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08화 (208/649)

208화. 용병

지프는 깊은 어둠 속, 노란 불빛을 따라 동남쪽으로 질주했다.

버려진 건물뿐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용여홍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그도 이미 애쉬랜드의 상황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직접 전선으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위드 시티에서의 소란을 진짜 전투라 하긴 어려운 면이 있었다.

용여홍이 조용히 심호흡하며 긴장을 가라앉히는 와중, 한 손으로 핸들을 쥔 성건우가 다른 손으로 전술 배낭 안에서 소형 스피커를 꺼내 들었다.

그가 버튼 몇 개를 누르자 지프 안에 격앙된 선율이 울려 퍼졌다. 사람의 목소리는 없었지만, 용여홍은 선율을 따라 피가 끓어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외로운 영웅이 홀로 백 명의 적을 처리하러 가는 기분이랄까.

“이 음악 제목이 뭐야?”

용여홍이 고개를 돌려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전보다 확실히 훨씬 안정된 모습이었다.

“모르겠어. 가사 없는 음악이야. 출정곡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데.”

성건우가 몸을 흔들며 웃었다.

용여홍은 음악에서 솟구치는 열정과 흥분을 느끼며 전방의 황토색 ATV를 바라보았다. ATV는 무너진 건물과 파괴된 도로가 널린 폐허를 안정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를 보고, 용여홍이 못 참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팀장님이 우리한테 차를 몰고 레드스톤 마켓 곳곳을 돌아다니게 한 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구조팀은 이 폐허 도시에 머무른 시간이 길지 않은 관계로 모든 길을 다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이곳은 규모가 거대한 도시였다.

그래도 주요 구역의 건물 위치와 흔히 이동하는 도로 등은 또렷하게 알고 있었고, 송하균이 제공한 지도 덕에 깊은 밤인 지금도 비교적 수월하게 목적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용여홍의 감탄에 성건우가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틀었다.

“난 네가 위드 시티에서 이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새벽이가 주로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거든.”

용여홍이 상당히 솔직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성건우는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진지하게 제안했다.

“숨바꼭질은 환경에 적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다음에 너랑 같이 경계 교파의 미사에 참석해 줄게.”

‘그냥 네가 참석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용여홍은 그저 속으로만 대꾸하곤,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무전기를 통해 장목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라이트 꺼. 차 속도 늦추고, 스피커 켜.

그들은 이미 엘 마트와 6일 쇼핑몰 일대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아직 총성이나 포성은 들리지 않았다.

곧장 차창을 내린 성건우는 스피커로 재생할 파일을 바꾼 뒤 음량을 최대로 높였다. 어둠에 잠긴 지프에서 남자의 우렁찬 음성이 퍼져나갔다.

- 우린 유적 사냥꾼 팀이다. 경고자 송하균의 부탁으로 무기를 가져왔다!

우린 유적 사냥꾼 팀이다. 경고자 송하균의 부탁으로 무기를 가져왔다!

지나치게 큰 소리에 용여홍은 고막이 웅웅,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도 온통 그 소리만 맴도는 듯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지만, 내뱉은 말은 거대한 스피커 소리에 그대로 묻혀버렸다.

* * *

전방에 자리한 황토색 ATV 안.

운전석에 앉은 백새벽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졌다. 그 변화를 눈치챈 장목화가 즉각 큰 소리로 물었다.

“왜?”

동시에 장목화는 수동으로 모든 차창을 닫고, 방해를 차단했다.

한결 조용해진 분위기에 숨을 들이마시던 백새벽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뗐다.

“애쉬랜드를 유랑했을 당시, 운전해서 돌아다니며 종종 여러 거점에서 물건을 교환했었어요. 때로는 일을 최대한 줄이겠다고 큰 나팔을 하나 구해서 끊임없이 구하려는 물건을 외치고 다니기도 했고요.”

장목화는 사방을 한번 관찰하며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예를 들면?”

몇 초간 침묵하던 백새벽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쌀, 밀가루, 통조림을 부엌칼, 권총, 탄피, 각종 금속 제품으로 바꿨어요.”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남이 이모가 총포사 문 앞에 ‘망가진 권총, 소총, 기관단총 삽니다.’라고 붙여둔 것도 혹시 네가 제안한 거야?”

백새벽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 대꾸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유랑자라면 그 정도는 다 알아요. 팀장님,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주위를 잘 살피세요.”

갑자기 무겁고 딱딱한 말투로 화제를 돌려버린 백새벽을 보고, 장목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 화났나 보네⋯⋯.”

장목화의 태도는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다.

“화 안 났어요.”

백새벽은 전방을 주시하며 빠르게 반박했다.

“그럼 부끄러워서 그래?”

장목화가 웃음을 머금은 채 캐묻지만, 백새벽은 끝내 답이 없었다.

장목화 역시 선을 알기에, 천천히 웃음을 거두며 전기 신호 감지에 집중했다. 동시에 눈으론 바깥 달빛에 기대 길 양쪽 빌딩과 폐허를 계속 살폈다.

그로부터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장목화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스피커 끄고 우리랑 충분히 거리 유지해.”

그녀는 살짝 긴장을 올리며, 언제든 뜻밖의 상황에 대응할 준비를 했다.

다시 수십 초가 더 지났을 때였다. 전방의 무너진 건물 위쪽에서 갑자기 두 인영이 튀어나왔다. 돌격소총을 쥔 그들은 정리된 길을 따라 ATV로 접근했다.

가까이 접근한 두 사람은 동물 가면에다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서 레드리버인인지 애쉬랜더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한동안 상황을 살피는가 싶더니, 둘 중 수소 가면을 쓴 여자가 운을 뗐다. 그녀는 애쉬랜드어를 쓰고 있었다.

