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09화 (209/649)

209화. 질식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장목화가 진심 어린 제안을 했다.

“강한 사람들을 골라 팀을 결성한 뒤, 그곳을 정찰하게 해야겠는데.”

자원하지 않은 건 구조팀의 작업 범위에 속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물자를 수송하고 용병 고용을 제안한 것만 해도 그들에게는 충분한 모험이었다. 여기에 자신들의 몫이 될 군용 외골격 장치를 지키고, 팀원들을 단련하는 데 따르는 위험 정도는 그나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찰대가 되어 이 거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건 구조팀의 의무가 아니었다. 용병에게도 용병 나름의 직업윤리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만약 장목화 혼자였다면 흥미를 느끼고 정찰 임무를 받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팀의 팀장으로서 자신의 명령 하나하나가 팀원들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더더욱 멋대로 굴 수는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고개를 돌린 장목화는 성건우를 노려보면서 혹여나 그가 객기를 부릴 가능성을 사전에 없애려 들었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 있어도, 당장이라도 나서고 싶어 하는 성건우의 기색까지 가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명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일찍이 그렇게 제안했지만, 다들 지나친 경계심에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 정찰팀을 보낼지 말지를 두고 시종일관 논쟁하는 중이야.”

‘믿음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로의 의견을 통일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 권위적인 존재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논쟁은 위험이 코앞에 닥칠 때까지 이어질 거야.’

장목화는 속으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사실 한명호도 이를 잘 알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한명호는 곧 구조팀에게 지프와 ATV를 이쪽에 잘 숨겨놓으라고 한 뒤, 염려가 섞인 말을 이었다.

“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을 땐 레나토 주교가 결단을 내렸어. 양쪽 다 그의 말이라면 다 잘 들었으니까. 하지만 어느새 그는 본부에 소환됐고, 남은 경고자 중에선 누구도 그를 대체하지 못해. 말의 무게가 완전히 다르거든.”

한명호는 경계 교파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안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말에서 장목화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경계 교파에선 레나토가 무심병에 걸렸단 걸 저렇게 숨겼나 보네.’

구조팀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호숫가 별장 구역에서 지냈던 까닭에 레드스톤 마켓 주민과 접촉한 적이 없어 이런 상황은 잘 모르고 있었다.

장목화는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지만, 한명호는 그녀의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두 가면을 쓴 덕분이었다.

이때, 성건우가 끼어들었다.

“송 경고자님이 곧 오실 거야.”

그들이 경계 교회당에서 출발했을 무렵, 송하균은 이미 교회 무장 경비를 조직해 이쪽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한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송 경고자님 말씀에 잘 따르기를 바랄 뿐이야.”

그들이란 레드리버인을 가리켰다.

“아니면 네가 그 사람들을 소집해 줄래? 내가 한 번 설득해볼게.”

성건우의 또 다른 제안에, 한명호가 잠시 의혹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성건우의 언변이 그렇게까지 뛰어나다고 생각하진 않는 듯했다. 물론 그는 이런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쓴웃음만 지었다.

“누구든 이런 상황에 그만한 경계심을 가진 사람들을 소집하진 못할걸.”

“그럼 다들 어디 숨어 있는데? 내가 직접 한 명, 한 명 찾아갈게.”

성건우는 그렇게 수고로운 일을 하는 것이 조금도 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난 한명호가 웃으며 상대를 진정시켰다.

“일단 송 경고자님이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부터 보자고.”

한명호는 곧 네 사람을 이끌고 그가 담당하는 구역으로 향했다.

* * *

한명호의 담당 구역은 비교적 온전한 빌딩이었다.

빌딩은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 전방의 무너진 건물이 몇 층 정도를 막아주면서 천연적인 바리케이드 역할을 했다.

이 빌딩 6층에 이르면 창문을 통해 폐허의 동남쪽을 볼 수 있었고, 상대가 반격할 시 아래로 몸을 웅크리기만 해도 공격 대부분을 피할 수 있었다.

“너희는 좌측을 맡아.”

한명호는 병력을 새로 배치하며 정말 마을 경비대원을 대하듯 했다. 그리고 그와 수하 몇몇은 빠르게 우측 창문으로 가 기관총 두 개를 설치했다.

