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참회
장목화는 합류하기로 약속한 지점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1분이 조금 지났을 무렵, 구조팀이 타고 있는 지프가 보였다.
“팀장님, 건우가 로페즈를 데리고 왔어요.”
용여홍이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보고하자, 성건우가 곧장 끼어들었다.
“능력은 안 썼습니다!”
“잘했어.”
장목화가 칭찬했다.
능력을 사용한 상황에서 로페즈를 생포하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단순 전투만으로 상대를 제압했다면 그건 칭찬해 마땅한 일이었다. 로페즈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로페즈를 잡은 건 잘된 일이야. 덕분에 앞으로 수고 좀 덜겠어.”
용여홍이 물었다.
“팀장님, 이제 어디로 가나요? 여관으로 돌아가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앙헤바스가 저희 정체를 알아차린다면 밤중에라도 복수하러 올 텐데요.”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경계 교회당으로 가자!”
* * *
호숫가 별장 구역, 지하 주차장 안.
앙헤바스가 보냈던 심복이 돌아와 현장의 상황을 보고했다.
“ATV가 사라졌습니다. 트럭에 실려 있던 무기도 거의 다 없어졌고⋯⋯.”
앙헤바스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조금 전 상대가 그 정도로 요란하게 습격한 건 무기 탈취를 하기 위함이었다. 외지 망명자 소탕도, 산 요괴와의 결탁 처리도 전부 거짓이었다. 그 모든 건 무기 탈취를 위한 핑계와 수작에 불과했다.
“젠장!”
앙헤바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의 심복도 바깥의 상황을 확인한 덕분에 대략 진상을 파악해서인지, 의혹과 혼란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스, 누구 짓일까요? 애쉬랜더? 디마르코의 집사?”
앙헤바스는 곰곰이 고민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둘 다 아니야, 그들이었다면 날 직접 노렸을 거다.”
앙헤바스만 처리하면 무기도, 어마어마한 물자도 자연히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 외의 이점 역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앙헤바스의 심복도 보스의 판단에 깊이 동의했다.
“그럼 누굴까요?”
“레드스톤 마켓을 통틀어 내부 분쟁이 아니라 그 무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은 셋뿐이야. 첫째, 리만 녀석들. 둘째, 테레사. 셋째, 임무를 맡은 그 유적 사냥꾼 팀.”
앙헤바스는 머리가 꽤 좋은 편이었다. 연합 공업에서 온 밀수업자 리만은 바로 헬빅에게 그 무기를 판 장본인이었다.
앙헤바스의 심복은 보스의 논리에 따라 분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승부가 나기 전까지 리만은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을 겁니다. 레드스톤 마켓으로 아예 이사를 올 리도 없어요. 애쉬랜더나 디마르코의 집사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은 이상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그의 중요 표적은 우리로 바뀌겠죠. 헬빅의 수하들은 현재 마땅한 지도자가 없으니 이런 짓을 벌이지는 못할 겁니다.”
앙헤바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남은 건 그 유적 사냥꾼 팀뿐이군.”
한명호가 방어선을 구축한 이때, 외부의 아류인이나 강도단은 기본적으로 배제할 수 있었다.
“상당히 용감하네요⋯⋯.”
앙헤바스의 심복은 말을 잇다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와 관련된 정보가 떠오른 탓이었다. 이에 의아함을 느낀 앙헤바스가 물었다.
“왜?”
앙헤바스는 여태 무기 회수 임무를 맡은 그 유적 사냥꾼 팀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큰 규모의 팀도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로페즈에게 처리를 맡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팀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려야 했다.
‘그래, 오늘 오후에는 로페즈와 한판 붙기도 한 것 같던데. 패기만 있는 게 아니라 위험을 즐길 줄도 아는 모양이군. 과연 감히 이곳을 습격해 무기를 탈취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던 거였어.’
앙헤바스가 속으로 중얼거리던 사이, 심복이 심하게 더듬거리며 답했다.
“그, 그 팀의 팀원은, 고, 고작 네 명입니다.”
“……뭐? 네 명?”
