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07화 (207/649)

207화. 지도

“마을 경비대에 무기를 보내겠다고요?”

경고자 송하균은 장목화의 말에 상당히 의아해했다.

그의 방은 상당히 간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크기는 구조팀이 빌린 여관과 비슷했으며, 안에 놓인 가구도 그리 많지 않았다. 침대 하나와 의자 몇 개, 수납장 한 세트, 책장 하나, 종이와 펜이 놓인 탁자 하나가 전부였다.

성직자라는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침대 맞은편 벽에 걸린 에이돌른의 성휘였다. 반쯤 닫힌 흰색 문 뒤, 어둠 속 보일 듯 말 듯 숨은 한 여자의 인영이 이곳에도 있었다.

이러한 방의 구조에 용여홍은 머리가 약간 저릿해졌다.

‘저런 성휘 맞은편에서 잠들면, 계속 어둠에 숨은 달지기가 몰래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나마 맞은편 벽에 붙어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천장에 붙어 있었다면 절대 잠들 수 없었을 거야.’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성건우가 장목화를 대신해 답했다.

“보내려는 게 아니라, 팔려는 겁니다.”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듯 송하균은 불편한 기색 없이 웃어 보였다.

“제가 말한 보낸다는 건, ‘증정’이 아니라 ‘호송’이었습니다.”

“제가 오해했네요.”

성건우는 순순히 본인의 잘못을 시인했다. 설령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도 그는 원래 이런 것에 신경을 쓸 유형이 아니었다.

송하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건 여러분들의 성의는 느껴집니다. 레드스톤 마켓의 주민들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어인과 산 요괴는 폐허 동남쪽에서 진격해 들어오려는 것 같습니다. 한명호는 이미 마을 경비대를 조직해 대부분 다 그곳으로 보냈을 겁니다.”

망설임 없이 말을 잇던 그가 책상 앞으로 가서 지도 한 장을 펼쳤다.

“한명호의 계획은 엘 마트와 6일 쇼핑몰 일대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해 적을 저지하는 겁니다. 이 넓은 구역의 도로는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는 데다, 무너진 건물도 상당합니다. 긴 거리를 우회하고 싶지 않다면 어인과 산 요괴는 이곳을 뚫고 지나가야만 해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장목화가 말했다.

“산 요괴는 험준한 벼랑을 타는 데 능해요. 이러한 지형쯤이야 그들을 막지 못할 겁니다.”

“맞습니다. 한명호도 그 점을 고려해 이 지형을 이용한 함정을 만들려고 한 겁니다.”

송하균이 말을 받았다.

장목화는 다시 책상에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구세계에서 만든 지도인가요?”

지도에는 도시 구조가 매우 또렷하게 표시돼 있었다.

“음, 제가 막 이곳 레드스톤 마켓을 찾아왔을 때 찾은 겁니다. 이 도시 관광안내도죠. 보시다시피 마을이 자리한 공원을 구세계에선 레드스톤 공원이라 불렀습니다. 여기 레드스톤 마켓이란 이름이 붙은 건 그 이유 때문이에요. 아, 그 이유 때문이란 말은 비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 돼서.”

송하균은 저도 모르게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지도를 잠시 살피던 장목화가 물었다.

“곳곳에 표시를 해두셨네요.”

지도에는 상당히 많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붉은 가위표가 쳐진 곳도 있고, 검은 동그라미가 쳐진 곳도 있었다.

더불어 지도 옆쪽 공백에는 여러 표시에 대응하는 설명도 붙어 있었다.

“어느 건물이 무너졌는지, 어느 길로 통행이 불가한지 표시해둔 겁니다. 표시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원래 지도에 비교해 더는 펜 데기가 어려워지죠.”