“헬빅의 임무를 맡은 그 유적 사냥꾼들인가?”

그말에 장목화가 미소를 보였다. 총구로 겨눠지고 있는 이 와중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없었다.

“맞아. 우리는 헬빅의 무기를 찾았고, 그중 우리가 받기로 한 부분을 마을 경비대에 팔려고 왔어. 한 대장은 어디에 있지?”

“찾았다고?”

수소 가면을 쓴 여자가 놀란 듯 되물었다.

“응, 송 경고자님이 증언해주실 수 있어.”

장목화가 답했다.

여자는 몇 초간 침묵 끝에 무전기에 대고 한명호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명호가 직접 구조팀을 찾아왔다. 검은색 옷을 입은 그는 언제나처럼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소총 한 정을 등에 메고 허리 양쪽으로 연합 202 권총 두 자루를 찬 그는 헬빅의 무기와 구조팀의 물자를 확인한 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원하는 대가가 뭐지?”

“마을 경비대의 군용 외골격 장치. 딱 한 대면 돼. 이번 전쟁이 다 끝난 뒤에 줘도 상관없고.”

우아한 중 가면을 쓴 장목화가 솔직하게 답했다.

이내 한명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 장목화가 웃으며 덧붙였다.

“앙헤바스는 이미 교회당에 와서 참회했어. 레드스톤 마켓이 아류인에 대항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기로 약속도 했고. 정세가 안정되면 그를 통해 새 군용 외골격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 거야. 물론 한 1년 반 정도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너희한텐 그만한 여유가 있잖아. 우린 아니거든.”

한동안 침묵하던 한명호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답하긴 어려워. 다른 사람들과 상의해봐야 할 것 같은데.”

장목화도 그가 레드스톤 마켓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님을 알고 있기에 이해한다는 듯 답했다.

“좋아. 근데 좀 서둘러주면 좋겠네. 우린 기다릴 수 있어도 어인과 산 요괴는 아닐 거잖아.”

고개를 끄덕이던 한명호가 옆쪽으로 걸어갔다.

몇 발짝 나아가던 그때, 그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마을 경비대가 강제적으로 무기를 징발하거나, 심지어는 너희들을 죽이고 무기를 빼앗을 것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나 봐?”

그 말에 장목화가 웃었다.

하지만 그녀가 최종 빌런 신분에 부합하는 답을 내놓기 전, 지프를 몰고 다가온 성건우가 큰소리로 외쳤다.

“우린 널 믿어!”

흠칫 놀란 표정을 드러낸 한명호는 한참 뒤에야 약간 씁쓸하게 말했다.

“세상에는 내가 막지 못하는 일도 있어.”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너진 빌딩 옆쪽으로 다가간 그는 무전기를 통해 마을 경비대의 여러 실권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한명호가 ATV로 돌아온 건, 장장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딜.”

“합작하게 돼서 영광이야.”

장목화는 상대와 악수를 하고 싶었지만, 레드스톤 마켓의 풍습을 고려해 그 생각은 접었다.

물론 경계 교파의 신도가 아닌 한명호가 고작 악수에 벌벌 떨지 않으리란 건 알았지만, 주위에 자리한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이 전부 에이돌른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이 두 사람의 악수에 경계심을 느끼고 거래를 중단하려 한다면? 혹시 모를 상황이라면 아무 짓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곧이어 숨을 토해낸 한명호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일단 무기와 물자를 나한테 넘겨. 난 그 무기를 대원들에게 나눠줄 거야. 어인과 산 요괴를 다 물리치면 그때 AC-42 군용 외골격 장치를 줄게.”

“좋아.”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응했다.

그러자 한명호가 오히려 약간 불안하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우리가 져서 아류인에게 외골격 장치 두 대 다 빼앗기면? 걱정도 안 되나?”

그는 물건만 떼어먹히고 값을 못 받으면 어쩌나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우리가 가져올 거야.”

성건우가 재차 장목화의 답을 가로챘다. 그의 말에는 이상하리만치 강한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그 말을 듣고 피식 웃던 장목화가 덧붙였다.

“단단히 무장하고 찾아가 값을 청구해야지.”

이들의 넘치는 자신감을 확인한 한명호는 방어선 곳곳에 자리한 마을 경비대원에게 시간에 맞춰 이곳으로 와 새 무기를 받아 가라고 통지했다.

물론 그들에게 지금 당장 쓸 총기와 총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곳에 집중된 무기와 물자를 미리 분산시켜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물자를 분배하는 동안 한명호가 다시금 장목화를 돌아보며 물었다.

“더 할 일이 있나?”

장목화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혹시 용병을 고용할 생각은 없어? 일주일 치 식량만 주면 돼. 우리 몫이 될 외골격 장치를 지키려는 거니까.”

그녀는 이 기회를 틈타 팀원들을 새롭게 단련시킬 작정이었다. 그래야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재차 무전기를 든 한명호는 조금 전 그곳으로 가서 명목상으로는 그의 부하들인 실권자들과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온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나를 따르면 돼.”

단박에 고용된 장목화는 곧장 용병의 태도를 보였다. 동남쪽을 주시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한 대장, 뭔가 이상하지 않아? 어인과 산 요괴는 여태까지 아무 공격도 안 하고 있어. 이곳을 습격한 지는 이미 꽤 지났잖아?”

구조팀은 북쪽에 자리한 경계 교회당에서 이곳에 이르러 물자 분배를 마칠 때까지 별다른 총성도, 포성도 듣지 못한 상태였다.

한명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바로 너희들을 용병으로 고용한 이유야. 맨 처음으로 어인과 산 요괴를 발견한 그 팀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폐허 도시의 동남쪽 끝은 기이한 적막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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