잔뜩 흥분한 듯 보이는 성건우는 야간 투시경을 쓴 채 반쯤 쪼그려 앉았다. 그런 뒤, 베르세르크 돌격소총도 오렌지 소총으로 바꾸곤 흡사 언젠가의 백새벽처럼 베테랑 저격수의 자세를 취해 보였다.

용여홍은 그를 힐긋 바라보더니 그 왼편에 쪼그려 앉았다. 그가 받은 무기는 폭군 유탄발사기였다.

그리고 성건우의 오른쪽엔 장목화, 백새벽이 자리했다. 한 명은 사신 바주카포를, 다른 한 명은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오렌지 소총을 쥔 상태였다.

바깥의 어둠은 짙었다. 달빛만이 그 어둠에 대항하고 있었다. 이에 온 폐허 도시가 심연에 삼켜진 것만 같았다.

1분 1초 흘러가는 와중, 한명호는 수시로 무전기를 통해 각자 다른 구역을 방어하는 담당 경비대원들과 소통했다. 그 소통에는 경고자 송하균의 주관 아래 이루어지는 임시 회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은 의견 일치를 보았다. 도제훈과 하미르 등 강자 다섯으로 이뤄진 팀을 꾸려 폐허 도시 동남쪽 끝의 상황을 정찰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줄곧 전방을 감시하던 백새벽이 야간 투시경을 통해 몰래 접근하고 있는 흐릿한 인영 하나를 발견했다. 달빛 아래, 흑회색 비늘이 미약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어인이었다.

백새벽은 즉각 총구 위치를 조정한 뒤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탕!

어인은 머리가 터진 채 뒤로 벌렁 쓰러졌다.

곧이어 백새벽은 목표물을 확인하지 않고서 멀지 않은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한명호가 있는 곳이었다. 저 어인을 맞힌 건 백새벽이 아니었다.

한명호는 엄청난 반응 속도를 보였다. 심지어 그만한 거리를 두고도 어인의 머리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백새벽은 흠칫 놀란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이내 백새벽의 시선을 느낀 듯 그녀를 돌아본 한명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로부터 시선을 돌린 백새벽은 뭔가 확신을 얻었다.

한명호가 방금 보인 사격 실력은 절대 우연한 행운이 아니었다. 그는 상당한 실력의 저격수였다. 관찰력으로 보나, 사격 실력으로 보나 백새벽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더 강한 것 같았다.

‘과연 베테랑 사냥꾼에 등극하고 레드스톤 마켓의 치안관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야.’

속으로 중얼거리던 백새벽은 다시 자신의 임무에 집중했다.

그 사이 한명호는 무전기로 다른 곳의 경비 대원들에게 경고했다.

“어인이 왔다. 더 이상 정찰팀을 보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간단하게?’

장목화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 순간, 용여홍은 약간 긴장되는 마음이 들어 유탄발사기를 받쳐 든 채 전방 관찰에 더욱 집중했다. 왠지 숨이 점차 가빠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소 심각하게 긴장했을 때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그렇게까지 긴장한 건 아닌데⋯⋯.’

용여홍은 갑자기 시작된 증상에 혼란스러웠다. 위드 시티에서 일을 겪었던 만큼, 겨우 이런 일 앞에서 이 정도로 긴장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심장 박동은 전혀 빨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상황에 자신의 상태를 살피던 그가 숨 쉬는 게 정말로 불편해졌음을 깨달았다. 서서히 숨이 막혀오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폐활량 시합인가?”

장목화와 성건우도 동시에 외쳤다. 그들 역시 호흡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들이마셔지는 공기의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한명호를 비롯한 이들도 비로소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까진 어마어마한 전투를 앞둔 긴장감 때문에 그저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고 있나보다고 생각하고 만 것이었다.

“헉, 헉⋯⋯.”

다들 입을 크게 벌리며 숨을 헐떡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듯한 느낌은 해소되지 않고. 외려 더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다들 산소통도 메지 않은 채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신선한 공기도 공급받지 못하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호흡하려 할수록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각성자일 거야.”