레드스톤 마켓에서 벌써 4~50년을 살아온 남자의 말투에는 낙담이 물씬 묻어나왔다. 이내 시선을 거둔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구세계 유민이었으나 전란의 시대를 버텨내지는 못하셨죠. 그분들은 일찍이 제게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가르쳐주셨어요. 당시만 해도 그런 말을 알게 되기야 했지만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이 지도를 고치기 시작했을 때야 진심으로 그 말을 깨닫게 됐죠.”

장목화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다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방금 드린 질문은 사실 이 지도를 빌려 갈 수 있을까 해서 한 말이었는데,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네요.”

송하균은 흠칫 놀란 듯하다 소리 내 웃었다.

“가져가세요. 이거 한 장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예?”

놀란 장목화를 보고, 송하균이 설명했다.

“이 지도를 만든 건 단순히 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때로는 주민들에게도 이게 필요할 테니까요.”

장목화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대답했다.

“그럼 사양치 않겠습니다.”

곧이어 성건우가 송하균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지도를 잘 챙겨 넣는 이들을 보고, 송하균이 미소를 지으며 당부했다.

“만약 적들의 공세가 지나치게 맹렬하다면 굳이 거기서 버티지 말고 최대한 빨리 철수하세요. 걱정하실 건 없어요, 도시 경비대도 그럴 테니까.”

용여홍이 의아해하는 사이, 장목화가 물었다.

“어인과 산 요괴가 레드스톤 마켓을 습격한 건 대체 뭘 위해서일까요?”

다시 장목화를 보는 송하균의 눈엔 감탄의 빛이 어려있었다.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모든 인간을 이 폐허에서 내쫓은 뒤 이곳을 점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군요.”

장목화는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때 송하균이 덧붙였다.

“어인과 산 요괴는 방어선을 돌파하는 대로 레드스톤 마켓으로 돌진해 그곳을 파괴할 겁니다. 하지만 뭐, 파괴하려면 파괴하라지요. 그곳엔 물자도 많지 않고, 저녁에 머무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인과 산 요괴를 격퇴하고 나면, 폐허 내 여러 지하 시장과 방공호를 기반으로 새로운 마을을 세울 수도 있고요.

다들 평소 숨어 있는데 습관이 된 사람들입니다. 자기들끼리도 쉽게 찾아내질 못하는데, 어인과 산 요괴가 무슨 수로 찾을 수 있겠어요?

때가 되면 이곳 환경에 익숙한 우리들은 일곱 명씩 한 팀을 이뤄, 돌아가면서 적들을 습격해 이곳에서 학을 떼게 할 겁니다. 어인과 산 요괴가 눈 깜짝할 사이 온 폐허를 파괴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그런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겁니다.”

깜짝 놀란 용여홍은 이제야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이 왜 그렇게 숨는 걸 숭상하고 좋아하는지, 언뜻 보기엔 우습기만 한 숨기 의식에 왜 그렇게들 진심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는 분명 그들의 목숨과 안위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전에 장목화의 분석으로도 이런 풍습을 얼추 이해하고, 그 필요성도 알게 됐었다. 하지만 이번 아류인의 습격으로, 그 기묘한 풍습이 이어지는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말 잘 숨어 있기만 하면 습격에서 도망칠 수 있고, 기회를 찾아 적들에게 반격을 가할 수도 있고,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될 수 있었다.

거대한 폐허 도시에 살지만, 아군의 규모도, 적군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선 이것만큼 침입에 대적하기 적절한 방법이 없었다.

순간, 용여홍은 언젠가 장목화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무리 허황돼 보이는 것도 그 나름의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법이야.’

* * *

폐허 도시 동남쪽 끝, 무너진 건물 뒤쪽.

이 건물 뒤편에 숨은 도정은, 가우디, 셸러는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어인과 산 요괴가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각종 방언이 섞인 기괴한 말이었다. 더불어 이쪽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소리도 이어지고 있었다.

본래 포격 당해 휘청거리는 고층 빌딩에서 도망쳐 나온 세 사람은 익숙한 지형을 따라 적들과 거리를 벌리며 예정된 방어선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어인과 산 요괴들은 그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어디로 가려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곳을 떡하니 막고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들을 보다가, 도정은이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이대로 버틸 순 없어.”