앙헤바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고작 네 명으로 내 코앞에서 수십 명의 무장 요원을 해치우고 무기를 탈취하려 했다고? 거기다 그 무모한 일을 성공하기까지 해?’
그는 방금의 전세와 최종적인 결과만 보고, 인원이 적어도 열 명은 되는 팀이라 예측했었다.
앙헤바스의 심복은 힘겹게 침을 삼킨 뒤 말을 이었다.
“예, 넷입니다. 사냥꾼 길드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겨울이라 그런지 최근 이곳에 온 유적 사냥꾼이 그들뿐이랍니다. 다른 곳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금 전 그는 유적 사냥꾼 팀이 상당히 용감하다고 말했었지만, 이젠 평가를 달리해야 했다. 이건 용기가 아닌 광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앙헤바스 역시 충격에 빠졌다. 자신들의 본부 앞에서 수십 명의 무장 요원을 위협하고 가볍게 무기를 탈취한 그들이 겨우 넷뿐이라니! 평생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한동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수십 초가 흐른 뒤, 앙헤바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네 명뿐이라고?”
그의 심복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차 앙헤바스의 질문이 이어졌다.
“로페즈를 비롯한 망명자들은? 몇 명이나 죽었지?”
“주, 죽은 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전부 도망친 듯합니다.”
앙헤바스의 심복은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점점 더 충격이 밀려들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시금 앙헤바스의 침묵도 길게 이어졌다.
잠시 후, 앙헤바스가 공백을 깨고 천천히 운을 뗐다.
“그 사냥꾼 팀에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아는 강자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습격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게 바로 그 방송이었어. 그게 우리 마음속의 의심과 두려움, 경계심까지 극도로 증폭시켰지. 거기에 그 어떤 것도 맹목적으로 믿지 않으려는 우리의 습관도 아주 교묘하게 이용했고.
그 방송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습격자들을 교회에서 보낸 무장 요원으로 믿었어. 외지 망명자들이 정말 산 요괴와 따로 내통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그들을 소탕하는 일이 자신들의 이익과는 관계없으리라 생각한 거야.
거기다 로페즈를 비롯한 외지 망명자들은 내가 자신들을 배반하고,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는 생각에 습격자 처리에 목숨을 걸지 않은 거겠지.
우리는 규모로도 화력으로도 그들을 월등히 능가한 상태였어. 하지만 그들의 수작질에 바로 무너진 거다. 오랫동안 수리받지 못한 집처럼⋯⋯.”
앙헤바스는 당시 본인이 했던 생각까지 밝히지는 않았다. 수하에게 드러낼 만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의 심복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자들은 그런 수작질로 레드스톤 마켓을 마음대로 휘젓고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겁니까? 보스, 당장 복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 애쉬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실력이라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음, 일단 기회를 보자. 지금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뭡니까?”
심복이 물었다.
‘지금 당장 전력 출동해 그 무기를 되찾아와야 하지 않나?’
이윽고 앙헤바스가 흰색 바탕에 검은 눈이 그려진 가면을 뒤집어썼다.
“경계 교회당으로 간다. 로페즈와 녀석들을 찾아서 죽여야지.”
* * *
보루와도 같은 경계 교회당 밖.
용여홍은 깨어난 로페즈를 끌고 지프에서 내렸다. 그는 ATV 공간을 거의 꽉 채운 나무 상자들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꼈지만, 너무 가볍게 얻은 성공을 좀처럼 실감하지 못했다.
이때 원숭이 가면을 쓴 성건우가 경계 교회당 대문 앞으로 달려가 굳게 닫힌 문을 세게 두드렸다.
쾅쾅-
곧 열린 대문 사이로 검은 망토 차림의 교회당 경비가 나타났다. 기관단총을 쥔 그가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아주 중요한 일이야. 송 경고자님을 만나러 왔어.”
성건우가 진지하게 강조했다.
쾅!
대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몇 분 후, 가면을 쓰지 않은 송하균이 모습을 드러냈다. 묵직한 대문을 열고 나타난 그는 먼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머지않아 수갑을 찬 로페즈와 황토색 ATV 차에 닿았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 물었다.
