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10화 (210/649)

210화. 심장 박동

콰광!

테크놀로지 빌딩 뒤쪽 주차장에서 불빛 한 덩어리가 부풀어 올랐다.

갑자기 밝혀진 시야 속에서 어인들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흑회색 비늘이 붉은빛을 반사하며 번득이고 있었다.

어인들은 여태 그 근처에 꽤 잘 숨어 있었던 듯했다. 곳곳에 널린 엄폐물로 인해, 높은 빌딩에서도 주변을 훤히 볼 순 없다는 점을 이용해 어느새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잠입한 것이다.

장목화는 그들의 구체적인 위치까진 모르는 상태에서 포격을 날린 것이라, 어인들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포탄의 폭발로 일어난 불빛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 방어선 곳곳에서 어인들 쪽을 향해 어마어마한 화력을 미친 듯이 쏟아붓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

끊이지 않는 총성과 두세 차례 연달아 이어지는 포탄 공세에 어인들은 근처에 있는 천연 바리케이드 뒤로 숨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그중 대여섯 정도는 시체가 되기도 했다.

뒤이어 다시 숨 막히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주위 공기는 충분했지만, 계속 물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도제훈은 재차 확성기에다 대고 외쳤다.

“제기랄! 자신 있다면 나와서 나랑 당당하게 붙자! 매일 호수 속에 처박혀 있어서 간도 쪼그라들었냐?”

이번에 그는 어인어만으로 그 말을 반복했다. 목표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그는 도발 능력이 실린 목소리로 상대의 분노를 건드리고 이성을 잃게 해 오직 도제훈 자신만 노리게 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방어선 곳곳에 자리한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도 더는 이 질식할 듯한 느낌에 시달리지 않고 적을 대적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이는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도제훈은 그 어인 각성자, 혹은 돌연변이에게 또 어떤 능력이 있는지, 그 능력의 영향 범위는 또 얼마나 넓은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도 각성에 성공해 도발 능력을 얻은 도제훈은 이미 이러한 상태에 익숙해져 있었다.

도발 능력은 일대일 상황에서 상대의 분노를 이끌어 이성을 잃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화살받이로 만들어 연이은 위기 상황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동료들이 더 순조롭게 적을 처리할 수 있다는 이점 또한 있었다.

이건 도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는 했지만, 도제훈이 느끼기에 이 능력의 본질은 바로 상대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분노는 말뿐만 아니라 각종 동작, 태도 등으로도 표현되었다.

다만 그가 현재 알고 있는 영향 범위 확장 방법은 전자 기기를 통해 목소리를 확대하는 것뿐이었다.

도제훈의 도발이 단 두 번 반복된 그때, 다른 이들은 비로소 수면 밖으로 나온 듯 신선한 공기를 허겁지겁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두 인영이 방어선 밖으로 튀어 나갔다.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었다.

그들은 머리, 등, 경부와 흉부를 장갑으로 뒤덮은 검은색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 두 외골격 장치의 등 뒤엔 에너지 팩이 부착돼 있었으며, 양팔엔 유탄발사기와 돌격소총 등의 무기가 덧붙여져 있었다.

레이저 발사구와 전자파 무기 등이 없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된 모델이라는 것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외골격 장치를 작용한 마을 경비대원 두 명은 각 관절에 스프링을 달기라도 한 듯, 무너진 빌딩 높은 곳에서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더니 곧장 테크놀로지 빌딩 뒤쪽 주차장으로 돌진했다.

모두가 산소 부족으로 혼미해지기 전에 그 위험한 아류인 각성자부터 처리할 작정인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계속해서 도발을 이어나가려던 도제훈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은 갈수록 더 빨라졌다.

쿵쾅! 쿵쾅! 쿵쾅!

머리로 피가 쏠리자 호흡이 힘겨워지고, 눈앞도 점차 캄캄해졌다. 도제훈은 남은 힘을 간신히 끌어모아 확성기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저 녀석, 심장 박동을 가속할 수 있다!”

쿵쾅! 쿵쾅! 쿵쾅!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어진 도제훈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당장이라도 터질 듯 박동하고 있었다.

장목화는 도제훈의 말을 듣자마자 상응하는 정보를 떠올렸다.

‘심장 박동을 가속할 수 있다니, 사명 영역의 각성자인가? 그래도 저 강력한 아류인 각성자는 타인의 심장을 마비까지 시키진 못해. 적어도 이 범위에서는 그렇지.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이렇게 시간 낭비 하지 않고 단번에 도제훈을 처리했을 거야.’

빠르게 판단을 내린 그녀는 테크놀로지 빌딩 뒤쪽 주차장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외골격 장치 두 대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목표를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심지어는 그 구역에 숨어 있는 어인들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이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구조팀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는 곧 방안 두 개를 떠올렸다.

하나는 머뭇거리지 말고 당장 저 아류인 각성자의 능력 범위에서 벗어나, 아예 이 레드스톤 마켓으로 다신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어인과 산 요괴의 목표는 레드스톤 마켓이니만큼 구조팀을 쫓진 않을 터였다. 이 드넓은 애쉬랜드에서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이 방안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과연 시간 안에 상대의 영향 범위 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였다.

장목화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보기엔 지금의 거리가 그 아류인 각성자의 한계일 듯했다. 더 여유를 준다면 기껏해야 10미터 정도가 아닐까.

아니면 그도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방어선의 최전방까지 돌진해올 필요가 없었다. 안전한 구역에 가만히 숨어 심장 박동 가속으로 위험한 목표를 해결하고, 마을 경비대원들은 다 함께 질식시켜 버리면 될 일 아니던가.