지금 그는 레드리버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가우디가 대꾸했다.

“뭔가 이상해.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할 것 같아.”

경계심 가득한 이 고장은 애초에 머신헤븐으로 레드스톤 마켓에 현지 기지국을 세우지 않아서, 원거리 통신은 오직 무전기로만 이뤄졌다.

그리고 지금 그들과 엘 마트 및 6일 쇼핑몰 사이의 거리는 무전기로 연락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곧이어 셸러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한 명이 유도하자. 그 사이 둘은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는 거야.”

차만 탄다면 적들과의 거리를 빠르게 벌리며, 엘 마트와 6일 쇼핑몰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좋아. 각자 한 번씩 튕겨서 다른 면이 나온 사람이 유도를 맡는 거야.”

가우디가 퍼스트 시티의 은화 한 닢을 꺼냈다.

이에 셸러의 눈빛이 조금 아련해졌다. 지난날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원래 경계 교회당에선 나이가 비슷한 이들끼리 모아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놀면서 숨기 능력을 기르도록 했다. 그럴 때마다 잡는 쪽과 숨는 쪽을 결정하는 것은 이런 동전이었다.

“내가 먼저 던질게.”

도정은이 은화를 받아 위쪽으로 던진 후, 손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그대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뒤이어 그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졌어.”

“정은!”

놀란 가우디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셸러 역시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치 도정은을 처음으로 알게 된 듯한 모습이었다.

도정은은 천천히 두 사람을 돌아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가 튀어 나가면 너희는 곧장 반대 방향으로 뛰어. 이건 네 여동생을 좋아한 내 죗값이야!”

셸러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그가 곧장 자동소총을 쥐고 튀어 나갔다.

다다다!

도정은은 방아쇠를 당기며 반대편으로 돌진했다. 미끼를 자처했지만, 그래도 그는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작정이었다.

친구의 모습에 셸러와 가우디도 피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니, 두 사람은 최대한 허리를 굽히고 엄폐물 뒤로 숨어가며 차를 세워둔 곳으로 향했다.

다다다!

도정은이 막 한 바퀴를 구르며 맞은편 건물로 들어가려던 그때, 돌연 눈앞의 모든 게 현실로부터 뽑혀 나가는 듯한 느낌이 그를 덮쳤다.

수영을 배우려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그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눈앞의 광경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한 폭의 화면으로 변했다. 주위의 소리도 끝없이 멀어지고 있었다. 생각도 점차 흐릿해지고, 정말 물속에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듯 더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시야가 완전히 캄캄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한 어인이 보였다. 어인의 눈은 굉장히 거대했지만, 다른 어인들과 달리 그렇게 많이 튀어나오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머리에 쓴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월계관과 흑회색 비늘이 달빛 아래 물결처럼 빛나고 있었다.

* * *

경계 교회당을 나온 구조팀은 무기들을 황토색 ATV로 옮겼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는 처음으로 성까지 붙여가며 지시를 내렸다.

“용여홍, 너랑 성건우는 지프를 몰아.”

ATV 조수석에 있던 물건은 이미 지프 뒷좌석으로 옮겨져 있었다.

“예, 팀장님!”

용여홍은 이유도 묻지 않았다. 거기에 성건우는 대답도 없이 지프의 차 문을 열고 있었다.

뒤이어 장목화가 곁에 있는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네가 운전해. 난 사방을 감시할게.”

그녀는 관찰 범위 밖의 동정까지 살펴야 했기 때문에 운전에까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네.”

백새벽은 총을 쥔 채 ATV의 운전석으로 향했다.

곧이어 그녀를 따라 차에 오른 장목화가 무전기를 들었다.

“이제 라이트 켜도 돼. 교전 구역에 접근하면 내 말 잘 듣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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