장목화가 말했다. 뛰어난 숨 참기 능력을 가진 그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가장 영향을 덜 받는 사람이었다.

말을 하는 사이 그녀의 시선이 성건우에게로 향했다. 시선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의 감지력으로 봤을 때, 동남쪽 일정 범위 내에서 감지되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었다.

설령 그 각성자에게 의식을 숨기고 동족을 속일 능력이 있다 한들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상응하는 전기 신호까지 숨길 순 없었다. 스스로를 금속 철창 안에 완전히 가두지 않은 이상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유전자 개조를 받은 장목화에게 전기 신호 감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번거롭고 복잡한 준비를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불가능을 배제하다 보면 남는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호흡 곤란을 불러일으킨 그 사람이 내부 스파이라 방어선 어딘가에 자리해 있을 가능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대가 이미 심령의 복도 근처에 이르러 있거나 심지어는 이미 그 안에 진입했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 각성자일 가능성이었다. 그렇다면 능력의 영향 범위에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광활한 지역에서도 장목화의 전기 신호 감지 범위는 꽤 광대했다. 당시 기계 승려 정법을 대적했을 때가 그 반증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 그녀는 상대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명호 역시 각성자의 강력함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몇 차례 경험해 본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철수! 게릴라 작전으로 변경한다!”

모두가 사방으로 퍼져서, 익숙한 지형과 뛰어난 숨기 능력을 바탕으로 어인, 산 요괴와 유격전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데 모여 있다가는 다 같이 동시에 질식해서 죽어버릴 가능성만 커졌다.

“그래서는 죽음을 약간 늦추는 것밖에 안 돼.”

“너희보다 사람을 더 잘 찾을 거야.”

장목화와 성건우는 재차 입을 모아 경고했다. 하는 말은 달랐지만, 실질적인 의미는 같았다.

능력의 범위가 이렇게나 크다면, 감지 범위도 상당할 게 자명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팀을 이끌고 곳곳에 숨은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박멸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굳이 찾을 필요조차 없을지도 몰랐다. 숨은 상태 그대로 숨 막혀 죽게 할 수도 있을 테니.

바로 그때, 누군가가 확성기에다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멀찍이 숨어서 몰래 공격할 줄만 아는 겁쟁이들! 할 수 있다면 덤벼봐!”

누군가가 어인들이 쓰는 방언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방언은 레드리버어에서 유래된 말이라, 장목화는 직접 말하지는 못해도 어렵게나마 그 뜻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헉, 도제훈⋯⋯.”

한명호가 힘겹게 한 사람의 이름을 내뱉었다.

‘도제훈? 확성기를 통해 도발 능력 영향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건가?’

순간 깨달음을 얻은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성기 소리는 그들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떠한 분노도 느끼지 않았으며, 그 추측을 검증할 수도 없었다.

이때 성건우가 거친 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건…… 흐억, 정말 유용한 일이네요.”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리 도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어인과 산 요괴는 그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도제훈은 이번에 산 요괴어로 한바탕 욕을 지껄였다. 하지만 질식할 듯한 느낌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하지만 도제훈 역시 멈추지 않고 어인어와 산 요괴어를 번갈아 가며 계속해서 그들을 자극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끊임없이 방향을 바꿔가며 영향 범위를 바꾸기도 했다.

그가 여섯 번째로 외쳤을 때였다. 모두가 물속에서 마침내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신선한 공기와 재회한 순간, 세상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테크놀로지 빌딩 뒤쪽 주차장!”

도제훈이 외쳤다. 적들의 반응을 통해 그 무시무시한 각성자의 위치를 대강 파악한 듯했다.

장목화의 머릿속에 경고자 송하균이 준 지도가 펼쳐졌다. 빠르게 확대되던 지도는 곧 이쪽 구역의 구조를 드러냈다.

테크놀로지 빌딩 뒤쪽 주차장과 이곳 사이 직선거리는 100미터 정도였다.

장목화는 곧장 자신의 앞에 놓인 바주카포를 조정한 뒤, 도제훈이 가리킨 곳을 향해 포탄을 날렸다.

성건우도 몸을 굽힌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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