하지만 이대로 내빼버린다면 구조팀은 더 이상 예약해둔 군용 외골격 장치를 얻을 수도, 이미 분배해버린 물자를 회수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어떤 이익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또 다른 방안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진격에 나서는 것이었다. 아류인 각성자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 그를 해결하고 모든 잠재된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면, 레드스톤 마켓은 이 전투에서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많은 변수와 위험이 존재했다. 자칫 잘못한다면 사망자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계속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원숭이 가면의 시선을 느꼈다.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성건우가 공격할 것인지, 말 것인지 묻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야, 그냥 통보하는 것일 수도 있어. 각오 단단히 해두라고.’

홀연 떠오른 생각에, 갑자기 장목화의 경계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예상했던 일이 펼쳐지고야 말았다.

성건우는 베르세르크 돌격소총을 쥐더니 유리창과 틀이 없는 창문 밖으로 훌쩍 뛰어내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에 착지했다.

장목화도 이를 악물었다.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바로 사신 바주카포를 던져버린 후, 옆에 놓인 예비용 돌격소총을 들고 성건우를 따라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우리 구조팀이 언제부터 손해를 보고도 복수하지 않았다고 그래? 못 찾으면 못 찾았지,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잖아! 이 일을 마무리 짓고 나면 저 망할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줘야지!’

안정적으로 착지한 장목화가 뒤돌아 외쳤다.

“엄호해줘!”

용여홍과 백새벽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레드스톤 마켓의 마을 경비대 전체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 * *

다다다!

우렁찬 총성과 유탄이 곳곳에 튀어나오는 어인과 산 요괴들을 제압했다.

성건우와 장목화는 이 기회를 틈타 무너진 빌딩으로 형성된 콘크리트 더미 위에 가볍게 뛰어내리며 지면에 안착했다.

보통 사람을 월등히 능가하는 운동 신경과 평형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은 흡사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은 원숭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피부색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한명호는 저들이 산 요괴가 보낸 스파이라 의심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때 앞장서 달려가던 경비대원 두 명은 어인들이 날린 총알과 수류탄을 피하면서 빠르게 테크놀로지 빌딩 뒤쪽 주차장에 접근했다.

남자 경비대원은 곧 양팔을 들어 올리고, 그 구역을 향해 유탄과 총알을 쏟아부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어인들 몇몇은 결국 그 포화 속에서 온전하지 못한 시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진정한 목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려던 순간, 남자 경비대원은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쿵쿵쿵-

북처럼 울리는 소리에 피부에선 혈관이 한 줄기, 한 줄기 불룩 돋아났다. 단 몇 초 만에 경비대원의 눈앞은 새빨갛게 물들었으며, 숨 쉬기도 불편해졌다.

만약 백새벽, 용여홍, 한명호를 비롯한 이들이 화력으로 주위를 제압해주지 않았더라면 남자는 그대로 죽었을지도 몰랐다. 장갑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 어인들의 총과 대포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빠르게 의식을 잃은 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뒤이어 어인과의 격투에 몰두했던 여자 경비대원도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귀청을 다 때리는 것만 같았다.

쿵쾅- 쿵쾅-

심장은 결국 계속 빨라지는 박동을 견디지 못했고, 여자 경비대원 역시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테크놀로지 빌딩 뒤쪽 주차장에 진입해 있던 그녀의 시야에 벽과 기둥으로 가려진, 두꺼운 장갑에 싸인 차 한 대가 마지막으로 담겼다.

그 차 옆쪽으론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월계관을 쓴 덩치 큰 어인 한 명이 서 있었다. 주위에도 더러는 엄폐물 뒤, 몇몇은 장갑차 옆에 웅크린 동족이 10명 정도 자리해 있었다. 다들 무기로 무장한 어인들이었다.

콰당!

의식을 잃은 여자 경비대원이 쓰러지자, 금속으로 이루어진 외골격 장치가 땅과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 광경을 보며, 장목화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하나는 각성자의 심장 박동 가속 능력은 한 번에 하나의 목표에게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아니면 상대는 저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 경비대원을 따로따로 처리하면서, 그를 호위하는 여러 어인이 죽게 내버려 두진 않았을 터였다.

다른 하나는 그에게 심장을 멈추는 능력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두 대원이 버텨낸 시간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장목화는 약간의 확신과 함께 새로운 걱정을 안게 됐다.

성건우가 지불한 대가는 정신이나 사고 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각성자 능력엔 대처가 됐지만, 이렇게 육체에 타격을 입히는 유형 앞에선 큰 쓸모가 없었다.

어쨌든 장목화는 얼른 몸을 웅크려 묵직한 돌기둥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두 경비대원과 다른 이들의 엄호 덕에 그녀도, 성건우도 여러 장애물을 통과해 테크놀로지 빌딩 뒤 주차장 근처에 이르렀다.

현재 장목화와 성건우는 각자의 엄폐물 뒤에 임시로 숨어 있었다. 그리고 장목화는 아류인 각성자가 이미 자신을 발견했으리라고 확신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류탄 하나를 꺼내 핀을 뽑아 상대 쪽으로 던졌다.

콰광!

요란한 폭발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장목화는 옆으로 몸을 날리며, 어인들을 향해 베르세르크 돌격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다다다!

그 틈을 타 숨어 있던 곳에서 튀어나온 성건우 역시 어인들을 향해 미친 듯이 총을 난사했다.

이윽고 수류탄이 터진 곳에서 튀어나온 어인들은 그대로 비틀거리며 쓰러지면서 엄청난 피를 흘렸다.

그때였다. 방금 막 땅에 착지하면서 또 다른 엄폐물 뒤로 굴러가려던 장목화의 귀에 커다란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그녀의 심장 소리였다.

쿵쾅! 쿵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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