“여러분, 이 자가 여러분을 습격한 겁니까?”
“아니요. 저희가 이 자를 습격하고, 그 무기를 되찾았습니다.”
성건우는 거침없이 답했다.
송하균의 시선이 그들 사이를 몇 차례 오갔다. 그는 곧 자신이 이해한 대로 다시금 되물었다.
“로페즈를 추적해서 그 무기를 되찾았다고요?”
“그런 셈이죠.”
이내 장목화가 성건우를 가로막고서 큰 소리로 말했다.
“송 경고자님, 교회당에서 하룻밤 지내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날이 밝으면 무기를 돌려주고 임무를 완수한 뒤, 마을 경비대와 거래할 생각이에요.”
송하균이 미소를 지었다.
“문제없지요. 에이돌른의 주시 아래 감히 소란을 피울 자는 없으니까요.”
살짝 돌아선 장목화가 로페즈를 가리켰다.
“구체적인 상황은 이 사람에게 물으시면 돼요. 저희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음⋯⋯, 그리고 4인실 하나만 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죠.”
송하균이 부탁에 응했다.
* * *
7~8분 뒤, 앙헤바스가 심복 몇 명과 함께 경계 교회당에 도착했다.
문밖 황원에 세워진 황토색 ATV는 단박에 발견할 수 있었지만, 안은 살펴보니 이미 텅 비어있었다.
앙헤바스는 눈꺼풀을 움찔거리며 숨을 깊이 들이쉬곤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은 닫혀 있을 뿐, 잠겨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 안에서 송하균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어오세요.”
심복들과 홀로 들어간 앙헤바스는 일단 교차시킨 양팔을 가슴팍 앞으로 들어 올리며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예부터 갖췄다.
그렇게 에이돌른을 향해 예를 갖춘 그는 거대한 상징 옆에 선 송하균을 바라보며 쿵, 소리가 나도록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경고자님, 참회하려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선 짙은 자책감이 묻어났다.
“말씀하세요. 에이돌른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송하균은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이 답했다.
앙헤바스는 자신이 어쩌다 외지 망명자들에게 속아 넘어갔으며, 어떻게 헬빅의 무기를 훔치게 되었는지 구구절절하게 말했다. 이야기의 끝 무렵에는 급기야 눈물까지 보였다.
“탐욕이 제 눈을 가렸습니다. 주님의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 말에 송하균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참회할 줄 아는 건 구원의 첫걸음이지요. 앞으로는 아류인의 습격을 막는 데 많은 공헌을 하도록 하세요.”
“예, 경고자님.”
앙헤바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송하균의 말이 이어졌다.
“현재 레드스톤 마켓에는 인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외지 망명자들을 다시 품어 그들 역시 공헌으로 속죄하게 하세요.”
앙헤바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뒤이어 심복들까지 참회를 마치자, 앙헤바스는 송하균에게 작별을 고한 뒤 교회당을 떠날 준비를 했다.
출구를 향해 막 돌아선 순간이었다. 앙헤바스의 시야에 의기양양한 원숭이 가면이 들어왔다. 성건우는 어느새 그들의 등 뒤에 이르러 있었다.
“몇 가지 질문이 있다.”
대뜸 운을 뗀 성건우는 앙헤바스가 뭐라 답하기도 전, 가면에 가려진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왜 무기를 산 요괴에게 팔려고 했지? 그들에게 충분한 무기가 생기면 레드스톤 마켓을 습격해 모두의 가족과 친구를 해칠 거란 사실을 몰랐어? 자신과 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이 세 가지 질문에, 앙헤바스는 한동안 어떠한 답도 하지 못했다.
몇 초 후에야 입을 연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나, 난 그들에게 무기를 팔지 않았어!”
반박을 마친 후,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황급히 문으로 향했다.
이윽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순간, 앙헤바스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그의 눈앞에 검은색 망토 차림의 로페즈가 서 있었다.
“너?”
외지 망명자 로페즈는 흠칫 놀란 전 보스를 향해 씩 미소를 그렸다.
“난 이제 교회당 경비야.”