6일 쇼핑몰 일대 방어선에 자리한 이들도 다시금 물에 잠긴 듯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황을 이미 경험해 본 용여홍은 들이쉴 수도 없는 숨을 헐떡이기 위해 귀한 체력을 낭비하는 대신 밖을 향해 유탄을 발사했다.

방어선 곳곳에서는 더 이상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숨통이 틀어막힌 이들은 결국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어인과 산 요괴들을 제압하지 못했다.

반면, 어인과 산 요괴들은 포차를 밀고, 임시 조립된 박격포를 끌고, 개인 바주카포와 유탄발사기로 레드스톤 마켓 방어선을 향한 공격을 개시했다.

콰광! 콰광! 콰광!

셀 수 없이 많은 대포의 포격에 용여홍을 비롯한 이들은 납죽 엎드린 채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때를 틈타 산 요괴들은 기관단총과 돌격소총을 쥐고 돌격했다. 그들은 무너진 건물 사이사이도 평탄한 길을 걷듯 가볍게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포격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용여홍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유탄발사기를 창틀에 올렸다.

옅은 달빛 아래, 차마 잠시도 보기 힘든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험악한 검은 총기들과 수시로 터지는 피와 살점들, 파란 피부와 날카로운 이빨, 하나같이 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들…….

산 요괴 몇몇은 방어선을 구축한 마을 경비대 공격에 쓰러졌지만, 그 뒤쪽의 산 요괴들은 멈추지도 않았다. 그저 밀물처럼 계속 밀려들 뿐이었다.

용여홍은 태어나 처음 마주한 광경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두려움이 그가 움직이는 힘이 되어주었다.

콰광!

용여홍의 유탄 발사로 요란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사이, 백새벽과 한명호는 냉정하게 후방의 포수와 돌격대의 지도자를 노렸다. 그들이 방아쇠를 한 번 당길 때마다 적들의 목숨줄은 하나하나 끊어지고 있었다.

이내 대포들이 다시 불을 뿜어내며 돌격대 총격에 힘을 보탰다. 방어선의 경비대원들은 숨이 점점 더 막혀오는 것을 느끼며 자세를 바짝 낮췄다.

다들 최대한 많은 산소를 들이마시려 입을 활짝 벌렸지만 소용은 없었다. 누군가는 이미 헛구역질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아찔한 현기증에 시달렸다.

* * *

다시 테크놀로지 빌딩 뒤쪽 주차장.

월계관을 쓴 어인 곁에 이제 경호원은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 둘은 각자 기관단총 한 자루씩을 쥔 채 행동에 나섰다.

하나는 성건우가 숨은 곳을 향해 총을 쐈고, 동시에 하나는 장목화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화단 쪽으로 향했다. 그녀가 혹시라도 깨어나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완전히 죽여버릴 작정인 듯했다.

주차장 가장자리에 쓰러진 두 경비대원도 후환 없이 처리해야 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그들이 정신을 차리면 전세는 얼마든 뒤집힐 수 있었다.

월계관을 쓴 어인은 다른 적을 처리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목표의 심장이 기능을 잃기 전에 능력을 중단했다.

물론 이는 그들의 지나친 염려일 뿐, 실제로는 전혀 급할 게 없었다. 질식은 기절했다고 효과가 중단되는 게 아니었다. 기절한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내기만 해도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은 산소 부족으로 죽고 말았다.

오히려 엄폐물 뒤에 숨은 성건우가 더 여유로웠다. 숨을 참고 전술 배낭을 가볍게 내려놓은 그는 포성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소형 스피커를 꺼냈다.

이윽고 그가 구석 바위 더미 안에 스피커를 숨겼다. 간단하게나마 스피커를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뒤이어 그는 음악의 순서를 조정한 뒤, 돌격소총을 내려놓고 옷의 지퍼를 내리며 벨트에서 수류탄 하나를 꺼내 핀을 뽑았다.

적을 등지고 있던 그는 잔뜩 신이 난 듯한 모습으로 묵묵히 거리를 계산하더니, 곧이어 손에 쥐고 있던 수류탄을 뒤쪽으로 휙 던졌다.

콰광!

우렁찬 폭발음과 함께 덩치 큰 어인과 그의 경호원은 각자 몸을 날려 수류탄을 피했다. 이 틈을 타 성건우는 빠르게 파란 외투를 벗어 옆쪽으로 휙 내던졌다. 외투가 날아가는 사이, 소형 스피커에선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탕탕!

그 기척에 놀란 어인들이 응사하자, 외투엔 총알 자국 몇 개가 남았다.

성건우는 적들의 시선이 외투에 쏠린 이 기회를 이용해 연합 202를 꺼내며 옆쪽으로 몸을 훌쩍 날렸다.

허공으로 떠오른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평범한 어인이었다. 기관단총을 쥔 채 반쯤 쪼그려 앉은 어인의 귀 아래쪽과 목 양측에 난 아가미가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탕!

성건우가 든 연합 202 두 자루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어인의 눈빛이 굳어버린 순간, 그의 머리가 그대로 터지며 희고 붉은 액체가 온 사방으로 튀었다.

곧이어 땅에 떨어져 몇 차례 연달아 몸을 굴린 성건우는 이제 콘크리트 더미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그건 어인 경호원들이 미리 구축해둔 바리케이드였다.

이 광경을 보고 월계관을 쓴 어인은 기관단총을 포기하고, 계속 질식 효과를 발휘하면서 두꺼운 장갑으로 덮인 차에 올라탔다.

부릉-

급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그 묵직하고 튼튼한 차량이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주차장 밖의 대형 부대와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월계관을 쓴 어인은 한 가지 사실을 똑똑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미 질식한 인간들과 굳이 뒤얽힐 필요 없이, 재빨리 포수 진지로 돌아가 그들에게 새로운 보호를 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신의 귀한 목숨을 아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전세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어인과 산 요괴 연합의 입장에서는 지금만큼 레드스톤 마켓의 방어선을 뚫기에 좋은 때가 없었다. 절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지금의 전세를 유지하기만 해도 그의 경호원을 죽였던 적들은 끝내 질식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다.

장갑으로 뒤덮인 차는 성건우의 근처를 그대로 지나치며 출구로 돌진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월계관을 쓴 어인의 머리가 돌연 뜨거워지며 이대로 이곳에 남은 적을 포기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치솟았다.

결국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핸들을 틀어 성건우를 향해 돌진했다. 차로 상대를 들이받아 뭉개버릴 작정이었다.

억지쟁이 능력의 발현이었다.

성건우는 지금까지 이 능력을 아주 살짝만 발휘해 월계관 어인이 자신을 각성자로 생각하지 못하게 했었다. 그러다 상대가 능력 범위 내로 진입하자마자 즉각 부드러운 유도를 접고 억지쟁이로 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월계관 어인에게 이런 능력에 대한 일정한 저항력이 있는지, 그는 차를 세우는 대신 성건우와 일대일 대결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여전히 안전한 장갑차에 있는 어인은 액셀을 힘껏 밟았다.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장갑차는 통제할 수 없는 야생마처럼 성건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반대편에 놓아둔 소형 스피커가 위드 시티에서 녹음했던 총성의 재생을 마치고 그다음 노래를 재생했다.

피를 뜨겁게 끓어오르게 하는 그 음악, 소도회 서곡이었다.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웅장한 선율이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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